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욥기 하나님 나라 신학 강해 시리즈 10
김회권 지음 / 복있는사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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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거나
한페이지 한단락에 나의 시선이 고정될 때마다
난 흥미와 감탄과 기쁨의 재미가.

그리고 여기저기에서의 티키타카의 모습에
긴장감이 쑥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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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절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천의무봉한 신뢰를 의심하는 사탄의1논리를 제시한다. "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까닭 없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형용사 힌남은 ‘임금도 받지 않고‘, ‘빈손으로‘ 등을 의미한다.  - P46

결국 9절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주인과 임금을 받고 일하는 종으로 격하시키는 발언이다. 이것은 고대 바벨론의 인간관을 생각나게 한다. 바벨론 창세기에 해당되는 『에누마 엘리쉬』나 『아트라하시스』에서는 인간은 열등한 신들의 노동을대신 해주는 육체노동자로 창조되었을 뿐, 거기에서 인간은 창조주하나님과 서로 마음으로 소통하거나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인격적 동역자가 아니었다. 사탄은 고대 바벨론의 창조주와 야웨 하나님을 은근히 동격으로 보는 셈이다. - P47

그러면 하나님은 왜 하나님의 자녀들 모임에서 돌출된 사탄의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행위‘라는 개념에 자극을 받으셨을까?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 신학은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끊임없이 물었다. 스콜라 신학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기 자신이 피조물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매우 신경 쓰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진리로 설복하기를 원하셨지. 강압적으로 하나님 경외심을 피조물에게 주입시키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 P46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의 세상 통치는정의롭습니다. 하나님의 세상 통치는 잘 작동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로부터 이런 평가를 기대하셨다. 하나님이 원했던 이런 자기음미적 확신을 사탄이라는 대적자가 부정할 때, 하나님은 그 사탄을 책망하거나 축출하지 않고 사탄마저도 납득시키기 원하셨다.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에게도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곧 하나님 성품에맞는 방식으로 이 질문에 답변하기 원하셨다. 여기가 가장 큰 위기다.
하나님의 성품에 맞는 방식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 P47

하나님 성품에 맞는 방식으로 사탄을 납득시키려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사람을 찾아야 했다.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하나도없다(욥 1:9)는 사탄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하나님은 까닭 없이, 혹은 마이너스 까닭(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부조리한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찾아내야 했다. 하나님은 당신이 "내 종"이라며 친애하시는 욥이 그런 사람이라고 보셨다. - P47

12절은 독자들을 다소 놀라게 만드는 하나님의 허락이다. 사탄에게 욥의 모든 소유물 처분을 맡기되욥의 몸에는 손대지말 것을 명하신다. 사탄은 소기의 성과를 거둔 듯한 인상으로 하나님존전을 떠난다. 욥의 인생이 하나님과 사탄의 논쟁의 시시비비를 따지는 과정에서 실험 대상이 된다. 고대나 현대의 많은 독자들은 야웨의 신적 임의성에 절망하고 분개한다. - P48

갈대아 사람들은 주전 6세기 느부갓네살이 이끄는 바벨론의 핵심 족속을지칭하며 욥 당시에는 ‘갈대아인‘으로 불리는 족속이 존재하지 않았다. ‘세 무리‘를 지었다는 말은 갈대아인들의 세 차례 유다 침략주전 597,587-586, 582년을 에둘러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 P49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너무나 구체적인 불행과 고통을 당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기 힘든 스토아 철학자의 아파테이아 같은 초탈언어다. 불교나 노장사상의 도를 터득한 사람의 반응처럼 보인다.  - P50

그는 자신의 불행에 오열하기보다는 오직 "야웨의 이름이 찬송받기를 기대한다. 야웨의 이름은 출애굽기 34:6-8과 시편1037에 나온다. ‘인자하고 긍휼이 풍성하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간죄를 초극할 정도로 항구적인 인애를 베푸시는 분‘이것이 야웨의이름이다. 욥은 의인인 자신에게 닥친 재난 때문에 하나님이 오해받거나 비난받는 것을 염려한다. 그래서 야웨의 이름이 비난받거나 원망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오히려 "찬송을 받을실지니이다"라고 축원한다.  - P50

22절은 욥을 더욱 비현실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원망하지 않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구문은 ‘어리석음을 드러내지 않다‘라는 말이다. 이 불행한 사태를 두고 하나님의 의도를 오판해서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현대 독자들에게먼 과거의 낯선 세계에서 툭 튀어나온 인물처럼 비치는 욥에 비해 오히려 욥의 아내는 매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 비현실적으로 경건한 욥에 비해 그녀는 차라리 현대인의감수성을 표출한 것 같다.  - P51

