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눈물이 솟구쳐올랐다. 제 마음을 아셨으면 됐습니다. 아무것도 더 바라는 게 없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마십시요. 아무것도 대답할 게 없습니다. 그것으로충분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P123
나서 그 사람이 바로 정하섭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의 놀라움은 얼마나 컸던 것인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신령님만을 부를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도, 그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난 것도, 다신령님의 뜻과 권능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라 믿었다. 다른 말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았다. "니같이 이쁜 애가 워째 무당딸이 됐는지 몰르겠다." - P125
그녀는 잡곡을 빼고 쌀만으로 밥을 안쳤다. 그리고 불땀이 좋은바싹 마른 사정이만을 골라 불을 지폈다. 불길은 곧 너울너울 춤을 추며 타올랐다. 그녀는 불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불길을 따라 일렁이고 있었다. 함께 타오르며 넋이 가닥가닥 불길의 몸부림을 닮아갔다. 붉은색도, 주황색도, 황금빛도 아닌 불길의 색깔. 그 색깔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싱싱하고, 가장 깨끗한 색깔이었다. - P130
나는 아마 깨어 있었을 것이다. 몸져누운 다음부터는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어머니였다. 만약 어머니가 잠이 깨어 있었다면…………. 그녀는 죄의식에 몸을 죄어뜨리며 바르르 떨었다. 누구인지 모를 남자에게 딸이 끌려나가고, 붙들려 해도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고, 소리치려 해도 혀가 말을 듣지 않고, 어머니는 얼마나 애가 타고얼마나 미칠 것 같았을까. 혹시 그동안에 기다리다가…………. 불길한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허둥지둥 방문을 열었다. "엄니, 엄니!" - P1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