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과 헤어진 후 다윗은 놉으로 간다. 놈으로 간 이유는 확실치 않다. 블레셋으로 망명할 계획(10절 참조)을 품었다면 굳이 놉에 들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기브아를 중심으로 높은 블레셋 영토에서 멀어지는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놉으로 간 것은 그곳에 안치된 골리앗의칼을 가져오기 위함이다. - P448
다윗이 사울로부터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블레셋으로 망명하는 것이었다면, 골리앗의 칼을 가져가는 것이정치적 가치를 높이는 좋은 방법이다. 블레셋이 가장 두려워하는 장수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들고 망명했다는 소식은 블레셋의 사기를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 P448
【놉】 높은 실로의 성소가 파괴된 후 이스라엘의 제의 중심지였다. 놉에는 엘리의 증손인 아히멜렉이 제사장으로 있었다. 예루살렘의 바로 북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침공하는 적들은 언제나 놉을 예루살렘 침공을 위한 전진 기지로삼았다(사 10:32). - P448
놉에 상주했던 에돔 사람 도엑이다. 그는 사울이 정보 수집을 위해 전국에 심어 놓은 첩자 중 하나이다. 아히멜렉이 다윗과 내통했다는 소문이 사울에게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 P449
16장에서성결과 음식의 모티브가 사용되었듯, 본문에서도 성결과 음식의 모티브가 등장한다. 사무엘의 베들레헴 방문 이야기에 이어곧 골리앗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다윗의 놉 방문 장면에서도 골리앗이 언급된다. - P449
이는 사무엘의 베들레헴 방문이 다윗의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듯 다윗의 놉 방문이 다윗의 왕정 등극 과정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됨을 암시한다. 실제로다윗의 놉 방문은 다윗의 도망 생활이 돌이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음을 알린다. - P449
아히멜렉이 다윗의 거짓말과 공모한다는 사실은 지금까지의패턴과도 맞아떨어진다. 다윗이 사울의 손아귀를 벗어나 놉으로 오기까지 두 명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먼저 사울의 딸 미갈이 아버지에게거짓말을 함으로써 다윗의 도망을 도왔고, 사울의 아들 요나단도 다윗이 매년제에 참석하러 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제 제사장 아히멜렉이다윗의 거짓말에 공모자가 됨으로써 사울의 신하 도엑-결국 사울을속이고 있다. 미갈과 요나단처럼 아히멜렉도 사울 정권의 핵심 인물이지만 다윗과의 우정 때문에 그의 탈출을 돕는다. - P450
아히멜렉과 다윗과의우정은 다윗이 골리앗의 검을 놉 성전에 안치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시작된 것 같다(17:54 해설 참조). - P450
다섯이라는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종종히브리어에서 숫자 다섯은 ‘약간, 조금‘의 의미로 사용된다(알터, 131쪽), - P450
본래 "거룩한 떡"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지만 아히멜렉은 율법 규정을 느슨하게 적용하여 다윗의 부하들이 여자와 동침하지 않았다면 거룩한 빵을 허락하겠다고 제안한다. 이 제안은 엘리 아들들의 두 가지 죄제물을 소홀히 취급한 것과 성전에서 일하는 여인들과 동침한 죄를 모두 연상시킨다. 역설적인 것은 엘리가문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거룩한 음식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취한것이 본문에서는 긍정적으로 서술된다는 것이다. - P451
성결 규정을 어긴 것은 안식일 논쟁과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다윗의 예를 인용한 것은 그 이야기의 소재가 ‘성전‘과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전‘과 ‘제사장‘은 안식일 비노동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성전보다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6)"라고 말씀하신 의도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보다 크다고주장하신다. 즉 예수님은 참 성전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제사장이다. 제사장들이 참 성전에서 혹은 참 성전을위해 일하는 것은 안식일 규정에 구애받지 않는다. 제사장들은 안식일에도 일할 수 있고, 일해야 한다. 따라서 제자들은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다. - P451
다윗의 대답에 만족한 제사장은 그에게 "거룩한 떡을 내어준다. 그리고 사무엘서 저자는 거룩한 떡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아히멜렉이 거룩한 떡이라고 말한 것은 진설병이다. 진설병은 성소안, ‘여호와 앞‘ 즉 지성소 휘장 앞의 상 위에 전시된 열두 개의 빵을 지칭한다. 이 빵은 하나님과 열두 지파가 맺은 언약을 상징한다. 안식일마다 새롭게 만든 빵이 상에 오른다. 상에서 내려온 빵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다. - P452
즉 도엑은 사울을 위해 놉의제사장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에돔 사람이었기 때문에 제사장의 반역 행위를 고발하는 데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아히멜렉과 다윗은 도엑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도엑은 사울이 다윗과요나단과의 관계에 대해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고 측근들을 꾸중하자 놉 제사장 아히멜렉과 다윗 사이에 있었던 모든 것을 자원하여 보고한다. - P453
도엑이 에돔 사람이었다는 사실과 사울의 목자장이라는 사실은 구속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고대 근동 문헌에서 목자는 이상적인왕에 대한 은유로 자주 사용되었다. 다윗도 목자였음을 고려하면 놉성소에는 현재 목자가 두 명 있는 셈이다. 하나는 유다 베들레헴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에돔 사람이다. - P453
