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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노년을 말하다
김윤식.김미현 엮음 / 황금가지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한국 문학계의 거목 김윤식 선생도, 비평을 쓰기 위해선 소설을 세 번 읽는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겨우 두 번 읽고 소설에 대해 ‘평’을 하려고 한다. 젊은이의 패기라고 이해해주라고 하면 너무 뻔뻔한 짓인가.
사르트르는 실존을 논하면서 ‘고독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때에만 자유의 권리를 향유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 선언명제를 살짝 변주해보자. 만약 학자에게 실존을 적용시키는 것이 허용된다면, ‘고독한 습작이라는 의무를 열심히 다하지 않은 자는 결코 창의적 발상과 유창한 언어 구사라는 학문적 권리를 갖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후일에 학문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선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생각하고 치열하게 써봐야 할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람은 으레 자기 스스로에 대해 가장 깊이 생각하고, 자기 자신의 입장에 치우쳐 행동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진 일일수록 그에 대한 나의 관심과 애정은 성기어 질뿐이다. 때문에 아직 앞날이 창창한 이십 대 중반인 내가 벌써부터 ‘노년’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것은 몹시 어색한 일일 듯싶다. 하지만 세상에 난 것은 반드시 소멸하기 마련인 것이고, 나 역시 거기에서 예외일 수 없을 것이며, 이승의 무대에서 소멸되기 전엔 반드시 ‘노인’이라는 새로운 계급장을 달고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오랫동안. 한편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이자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나의 부모는 머지않아 노년의 초입에 들어서게 될 것이며, 초로에 들어선 부모의 존재는 내게 있어 결코 적지 않은 무게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지금 내가 노년에 대해, 노인성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것이 그렇게 생뚱맞기만 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이 소설집에는 모두 8편의 소설이 들어있다. 하지만 8편 모두에 대한 비평(?)을 하기엔 나의 역량이 태부족할 뿐만 아니라, 8편 모두에 집중할 시간적 여유도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8편의 소설 중 뱃사람의 시야를 어둡게 하는 짙은 해무와 같은 소설 한 편만을 골라, 졸작이 될 것이 분명하지만, 글을 적어보기로 했다.
한정희의 「산수유 열매」는 마치 수제비 국물과도 같았다. 얼큰한 맛도, 시원한 맛도 없이 그저 텁텁한 밀가루 국물 맛만 느껴지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술술 넘어가는 수제비 국물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담백하게만 읽힌 소설이었다. 읽다보니 어느 새 끝나있었다. 다 읽은 후엔‘어라, 끝나버리네.’라는 허무한 단말마가 우선 나오는 소설이었다.
작중의 두 여자 영해와 미희는 나이 차가 적지 않다. 적게 잡아도 30년 정도의 터울은 질 것이다. 영해는 이미 두 딸 모두를 여읜 완연한 노인이고, 미희는 비슷한 또래의 노인의 큰 골칫거리일 것이 분명한 과년한 노처녀이다. 이렇게 비슷할 것 하나 없고, 아무 관련 없을 것 같은 두 여자는 엉뚱하게도 ‘젖내’ 하나 때문에 서로 얽혀든다.
작품에서 ‘젖내’는 ‘갇혀있는 일상’, 다시 말해 평범한 가정생활의 상징이다. 평범한 가정생활은 단란하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다. 가정주부로서의 고된 일상을 모두 겪어내고 이제 졸업식만 남은 영해에게서는 지난 시절의 일상이 남긴 ‘젖내’가 희미하게나마 아직 남아있을 것이 분명하였고, 미희는 마치 부재하는 것에 대한 갈망은 더욱 더 불타오르기 마련임을 몸소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 희미한 ‘젖내’를 단박에 알아챈다. ‘젖내’를 맡은 미희는 영해에게서 인생의 앞선 시간들을 먼저 겪어낸 선배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동안 얼마나 삶에 찌들었을까하는 가엾음을 동시에 느낀다. 이런 모순된 감정은 그녀가 신부에게서 느꼈던 감정과 일부 겹친다. 미희는 신부를 3년 넘게 만나면서, 신부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의 지긋지긋한 일상 속으로 함께 빠져드는 것은 마다했다. 때문에 그녀에게서 ‘젖내’를 맡으려는 그를 강하게 몰아쳤고, 결국 그와의 만남도 아예 그녀의 삶 밖으로 몰아내버렸다. 그녀는 이렇게 ‘젖내’를 혐오하기만 했었다.
하지만 영해가 그녀에게 남긴 ‘젖내’는 그녀에게 ‘젖내’의 또 다른 면을 일깨워준다. 산수유 꽃이 만발하는 봄과 산수유 열매가 피어나는 늦가을, 그 사이의 긴 시간엔 무엇이 있을 것인가. 아마도 ‘젖내’나는 일상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영해가 주름살 제거 시술을 받으며 ‘인생의 확장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젖내’의 시간을 견뎌냈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해 흑백의 풍경을 뒤로하고 천연히 빛나는 새빨간 원색의 산수유 열매를 맛보기 위해서는 일상에 갇히는 수인 생활을 마다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달콤함은 그저 오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