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작가님 소설을 긴호흡으로 한동안 읽은 탓인지 짧고 빠른 페이스대로 흘러가는 담덕을 읽기가 조금은 버거운 숨이 가파르다고나 할까?
행간의 속도가 정말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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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 양자는 그동안 고구려를 몇 차례 다녀왔다. 사신으로갈 때마다 중원 각지에서 생산되는 특산품을 챙겨 가서 고구리에 비싼 값에 팔고, 또한 올 때는 고구려의 특산품을 가져와장안의 시장에 내다 팔아 쏠쏠한 재미를 보곤 했다. 역관들이개인적으로 부를 축적하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 P100

"조 행수에게서 석정 스님에 대해 전해 들은 바 있습니다만.
저희 부모님도 오래전 연나라 모용황 군대의 포로가 되어 용성까지 끌려온 고구려 유민입니다. 저는 용성에서 태어났습니다." - P100

"흐음,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빈도는 고구려 유민으로 모용황 군대의 포로가 되어 용성으로 끌려올 때 열 살이었지요. 나무관세음보살!" - P100

"허허헛! 빈도라니요? 석정 대사의 명성이 지금 장안에 크게떨치고 있는데요."
진유량도 따라서 웃었다. 빈도란 덕이 부족한 승려를 일컫는말로, 석정이 자기를 낮추어 그렇게 표현했다. - P101

조 행수는 이곳 장안과 서역을 오가며 우리 상단을 이끌게 될것입니다. 또한 고구려와도 연계하여 서역과 장안, 그리고 장안과 국내성을 잇는 무역로를 개척해 나갈 생각입니다. 이번 사신단에 우리 상단을 동행케 해주시는 일은 전적으로 석정 대사와 양통사께 달려 있습니다." - P103

"이번에 우리 상단이 사신단을 따라 고구려에 갈 수 있게 된다면 고급 비단을 많이 가져가도록 하시오. 그리고 고구려에서귀국할 때는 인삼을 바꾸어 가져오도록 하면 좋겠고."
진유량은 오래전부터 고구려 인삼의 효능에 대하여 들은 바가 있었다. - P103

대인 어른! 고구려의 특산품이 인삼인 것은 사실이나, 지금인삼 생산지인 부소갑(개성)을 백제에게 빼앗겨 교역이 어려울것 같습니다. 하루빨리 부소감을 되찾게 되면 고구려와의 인삼교역이 가능해지겠지요."
- P104

"오, 그래요? 인삼 교역을 강남의 동진에 빼앗기면 안 될 터인데 어서 빨리 고구려가 백제로부터 부소감을 되찾기만 빌어야하겠군." - P104

조환은 그날 밤 두 통의 서찰을 썼다. 하나는 대사자 우신게 다른 하나는 동부욕살 하대곤에게 보내는 서찰이었다.
동부욕살 하대곤에게 글을 쓸 때 조환은 감회가 새로웠다.
아마도 그는 백제와의 수곡성 전투에서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 P105

"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 칡을 캐러 다녔는데, 칡뿌리를 말려녹말가루를 내서 만든 칡술이오. 귀리도 조금 섞어 맛이 좀 색다르지만, 아쉬운 대로 마실 만은 합니다."
"고맙습니다. 올핸 보리농사가 아주 잘됐군요." - P110

군량미를 거둬가는 바람에 숨겨둔 나락으로 씨를 뿌리기도 수월치 않았으니까요. 굶어죽을 순 없고, 씨앗으로 남겨둔 나락까지 절구에 찧어 멀건 죽이라도 끓여먹는 집들이 많았지요.  - P111

전쟁이 없어야 젊은이들이 싸우러 나가 죽지 않고, 우리 같은 농사꾼도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 있어요. 작년에 평양성 전투에서 대왕이 죽고나서 태자가 새로왕이 되더니, 올해는 농부들에게 세도 감면해주고 농업도 장려하여 그럭저럭 어려운 고비는 넘기고 있습니다. 전쟁 없는 나라 만드는 대왕이성군이지요.  - P111

