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반역자들, 곧 이스라엘 가문에게 전하여라. ‘주 하나님의 메시지다. 이스라엘아, 추악하고 역겨운 짓을 이제 그쳐라. 너희는 마음과 육체에 할례 받지 않은 불경하고 완악한 이방 사람들을 내 성소에 끌어들였고, 내게 희생 제물로 바친 것들을 그들이 먹도록 내놓았다.  - P593

너희는 추악하고 역겨운 짓을 서슴지 않았으며, 신의를 저버리고 나와 맺은 엄숙한 언약을 깨뜨렸다. 너희는 나의 거룩한 기물들을 돌보지 않았고, 나의 성소에 대한 경외심이 전혀 없는 이방인들을 고용하여 그 일을 떠맡겼다. 마음이나 육체에 할례를 받지 않은 불경하고 완고한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어도 내 성소에 들어올 수 없다.‘
- P593

온 이스라엘이 우상을 좇아가자, 거기에 편승하여 나를 버리고떠난 레위인들은, 그 모든 잘못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그들은 성소에서 머슴 일만 하게 될 것이다. 문지기 일이나 성전허드렛일을 맡아서, 백성이 가져오는 희생 제물을 잡아주고 그들을섬기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 P593

우상들의 제사장 노릇을 하며 내 백성이스라엘을 걸려 넘어지게 한 그들이니, 내가 반드시 그들을 벌하기로 맹세했다. 주 하나님의 포고다.  - P593

15-16 그러나 모두가 나를 등지고 떠났을 때도 신실하게 나의 성소를지키고 돌보았던 사독의 자손 레위인 제사장들은, 내 앞에 나아와나를 섬길 것이다. 그들은 엄숙하게 희생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의일을 수행할 것이다. 주하나님의 포고다. 그들만이 내 성소에 들어올 수 있다. 그들만이 내 상에 가까이 와서 내일을 도우며 나를 섬길 수 있다. - P593

20 그들은 머리를 밀어서도 안되고 머리카락이 덥수룩하게 놔두어서도 안되며, 늘 단정하게 깎아야 한다.
21 어떤 제사장이든지, 일할 때 술에 취해 있으면 안된다. 안뜰에 있을 때는 포도주를 입에 대지 못한다.
- P594

22제사장은 과부나 이혼한 여자와 결혼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스라엘 처녀나 제사장의 아내였다가 과부가 된 여인과는 결혼할 수 있다.
23 제사장이 할 일은 내 백성이 거룩한 것과 일상적인 것,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분별하도록 가르쳐 보이는 것이다. - P594

23 제사장이 할 일은 내 백성이 거룩한 것과 일상적인 것,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분별하도록 가르쳐 보이는 것이다.
24 의견 대립이 일어나면, 제사장들이 나서서 중재해야 한다. 나의판결과 법규와 율례에 입각해서 판단을 내려야 한다.  - P594

 제사장은 시체에 가까이 다가가 자신을 부정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죽은 자가 그의 부친이나 모친, 아들이나 딸, 형제나 미혼 자매일 경우에는 시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정결 의식을 치른 후에도 칠 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 다시 성소에서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성소 안뜰로 돌아갈 때는, 먼저 자신을위해 속죄 제물을 바쳐야 한다. 주 하나님의 포고다.
- P594

제사장들의 땅 소유에 대해 말하면, 내가 바로 그들의 유산이다. 그들에게는 이스라엘의 어떤 땅도 주어서는 안된다. 내가 그들의 땅이며 내가 그들의 유산이다.  - P594

그들은 곡식 제물과 속죄 제물과속건제물에서 양식을 얻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배를 위해하나님께 바친 것들은 모두 그들의 몫이다. 사람들이 기른 것 중에가장 좋은 것과 모든 특별 선물도 제사장들의 몫이다. 하나님께 예배하며 바친 모든 것이 그들의 몫이다.  - P595

