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교회에서 만들어져 사용되던 사도신경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현대인의 신앙과 실천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P20

이 간결한신앙고백문이 그리스도인이 믿어야 할 핵심내용을 잘 담고 있을 뿐아니라, 다신교적 문명에서 삼위 하나님을 믿어야 했던 초기교회 상황과 다원화된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오늘날 상황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 P20

문학평론가 이현우는 고전을 "끊임없이 해석하고 의미의 핵심을파악하고자 하지만 목표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 텍스트-무한, 곧 "무수히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새로운 해석이 가해지는 가운데 그것을버텨 내는 텍스트, 그러니까 읽고 나도 계속 뭔가 읽을거리가 남는 텍스트"로 정의합니다.  - P21

사도신경 역시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고,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해석과 비평이 수백 년 동안 가해졌음에도 여전히 그 의미가 고갈되지 않은 본문입니다.  - P21

사도신경은 예배나 세례식에서 사용되는 교회의 신앙고백입니다. 즉교리에 대한 단순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삼위 하나님과 신자 사이에 인격적 관계가 맺어지고 깊어지는 예전적 맥락에서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 P22

사도신경은 이런 필요에 따라 고대교회의 수많은 신학자가 ‘성도의 교제‘ 속에서 수백 년에 걸쳐 공동으로 작업한 결과물입니다.  - P22

그러자 체스터턴은 놀랍게도 현대사상의 ‘대안‘으로 사도신경을 내놓습니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입니다. "나는 그것을 내 철학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인류가 그것을 만들었고 그것이 또한 나를 만들었다.  - P23

우리 믿음의내용은 나의 개인적인 의견과 주관적인 감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수많은 사람이 함께 고백했던 언어와 그들의 교제로 만들어진 교회 속에서 태어납니다.
- P23

비록 세속 사회에서 종교의 옛 권위가 무너졌다 하더라도 사람들은여전히 이를 대신할 권위를 끊임없이 찾습니다. 현대인에게 사도신경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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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누구나 입술과 마음의 속도 차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그 간격을 삶의 일부로 품고 성숙의 계기로 삼느냐그것을 견디지 못하느냐의 차이입니다.  - P9

신학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그 틈이 우리의 의지로 메워지는 것이 아닌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은혜로 유지되는 성격의 것임을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 P9

도라는 어느 날 그리스도교를 떠났습니다. 불현듯 "자기가 주기도문을 빨리 외울 수는 있으나, 천천히 외울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국 작가 아이리스 머독 Iris Murdoch, 1919-1999의 『종』Bell이라는 소설 도입부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 P9

인간은 연약한존재이기에 자의적으로 
자신의 입술과 마음의 움직임을 일치시키려하다 보면 자칫 신앙에 과부하가 걸리기 쉽습니다.  - P10

오히려 입술과 마음 사이에 벌어진 간격을 인정하고, 자아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우리보다 우리의 처지를 더욱 잘 아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을 개방하는것이 삶에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 P10

사도신경은 그리스도교인이 믿어야 할 바를 핵심적으로 요약한 고대교회의 신앙고백입니다.  - P10

원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세례식에서 사용한 의식문이 발전하여 7-8세기경 교회에 정착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이 되었습니다.  - P10

전통적으로 사도신경은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였던 열두 사도에게 알려 주 신앙의 핵심 내용을 하나씩 모아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 P10

사도신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삼위 하나님의 존재와활동에 나의 삶을 걸겠다는 공동체적 고백입니다. 또한 팔레스타인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예수 운동이 고대 다신교로마 문명권에서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로 성장하던 시기에는 결정적인 신앙의기준이 되기도 했습니다.  - P11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교회가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사도신경으로 함께 신앙을 고백하며 삼위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수많은 신학자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설명하는 데자신만의 틀을 새로 고안하는 대신 사도신경의 조항 하나하나를 해설하는 방식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 P11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다층적이지만, 여기서 빼놓을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해‘ 역사적인 신앙공동체에속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엡 2:8).  - P12