그러나 한 단계 더 생각하면, 7남 3녀를 잃은 욥이 자아 소멸을 겪었기에 이런 냉정을 유지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P51

그런데 7남 3녀를 잃은 아버지의 경우에는 아예 슬픔을 느끼고 표현할 자아가 증발된다. 울려면 자아가 있어야 하는데 욥은 그런 애통감정을 표현할 자아가 소멸된 것처럼 보인다. 욥은 7남 3녀를 잃고 몸에 악창이 나도 순전함을 지켰다. 욥은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스토아 철학자 같은 인물로 보인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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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우리는 기쁘도다 - P213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은 바로 그것을 이렇게 고백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돌아오리로다." 포로로 지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냥 기다린 것이 아니다. 바벨론의 나라보다 더 큰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며,
바벨론의 이야기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의 이야기를 소망하며, 날마다 눈물로 씨앗을 뿌렸다. 회개의 씨앗을, 눈물의 씨앗을, 용서의 씨앗을, 소망의 씨앗을 말이다. - P215

우리 모두가 지금 어디엔가 유배당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하나님의 그 친밀한 성막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며 성령님을 통해 우리가있는 공간 어디에서든지 바로 이 회복의 소망을 품고 기도하고 기다리기를 기대하신다.  - P215

당신은 반드시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의악한 것들과 함께 격리된 삶에서 해방되어 나오는 사람이 되든지,
아니면 그런 사람들과 함께, 혹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를 뿌리며 기다리는 사람이 되든지 말이다.  - P216

그래서 우리 모두는시편 126편의 고백보다 더 위대한 회복의 기쁨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회복의 하나님, 해방의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그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기다린다.  - P216

회복의 하나님, 해방의 하나님이시여!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을 기다립니다. 눈물로 씨앗을 뿌리며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우리로 낙심치 않고 그날을 기다리게 하소서! 우리로 포기하지 않고 그날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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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대인 세계가 듣기에도 한 유대인이 다른 모든 주를 다스리는 새 ‘주‘가 될지 모른다는 주장은 끔찍한 말이었으리라. 게다가 그 새 주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라니? 인간이 상상할 수있는 죽음 가운데 가장 부끄럽고 무서운 죽음이 십자가형이라는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았다. 그런데 어찌 그런 사람이 퀴리오스(주)로 숭앙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만일 하나님이 이 사람을 죽은 자가운데서 부활시키셨다는 게 그 대답이라면 (바울은 그리 대답하곤 했다),
그런 대답을 듣는 이들은 그저 바울이 정말 정신이 나갔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로마 총독은 나중에 그를 정신 나간 놈이라고 비판하지만, 바울은 십중팔구 그런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것이다.)  - P342

메시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장사되셨고, 성경대로 셋째 날에 일으켜지셨습니다. 그분은 ・・・에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는 이를 훨씬 더 예리하게 요약한다.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분을 대할 때, 나는 메시아 예수, 특히 그분의 십자가 죽음 외에는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복음은 아주 긴설명이 필요했으리라.  - P341

이 식민지의 원주민들은 로마에서 온 노예 출신의 자유인, 말하자면 노예였다가 사회적 지위가 올라간 사람들이었다. 로마의사업가들은 교역과 수송에 더없이 좋은 곳인 이곳에서 이윤을 올리고자 노예 출신의 자유민들을 한데 모았다. 고대 세계의 다른 모든 도시처럼 고린도도 사회 내부의 빈부 불균형이 아주 컸다. 부자는 극소수였고, 가난한 자가 많았으며, 어쨌든 인구 가운데 적어도절반이 노예 신세였다.  - P338

그렇지만 고린도는 가능성으로 가득한 도시이기도 했다. 사회적 지위가 바뀔 가능성도-지위가 상승할 가능성은 물론이요 내려갈 가능성도-얼마든지 있었다. 이 때문에사람들은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있음을 나타내는 표지에 대단히관심을 기울였을 개연성이 높다.
- P339

바울에게는 그런 표지가 거의 없었다. 터벅터벅 걸어 고린도로들어가던 바울은 우리는 보통 그가 걸어서 여행했으리라 추측하는데, 아테네에서 고린도까지 아마 사나흘은 걸렸을 것이다―특별히 인물이 빼어나거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때가 51년 초였다. 빌립보에서 심하게 매질을 당한 뒤로 몇주,어쩌면 두달이지났을때였다 - P339