그는 다름 아닌, 평양성 전투에서 대왕 사유를 호위하다 화살을 맞아 왼쪽 눈을 잃은 추수였다. - P113

치명적인 독입니다. 독이라고, 저중원 남방의 광동성에 사는 짐조라는 맹독을 가진 새에게서 얻는 것이지요.
백제가 구하기도 힘든 짐독을 화살촉에 묻혀 쏘았다는 것은아예 작정을 하고 저지른 일이라 생각되옵니다. 그 점이 괘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P123

대왕 구부는 화살촉을 바라보며 당시 어의가 했던 말을 마음속으로 곱씹었다.
부왕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국내성으로 돌아온 대왕 구부는 백제를 쳐서 원수를 갚는 일보다 앞서 개혁의 기치부터 올렸다. 그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잦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수습하는 일이었다.
- P123

구부는 백성들의 군역과 부역을 줄이고, 세를 낮추어주었다.
대사면령을 내리고 죄수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농사일을 돕게했다. 뿐만 아니라 부여신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유화부인의신당을 새롭게 증축하고, 자주 찾아가 제사를 지내 농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 P123

추모왕이 부여를 탈출할 때 유화부인은 보리씨를 보내 고구려에서 보리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함으로써 농사의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었다. - P123

그래서 특히 대왕 구부는 보리농사를 적극 장려했다. 조기장·수수 등 대부분의 작물은 가을에 추수하는 데 반하여, 보리는 초겨울로 접어들 때 파종하여초여름에 추수하였다. 특히 춘궁기인 늦봄 무렵을 보릿고개라 부를 만큼 끼니 때우기도어려울 때 추수를 하니, 보리는 고구려 농민들에게는 주식이면서 또한 대표적인 구황작물이라 할 수 있었다.
- P124

이처럼 민심 수습으로 나라의 안정을 꾀하는 한편, 대왕 구부는 같이 정사를 논할 인재들을 널리 구하였다. 뿐만 아니라인재 양성을 위하여 기존의 지방 사설 교육기관인 경제도를 강화하는 한편, 국상에게 명하여 왕실과 귀족의 자제들이 체계적으로 유학을 배울 수 있게 태학을 설립토록 했다. - P124

대왕 구부는 왕권을 강화하여 나라의 체질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왕권강화의 한 방법으로 강구한 것은 불교를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승려 석정은 그에게 왕이 곧부처‘라는 왕즉불사상을 역설하면서, 불교를 공인하게 되면자연스럽게 왕권도 강화될 것임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 P124

지금의 대왕은 선왕 고국원왕과 달랐다. 선왕은 대신들과 맞서다가 자기주장이 먹히지 않으면 강압적으로 뜻을 관철해 나갔는데, 구부는 대신들을 충분히 설득하여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데 주력했다. 그것은 대왕으로서 매사에 확신을 갖고 일을 추진하는 자신감의 표출이기도 했다. - P129

유교는 태학에서 인재를 양성해 유능한대신들을 뽑는데 활용하고, 불교는 왕즉불 사상을 내세워 왕권을 강화하고 고구려를 불국정토의 나라로 만드는 데 필요했던 것이다. - P130

"그것이 바로 왕이 곧 부처라는 왕즉불사상이고, 불심으로세계를 통일하는 불국정토의 사상 아니겠사옵니까?" - P133

왕후 명림씨는 몰래 동궁전에 보냈던 시녀의 보고를 들을 때마다 미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자신이 보내준 약첩을 달여 마셨다면 분명 동궁빈의 몸에 어떤 반응이 일어나야 하는데,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 P144

 너, 다시 성 밖의 의원에게 다녀오너라. 지난번지어준 약첨이 별 효험이 없더라고 말이다. 한마디라도 거짓이있을 시에는 더 이상 처방전을 쓸 수 없도록 만들겠다고 일러라." - P145

"이 몸이 석녀라면, 하가촌의 미천한 딸도 석녀가 돼야지요.
만약 저 하가촌 장사꾼의 여식이 왕손을 낳아보세요. 우리 연나는 그 즉시 몰락하고 말 거예요. 아버님도 그때를 생각해보세요. 마음을 단단히 다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동궁빈을 석녀로 만들고 나서, 다시 연나부 출신을 이런 왕태제의 후궁으로 삼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연나부에서 대대로 아들을 많이 둔 가계의 내력을 알아보고, 그 집안의 딸 중 영특하고건강한 남자를 물색해 두도록 하세요." - P147

