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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닝 - 끝없이 나를 타인에 맞추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
잉그리드 클레이튼 지음, 최시은 옮김, 김현수 감수 / 센시오 / 2026년 5월
평점 :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만큼, 삶에 중요한 것은 없다. 사람의 뜻 자체가 삶과 삶 사이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삶 자체를 알아가며 진화하는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생각은 같아도, 표현방식도 다르니, 같은 뜻이 왜곡되고 굴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AI의 출현 이후 사람의 입지는 점점 좁아들고 있다. 모바일 등장하곤 바로 앞의 사람을 대면하고서도, 터치 화면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황이 드물지 않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것 같은 가족 간의 시간은 직장동료와 함께 하는 시간보다 턱없이 비좁다. 사실 서로의 마음을 잘 알 것 같은 가족 사이 서로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인 이후의 자녀는 더욱 부모에게 삶의 고충을 털어내지 못한다. 부모 마음 모르는 자식보다는 자식 마음 헤아리지 못하는 노욕의 부모가 훨씬 많다. 결혼의 대전제에 행복이 빠져 있고, 세월이 약이다.는 식이다. 본질적으로 애증의 관계에 가깝다 할 것이다.

둘 만 낳아 잘 키우자. 시절만 해도,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부대끼며 성장해나갔다. 아이의 교육을 일일이 봐줄 여력 되는 부모가 몇이나 되었을까? 이 시절의 가장은 무능하고 폭력적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 스스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 가정의 평화에 일방적으로 순응했다. 뻔히 불합리한 상황까지도 감수했다. 트라우마 치료 심리 전문가 잉그리드 클레이튼은 이런 순응을 생존의 과정으로 정의했다.

포닝을 읽으며 가장 오래 남는 질문은 단순히 “나는 왜 타인에게 맞추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질문, “나는 정말 내 삶의 중심에 서 있는가”에 가까워진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침묵하고, 타인의 감정과 분위기를 먼저 살피며, 스스로를 뒤로 미루는 태도는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사회와 가족 안에서 학습된 생존 방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인관계가 활발했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면의 고충은 누구에게도 털어낼 수 없었다. 듣고 보면, 누가 누구의 푸념을 듣고 있는가? 생각이 들었다. 역설적으로 나는 갈등에 순응하는 것보다, 반응하며 나 자신을 지켜내려고 했다. 특히 가족 간에 지켜야 할 선을 지켜내기 위해, 폭압적인 관계를 끊어내야 했다. 그때마다 가족을 비롯하여, 자초지종을 제대로 알리 없는 주변인들이 거드는 흐름에 폭압이 단절되지 못하고, 반복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특히 생각하는 능력이 감퇴하고 나면, 육체의 고단함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평소 순응적인 대상에 감정이입하며 하대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어쩌면 20살 이후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까닭은, 본인의 자존감을 지켜내기 위한 본능적인 방어기제라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문명의 이기는 효율성의 방향으로 알고리즘 생성되는데도, 변화 자체에 적응하지 못할수록 과거지사에 집착하며, 현재와 미래 시간 자원을 낭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저자인 잉그리드 클레이튼은 포닝(fawning)을 타인의 요구와 감정에 과도하게 적응하며 자신을 보호하려는 트라우마 반응으로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반응이 폭력적이거나 극단적인 환경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을 위해 참고 살아야 한다"라는 문화 속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재생산된다는 데 있다. 그래서 포닝은 쉽게 미덕처럼 오해된다. 순종, 희생, 배려, 인내 같은 이름으로 말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를 들여다보면, 그 체계를 실질적으로 유지해 온 것은 의외로 ‘권위적인 아버지’만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그 질서를 묵묵히 감당하고 지탱해 온 것은 순종적인 어머니 세대였다. 특히 지금의 시니어 여성 세대는 자신의 욕구나 감정보다 가족의 안정과 체면을 우선하도록 교육받았고,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곧 좋은 어머니이자 좋은 아내의 역할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 순응의 방식이 세대를 넘어 정서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면 현재의 부모 세대는 과거보다 훨씬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내면의 깊은 부분에서는 여전히 오래된 포닝의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고부 갈등의 구조를 보면 그것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들에게는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강조되지만, 정작 독립적인 판단의 주체로 신뢰받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일부 어머니들은 자신이 과거 가부장적 남편에게 순응하며 살아왔던 감정 구조를 아들에게 투영하거나, 며느리와의 관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재현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때 억압받았던 위치에 있던 사람이 또 다른 관계 안에서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남편에게는 침묵했던 사람이 자녀 세대에게는 감정적 압박을 행사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보다 “조용히 넘어가지 못하느냐"라는 태도로 갈등 자체를 비난하는 현상이 반복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질서 유지’가 된다. 그리고 그 질서 유지를 위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대개 가장 순한 사람, 가장 양보하는 사람의 감정이다.

이 지점에서 포닝은 단순한 심리학 서적을 넘어 사회문화적 통찰로 확장된다. 포닝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정서적 생존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갈등을 두려워하고, 관계의 균열을 공포처럼 여기며, 누군가의 불쾌함을 막기 위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조정하는 문화.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보다 타인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법부터 배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정말 평화를 원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갈등이 두려운 사람인가. 나는 내 삶에 충실한가, 아니면 누군가의 감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살아가는가. 그리고 내가 ‘배려’라고 믿어온 태도는 과연 건강한 공감이었는지, 아니면 오랫동안 학습된 포닝의 흔적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은 인간관계의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를 묻는 책에 가깝다. 그리고 그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사회적이며, 세대적이고, 가족사적인 문제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포닝의 징조가 발견될 때 냉철하게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 뭐든 처음이 어려울 뿐이다.
포닝 서평은 센시오 협찬, 문화충전 200 기획 제공받아 솔직하게 읽고 작성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