먼저 그들을 섬겨라. 너희 소유 중에 가장 좋은 것으로 그들을 섬겨라. 그러면 너희 집이 복을 받을 것이다. - P595

이는 주 하나님의 메시지다. ‘이스라엘의 왕들아, 그동안 나는 참을 만큼 참았다. 내 백성을 못살게 굴고 착취하는 일을 그쳐라. 이제는 자세를 바꾸어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라.  - P596

이는 주 하나님의 메시지다. 첫째 달 첫째 날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한 마리를 골라다가 성소를 정결하게 하여라.  - P596

21 첫째 달 십사일에, 너희는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 칠일 동안 이어지는 이 축제기간에는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한다.
- P597

22-23 유월절 날에, 왕은 자신과 온 나라 백성을 위해 송아지 한 마리를 속죄 제물로 바쳐야 한다. 칠일의 축제기간 동안, 그는 날마다흠 없는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하나님께 번제물로바치고, 날마다 숫염소 한 마리도 바쳐야 한다. - P597

4-5 안식일에 왕이 하나님께 바칠 번제물은 흠 없는 어린양 여섯 마리와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다. 숫양과 함께 곡식 제물 20리터와 기름 4리터를 바치고, 각 어린양에는 소량의 곡식을 곁들여야 한다. - P597

매달 초하루, 왕은 수송아지 한 마리와 어린양 여섯 마리와 숫양한 마리를 흠 없는 것들로 바쳐야 한다. 숫양과 수송아지를 바칠 때는 각각 곡식 제물 20리터와 기름 4리터를 곁들이고, 각 어린양에는 소량의 곡식 제물을 곁들여야 한다. - P597

주 하나님의 메시지다. 만일 왕이 자기 아들 중 하나에게 유산을 떼어서 주면, 그것은 대대로 그 가문의 소유가 된다. 그러나 왕이어떤 종에게 자기 유산을 떼어서 선물로 주면, 그것은 해방의 해(희년까지만 그 종의 소유가 되고, 그 후에는 다시 왕에게 되돌아간다.
- P598

왕의 유산은 오직 그의 아들들의 것이며, 대대로 그 가문이 소유한다. 왕은 백성 가운데 누구의 유산도 빼앗아서는 안되며, 그들의 땅소유권을 빼앗아서도 안된다. 그는 오직 자기 재산을 떼어서 아들들에게 줄 수 있다. 내 백성 누구도 자기 땅에서 내쫓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 P598

21-23 너희는 이 땅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별로 나누어라. 너희 유산으로 나누어 가지되 너희 가운데 자녀를 낳고 사는 거류민들에게도몫이 돌아가게 하여라. 그들도 너희처럼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대우해 주어라. 그들도 이스라엘 지파와 함께 유산을 얻게 하여라.
모든 거류민이 각자 사는 지역에서 자기 유산을 받게 하여라. 주 하나님의 포고다." - P601

유다 경계에 닿아 있는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구별된 지역으로,
너희는 그 땅을 거룩한 곳으로 따로 떼어 놓아야 한다. 가로와 세로가 11.25킬로미터인 정사각형 지역의 중심에 성소가 자리 잡는다.
너희는 길이 11.25킬로미터, 너비 4.5킬로미터 되는 구역을 하나님을 위해 따로 구별해야 한다. - P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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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백 번 이상 읽었던 호학 군주 세종은 유교 정치가진전됨에 따라 시골의 골목 곳곳까지 삼강오상의 윤리가 관철되는 조선을 만들고자 했다. 공맹이 논한 바 하은주 3대를 지향했기 때문이었다. 권력 구조 역시 그에 근사하게 하려 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총재제, 즉 재상 중심제였다. - P49

의정부 중심의 체제 개편은 필연적으로 재상 권한의 비대를 가져왔다. 세종 재위 후반 의정부에는 황보인이나 김종서 등 국가 중대사에정통한 관료들이 포진해 있었다.  - P49

세종대 후반 이후 문종 대를 거쳐 단종 대의정부에 포진한 이들은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이중 좌의정 김종서의위세가 가장 셌다. "황보인은 나약하고 김종서는 권세를 혼자 쥐고 제마음대로 하고 정분은 억눌린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 P50

