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늦어 철쭉을 6월 초순에나 피워내는 지리산은 가을은 또 유난스레빨라 10월이면 단풍 들지 않은 나무가 없었다. 다만 바늘잎을 가진침엽수들만이 둔감하게 초록빛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 P7
경사가 급한 계곡을 올라가면서 보면 단풍잎들은 곧잘 하늘과 겹쳐져 보이고는 했다. 해맑게푸른 가을하늘과 어우러진 새빨간 단풍의 투명함은 흡사 백설 위에 점점이 찍힌 피의 선연함이었다. - P8
그러나 피아골의 단풍이 유명한것은 단풍이 고와서만이 아니었다. 피아골은 그 길이가 길뿐만 아니라 암반과 기암괴석들이 많았고, 암반 위를 흘러내리는 물줄기가넓고 굵었다. 단풍잎들은 가지가지 형상의 바위들과 넉넉하게 흘러내리는 물과 조화를 이루어 그 곱기가 한층 돋보였던 것이다. - P8
그러나 피아골 단풍이 그리도 핏빛으로 고운 것은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고 했다. 먼 옛날로부터 그 골짜기에서 수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그렇게 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 P8
그리고 또 한 가지떠도는 말은, 연곡사 아래서부터 섬진강 어름까지 물줄기를 따라가며 양쪽 비탈에 일구어낸 다랑이논마저 바깥세상 지주들에게빼앗기고 굶어죽은 원혼들이 그렇게 환생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 P8
그런데 그놈들이 섬강을 따라 전라도땅으로 들어오는 외길목이 바로 피아골 입구였것이다. 그 길목에서 왜놈들을 막아내지 못하면 전라남도 내륙ㄷ은 그대로 내줄 수밖에 없었다. 관군은 이미 있으나마나 한 상태서 백성들은 의병을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 P9
싸우며, 죽으며, 밀리며 되풀이하면서 의병들은 연곡사도 빼앗기고 자꾸 피아골 깊이 들어갈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왜놈들의 포위에 걸려 삼홍소 부근에서 거의 다 잡히고 말았다. 왜놈들은 결박한 의병들을 바위에 세워 일일이 목을 쳐 죽였다. 칼을 내려칠 때마다 목 따로, 몸뚱이 따로 계곡물에 곤두박였다. 삼흥소가 시체로 넘치고, 거기서부터 피로 물든 계곡물이 20리를 넘게 흘러강에까지 닿았다. - P10
그리고 갑오년에 일어난 농민전쟁으로 또 피아골의 물은 피로물들었다. 그때도 농민들은 목이 뎅겅뎅겅 잘리며 계곡물에 곤두박여 온몸의 피를 남김없이 쏟아내고 죽어가야 했다. 알량한 왕조는 왜놈들을 불러들여 청부살인권을 주었던 것이다. - P10
그 다음으로, 왜놈들의 노골적인 식민지화에 저항하여 한일협약을 계기로 도처에서 의병들이 일어났다. 그때 전남의병은 몰리고몰리다 그 최후를 피아골에서 맞았던 것이다. - P10
그리고 여순사건 때도 많은 사람들이 섬진강을 건너 피아골로쫓겨들어와 피를 뿌렸던 것이다. - P10
그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끈질기고 선량한 사람들인가는 그들이 일궈낸 다랑이들이입증하고 있었다. 돌투성이 산비탈들을 따라 일구어진 다랑이들 성품이 선량하지 않고, 정신력이 끈질기지 않고, 몸이 부지런하지 않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었다. - P11
그러자면 비탈을 직각으로 깎아서 계단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러나 땅을 한꺼번에 넓게 할 욕심으로 비탈을 마음대로 깊이 깎아서는 안 된다. 깎은 높이가 높을수록 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힘이 커져 산사태의 위험도 따라서 커지고, 깎인 면적이 윗논의 논둑이 되는 것이므로 전체적으로 볼 때는 논 넓이가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 P11
그러니까 산사태도 막고, 논의넓이도 최대한 넓히자면 억지를 부리지 말고 지형에 따라 비탈을깎아나가면서, 생기는 만큼씩 수평의 땅을 얻어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논둑은 구불구불한 추상적인곡선이 되고, 어느 부분에선 딱 밥소반만 한 땅이 생기게도 되는것이다. - P12
생활의 여유라고는없는 그런 사람들에게 뜻하지 않은 우환이 닥치는 것이었다. 그것은 대개 식구들 중에 누가 큰 병을 앓게 되는 경우였다. 그렇게 되면 온갖 민간요법을 동원해 치료를 하다가 더는 견딜 수 없게 되면병원을 찾아나설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 갈 수 있는 돈은 빚밖에없었다. 빚은 바깥세상에 나가야 얻을 수 있었다. - P13