몸에 안 좋은 독초를 한꺼번에 많이 쓰면 탕약을 드는 당사자가 금세 알아차릴 것 같아 조금씩 넣었다 하옵니다. 그래도그 약첩을 다 달여 마셨다면 반드시 효험이 있을 것이라 하니. - P150

"만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면 민간의 명의라는 자에게단단히 입막음을 해두었느냐?"
"가지고 간 금덩어리를 건네주었더니, 무덤에까지 비밀을 가지고 가겠다고 하더이다."
- P151

"너도 단단히 입을 봉하고 있어야 한다. 아무래도 내가 이번일을 섣불리 결행한 것 같다. 후회막급이로구나 동궁빈은 예사 인물이 아니야. 총기도 있어 보이고 학문도 깊다 들었다. 거기에 무술까지 뛰어나다 하니, 가볍게 다루었다가는 역효과를가져올 위험이 있다. 그러니 너도 동궁전을 살필 때 특히 그 점을 유념토록 해라." - P151

추수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왕태제나 동궁빈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 스스로도 평양성 전투에서 죽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패수에서 발견한 아기를 떠맡게 되면서 그는 새로운생명을 얻었다고 생각했고, 앞으로 추수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 P153

며칠 전 왕태제 이련이 보낸 사자가 다녀갔다. 두미에게 태학의 유생들을 가르칠 박사로 와달라고 초청한 것이었다. 그는사자에게 묵묵부답인 채 답서도 써주지 않고 돌려보냈다. 그동안 몇 번 번민을 거듭했지만, 번잡한 삶을 싫어하는 그로서는국내성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쩌면 조만간 왕태제가직접 그를 찾아올지도 몰랐다.
- P153

"사부님, 어찌 왕태제 전하의 초청을 거부하십니까?"
"추수야, 너는 내가 아귀들의 세상에 나가는 것이 좋으냐?"
"왜 그곳이 아귀들의 세상입니까?"
"허허, 너는 한쪽 눈을 잃고도 그 세상이 어떤 도가니 속인지 모르겠느냐? 선왕이 그 도가니에 불을 지펴 끓게 했고, 그로 인해 많은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지 않았더냐?  - P154

을두미는 자신의 직계 조상인 을파소가 국상을 지낸 고국천왕 시절의 역사를 떠올렸다. 당시 고구려 왕실은 연나부의 우씨 세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고, 당시 대왕은 연나부 세력을견제하기 위해 서압록곡에 은거한 을파소를 전격 기용했다.
- P155

을파소는 국상으로, 파격적인 개혁정치를 실시했다. 그중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들에게 국가의 창고를 헐어 곡식을 내주는진대법, 을파소가 고안해 낸 획기적인 구휼정책이었다.
- P155

그러나 그런 을파소도 연나부 세력을 배후에 둔 우씨가 두 번씩이나 왕후 노릇을 하면서 허수아비 왕 대신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행태를 막지 못했다. 결국 을파소는 연나부 세력에 밀려크게 개혁정치를 펴지 못한 채 물러나고 말았다.
- P155

그런데 그때로부터 2백 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연나부 세력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왕권보다 신권이 강화된 것이 마침내는 국가기강을 해이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결국 모용씨의 연나라나 백제로 하여금 호시탐탐 고구려 국경을넘보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 P155

추수의 마음은 아직도 동궁빈 하씨, 아니 연화가 있는 국내성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차마왕태제나동궁빈 앞에나타날 수 없는 몸이었다. 그는 선왕을 전사케 한 것이 자신의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 P156

그러므로 스승 을두미가 국내성에 가는 것이 왕태제나 동궁빈의안전을 도모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조금이라도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 P156