헤롯도 도엑처럼에돔 사람이었고 그는 이스라엘의 목자를 자처하였다. 그때 예수님께서 참 목자로 오신 것이다. 도엑이 다윗을 도운 놉 제사장들을 죽였듯. 헤롯도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박사들을 죽이려 했고 그 일이 실패하자두 살 이하 아이들을 모두 죽였다. 도엑과 다윗의 만남이 우연이라고보기에는 이런 구속사의 그림이 너무 선명하다. - P454
그러나 도엑이 듣고 있음을 의식한 다윗은 골리앗의 칼은 직접 언급ㅎ지 않고 "수중에 칼이나 창이 없나이까"라고 질문한 것이다. 이에 대한 아히멜렉의 대답도 도엑을 의식한 것이다. - P454
그는 칼의 존재를 확인해 주면서 다윗이 "엘라 골짜기에서 그 블레셋 사람"을죽인 장수라는 말을 덧붙인다.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킬 필요는 없다. 다윗은 그 싸움의 당사자였다. - P455
이는 도엑으로 하여금두려움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물론 도엑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신세라는 것을 몰랐겠지만 나중에라도 알게 되었을 때를 대비해 다윗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 것이다. 아히멜렉은 골리앗의 칼이라도 괜찮다면 가져가도 좋다고 허락한다. - P455
다윗은 아히멜렉과의 ‘연기‘를 통해 도엑의 의심을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또한 아히멜렉은 도엑에게 다윗이 골리앗을 맨손으로 때려잡은 장군임을 상기시킴으로써 은밀히 협박한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나아히멜렉은 도엑 때문에 결국 놉의 제사장들이 모두 학살당할 것이라는 것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 P455
이런 정치적 망명에 가정 적합한 선물이 골리앗의칼이다.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땅에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의힘에 정복당했다는 표지였던 것처럼 이스라엘 땅에 안치된 골리앗의칼은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힘 아래에 있다는 상징이 된다. 골리앗을 무찌른 적의 장수가 그 검을 들고 가면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기쁨일 것이다. 마치 여호와의 궤가 이스라엘에 돌아올 때 이스라엘이 느꼈던 기쁨에 비견될 수 있다. - P456
이처럼 다윗은 생존을 위해 정치적 망명을 시도한다. 이것은다윗의 문제(사울)를 단번에 해결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블레셋에서 망명가로 어느 정도의 생활과 지위를 보장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는 불확실하다.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놉의 성소에서 다윗이 하지 않은 일이다. - P456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로 묻지 않았다. 다윗이 놉의 성소에 왔을 때 망명에 대한 그의 마음은 정해져 있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치밀한 계획도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히멜렉이 검의 위치를 설명할 때 "에봇 뒤에 있다"라고 했음에도 다윗은 하나님께 여쭈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못한 것 같다. 이후 다윗은 여러 번 에봇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구하지만 놉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블레셋으로 망명하면 생존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즉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사명에서는 도망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 P456
사울이 두려워서 아기스에게 도망왔으나 이번에는 아기스가 두려워진 것이다. 두려움의 대상만 바뀌었지, 다윗은 이스라엘 땅에서나 블레셋 땅에서나 여전히 두려움 가운데 살게된 것이다. 두려움을 회피하는 손쉬운 방법이 두려움의 대상에서 도망가는 것이지만 절대 영구적 해결책은 아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어디를 가든지 두려운 존재를 만나게 된다. - P457
가드 땅에 오면 안전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다윗은 막상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자 사명을 버리고안전을 도모했던 것을 회개했을지도 모른다. 다윗이 특히 마음에 둔 말(12절)은 "그 땅의 왕 다윗"이라는 말이다(11절). 아기스의 신하들은 다윗을 조롱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지만,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처럼들렸다. ‘그렇다. 나는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 아닌가? 하나님이 나를왕으로 지명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나는 한갓 인간을 두려워하여 이렇게 블레셋 사람들 사이에서 안위를 도모하려 했던가. - P457
이런 다윗의 ‘회심‘을 보여 주는 것이 "그들 앞에서 다윗이 행동을 바꾸었다"는 말이다(13절). ‘행동을 바꾸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샤나타암 (sanah taam)은 ‘판단을 바꾸다‘ 혹은 ‘생각을 바꾸다‘로도 번역될 수 있다. - P457
다윗이 ‘회심‘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셔서 다윗은 미친 척하기 시작한다. 대문짝을 손으로 긁적거리며, 수염 위로침을 흘린다. 이런 행위를 통해서 다윗은 의심과 경계의 눈으로 자신을쳐다보는 사람들의 촉수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것 같다. 또한 아기스는다윗이 미쳤다 함을 듣고 그를 자기 집(궁)에서 제거하려 한다. 미친 다윗은 더 이상 정치적 이용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윗은 자연스럽게, 무사히 아기스의 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 P457