그 빚돈은 이자가 높아 양잿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식구를 죽일 수는 없었다. 다랑논을 담보로 5부 빚돈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빚돈에 손을 대게 되면 다랑이논은 십중팔구 빚쟁이 손으로 넘어갔다. - P13
5부 이자라는 빚구덩이는 호랑이 아가리나 다름없어서 한번 빠지면 벗어날 가망은 아무에게도 없었다. 빼앗긴 논을 소작이라도 부칠 수 있으면 또 모르지만, 그것마저 틀어지고 말면 그 사람은 완전히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 사람들은 더 이상 다랑논을 일궈내지 못하고 피아골을 헤매다가 죽어갔다. - P13
"허허허허 남대문 본 사람하고, 안 본 사람하고 다투면 누……가 이기는지 알지요? 오륙 년 전에 나하고 이 지리산에서 살 때 살이 통통하게 오른 독사를 100마리, 아니 100마리는 너무 많고, 아마 50마리씩은 넘게 잡아먹었을 것이오. 그게 거짓말인지 참말인지는 지구로 돌아가서 하 동무가 염 동지한테 직접 물어보시오." - P18
하대치는 두 가지 일을 해내기 위해 잠시 지리산에 온 것이었다. 비무장들의 이동을 그의 무장부대가 경계하는 것이 첫 번째였고, 10월혁명 기념 씨름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두 번째였다. - P19
그러나 하대치로서는 또 하나의 목적을 개인적으로 감추고 있었다. 씨름대회에서 이현상 선생‘을 만나보고자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래서씨름대회에 나가보지 않겠느냐는 권유에 선뜻 응했는지도 몰랐다. - P19
이해룡이 들고 있는 것은 그냥 막대기가 아니었다. 팔길이 반만한 그것은 대나무를 가늘게 잘라서 서로 맞대어, 손가락 세개정도를 합한 넓이가 되도록 삼끈으로 엮어 묶은 죽도였다. 검도 솜씨가 남다른 그가 총만큼 소중하게 여기며 몸에서 떼지 않는 물건이었다. 그것의 쓰임새는 다양했다. 호신용 무기였고, 지휘봉이었고, 작전지시기였으며, 연락병호출기였다. - P21
"하동무, 기다리시오. 이따가 내가 몇 마리 잡아다가 맛을 봐드릴테니까, 생으로 먹는 게 징그러우면 구워서 먹는 방법도 있소. 구워서 먹으면 기름이 지글지글한 게 그 구수한 맛이 뱀장어 뺨칩니다." "아이고메, 나 싸게 지리산 떠야 쓰겄소." 얼굴을 찡그린 하대치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 P20
운 무게와 여유가 실려 있었다. 하대치는 그런 이해룡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저 사람도 인자 염 동지하고 어슷비슷허니 되었구만 하는 생각을 또 하고 있었다. - P22
하대치는 이번에 그가 부대를지휘하고 인솔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몇 번이고했던 것이다. 그럴 때면 그의 왼쪽 볼을 길게 찢고 있는 흉터도 꼭흉하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말마따나 그것은 ‘인민의 훈장‘이고 ‘빨치산의 훈장‘으로 당당하고 값지게 보이기도 했다. - P22
"하이라. 우리 형펜이 좋아져서 지리산얼 싸게 벗어나게 되야겄제라이, 어린이 허는 말로 지리산언 명산임스로도 악산이라는말이 안 있습디여? 귀경허기로넌 명산이라도, 반란 일으킨 백성들헌테는 악산이라는 말이제라. - P23
옛적부텀 들판에서 들고일어난 백성들은 산으로 피해감스로 싸우고 싸우다가 지리산으로 몰리먼 종당에넌 끝장나뿌렀다는 것인디, 우리야 싹 다 지리산으로 쫓기는것이 아니고 비무장만 임시변통으로 뒤로 빼는 것잉께 달브기야허제만 그려도 지리산으로 뒤뺀다고 헐 적에 맘이 껄쩍지근혔고, 이리 와서 봉께로 맘이 쌔코롬해짐스로 탁 까라지는 것이, 자꼬 어런덜 말이 되씹히고 그러요." - P23
높고 깊은 지리산 골짜기에는 벌써 겨울기운이 서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밥을 마치자 이해룡은 다시 간부들을 집합시켰다. "모닥불을 피우고 중대별로 한 시간 정도씩 오락회를 실시하도록 하시오. 여기 온 대원들은 오늘 밤이 지리산의 첫날밤이나 마찬가지요. 밤에 불을 못 피운 지도 오래됐으니까 맘껏 모닥불을 피우고 오락회를 즐기도록 하시오. 학습은 내일 낮에 하도록 합시다." - P31
아직은 토벌대의 위험이 전혀 없는 지리산에서 맘껏 모닥불을피워올리고 오락회 하는 것은 그동안 억눌려왔던 감정을 풀고, 앞으로의 사기를 높이는 데 더없이 효과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적의 위협이 없다고 해도 그런 결정을 척척 내리는 이해룡의 과감성을 보며 하대치는 또 그의 변모를 느끼고 있었다. - P31