단종대 의정부 사람으로는 이들 외에 이양 · 정분 · 허후 등이 있었다. - P51

의정부 인사는 아니었지만, 김종서와 황보인 등의 사람으로 분류된인물들이 있었다. 병조판서민신과 이명민 등이다.  - P51

세종은 그 공을 치하해 몇 달 만에 종3품 부정으로 일약 자급을 올려 주었다. 이후 이명민은 재목과 기와 쇠붙이와 석재를 사사로이 빼돌려 잘 나가던 황보인과 정분의 집,
그리고 김종서의 별실을 크게 지어 주었다. - P52

이런 음흉하고 간사한 행동이 지나치다 여긴 병조판서 정인지가 그를 꾸짖었다. 그러자 불만을 품은 이명민은 민신 등과 모의하여 영의정황보인이 직접 도청의 제조를 맡게 했다. 정인지가 다시 반발하자 황보인 등과 사이가 두터운 조극관을 병조판서로 임명하고, 그를 판중추원사로 옮기게 했다. 이 인사는 2품의 판서에서 1품의 판사로 정인지를승직시킨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권한을 빼앗은 것이었다. - P52

문종 대부터 이미 의정부 대신들은 왕을의식하지 않았다. 문종이 세상을 뜨기 직전에도 이들은 본부에 앉아서정5품 사인을 시켜 안부만 물었을 뿐이고, 변변치 못한 의관에 맡겨 놓았을 뿐이었다.
- P53

단종은 즉위한 뒤 교서를 통해 모든 일을 의정부에 맡긴다고 천명했다. 의정부가 주인 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이런 정치적 상황에서수양과 안평은 단종의 즉위 교서에 나타난바,분경대상범금지주에 자신들이 포함된 것에 반발했다.  - P53

당시 의정부 대신들은 인사권을 독점하고 사사로이 휘둘렀다.  - P54

이들 형제는우의정 김종서의 아들들인데 모친 탈상수일 만에 특지로 임명되었다.
- P54

1453년(단종 1) 1월에는 김종서의 사돈집 사람 김맹헌을 궁중에서 쓰는의약의 공급과 임금이 하사하는 의약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전의감 판사로, 민신의 동서 신전을 수예문관 직제학으로, 김승규를 국가의 대제에 쓸 곡식을 관장하는 전농시 윤으로, 황보인의 아들 황보석을 사복시 소윤으로 삼았다.  - P54

 함우치가 승지로 임명된 데에는 왕명을 전하는 환관인 김연의 공이 컸다. 당초 함우치는 김종서에게 아부했던 인물이다. 사복시에있을 때 붕어를 좋아하는 김종서를 위해 아침마다 붕어와 메추라기를잡아다 바쳤는데, 그 공으로 첨지중추원사에 임명되었다가 이때 동부승지로 옮겨 간 것이다. 그런데 이 인사는 김종서가 아니라 환시宦侍에힘입은 결과였다. 오죽하면 김종서조차도 비판할 정도였다. - P54

이보다 앞서 황보인의 아들 황보석을 대신해 사위 홍원숙이 공조좌랑이 되었고, 다시 그자리에 동서인 강윤이 임명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공조좌랑은 황보인 집안이 교대로 근무하며 녹봉을 받는 체아직"이라며 비웃었다.  - P55

같은 때 가축의 사육과 축산물을 제공하는 일을맡아 보던 전구서승으로 임명된 김자청 역시 김종서의 사위였다. 1453년(단종 1) 9월 종묘서 승으로 임명된 박금손 역시 김종서의 사위였다.
이날 판통례문사가 된 윤삼산은 황보인의 사돈집 사람이었다.
- P54

이처럼 김종서 · 황보인 등은 상피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인사를함부로 했다.  - P55

상피란 일정 범위 내의 친족 간에 같은 관사나 통속 관계에 해당하는 관사에 나아가지 못하게 하거나 청송관·시관 등이 될 수없게 하는 인사 상규였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아들.
사위 · 아우 · 조카를 서로 바꾸어 천거하며 끌어들였다. 혼인한 집안도특지라 핑계하고 자급을 올려 주고 자리를 옮겨 주었다. 그야말로 원칙없는 인사였다. - P55