"호랑이 굴 아닐까요? 잠자는데 호랑이라도 들어오면 어쩌죠?"
하가촌 무술도장에서부터 함께 따라온 동자 명선은 산속이무척 낯설었으므로 겁부터 잔뜩 집어먹은 얼굴이었다.
"허허헛! 호랑이가 무섭냐, 사람이 무섭냐?"
을두미가 명선에게 물었다.
"그야 물론 호랑이지요." - P158

"그래, 추수 네 생각은 어떠하냐?"
"호랑이는 함부로 사람을 해치지 않지만, 사람은 전쟁터에서함부로 상대를 죽입니다. 배가 부르면 호랑이는 오히려 사람을피하지만,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지요. 그런 점에서 저는 사람이 더 무섭습니다." - P158

"인위는 썩었어도 무위자연無爲自然은 변함이 없구나"
을두미가 초당 마당에서 폭포수 줄기를 바라다보며 혼잣소리처럼 중얼거렸다. - P160

"허헛, 그 아이와 인연을 맺은 것은 네 업이다. ‘업‘이가 어떠하냐? ‘업이 오히려 복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사부님, 고맙습니다."
추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변했다. - P162

그런데 사내의 기척이 사라진 후, 죽은 줄 알았던 노인은 참았던 숨을 토해 냈다. 컥, 커억, 소리와 함께 칼이 지나간 목에서 핏덩어리가 솟구쳐 올라왔다. 그는 핏덩어리를 손으로 찍어안간힘을 쓰며 흰 광목천으로 된 이불 위에 무슨 글자인가를쓰다가 끝내는 절명하고 말았다. - P165

"흐음, 이불 위에 피로 쓴 글씨가 있군!"
기찰포교의 눈에도 그 글자는 확연하게 왕자와 궁 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중대한 사안임을 직감했다.
"며칠 전에 궁궐에서 시녀가 한 명 다녀갔다 들었는데, 아무래도 궁궐과 무슨 관계가 있는 듯합니다." - P165

기찰포교는 혼잣소리처럼 지껄였다. 그것은 애써 피해자의가족들을 비롯하여 현장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들으라고 하는소리였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수하인 포졸들에게도 과장된 말과 몸짓으로 위장하여, 될 수 있으면 사건의 핵심을 숨기려고애썼다. - P166

"아버님은 아무 말씀 없이 처방전을 내주며, 반드시 그대로약첨을 지으라고 해서 그대로 했습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약 봉지마다 약간씩 비소 성분이 가미되어 있었습니다. 하루두 첩씩 스무 첩으로 된 한 재분량을 지었던 기억이 납니다."
명의 노인 아들의 설명이었다. - P167

비소 성분이 들어간 약을 달여 먹으면 죽지 않습니까?"
기찰포교가 물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소량이므로 약을 달여 마시는 사람이크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소 성분이 들어간첩약은 특별한 병이 아닌 사람이 장복을 할 경우 위험할 수도있습니다." - P167

죽는 시늉을 하던 방추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국상 명림수부였다. 그 순간 기찰포교는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자신의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죽은 자가 혈서로 쓴 글자의 암시도 그렇거니와, 이사건이 국상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에 기포는 더럭 겁부터났다. 더 이상 신문을 했다가는 만천하에 비밀이 드러날 것 같아 일단 방추를 다시 하옥시켰다. - P169

국상 명림수부가 관련되어 있다면 필시 궁궐의 왕후와 직결되는 사건임을 기찰포교는 모르지 않았다. 임신이 되지 않는약첩이라면 그것의 용처가 어디인지도 짐작이 갔다. 동빈의왕손 출산 문제를 두고 연나부 세력이 음모를 꾸미고 있음이분명했던 것이다.  - P170

그러나 그는 국상과 왕후가 연계된 살인사건을 다룰 자신이 없었다. 그가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기엔 혐의자들의 직급이나 권력이 너무 벅차서,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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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의 승상 왕맹은 부견의 명을 받아 석정에게 태학을 견학시켜 주었다. 태학은 황실과 귀족의 자제들을 교육시키는 기관으로 국가에서 관리하며, 전체 유생이 숙식을 제공받고 집중적으로 학문을 익히는 곳이었다. - P90

