박근혜의 말 - 언어와 심리의 창으로 들여다본 한 문제적 정치인의 초상
최종희 지음 / 원더박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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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는 마음의 거울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의 됨됨이는 언어표현방식에 그대로 투영된다. 사람의 생각을 축적하고 반영하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이다. '송박영신'의 염원을 담아야만 하는 2017년의 안타까운 현실에서도 우리는 소망한다. 그리고 더이상 기만당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정유년 새해의 갈망과 함께 처음 읽은 책 제목은  『 박근혜의 말 』이다. 무려 미우나 고우나 갖다 붙이는 공식 칭호  '대통령'도 빠져있다.  저명한 우리말 연구자의 제목을 보며, 몇 번을 살펴봤다. 하지만 팩트 (fact) 자체였다. 왜 대통령의 호칭이 불편한 것인지는 책의 후반부를 살펴보면 분명하게 밝혀진다. 


 




 

 



 

 

 

 

    분명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대명제로 선출된 권력자는 존경받아야 한다. 데, 전혀 그 지위에 전혀 걸맞지 않는 행동, 언어습관을 보여왔다. 국가통치구조의 대부분이 1인을 통해 이뤄진다 할 정도로 제왕적인 권한에 결코 맞지않는 가벼움, 경솔함, 불통으로 일관하는 행동을 겪고 있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내 언어습관도 개선하기 힘든데, 다른 사람의 언어를 꼼꼼히 분석할 생각은 애초에 없을 것이다. 그러든지 말든지 이미 무관심의 영역인 것이다. 사실상 국민의 뜻을 외면하는 정치현실은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그런 까닭에 정치인의 발언따위를 살펴보는건 무의미했다. 그런데도 유체이탈 화법이라 말하는 이 언어습관은 뇌리에 박힐 정도였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다. 도무지 A~Z로  널부러진 주어실종의 문체는 과히 궤변론자들의 흔한 논법과 같다. 


 



 




  일상의 경험을 통해 살펴보면, 거의 난잡한 사기범의 말투와 같다. 서두는 길고, 듣다 보면 난 이랬으니, 넌 이래야 한다. 알겠지? 이런 변법적인 화법은 처음부터 응대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듣다 보면 집중력을 흩트려놓고, 자포자기하게 하는 화법이기 때문이다. 구구절절 명분을 내세운다. 애국심,국가같은 최상위 개념의 단어들이 등장한다. 사회적 동물로 존재하므로 이 논거에 대한 반론자체는 불가하다. 원론적인 이야기를 쏟아내고난 뒤, 하품이 쏟아질 즈음 반전을 꾀한다. 피차일반식의 논리가 전개되는 것이다. 책임에서 벗어나는 나름의 계책인 셈이다. 알맹이는 없고, 일관성있게 주관적인 관점에서 이분법적으로 해석한다. 세상의 가치는 다양하다. 보수 아니면 진보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래서 성급한 성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일반인치고 자신의 언어습관을 살펴보기도 힘든데, 고맙게도 대통령의 말 중에서도 유독 이상한 말의 특성을 분석한 책이다.  순전히 학문학적 열정만으로 시작할 엄두를 내기 힘든 일이다. 적어도 글을 쓰는데 중요한 '저의'라는 것이 있다. 책을 출간하는 목적이 중요한 것이다. 공익적인 입장에서 책의 목적은 절대적인 선의다. 적어도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의 가리는 인식의 저변을 넓히는 의도로  우리말 연구의 지식을 더하고 있다. 
단 애초의 기대감을 훨씬 초월하는 직관력이 돋보인다.  초고를 완성한 시점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시작했다. 수년에 걸쳐 수집하고 분석한 결과물들의 상당수가 이미 언론에 공개된 시점이었다. 저자는 고민했다. 심사숙고 끝에 출간된 이 책은 통찰력 있는 시각에서 언어 형성 과정을 중심으로 고찰하고 있다. 즉 성장배경 주변의 상황의 환경적 요소를 바탕으로 왜 비정상적인 언어의 맥락을 이어갈 수 밖에 없는지를 해석하고 있다. 