 어쨌든 데살로니가전서의 어조는 미친 듯이 불안과 놀람을 표현한 갈라디아서 완전히 다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잘못된 길로 가는 일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핍박 앞에서도 믿음을 굳게 붙잡았다. 바울은 이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이들을 기뻐한다. 그는 이들이 반대자의 폭압에도 굴복하지 않은 것에 대단히안도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을 바꿔 놓은복음 자체의 순전한 능력, 그리고 그들이 바울 안에서 목격했고 그들 자신도 체험한 고난과 기쁨의 기이한 조화가 모두 바울 자신의방문과 더불어 시작되었음을 되새겨 준다.  - P344

디모데와 실라(또는 실루아노, 바울은 데살로니가 서신에서 그를 실루아노라 부른다)는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새로이 갖게 된 한 분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주 예수 Kyrios lesous를 향한 충성이 북쪽의 마케도니아에서 남쪽의 아가야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전역으로 퍼져 갔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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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모든 자들, 곧 악한 세대 중에 불행하게도, 그때까지 목숨이붙어 있는 자들은 저주받은 장소를 여기저기 떠돌며 차라리 죽기를바랄 것이다." 만군의 하나님의 포고다. - P300

4-7 "그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여라.
‘사람은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지 않느냐?
잘못 들어선 길이면 멈추고 돌아서지 않느냐?
그런데 어째서 이 백성은 길을 거꾸로 가면서도계속 그 길을 고집하느냐? 거꾸로 된 그 길을!
그들은 한사코 거짓된 것을 따라가려 하고, 내가 - P300

방향을 바꾸기를 거절한다.
내가 유심히 귀를 기울여 보아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자책하는 소리,
"이런 길을 가다니" 하는 후회의 소리 하나 없다.
그들은 그저 그 길을 계속 갈 뿐이다. 맹목적으로 가다가,멍청하게 벽에 머리를 찧는다.
- P301

겨울을 준비하는 두루미는언제 남쪽으로 이동해야 하는지 안다.
울새, 휘파람새, 파랑새는언제 다시 돌아와야 하는지 안다.
그러나 내 백성은 어떤가.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하나님과 그분의 법에 대해서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 P301

10-11 잃어버린 초원을 생각하며 비가 부른다.
사라진 목초지를 그리며 애가를 부른다.
그 땅들, 이제는 위험하고 황량한 황무지일 뿐이다.
양 떼 소리, 소 떼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는다.
새와 들짐승도 모두 사라졌다.
살아 꿈틀거리는 것, 살아 소리 내는 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예루살렘을 돌무더기로 만들 것이다.
승냥이나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곳이 되게 할 것이다.
나는 유다 성읍들을 전부 폐허로 전락시킬 것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로!" - P306

13-15 하나님의 대답이다. "그것은 그들이 나의 가르침을 분명히 알고도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말을 하나도 귀담아듣지 않았고, 내가 지시하는 삶을 한사코 거절했다. 그들은 자기들 원하는 대로 살면서, 그 조상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바알신을 섬겼다." 이것이 그들이 망한 이유다.  - P306

만군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그들에게 돼지 똥오줌을 먹일 것이다.
그들에게 독을 주어 마시게 할 것이다.
" 그러고는 그들 모두를 저 먼 곳, 아무도 들어 보지 못한 이방 민족들 사이로 흩어 버리고, 죽음이 그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쓸어버리게할 것이다." 메시지를 - P307

25-26하나님의 포고다! "깨어 있어라! 머지않아 나는, 겉만 꾸미고 속은 텅 빈 자들을 직접 손봐 줄 것이다. 이집트, 유다, 에돔, 암몬, 모압이 그들이다. 모두 종교 연기에 능한 민족들, 이스라엘도 다를 바없다."  - P309

6-9 오 하나님, 주님은 그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분입니다.
주님은 경이롭도록 위대하신 분, 그 이름이 더없이 높으신 분입니다.
만민의 왕이신 주님을 누가 감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만이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저기, 먼 사방의 여러 민족들을 보십시오.
그들 중 가장 뛰어난 자들이 만든 가장 뛰어난 것도도저히 주님과 견줄 수 없습니다. - P309

21-23 그러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며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너를 살해하려는 아나돗 사람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설교하지 마라 계속 그렇게 나오면 너를 죽여 버릴 테다‘ 하고 말하는 그들을 내가 어떻게 다룰지 말해 주겠다. 그렇다. 만군의 하나님이 말한다. 보아라! 나는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들의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쓰러져 죽고, 아이들은 굶어 죽을 것이다. 아무도 살아남지못하리라. 아무도 내가 재앙을 몰고서 아나돗 사람들을 찾아갈 것이다. 그날은 대재앙의 날이 되리라!"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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