의정부 당상 3인은 매일 빈청에 나가서 이조 당상이 올린 사헌부와 사간원·이조와 병조 · 연변 고을의 장수와 수령의 인사안을 살펴보았다. 이때 이들은 임용 예정자 수의 3배수 중에 쓸 만한 자 1인을 취하여 ‘황표‘를 붙여서 단종에게 올렸다. 그러면 단종은 붓으로 그 이름 위에 점을 찍을 뿐이었다.  - P55

이조는 단지 임금의 비답 초안을 쓸 따름이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이를 ‘황표정사라고 이죽거렸다.
- P56

이조의 겸판사였던 허후조차 관직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인사에관한 한 모두 의정부에 물어보고 지시를 받았다. 임시로 임명하는 종품 도승과 같은 지위 낮은 관리조차도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는 임명할수 없었다.  - P56

수양은 조카가 즉위한 후 바로 아래 동생 안평대군 이용과 갈등의 골이 점차 깊어졌다.  - P56

문종은 즉위한 후 동생안평과 연결된 사람을 많이 임용했다. 이용은 내시부와 승직의 인사를 맡았다. 간단한 글을 써 놓은 쪽지를 정청에 보내 관료에게 벼슬을 준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 P57

이용 자신이 딴마음을 품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당시 의정부의 김종서·황보인과 결당한 것은 분명했다. 이는 김종서가 1452년(단종 즉위) 6월 30일 보냈다는 편지를 통해서 확인된다.
이 편지에서 김종서는 인심을 수습하여 반역을 꾀하라고 안평을 재촉했다. - P59

이용은 형이 재위하는 동안 누구보다 특혜를 받았지만 문종이 승하한 뒤로 표변해 정해진 때에 모여서 슬피 우는 곡림에는 한 번도참여하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것도 평일과 다름이 없었다.  - P59

이들 외에 의정부와 6조 등 각 부처에 포진해 있던 이양·민신·조극.
관·조순생·정효강·윤처공·조번·이징옥· 정이한 등도 모두 이용의 우익이 되었다.  - P60

1452년(단종 즉위) 8월에는 성승이 박탈당했던 고신과 과전을 돌려받았다. ‘혹시 변이 있으면 마땅히 나의 말 앞에 설 자‘로 그를 평가한 안평이 힘을 써 구명한 결과였다. 성승은 훗날 죽음에 이르는 사육신 중 한 명이었던 성삼문의 아버지이다. - P60

이용의 사람으로는 황보인도 있었다. 이 둘은 사적 관계로 연결되었다. - P60

수양은 처음에는 안평의 사람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안평 우익의 권세가 안팎을 위협한다며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권람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모두 재물로 사귄 관계이고 용렬한 인재들"이라며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수양의 판단과는 달리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어린 조카 앞에 선 의정부 대신, 그들과 결탁한 동생 안평결국 형 수양은 필연적으로 동생 안평과 최후의 한판을 벌여야만 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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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린도전서는 1세기 로마 제국의 한 대도시에서 신자들의 공동체가 경험하는 현실적 긴장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고린도 교회의 근본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된 새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1:30;6:10)과 그래서 여전히 ‘이 세상‘에 속한 자처럼 사람의 기준을 따라 살아가려 한 데 있다(3:3).  - P57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존재하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신자들을 향해(3:1), 복음의 부르심을 진지하14게 숙고하면서 이 부르심에 어울리는 삶을 회복하라고 호소한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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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가 자신의 죽음으로 이 세상의 권세들을 물리치셨다면, 그의 부활은새창조(피조세계), 온전히새로워진 세계의 시작을 의미했다. 바울이 선포하는 ‘좋은 소식‘에사로잡힌 사람들은 그 새 세계로 이끌려 들어갔다.  - P184

키프로스로 갔다가 거기서 터키 남부 중심부로 들어간 뒤 다시 되돌아왔던 바울의 첫 선교 여행을 따라가 보면, 방금 말한 내용이 훨씬 더 분명해진다. 우리는 이 여행이 대략 기원후 47, 48년경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 P185