피아골이 남성적이라면 심원골은 여성적이었다. 같은 산이면서도 등성이를 가운데 두고 그리도 다른모습이었던 것이다. 심원골의 단풍들도 피아골에 못지않게 고왔고, 샛가지 많은 깊은 골짜기의 경치는 신비스럽기 그지없었다. - P33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구례군당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상태였다. 하대치는 구례군당과 함께 오기로 되어 있는 김범준 소장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염상진은 그분을 지리산까지 무사하게 모시라고 특별히 다짐했던 것이다. - P35
김범준은 조선공산당의 커다란 두 갈래인 남로당과 북로당, 그리고 거기에 연결된 국내파와 국외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이현상이 되넘긴 말은 그 당의 구조와 직결되는 것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것에 관한 발언은 곧 정치적인 것이었고, 그래서 무슨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김범준은 혁명과 정치의 그 복잡한 이질성을 오래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오로지혁명전쟁의 시기라는 것만을 생각하고자 했다. - P40
전투력의 정비완료와 함께 총사에서 각 지구에 내린 지령은 철도 파괴와 열차 습격 그리고 교량 파괴였다. 그런 적극적인 전략은주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엔군의 대공세와 휴전회담에 맞걸려있었다. 후방을 강하게 교란시켜 적의 병력을 뒤로 유인함으로써주전선의 공격을 둔화시키자는 빨치산 본연의 임무수행이었다 - P46
빨치산이 의무군대가 아니라 자각군대인 한 악조건을 호조건으로 바꾸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했던 것이다. 소조로 분산시킨 야간의 동시다발적 교란과 신속한 소조의 결합으로 한 지점에 결정타를 가하는 야간기습을 병행또는 교차시킬 기본계획을 세웠다. - P47
빨치산투쟁의 최일선에 서서 염상진이 언제나 중대시하는 것은현실적 상황변화와 그 대응책이었다. 눈앞의 상황은 비무장대원들을 지리산으로 피신시킨 데 이어 도당사령부도 백운산으로 이동하지 않을 수 없도록 변해가고 있었다. - P48
"아니구만이라 집덜언 다 불타뿔고 감나무만 한나 서 있었구만이라 거그가 개덜이 자주 댕기넌 길목인디, 지가 감얼 안 따묵으면개덜이 따묵을 것인디요." 한대진 소년은 약간 시무룩하니 말했다. "아, 잘했소. 그랬으면 더많이 따오지 그랬소" 염상진은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감이 꼭대기에만 몇개 달렸어서 요것도 포도시 땄구만이라." 한대진 소년이 목을 움츠리며 쑥스럽게 말했다. "아하하하하.… 누가 다 따가고 남긴 까치밥을 따왔다 그 말이오? 아 참 애썼소. 어서 먹읍시다." - P51
그가 입산한 경위는 너무 순진해서 어린 나이와 함께 어른들을 더 어이없게 만들었다. 그가 밝힌 이유는 ‘아저씨들이 좋아서‘였다. 아저씨들이란 구빨치를 말하는 것이었고, 주막집에 나무를 해다주고 더부살이를 하고 있던 그는 나무를 하러 다니면서 아저씨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했다. 밥도 더러 얻어먹었고 총도 만져보았으며, 그러다가 소금 같은 것을 구해다주는 심부름도 하게 되었다. - P52
다. 김범준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 ‘한소귀‘였다. 소귀(小鬼)‘는 대장정을 치른 중국공산당의 홍군 안에 있었던 소년병들의 지칭이었다. 한대진은 김범준 소장이 별명을 지어준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그 별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 P53
"암호는 육자(六字맞추기로 이쪽이 두 번, 저쪽이 네 번이오." 염상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두알 하나를 내밀었다. 그 속에는지령문이 들어 있었다. 육자맞추기 암호란 접선장소에서 서로가 미리 정해진 횟수만큼 돌을 두들기거나 손바닥을 쳐서 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합해서 여섯이 되게 하는 방법이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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