 




 

 

 

 

 

  생명에 대한 기본권만큼 존엄한 가치가 있을까? 국가는 국민의 소중한 생명권을 지켜줄 구성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 책임을 다해야 할 주체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책임 전가의 유형이다. 극명하게 드러난 직무유기의 상황에서도 " 난 책임을 다했다."라고 변명하기에 바쁘다. 그녀의 화법엔 주어가 없다. 애초에 책임은 그 일을 맡아서 하는 실무자들이 다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군왕적 어법이다. 짐은 곧 국가요. 내 말은 곧 진리다.





 




 어떤 환경이 비정상적인 언어 습득을 형성 시킨 걸까? 13세 때 청와대에 입주 최고 권력자의 딸로 경호원과 참모들에 엄호된 환경은 정상적인 언어 환경을 방해한다. 사회화 과정에서 언어를 매개체로 발달해야 할 자아 발달이 비정상적으로 제약된 것이다. 가족간에 형성되어야 할 교감과정이 생략되고, 온통 대통령의 딸로서 누려야 할 권리의식만 강조된 탓이다. 어떤 재벌드라마처럼 가까이서 돌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지금의 탄핵정국이 이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배신 트라우마를 극복할 정신적 매개체는 형성되었을테니...... 권력자의 주변은 온통 그 권력을 등에 업고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들로 채워지게 된다. 


 



 



 

 

 

 

     

 저자는 근혜체로 명명한 어법의 유형을 6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 번째는 무지에서 비롯된 오발탄 어법......즉, 개념의 의미를 모른 채로 아는 척 과시하려는 어법의 유형이다. 두 번째는 샤머니즘으로 말하는 영매 어법...... 우주, 정성, 혼 등 추상명사를 통해 개인의 주관성까지 지배하려는 어법이다. 세 번째는 불통 군왕의 어법...... 강력 대응과 같은 과격하고 직설적인 언어를 남발한다. 네 번째는 피노키오 공주 어법...... 그때그때 이미 했던 논리나 말들은 철저하게 숨긴다. 다섯 번째는 유체이탈 어법 ...... 사과할 줄 모르는 마음속 내의 방증이다. 마지막으로 전화통 싸움닭 어법....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비대면 접속 환경에 최적화된 방식이다.


 



 


 



 

 

 

 

 

   지극히 잘못된 언어 사용의 예를 망라하고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사실상 우리가 고대하던  민주주의는 이제야 태동하고 있다. 무수한 세월을 지배, 탄압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었던 건 어쩌면 그 상처의 끔찍한 흔적들을 쉽게 잊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는 잊지도 말자. 유일하게 국민주권을 실현할 수단인 선거의 권리를 소중하게 행사해야 한다. 그러려면 얼마나 정치인의 말과 행동이 국민의 뜻을 따르고 있는지, 그 사람의 깊은 사유 과정을 담고 있는지를 살펴봐야만 한다. 쉽게 생각하면, 대의제 하에서 선거의 역할은 집단적인 선출이다. 처절하게 어렵게 살아 본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더 생각하게 마련이다. 가슴속 깊이 그 상황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전혀 아무 결핍의 상태로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 사람을 선출하니, 그 참모진들도 마찬가지 모습을 연출한다.

     


 





 


 

 

 

 

 

     문득 어느 순간에 왜 '대통령'이라 칭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을 때가 있었다. 최고의 통치권자로 알려진 이 명칭 또한 유래를 알고 나면, 결코 그냥 사용해서는 안된다. 책 속에서는 이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다른 많은 말처럼 이 말 자체가 일본식 군사 문화 용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 신사의 수호신 이름에도 '통령'이 널리 쓰이고 있다. 중요한 회의를 주재하는 역할의 'president'의 순의미에 大를 얹은 발상이 낳은 비애라 할 수 있다. 광복 후 임시정부의 법령을 그대로 이어받아 대물림 된 것이다. 무비판적인 수용의 폐해 인 것이다. 너도 나도 정확하게 따지기 힘들게 빈곤하게 살아온 현실에 외면한 것이 큰 과오라면 과오이다. 




