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을 포기할 때 삶은 가벼워진다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1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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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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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완벽에 의한 압박이 있는 거 같아요

누군가 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느기준점이라는 게 존재하는 듯..

그 기준점에 근접해지기 위해서 완주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자기자신을 갈아 넣고 있는 느낌이랄까?

우리가 매일 아침에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진정 자신의 얼굴인가 아니면 그 얼굴 위에 덧씌워진 '되어야 할 누군가'의 형상인가?

거울이 진실을 보여주는 거울이 아닌 부족함을 확인시키는 기준표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몽테뉴의 인생관이 잘 나타난 책을 읽고 있어요 <완벽을 포기할 때 삶은 가벼워진다>

위그노 전쟁(1562년~1598년) 속에서 신교와 구교의 갈등을 중재하면서 평화에 기여했고 공동체 중심의 중세적 사고에서 벗어나 개인의 경험과 성찰을 강조한 철학자,몽테뉴는 인간은 불완전하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회의주의 ,인문주의, 문화 상대주의를 통해 삶을 성찰했던 철학자 입니다.

회의주의: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 이성의 한계를 강조, 절대적인 진리보다는 상대적 관점과 경험을 중시했어요

인문주의: 개인의 내면 성찰을 중시하고 자기 자신의 솔직하게 들어내는 글쓰기를 시도해서 수상록이라는 최초의 자기 성찰 문학을 마련함

문화 상대주의: 신대륙 원주민의 풍습을 야만으로 치부하지 않고 유럽 사회의 폭력성과 비교하며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했어요

죽음과 삶에 대한 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삶 자체를 목적이자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어요.

모순투성이인 자신을 뻔뻔하게 인정하라

몽테뉴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는데 "나는 나 자신을 그릴 뿐이다" 그런데 그 그림이 참 묘한데 어떤 페이지에서는 자신이 용감하다고 적어두고, 몇 장 뒤에서는 그 용기가 사실은 허세였다고 고백한다. 어떤 날은 인간을 신뢰한다고 쓰고, 다른 날에는 인간만큼 변덕스러운 존재가 없다고 한탄한다. 그는 이 모순을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대로 두었다. 모순이야말로 자신이라는 존재의 가장 정직한 얼굴이라는 듯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일관성을 미덕으로 배워왔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고.. 어제의 결심이 오늘의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한 번 정한 길은 끝까지 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우리 안의 작은 변덕 하나에도 죄책감을 느낀다.

말과 행동이 다른 어느 부분, 겉모습과 속마음이 어긋나는 어느 지점, 그것을 숨기느라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가. 한번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의외로 그 모순들은 그렇게까지 끔찍하지 않다. 오히려 그것들이야말로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결들이다. 모순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조각상이다. 그리고 조각상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숨을 쉬

목적지에 닿지 못해도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

몽테뉴는 한 가지 주레를 잡고 글을 쓰기 시작하지만 글의 중반에 이르면 어느새 전혀 다른 이야기로 빠져 있다. 친구의 죽음에 대해 쓰다가 갑자기 고대 로마의 식습관으로 넘어가고, 교육에 대해 논하다가 자기 신장결석의 고통을 꺼내 든다. 어떤 학자들은 이 산만함을 두고 '구성의 결함'이라 평했지만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책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어느 생각, 문장을 추가해 나가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어느 한 시점에 완성되는 작품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여백에 새로운 문장이 추가되는 영원한 초안이다. 따라서 당신이 지금 어떤 일을 시작하려다 ㅁ아설이고 있다면 한 가지를 기억해 두면 좋겠다. 그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을. 시작했다가 중간에 멈춰도 방향을 바꿔도, 처음의 목표와 전혀 다른 결과에 도달해도, 그 모든 것이 다 당신의 인생이라는 것을..

감정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우리는 어릴 적부터 한 가지 신화를 주입받으며 자랐다. 이성으로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는 신화, 화가 나도 참아야 하고, 슬퍼도 의연해야 하며, 두려워도 태연한 척해야 한다는가르침, 그 가르침은 어른이 된다는 것의 핵심처럼 여겼다. 감정을 통헤하지 못하는 사람은 미성숙한 사람으로 분류되었고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으로 칭송받았다. 그러다 누군가의 한 마디에 마음이 무너진 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왜 이렇게 약한다. 왜 이런 사소한 일로 흔들리는가 왜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가..그 자책은 본래의 상처보다 더 깊은 두 번째 상처를 만든다. 슬퍼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슬퍼하는 자신이 못마땅해서 더 괴로워지는 이중의 고통 우리 시댈의 우울은 대개 이 이중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니 그 무력함을 차라리 인정하면 어떨까? 나는 내 감정의 주인이 아니다. 나는 내 감정의 손님이다. 손님이 찾아오면 맞이하고 떠나면 보내주는 것.







나에게 주어진 만큼만 감당하며 사는 법

스스로를 사지로 몰아넣는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의 세력적, 심리적 한계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으려는 고집에 있다.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곧 나약함이나 패배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계는 굴욕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일 뿐이다. 타고난 키를 바꿀 수 없듯, 하루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몇 시간분이라거나 동시에 마음을 쓸 수 있는 인간관게의 총량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그저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규격이다. 이 사실을 부정할 때 우리는 영혼을 쥐어짜기 싲가한다. 더 견뎌라 더 채워라, 한계를 돌파하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다가 결국 몸과 마음이 차례로 부서지고 마는 것이다.

몽테뉴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수상록』에서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이 가장 큰 지혜다”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욕심내고, 그 안에서 평온을 찾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성숙이다. 완벽을 추구하며 자신을 몰아붙이는 대신, 주어진 몫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오히려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

몽테뉴의 생각을 읽어내려가면서 무조건적인 노력이 미덕이라 강요받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타인에게 맞춰서 생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고 그 과정에서 진정 내가 가고자 하는 모습은 어디고 어디까지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 책이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실수하고 후회하는 나에게, 이 책은 위로가 되었던 책입니다. 삶을 조금 덜 완벽하게, 대신 더 가볍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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