도서원은 대단합니다. 저 많은 경서들을 어떻게 다 마련했습니까?"
"필사처럼 가장 확실한 공부는 없지요. 경서의 필사는 유생들 누구나가 반드시 해내야 할 기본적인 과제입니다. 경서뿐만이 아닙니다. 각종 역사서와 중요 문서 등도 반드시 필사하여보관해야 합니다. 저장서들은 모두 태학의 유생들이 필사하여책으로 묶은 것이지요."
"그렇군요."
석정은 이해가 되었다. - P91

유생들은 그 밖에 병서도 익히고 무술도 배우지요. 기본적으로 문무를 겸해야만 정사를 살필 수 있으니, 무술 또한 중요한 공부에 속합니다. 일종의 정신 훈련과 심신 단련으로는 무술만큼 좋은 것이 없으니까요." - P91

연나라를 멸망시킨 부견은 왕맹의 공을 크게 치하하여, 그를 전진 최고 지위인 숭상으로 삼았다. 승상이 된 왕맹은 나라 안팎을 정비하는 데 힘썼다. 밖으로 군대를 개혁하고 안으로 유학을 장려하여 나라의 체제를 정비해 나갔다. 그는 또한농민들에게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하는 한편, 상공업을 적극육성하여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 P96

일례로, 걸주에 대한 상나라 탕임금이나 주나라 무왕의 봉기가 바로 그런 전쟁 아니었을까요? 조선의 홍익인간 정신도 그와 같아서, 전쟁보다는 평화의 시대를 염원하는 국가의 정체성이 누대에 걸쳐 이어져 왔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 P97

나아가 나라가 바뀌어도 그 홍익인간의 정신이 온전히 살아 있기 때문에부여와 고구려를 비롯하여 백제·신라·가야가 모두 오랜 역사를 간직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 P97

전쟁은 평화를 전제로 할 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음은 물론이려니와 만약 전쟁을 일으키더라도 백성들을 오래도록 고통스럽게 하지 않으려면 속전속결로 결판을 내야 하는 것이고말입니다."
석정을 쳐다보는 왕맹의 눈길에는 깊은 신뢰감이 실려 있었다.
"승상께서 연나라를 경략할 때와 같은 그런 전쟁을 말씀하시는군요?"
- P98

"부끄럽소이다. 연나라는 모용황 때부터 오만했소. 그래서 고구려가 큰 피해를 입기도 했지요. 오만하다는 것은 자기 실력을 과신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곧 패망의 지름길입니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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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성경을 자꾸 읽어서 아침저녁으로 묵상하는 사람들은 영특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집니다. 예수를 믿으면 인생이 행복해진다는 것도 맞지만 똑똑해진다는 말은 더더욱 맞습니다. - P173

마치 부모가이제 갓 말을 배우기 시작한 자녀와 대화할 때처럼 자신을낮추는 것에 견주어 비유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볼수 있도록 육신이 되어 오셨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알아듣도록 쉽고 평이한 언어로 말씀해 주십니다. - P173

 그렇기에 한 가지 성경 번역본만 지나치게 추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존경이나 사랑이 아닙니다. 가능한 한 여러 번역본을 비교,
대조하며 읽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P175

이처럼 번역은 해석과 결부되어 있고, 오류가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번역본을참조해 읽어야 합니다.
- P176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라고 했습니다. 빌레몬서의 한구절이 막히면 우선 빌레몬서 안에서 길을 뚫을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좀더 넓혀서 바울서신, 그리고 신약성경, 마지막으로는 구약성경까지 점차 확장해 갑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번역본은 어떻게 옮겼는지 대조하면서 읽으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 P176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고후 3:6, 새번역). 해서, 하나님의 영으로 읽어야 합니다. - P177

 예수님은 성령을 가리켜 진리의 영이라 했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나게 하고,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요 14:26). 성령의 인도하심 없이는 성경을 제대로 간파할 수 없습니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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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히려 학문하기를 즐기고사소한 예절에는 구애받지 않았으며 풍류와 학문이 동년배의 마음을쏠리게 했다. 과거에 합격하기 위한 사소한 문예는 익히지 않았으며,
국가의 일을 담론할 적에는 말이 거침없었다. 사람들은 그런 권람더러
‘백의 재상‘이라 부르기도 했다.
- P70