 

 


 

 

 

 

  
 
   

 

 

 

 

 

 어쩌면 지금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지도 모른다. 권력자들에게 철저하게 은폐된 실체들이 공개되고 있고, 국민들의 인식도 점점 어둠 속에서 벗어나고 있다. 스스로 제대로 된 바른 역사관을 소명하려는 의식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혼돈의 시대에 옳고 그름의 가치를 분명하게 밝혀주는 책들이 많이 보이는건 고무적인 현상이다. 모두가 인식의 부지런함을 재촉해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한다. 수십간 뼛속깊이 스며든 인식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힘들다. 하지만 더이상 속아서 농락당하지 않으려면...... 최소한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려면 인식을 바꿀 용기를 과감하게 가져야만 한다. 역사왜곡에 비유할 만큼 오늘날의 현상이 이어진것도 제대로 청산되어야 할 부조리가 해소되지 않고, 그대로 되물림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라서 잘못할 수 있고, 잘못했으면 죄의식을 갖고 반성해야한다. 우리가 대표자로 선출해야 할 최우선 조건은 적어도 역사소명의식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버젓이 잘못된 정책을 옹호한 체로 편들기 양상으로 변질시키는 정치인은 진실과는 거리 멀 가능성이 많다. 

     좋은 책은 마음 언저리의 자적이는 어둠을 걷어내고, 지혜를 밝혀준다. 끝으로 박근혜의 말 서두에 담긴 불교경전 법구경의 문구를 인용해본다. " 사람의 오점 중에 가장 큰 오점은 진리에 대한 무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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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선 너머 - 수상하고도 발칙한 다이어리
손영미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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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선 너머』라는 제목을 처음 마주했을 때, 시간의 끝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어떤 아득한 경계선이 떠올랐다. 낯선 단어인데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부터 ‘시평선’의 의미를 곱씹게 되었다. 다 읽고 난 뒤에는 그것이 단순한 조어가 아니라, 사춘기 아이들이 지나가는 불안과 성장의 경계선을 의미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소설은 중학교 2학년 설주의 시선을 따라간다. 설주는 평범하지만 누구보다 복잡한 내면을 가진 아이다. 친구와의 관계, 부모의 기대, 자신의 꿈 사이에서 흔들리며 하루하루를 지나간다. 그런데 손영미 작가는 이 시기의 감정을 과장하거나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담백하고 절제된 문체로 아이들의 불안과 외로움을 천천히 따라간다.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아프게 다가온다.




책을 읽는 내내 자연스럽게 중2가 된 조카가 떠올랐다. 모두의 축복 속에서 귀하게 태어난 아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그러나 동시에 훨씬 치열한 경쟁 속에 놓여 있다. 어린 시절부터 비교와 평가에 익숙해지고,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이름 아래 쉼 없이 달려간다. “4시간 자면 명문대 간다”는 식의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어느 순간 자신의 속도보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지금의 교육은 정말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부모 세대가 이루지 못했던 시간의 연장선 위에서, 아이들에게 또 다른 부담을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의 인생은 결국 아이들 스스로 미래를 향해 살아가며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지나간 자신의 후회와 불안을 아이들에게 투영하며,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부모의 간절함이 때로는 아이들의 숨 쉴 공간을 좁혀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시평선 너머』는 바로 그 지점을 조용히 건드린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고, 훨씬 깊게 고민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것을 단순한 ‘중2병’ 정도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소설은 그 말 뒤에 가려진 불안과 외로움,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자기만의 꿈을 지키고 싶은 절박함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설주가 끝내 자신의 꿈을 스스로 붙잡으려 한다는 점이었다. 부모는 사랑하기 때문에 간섭한다고 말하지만, 사랑과 통제는 때로 아주 가까운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아이들은 부모의 복사본이 아니다. 각자의 속도와 감정, 각자의 재능과 세계를 가진 독립된 존재다. 소설은 그것을 거창한 교훈 대신 아이들의 일상적인 대화와 감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좋았던 이유는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내려다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어른들이 잃어버린 감수성과 상상력, 상처를 기억하는 힘이 아이들에게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중학생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한때 불안하고 서툴렀던 자기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시평선 너머』는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다. 경쟁과 속도의 시대 속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동시에 어른들에게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아이들의 미래를 응원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불안과 미련을 아이들의 삶 위에 덧씌우고 있는가. 책을 덮고 난 뒤 오래도록 그 질문이 마음에 남았다.



