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내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주께서 나를 지혜롭고 부드럽게 이끄시고나에게 복을 내려 주십니다. - P288

고장(場)이 20리 남았다는 지점에서 오른쪽이 바위절벽이고,
왼쪽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인 길을 만나게 되었다. 낭떠러지 아래로 굽이쳐 흘러가는 물줄기는 충만강 상류였다. 그 절벽길의 넓이가 갑자기 좁아져 보였다. 한쪽이 낭떠러지인 데다가, 마음이 급해진 수많은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몰려든 때문이었다. - P465

국경선, 북쪽 땅의 끝- 이학송은 압록강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700리를 흘러내리는 강, 단순히 물이 모아져서 흐르는 물길이 아니라 반도땅의 수만 년 세월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강, 이 강 앞에 이런 암담한 심정으로 설 줄은 몰랐던 것이다. - P468

"마침내 중국이 참전을 한 겁니다."
어둠 속에서 이학송이 말했다.
"이 동무 예상이 적중했어요. 우린 이제 희망이 있군요."
김미선의 목소리가 떨렸다.
"갑시다, 만포가 얼마 안 남았소."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이학송의 말이었다. - P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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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이 있고 나서, 다윗이 기도하며 하나님께 여쭈었2 다. "제가 유다의 한 성읍으로 이주해도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이주하여라."
"어느 성읍으로 가야겠습니까?"
"헤브론으로 가거라."
- P274

유다 주민들이 헤브론으로 와서 다윗을 유다지파의 왕으로 삼았다. - P274

한편, 사울의 군사령관인 넬의 아들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마하나임으로 데리고 가서 그를 길르앗, 아셀, 이스르엘, 에브라임, 베냐민의 왕으로 삼았다. 그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은 것ㅇ다 - P274

22 아브넬이 다시 말했다. "돌아가거라. 계속 쫓아오면 너를 죽일 수밖에 없다. 내가 네 형 요압의 얼굴을 어떻게 보겠느냐?"
23-25 아사헬이 계속 따라오자, 아브넬은 무딘 창 끝으로 그의 배를찔렀는데, 얼마나 세게 찔렀던지 창이 등을 뚫고 나왔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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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서술했듯이 연산군에게 상속된 성종의 유산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삼사의 위상이 제고됨으로써 정치적 정립 구도가 형성되었다는 것이었다.  - P34

다시 말하면, 그것은 왕권의 제약을 의미하는 정치 구조였다. 유산은 상속과 함께 처분할 권리도 주어진다. 연산군은 자신의유산을 그리 탐탁해하지 않았고, 즉시 적극적인 처분과 강제적인 변형을 시도했다.  - P34

아울러 그에게는 이런 공식적이며 정치적인 유산과 함께분노할 만한 개인적 원한도 물려졌다. 그것은 모후의 사사賜死였다.
이 두 사안은 서로 별개였지만, 그 뒤 연산군은 둘을 밀접하게 연관시켜해석하고 처리했고 그런 중대한 판단 착오는 거대한 정치적 혼란과 파국을 야기했다. - P34

윤기견은 세종 21년(1439)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에 나왔다. 그는 11명의 합격자 중 10등의 성적이었는데, 특기할 만한 사실은 그때 3등으로 급제한 사람이 조선전기의 가장 대표적인 문신의 한 사람인 신숙주申叔舟(1417~1475) 였다는 것이다(이때 신숙주는 22세였다. 같은 기수의 합격자끼리는 많아도 10세 이상 차이 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면, 윤기견의 생년을 어림할 수 있을 것이다).  - P36

그러나 윤기견은 이런 두 측면 모두에서 충분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런 판단은 그와 함께 성종의 국구였던 인물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수긍할 만하다. 성종의 첫 정인혜왕후 한씨(본관 청주)는당대 최고의 권신인 한명회明(1415~1487)의 딸이었으며, 윤씨가 폐출된 뒤 계비에 오른 정현왕후 윤씨(본관 파평坡平)도 병조참판과 영돈녕부사를 지낸 윤호(1424~1496)의 소생이었기 때문이다." - P37

이런 사항들을 종합해보면, 폐비 윤씨의 가문은 조선전기의 주요한인물인 이승소 · 신숙주 · 마천목 등과 혈연적 관계를 맺으면서 일정한지위를 유지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런 가격은,
넉넉지 못한 경제적 상황이나 아버지 윤기견의 경력에서 판단할 수 있듯이, 왕비를 배출한 집안에 흡족한 것은 아니었다. - P38

궁지기(宮]로 출시했다(그 명칭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궁지기는 경국대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말직이었다).
그러나 그는 2년 뒤인 단종 1년(1453) 10월 10일(계사)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다시 1년 반 뒤 세조를 왕위에 추대하는 정치적 격변을 주도해 성공시킴으로써 자신의 불우한 처지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의 운명을 일거에 뒤바꿨다.  - P41

이후 그는 성종 18년(1487) 73세로 사망하기까지 이조 · 병조판서를 거쳐 좌의정과 영의정을 두 번씩 역임하고 원상으로재직했으며, 네 번의 공신책봉(정난靖難·좌익佐翼·익대翊戴·좌리佐理)에서 모두 1등공신으로 선정되는 유례없는 경력을 달성했다. - P41