다윗은 사울이 두려워 도망했지만, 블레셋 땅에서도 두려움의 대상 아기스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그때 ‘그 땅의 왕 다윗‘이라는 말이 다윗의 심장에 꽂힙니다. 다윗은 자신의 사명을 다시 기억하고 아기스의 궁에서 탈출합니다. - P459
우리도 사역의 현장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두렵고, 비전이 희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다윗처럼 기도도 하지 않게 됩니다. 인간적 수단으로 사명의 현장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을 되돌리셨던 하나님은 우리가 현장에서 끝까지 믿음의 싸움을 싸우기를 원하십니다. - P459
문맥으로 볼 때 사울이 자신을 추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윗이 몰랐을 리가 없다. 이런이유 때문에 학자들은 "보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자음에 모음을새롭게 찍어 "두려워했다"로 번역하기를 제안한다(‘wyr‘‘를 ‘바야르‘가 아니라 ‘바이라‘로 읽음). 만약 다윗이 매일 계속되는 사울의 추격을 두려워했다면,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와 "두려워 말라"(알 티라, altivra, 17절)라고말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 P488
요나단이 다윗을 방문한 목적은 16절 후반부에 기록되어 있다. "그로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다." 이 말도 원문의 의미를 잘 살리지 못한다. 원문(바야흐제크 엣-야도 벨로힘, wayyahzeq et-yadobelohim)은 ‘요나단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의 손을 굳세게 하였다‘로직역될 수 있다. 즉 믿음 없는 다윗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어려움 가운데 있는 다윗을 격려하는 것이다. ‘손을 굳세게 하다‘는 ‘격려하다‘, ‘힘을주다‘는 의미의 숙어이다. - P489
"십 사람들"이라는 표현(19절)은 십 사람 전체도, 그 대표단도 아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몇몇 십 사람들"이라는 의미다(알터, 144쪽). 이들이 다윗을 배반하려는 이유는 보상 욕심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나중에라도 다윗이 십 광야에 은신했다는 사실을 사울이 알게 되면 사울에게보복당할 것이 두려워서일 수도 있다. 사울이 놉 성읍을 몰살한 소문은 이스라엘 전역에 이미 퍼졌다. - P490
한 지식을 지칭한다. 사울은 소문이 아니라 발로 뛰어 얻은 확실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확실한 정보를 가져와야 사울은 기브아에서 유다 광야로 내려갈 것이다. - P491
[사무엘상 23장과 시편 27편] 사무엘상 23장은 다윗이 헤렛 수풀(야아르 헤렛, yaarheret)에서 그일라로, 그일라에서 십 황무지로, 십 황무지에서 마온 황무지로, 마온 황무지에서 엔게디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 P493
다윗은 이동하는 곳마다 그곳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사울의 집요한 추격에 가슴을 졸여야 했다. 다윗에게는 매우 힘든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은 계시로, 혹은 블레셋을 보내어 사울의 손에잡히지 않도록 하셨다. 다윗은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깊게 묵상했다. 이것을 잘 알려 주는 것이시편 27편이다. 다윗이 사울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을 때 만든 노래라는 데 많은 학자들이 동의한다. - P493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무서워하리요.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께청하였던 것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편 27:1-4). - P493
다윗이 가장 큰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 지은 이 시편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노래한다. 다윗은 사울에 대한 두려움이엄습하면 할수록 그의 눈을 하나님께로 돌렸던 것 같다. 하나님을 새롭게 깨달을수록 사울에 대한 두려움은 극복되어 갔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던 다윗의 소원은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것이었다. 다윗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이 어떤분이신지에 새로운 고백과 깨달음을 통해 죽음과 같은 시간들을 이겨 왔던 것이다. - P493
그러나 그때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한다. 익명의 전령이 나타나 사울에게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 땅을 침략했다"고 알린 것이다. 이 때문에 사울은 블레셋 사람과 전쟁하기 위해 다윗에 대한 추격을멈춘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또한 이것은 사울이 자신의본분(블레셋 문제 해결에 써야 될 시간을 다윗(블레셋을 무찌른 장수)을 추격하는 일에 낭비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 P495
마온 광야에서 사울의 군대에 거의 잡힐 뻔한 다윗은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벗어났다.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그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고 명했는데(28절) "분대-다윗을 협공하던 사울의 두 부대의 바위 산‘ 혹은 "민둥 바위 산"이라는 의미이다. - P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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