과연 나는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노력하는 어른인가? 아이들을 모르는 무관심한 존재일까? 


이 책 서평은 바른북스 협찬, 문화충전 200 기획 제공받아, 솔직하게 읽고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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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 인류학적 오답 연구
다크모드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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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와 중세의 형벌 제도를 다룬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은 단순히 잔혹한 처벌의 사례를 나열하는 책이 아니다. 인간은 왜 형벌을 만들었고, 국가 권력은 왜 공포를 필요로 했는가를 되묻게 만드는 책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느껴지는 것은 충격보다도 인간 본성에 대한 불편한 자각이었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다. 문명을 발전시키고 제도를 정비하며 인권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켜 왔지만, 인간 사회의 갈등은 시대를 바꿔가며 반복된다. 과거에는 생존을 위한 폭력이 난무했다면, 오늘날에는 자본과 권력, 정보의 불균형 속에서 또 다른 형태의 박탈감과 갈등이 발생한다. 자유를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때로는 자신의 자유를 위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도 벌어진다. 책 속의 형벌사는 결국 인간 사회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고대와 중세의 형벌이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공포의 시위’였다는 사실이다. 공개 처형과 신체 훼손은 죄인을 벌하는 동시에 대중에게 권력의 절대성을 각인시키는 수단이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방식이지만, 당시에는 국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통치 행위로 기능했던 것이다. 끊임없는 정복전쟁과 살육 속에서 인간 생명의 존엄은 쉽게 소모되었고, 사람들은 공포를 통해 질서를 학습했다. 책은 이러한 역사를 간결하면서도 직관적으로 정리해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오늘날의 사법 시스템도 떠올리게 되었다. 현대 사회는 과거보다 훨씬 인권 친화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왔지만, 흉악범죄에 대한 판결이 국민 정서와 크게 괴리될 때면 사람들은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범죄의 피해와 고통은 분명한데, 법의 판단은 때때로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물론 법은 감정만으로 움직일 수 없고, 냉정한 절차와 기준 위에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법이 사회 구성원들의 상식과 지나치게 멀어질 때, 사법 신뢰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잔혹한 형벌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이 던지는 핵심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폭력을 정의의 이름으로 정당화해 왔는가에 대한 경고에 가깝다. 동시에 공동체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형벌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 역시 피할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잔혹함의 강도가 아니라, 법이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고 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책임의 원칙을 세우는 일일 것이다.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은 과거의 기괴한 형벌을 흥미 위주로 소비하게 만드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폭력성과 권력의 본질,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인문학적 기록에 가깝다. 책을 덮고 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시대가 변해도 인간 사회는 여전히 정의와 질서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 서평은 모티브 협찬, 문화충전200 기획 제공받아, 솔직하게 읽고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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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 릴케 시 필사집 쓰는 기쁨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배명자 옮김 / 나무생각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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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순수가 모순의 형체를 띌 수 있을까? 제목 자체가 모순인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시집을 펼쳐봤다. 보라색의 양장본이 오랫동안 간직할 소중한 정성을 떠올리게 했다. 첫 장을 넘겨보는데 조심스러워졌다. 5월의 후텁지근함과 함께 한편에 가득 쌓아둔 책에 대한 미안함이 복잡한 마음에 얽혀 쌓여갔다. 좀처럼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처음 무작정 습작을 이어갔을 때의 홀가분한 마음을 찾기 위해 시집을 선택했다. 번잡한 마음의 무게가 덜어질까?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흔히 20세기 유럽 문학을 대표하는 서정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인간 내면의 불안과 고독,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존재의 감각을 누구보다 섬세하게 포착했던 인물이다. 특히 그의 시 세계는 당시 유럽 사회의 불안정한 시대 분위기와도 깊게 연결되어 있다.