달리 표현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와연합하여 그분의 몸인 ‘거룩한 공교회‘의 일부가 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우리는 교회가 됨으로써 삼위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의 지평으로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서 새로운 지향성을가지고 살게 됩니다.  - P12

 1세기 사람들에게 세례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종말론적‘ 구원 사건(롬 6:3, 갈 3:27, 벧전 3:21 등)인 동시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현존하는 ‘종말론적‘
공동체에 들어가는 예식이었습니다(행2:41).  - P12

교회는 언제나 그리스도교 신앙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문화와 생활방식과 언어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새롭게 이해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 P18

이런 맥락에서 2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왜초기 그리스도교인의신앙고백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주가 많아지고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도 다문화주의는 큰 도전입니다.  - P18

나사렛 예수의 제자들이 활동했던 1세기 로마 제국 역시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가 섞여 있는 매우 복잡한 사회였습니다. - P18

지중해 전역에 퍼져 있는 여러 공동체에 속해 있던 사람들은 복음서와 서신서 등을 돌려 보고 필사하고 예배 중에 읽으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 갔습니다. 그러다 4 세기 중반 이후에 어떤 문서를 그리스도교 경전으로 삼을지 결정하는 정경화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 P19

그제야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국교로 공인했기 때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여러 문서를 한 권의 큰책으로 묶어내는 코덱스 기술이 그때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작은 예배 공동체가 정경 전체를 보유하기에는 그 가격이 너무 비쌌고, 사본을 묶어낸다 하더라도 그 무게가 수십 킬로그램에 달해 활용도가 몹시 제한적이었습니다. - P19

의 알짬을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신약성경이 정경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신경經 creed 또한 정착되어 갔습니다. 4세기 신학자 예루살렘의 키릴로스 Kyrillos Alerosolymon, 약 375-444 가 말했듯, 글자를 읽을 줄 모른다거나, 필사본이 없다거나, 시간이 부족하다거나 등의 이유로 성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몇 개의 조항으로 신앙의 모든 가르침을 포괄하여 - P19

19세기의 저명한 교회사가 필립 샤프 PhilipSchaff, 1819-1893 는 사도신경이 어떤 성격의 신앙고백인지 다음과 같이설명합니다.
사도신경은 교육이나 예배의식에 사용할 목적으로, 특히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나 입교를 원하는 사람에게 신앙을 고백케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 [졌다!………사도신경은 요약된 교리를 논리적으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사실과 구원을 가져다주는 진리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다. 사도신경은 예배 의식에 사용될 수 있는 시詩의 형태로 되어 있다.………사도신경은 초기교회의 향기였다. 또 널리 인정을 받아서 헤아릴 수 없는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모든 시대와 분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띠와 같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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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가 묵상인 또 하나의 이유는 기록이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는 최종 목적은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먼저 말씀을 간직해야 합니다. 즉, 기억한다는 말입니다. 기억하는 방식에는 암송과 기록이 있습니다. 성경본문을 기록하는 일이야말로 말씀을 온 맘과 온몸에 담는일입니다. - P101

성경과 고전에합당한 독서 방법은 수도원 모델입니다. 성경에 알맞은 방식의 읽기는 입으로 소리 내어 읽고, 손으로 베끼고, 머리로기억하기 위해 암송하여 끝내는 온몸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살아 내는 것입니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해야 합니다. 성경은 더욱더 기록을 요하는 책입니다.
- P102

필사가 곧 묵상인 세 번째 이유는 묵상을 묵상답게 하는데 필사만큼 적합한 게 없기 때문입니다. 필사야말로 최고의 관찰입니다.  - P102

성경은 진실한 마음으로 보면 어린아이도 알아들을 만큼 쉽습니다. 다시 말해 성경 자체가 성경의 해석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래서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라고 가르쳤습니다. - P102

성경을 그대로 읽고 기록하는 것, 그것도 성경 해석입니다. 성경의 뜻은 오로지 성경 자신인 것입니다. 그 때문에 성경을 베껴 쓰는 것 자체가 성경 해석입니다.
- P103