이런 성취와 함께 권력에 대한 그의 생각이 얼마나 치밀하고 집요했는가 하는 측면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는 그가 예종과 성종의 국구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벼슬과 공신 책봉은 그래도 객관적 지표에 근거한 다소 건조하고 공식적인 보상이라면, 왕실과의 혼인은 그야말로 혈연으로 맺어지는 끈끈한 관계가 되는 것이어서 그 의미가 더욱 클 수 있었다.  - P41

그러나 그는 단념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서와 달리 이번에는 예기치않은 놀라운 행운이 찾아왔다. 세조 13년(1467) 1월 12일(기묘) 한명회는자신의 넷째 딸을 잘산군과 혼인시켰는데, 예종이 재위 14개월 만에 갑자기 붕어하면서 바로 그 잘산군이 왕위에 추대된 것이었다.  - P42

잘산군은세조의 맏아들이었지만 세조 3년(1457) 19세로 요절한 의경세자世子(그 뒤 성종 6년 2월 덕종(德宗으로 추존되었다)의 둘째 아들로 당시 12세의어린 나이였고, 특히 세 살 위의 형 월산군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승계는 예상 밖의 일이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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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동생은 국민학생이 되고서도 배고픈 것은 여전히참지 못했지만 비위가 좋고, 야무진 말 잘하기로는 자신이 당할 수가 없다는 것을 길남이는 알고 있었다. - P430

그는 군대밥을 먹는 날이 늘어갈수록 생각이 달라져가고 있었다. 빨갱이들에게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에다가 군인으로 출세를 해야겠다는 야심이 보태지게 되었다. 그건 자신의 기질이 군인에 어울린다는 자기 발견이기도 했고,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권력지향이기도 했다. 권력지향은 신분상승의식이기도 했다.  - P439

최서학이가 판검사가 되겠다고? 그렇다면 난 장군으로 맞서겠다! 그는 구체적인 표적으로 최서학을 꼽았다. 최서학 정도는 한주먹으로 회를 칠 수 있으면서도 소학교 때부터 한풀 꺾이며 살아왔던 것이 뒤늦게 억울한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 P440

그리고 그는 송경희가 할퀴어놓은 상처를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송씨하고 양가하고 지체가 같다고 생각하나요?" - P440

남해여단도 피해만 입고 다시 남쪽으로 도망갔다. 남해여단은 남해로 빠져죽으러 갔다고 사병들은 키들거렸다. 남해여단의 북상을막아낸 직후에 양효석은 중위 계급장을 달았다. - P444

양효석은 그 분석을 그대로 믿었다. 그는상부의 지시는 언제나 옳고, 상관들의 판단 또한 언제나 의심 없이 믿는 의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 대신 그는 자기의 부하들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받들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이미 무시무시한 소대장으로 중대는 물론 대대에까지 소문이 나 있었다. 그는 사병들 사이에서 ‘독‘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건 ‘전라도 독사‘라는 줄임말이었다.  - P444

 외곽도로로 나오자 미루나무처럼 키가 큰 하얀 나무들이 길 양쪽에 줄을 잇고 서 있었다. 백양나무들이었다. 미루나무는 잔가지가 많아 수선스러워 보이는 데 비해 백양나무는 잔가지라고는 없이 쭉쭉 뻗어오른 데다가 색깔까지 하얘서 단정하고도 우아해 보였다. 그 나무들이 길을따라 두 줄로 뻗어나가고 있는 모습은 불안한 마음에도 퍽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 P453

그러나 앞을 가로막듯이 하며 이학송 일행을 맞이한 것은 자강도(江)의 고원준령과 원시림이었다. 자강도는 조선인민공화국의 수립과 함께 도가 새로 분류되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 P454

자강고원은 초산의 서쪽을 흘러내려 아이진에서 압록강으로 합류하는충만강과,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위원강독강·자성강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평균 1천 미터를 헤아리는 원시림지대였다.  - P454

자강고원은 백두산 아래 펼쳐진 갑산고원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 장진고원과 손을 맞잡으면서 개마고원을 형성하고 있었다. 백두산을 떠받치고 있는 하단부에 속하는 자강고원은 이 땅의 본래 모습을 가장착실하게 지니고 있는 지역의 하나이면서, 가장 추운 지대이기도했다. 초산은 그 고원을 넘어야만 갈 수 있는 압록강가에 있었다. - P455

여자의 몸으로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을까. 김미선이여, 정신을차려라, 여기서 죽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놓고 온 두 자식을 다시만나야 할 것 아닌가. 두 자식을 놓아둔 채 그대를 여기까지 이끌어온 힘은 무엇인가. 혁명의 열정, 역사의 실천의식인가 그렇다면어서 깨어 일어나라. 혁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역사는 이제실천을 기다리고 있다. 전라도 지주의 딸로 혁명의식을 가짐으로써장한 탄생을 하고,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천리길 장정에 오름으로써 또다시 장한 탄생을 이룩한 여인이여,  - P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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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디아스포라"diaspora 라 불리던 사업가와 무역상, 상인, 여행자, 교사들이 속한 거대한 유대인 계층에 속한 이었습니다(이들은 그리스도교 시대가 시작되기 전 수백 년에 걸쳐 지중해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 P30

그래서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이 사람들에게서 손을 떼고 그대로 내버려 두자는 것입니다. 만일이 사람들의 계획이나 행동이 사람의 생각에서나온 것이라면 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여러분은 그들을 없앨 수 없을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지도 모릅니다." (사도 5:34-39)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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