릴케가 활동하던 시기의 독일과 유럽은 격변의 시대였다. 제국주의와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며 전통적인 공동체는 해체되고 있었고, 인간은 점점 거대한 국가와 체제 속의 부속품처럼 변해갔다. 당시 독일은 강한 중앙집권적 질서와 규율, 군국주의적 분위기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발전과 질서의 시대였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성의 소외와 정신적 공허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시대적 긴장감은 유럽 지식인들에게 존재론적 불안을 안겼고, 릴케 역시 그 흐름 속에서 인간 내면의 고독과 죽음을 응시하게 된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고요함’이었다. 격렬하게 감정을 토해내지 않는데도 이상하리만큼 깊게 흔들린다. 마치 오래된 호수의 수면처럼 잔잔한데, 그 아래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슬픔과 사랑, 죽음에 대한 사유가 끝없이 가라앉아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릴케의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스며드는 것에 가깝다. 필사를 하며 한 문장씩 따라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시인의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나 릴케의 시가 특별한 이유는 시대를 직접적으로 고발하거나 거칠게 저항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는 거대한 정치적 구호 대신, 아주 사적인 감정과 침묵 속으로 파고들었다. 꽃 한 송이, 오래된 조각상, 창밖의 풍경, 고독한 산책 같은 일상의 감각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길어 올렸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으면 마치 세상을 향해 외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자신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필사집의 제목이 된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라는 문장 역시 릴케 특유의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장미는 아름다움과 생명, 동시에 시듦과 죽음을 품고 있다. 인간 역시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받고,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릴케는 이런 모순을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그의 시는 슬프지만 절망적이지 않고, 고독하지만 차갑지 않다. 오히려 모든 불완전함을 끌어안으려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이 필사집의 부제인 ‘쓰는 기쁨’ 또한 릴케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릴케는 평생 끊임없이 메모하고 편지를 쓰며 살아간 인물이었다. 그는 특정한 장소에 정착하기보다 유럽 여러 도시를 떠돌며 산책하고 사색하는 삶을 택했고, 일상의 작은 풍경과 감정을 섬세하게 기록했다. 특히 그는 “시는 감정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의 축적된 경험 속에서 나온다"라는 취지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에게 시는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 자체에 가까웠다. 순간의 인상을 오래 응시하고, 그것이 마음속에서 충분히 숙성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언어로 꺼내는 과정이었다. 그런 점에서 필사는 단순히 문장을 따라 적는 행위가 아니라, 릴케가 세상을 바라보던 호흡을 천천히 따라가 보는 경험에 가깝다.





그래서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는 단순한 시집이 아니라, 삶의 감정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다. 빠르게 소비되는 언어에 익숙한 시대 속에서 릴케의 문장은 오히려 천천히 멈춰 서게 만든다. 그리고 독자는 문득 깨닫게 된다. 인간은 완벽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모순과 상처를 품고 살아가기 때문에 더 깊고 애틋한 존재라는 사실을.





쓰는 기쁨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를 나무생각 협찬, 문화충전200 기획 제공받아, 솔직하게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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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닝 - 끝없이 나를 타인에 맞추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
잉그리드 클레이튼 지음, 최시은 옮김, 김현수 감수 / 센시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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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주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만큼, 삶에 중요한 것은 없다. 사람의 뜻 자체가 삶과 삶 사이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삶 자체를 알아가며 진화하는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생각은 같아도, 표현방식도 다르니, 같은 뜻이 왜곡되고 굴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AI의 출현 이후 사람의 입지는 점점 좁아들고 있다. 모바일 등장하곤 바로 앞의 사람을 대면하고서도, 터치 화면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황이 드물지 않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것 같은 가족 간의 시간은 직장동료와 함께 하는 시간보다 턱없이 비좁다. 사실 서로의 마음을 잘 알 것 같은 가족 사이 서로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인 이후의 자녀는 더욱 부모에게 삶의 고충을 털어내지 못한다. 부모 마음 모르는 자식보다는 자식 마음 헤아리지 못하는 노욕의 부모가 훨씬 많다. 결혼의 대전제에 행복이 빠져 있고, 세월이 약이다.는 식이다. 본질적으로 애증의 관계에 가깝다 할 것이다.



둘 만 낳아 잘 키우자. 시절만 해도,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부대끼며 성장해나갔다. 아이의 교육을 일일이 봐줄 여력 되는 부모가 몇이나 되었을까? 이 시절의 가장은 무능하고 폭력적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 스스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 가정의 평화에 일방적으로 순응했다. 뻔히 불합리한 상황까지도 감수했다. 트라우마 치료 심리 전문가 잉그리드 클레이튼은 이런 순응을 생존의 과정으로 정의했다.