필사가 곧 묵상인 또 하나의 이유는 필사가 기도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읽기에서 특별히 강조해야 할 것이 기도입니다.  - P103

성경을 읽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기도입니다. 여기서 기도는 말씀 자체로 기도하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이 곧 기도입니다.  - P103

성경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입으로 하는 기도라면, 성경을 베껴 쓰는 것은 손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성경을 베끼라는 뜻도 있지만, 성경필사 자체가 기도입니다. - P104

필사는그야말로 온몸을 던져야 합니다. 손가락과 손목, 어깨가 이만저만 아프고 결린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베껴 쓰기는적용뿐만 아니라 경건의 시간 전 과정과 깊이 결부되어 있어묵상을 묵상답게 합니다. - P104

그러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의 가치관에 잠겨, 보고 말하고, 행하는 것 가운데 성경적 세계관을 따라 살게 됩니다. 성경 필사는 우리의 성품을변화시킵니다. - P106

문장 중의 문장, 문학 중의 문학인 성경을 후루룩 읽고 넘어가지 말고, 신앙의 진리를 잘 드러내는 구절을 만나거든 큐티노트나 묵상 교재 빈칸에 그대로 베껴 쓰는 거지요. 그 자체가 묵상이고 성경 읽기입니다. - P108

하나님 말씀의 자리는 마음이고 생활입니다. 전심으로 집중해서 읽고쓰며 삶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나 베껴 쓰기는 말씀을모방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고, 내 일상을 일구는 힘이기에 저는 말합니다. "성경을 필사적(必死的)으로 필사하십시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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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울이 정교한 논리나 객관적 증거의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율법 아래 사는 삶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 P109

바울의 주장은 논리적 설득이 아니라 청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파토스의 수사학에 의지하고 있다. 이 점은 바로 이어지는 11절부터 16절에서 더 명확하게 나타난다.  - P109

전적 환대와 적의라는 극적인 감정변화가 자기를 서운하게 했다고 말이다. 이 모든 언급은감정을 건드리는 수사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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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결과로, 우리는 자유인이 되어 정당한상속자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 완전히 입양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 P618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영을 우리의 삶에 보내셔서 "아빠! 아버지!"라부르도록 하셨으니 말입니다.  - P618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특권을 가졌으니, 여러분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자녀이면, 유산을 완전히 물려받을 수 있는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 P618

전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던 때에는 신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신들에게 종노릇했지만, 이제는 진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알아 주셨습니다.
- P618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내가 여러분에게 메시지를 전하게 된 것은, 내 육체가 병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육체가 병들어 여행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고,
나는 여행을 멈추고 여러분과 함께 있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내가여러분에게 메시지를 전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 P619

기억하겠지만,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여종의 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인 여인의 아들입니다.  - P620

여종의 아들은 인간적인 묵인 아래 태어났고, 자유인 여인의 아들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주제를 잘 설명해 줍니다. 그 두 출생 방식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두 가지 방식을 가리킵니다.  - P620

그중 하나는 아라비아의 시내 산에서 생겨난 방식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예루살렘에서계속되고 있는 것과 일치하는 삶, 곧 끊임없이 종을 만들어 내는 종의 삶입니다. 바로 하갈의 방식입니다. 반면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예루살렘 곧 자유로운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 예루살렘이 바로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이는 다름 아닌 사라의 방식입니다.  - P620

친구 여러분, 여러분은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는 것이 분명하지않습니까? 하갈과 사라의 시대에는, 부정한 묵인 아래 태어난 아이이스마엘이, 신실한 약속으로-성령의 능력으로 태어난 아이 이삭을 괴롭혔습니다.  - P621

여러분이 지금 예루살렘 출신의 이단자들에게괴롭힘을 받는 것은 바로 그런 일의 되풀이라는 점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 P621

우리가 어찌해야 하는지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아라. 종의 아들은 자유인 아들과 함께 상속을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분명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인 여인의 자녀입니다. - P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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