바울은 이 일회성 사건을
‘능력‘이라는 말로 이야기한다. 복음의 능력, 복음안에서 복음을통해 역사하는 영의 능력, 혹은 ‘하나님 말씀의 능력. 이런 말들은같은 사실을 다른 식으로 표현한 말인 것 같다.  - P185

신은 어디에나 있었고 모든 일에 얽혀 있었다. 고대 세계 사람들은집에 있든, 거리에 있든, 광장에 있든, 크고 작은 축제에 참가하든,
위태로운 순간이든, 기쁜 순간이든(혼례식이든, 장례식이든, 여행을 떠날 때든 자신들이 인정하거나 호소하거나 기쁘게 하거나 달래야 할 신이 거기 있다고 보았다.  - P187

일단 예수의 메시지가 터를 잡으면, 그 모든 것이 사라져야 했다. 이웃들이 알아차릴 것이다. 무신론자는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했다. - P187

예수 믿는 이가 포기해야 할 신 가운데 누가 봐도 가장 막강한 신은 로마 황제(카이사르)였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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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두는 일어학원이 생긴 초장에 아들을 학원에 보내지 못한것을 후회했다. 몇 년전에 학원에 밀어넣었더라면 나이가 어려 우격다짐이 한결 수월하게 먹혀들었을 것이고, 여자나 술, 노름 같은것을 알기 전이라 공부도 좀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 P121

그런데 어쩌다가 그 기회를 놓치고 장가부터 들이고 말았던 것이다. 실수치고는 어이없는 실수를 한 셈이라 그 손해를 만회하려고 자신의 마음은 바쁜데 아들놈이 도무지 뒤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 P121

일어학원은 개항이 되면서 뒤따라 생겼던 것이다.
그 학원만 나오면 급료 좋고 권세 잡을 수 있는 일자리가 얼마든지 기다리고 있었다.
일어학원은 1차적으로 개항장마다 들어섰고, 그 다음에 큰 도시로 퍼져나갔다. 1900년에 11개였던 것이 4년 뒤에는 30개가 넘게불어나 있었다. - P122

스무 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사탕을 한쪽 볼에 문장질문이걱정스럽게 말했다. 사탕이라는 것이 호도알만큼 커서 그의 왼쪽볼은 보기 흉할 정도로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일본사람들이 만들어내기 시작한 사탕맛에 홀린 그는 가게에 발을 들이기만 하면 사탕부터 입에 집어넣었다. - P124

장덕풍은 버럭 소리질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장사 잇속 따지는 것이 골수에 박인 그로서는 사탕을 하나가 아닌 두 개째 먹는것은영 비위에 거슬렸던 것이다.
- P126

고개를 돌리는 장칠문의 입술이 비틀리고 있었다. 하이고 말이야 번듯허시. 지새끼가 묵는 것도 아까와서. 그는 아버지의 속이더 쓰리라고 사탕을 마구 씹어댔다. - P126

"이, 마침 사탕공장서 사람얼 한나 구해도라는 것이여."
장덕풍은 곰방대에 담배를 담으며 능청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아부지, 정신 나갔는게라." 장칠문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나가 추접시럽게 사탕공장 일꾼으로 일헐라고 그 고상혀 감서 일본말 배운지 아시오." 아버지 앞인데도 소리를 지르는 그의 얼굴에는 불량기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 P128

장덕풍은 계속 능청을 떨어대며 부싯돌을 치고 있었다. 선반에성냥이 그득하게 쌓여 있었지만 그의 눈에 그것은 팔 때만 보이는물건일 뿐이었다.
"아부지나 그리혀서 돈벌이 더 많이 허씨요. 나 죽으나 사나권세보톰 잡고 볼 것잉게라." - P128

사탕이 널리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그 이름이 생겨났다. ‘눈깔사탕‘이 그것이었다. 그 크기가 황소눈깔만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아메다마‘라는 일본이름은 대개 어른들이 썼고, ‘눈깔사탕‘이란 이름은 주로 아이들이 썼다. - P130