포닝을 읽으며 가장 오래 남는 질문은 단순히 “나는 왜 타인에게 맞추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질문, “나는 정말 내 삶의 중심에 서 있는가”에 가까워진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침묵하고, 타인의 감정과 분위기를 먼저 살피며, 스스로를 뒤로 미루는 태도는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사회와 가족 안에서 학습된 생존 방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인관계가 활발했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면의 고충은 누구에게도 털어낼 수 없었다. 듣고 보면, 누가 누구의 푸념을 듣고 있는가? 생각이 들었다. 역설적으로 나는 갈등에 순응하는 것보다, 반응하며 나 자신을 지켜내려고 했다. 특히 가족 간에 지켜야 할 선을 지켜내기 위해, 폭압적인 관계를 끊어내야 했다. 그때마다 가족을 비롯하여, 자초지종을 제대로 알리 없는 주변인들이 거드는 흐름에 폭압이 단절되지 못하고, 반복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특히 생각하는 능력이 감퇴하고 나면, 육체의 고단함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평소 순응적인 대상에 감정이입하며 하대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어쩌면 20살 이후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까닭은, 본인의 자존감을 지켜내기 위한 본능적인 방어기제라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문명의 이기는 효율성의 방향으로 알고리즘 생성되는데도, 변화 자체에 적응하지 못할수록 과거지사에 집착하며, 현재와 미래 시간 자원을 낭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저자인 잉그리드 클레이튼은 포닝(fawning)을 타인의 요구와 감정에 과도하게 적응하며 자신을 보호하려는 트라우마 반응으로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반응이 폭력적이거나 극단적인 환경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을 위해 참고 살아야 한다"라는 문화 속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재생산된다는 데 있다. 그래서 포닝은 쉽게 미덕처럼 오해된다. 순종, 희생, 배려, 인내 같은 이름으로 말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를 들여다보면, 그 체계를 실질적으로 유지해 온 것은 의외로 ‘권위적인 아버지’만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그 질서를 묵묵히 감당하고 지탱해 온 것은 순종적인 어머니 세대였다. 특히 지금의 시니어 여성 세대는 자신의 욕구나 감정보다 가족의 안정과 체면을 우선하도록 교육받았고,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곧 좋은 어머니이자 좋은 아내의 역할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 순응의 방식이 세대를 넘어 정서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면 현재의 부모 세대는 과거보다 훨씬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내면의 깊은 부분에서는 여전히 오래된 포닝의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고부 갈등의 구조를 보면 그것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들에게는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강조되지만, 정작 독립적인 판단의 주체로 신뢰받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일부 어머니들은 자신이 과거 가부장적 남편에게 순응하며 살아왔던 감정 구조를 아들에게 투영하거나, 며느리와의 관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재현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때 억압받았던 위치에 있던 사람이 또 다른 관계 안에서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남편에게는 침묵했던 사람이 자녀 세대에게는 감정적 압박을 행사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보다 “조용히 넘어가지 못하느냐"라는 태도로 갈등 자체를 비난하는 현상이 반복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질서 유지’가 된다. 그리고 그 질서 유지를 위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대개 가장 순한 사람, 가장 양보하는 사람의 감정이다.





이 지점에서 포닝은 단순한 심리학 서적을 넘어 사회문화적 통찰로 확장된다. 포닝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정서적 생존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갈등을 두려워하고, 관계의 균열을 공포처럼 여기며, 누군가의 불쾌함을 막기 위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조정하는 문화.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보다 타인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법부터 배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정말 평화를 원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갈등이 두려운 사람인가. 나는 내 삶에 충실한가, 아니면 누군가의 감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살아가는가. 그리고 내가 ‘배려’라고 믿어온 태도는 과연 건강한 공감이었는지, 아니면 오랫동안 학습된 포닝의 흔적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은 인간관계의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를 묻는 책에 가깝다. 그리고 그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사회적이며, 세대적이고, 가족사적인 문제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포닝의 징조가 발견될 때 냉철하게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 뭐든 처음이 어려울 뿐이다.

포닝 서평은 센시오 협찬, 문화충전 200 기획 제공받아 솔직하게 읽고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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