"사탕얼 묵으면 못써, 고것언 왜놈덜 것이여. 조선사람 조선얼 묵어야 혀."
- P131

"어허 참 왜놈 등쌀에 우리 밥 굶어죽게 생겼네그랴, 사탕 맨드는 왜놈얼 몰아내든지, 왜놈사탕팔고 앉었는 가게덜얼 다 때레뿌시든지 양단간에 한나는 해야제 요것 안 되겠구만." - P131

무신 소리덜이여, 어디 사람팔자가 따로 있간디. 누구든지 시상판세 돌아가는 것 보고 눈치 빨르게 처신하면 앞길이 쉽게 열리는것이 어찌가 자네덜, 무신 소식 있는가?"
장덕풍은 두 사람을 빠르게 훑었다. - P133

장덕풍의 성질을 거슬렀다가는당장에 필요한 물건을 못 받아갈 판이었다. 동학당인지 무엇인지가 다시 패거리 모으는 것을 찾아내 팔자 고치는 것은 그 다음 일이고 우선 급한 것은 장사 잘되는 일본물건을 받아가는 일이었다. - P134

"자네덜 나가 일러준 대로 화전 허는 사람덜 속에 끈 달아놓은겨?"
장덕풍은 두 사람의 허라도 찌르듯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
"하이라. 진작에 중허다 싶은 질목얼 여럿 골라서 공얼 딜이고있구만요. 그 공딜이는 비용도 솔찬허당게라." - P135

"그런디 말이여, 화전 허는 사람이라고 혀서 다 믿어서 큰일날것이네. 살아남은 그놈덜 중에 몸 피해서 화전 부쳐묵는 놈덜이 솔찬히 있응게로. 사람 잘못 골랐다가넌・・・・・・." 장덕풍은 여기서 문득 말을 끊었다가는, "돈만 헛쓰는 일인 것이여." 어물어물 말을 끝냈다. - P136

그러나 그가 당황해서 삼켜버린말은 따로 있었다. …………일이 되기 전에 목심 날아가는 것이여‘ 그가 삼킨 말이었다. 그때 일본군의 길잡이로 나섰거나 정탐원 노릇을 맡았던 보부상들은 화전민으로 가장한 동학당의 손에 적잖이 죽었던 것이다.  - P136

그러나 그 말은 또한 거짓말이 아니었고 과장도 아니었다. 손이 빠른 물건들을 많이 받아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일을 정탐해 내겠다는 조건 아래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 P137

"성님 처지가 고약해지는 것이야 다 알 만허요. 그려서 이번에우리가 성님 체면 좀 세와디릴라고 장만한 것이 있구만이라."
방태수는 장덕풍이 쳐놓은 망을 걷어내듯이 자신 있는 어조였다.
"그것이 머신디?"
장덕풍은 금방 관심을 드러냈다.
"금이오." - P137

"값도 값이고, 요분에우리가 원하는 물건으로만 줘야 쓰겄소."
방태수가 밀어붙이고 있었다. 물건을 거래할 때는 부자지간에라도 인정사정없다는 그들의 본색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 P139

장덕풍은 완연히 당황하고 있었다.
"어떤 거래고 거래 전에 술 묵는 법 아니란 것 몰라서 이런가요?"
방태수의 냉정한 말이었다.
"허허허허………… 자네덜이 아주 야물딱진 장사꾼으로 틀잽혔네그랴. 나럴 막 갤치고 드니 되얐네, 되었어. 어허허허………" - P141

여섯 개의 눈들은 저울추 끈이 닿는 저울눈을 따라 예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울대가 수평을 이룰 듯 말 듯 했다. 그때였다. 투박한 손가락 두 개가 저울추 끈을 붙들었다. - P142

"넉돈쭝으로 쳐받은 물건얼 석돈쭝 반으로 저울질하는 법도있소. 저울질얼 나가 한번 혀봅시다."
방태수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머시가 어찌고 어쩌! 니가 저울질얼 허겄다고? 포목장시보고 잣대 내노라는 법 있고, 쌀장시보고 됫박 내노라는 법도 있다디냐! 옛끼 순 못 배와묵은 상것 같으니라고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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