권람은 첩에게 미혹된 아버지 권제가 어머니를 소홀히하자 울면서호소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도리어 아들을 때렸다. 상처받은 권람은 집을 나와 여행길에 올랐다. 그때 동행한 이가 망형교忘形를 맺은 한명회였다. - P70

권람은 1450년(문종 즉위) 정인지가 관장하는 문과에 합격했다. 이날한밤중에 문종이 향시 · 회시에서는 모두 으뜸, 전시에서는 4등을 차지한 권람의 대책을 가져오게 했다. 당시 그는 "옛날 신돈이라는 중 하나가 오히려 고려 500년의 왕업을 망치기에 충분하였는데, 하물며 이 두중이겠는가"라며 신미·학열 무리를 극력 비난했다. 문종은 "권람이 회시에 장원을 하였고 또 본래 명성이 있었는데, 이제 대책을 보니 또한훌륭한 작품이다. 권람을 장원으로 삼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의견을냈고, 그에 따라 1등으로 올렸다.
- P71

한명회는 절친 권람이 문과에 합격한 후에도 여전히 백수로 있었다.
한명회가 그나마 벼슬 한자리를 얻게 된 때는 1452년(문종 2)이었다. 이때 태조가 왕이 되기 전에 거주했던 개경의 옛집인 경덕궁의 궁지기로겨우 임용되었다. 할아버지 한상질이 1393년(태조 2) ‘조선‘ 국호를 정하는 데 이바지한 덕분에 특채된 것이었다. - P71

현 정치 상황에 대한 수양의 불편한 뜻을 확인한 권람은 한명회를 소개했다. - P73

권람을 매개로 수양과 한명회가 결탁했다.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는순간이었다. 이때 수양은 35세, 권람은 그보다 한 살 위, 한명회는 권람보다 한 살 위로 수양과는 두 살 차이였다. 셋 모두 피가 철철 끓는 중년의 남자들이었다.
수양과 한명회가 직접 만난 때는 1453년(단종 1) 3월 21일이었다. 수양은 처음부터 그를 오랜 친구와 같이 여겼다. - P74

신숙주신숙주는 경상도 고령현 사람으로, 공조 우참판에추증된 영의정 신장의 아들이었다. 1439년(세종21) 문과 제3인으로 뽑혀집현전 종6품부수찬· 정4품 응교를 거쳐 단종 대에 직제학에 이르렀다 - P75

수양이 신숙주와 뜻을같이했다는 것은 세종대 집현전을 통해 성장한 여타 학자 관료의 지지를 끌어 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 점에서 신숙주의 합류는 수양에게 큰 힘이 되었다.
- P76

홍윤성홍윤성은 충청도 회인현 사람으로 1450년(문종 즉위)문과에 급제한 인물이었다. 문신이지만 무재가 뛰어났다. 문종이 수양으로 하여금 진서를 편찬하는 일을 관장하게 했을 때 권람과 함께낭좌로 참여했다. - P76

홍윤성은 한명회보다도 앞서 수양의 사람이 되었다. 1452년(단종 즉위) 먼저 수양을 찾아갔다. 수양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처자를 잊고사직을 위해 죽을 것‘을 다짐받았다. 둘은 이후 같은 배를 탔다. - P77

이튿날밤 김종서가 사람을 시켜 홍윤성을 불렀다. 이현로와 아들 김승규를 모두 내보낸 후 자신이 고시관으로서 홍윤성을 뽑았다며 문생인 그를친자식처럼 여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양을 섬기지 말고 안평을 섬기라 권유하며 그 징표로 활을 주었다. 홍윤성은 이 호의에 거짓으로 응하는 체하며 활을 받아 물러났다. 그러나 결국 수양의 뒤에 줄을 섰다. - P77

내금위 무사인 이들이 수양에게 협력하게 된 것은 김종서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앞서 1451년(문종 1) 5월 6일 김종서는 내금위 인사를두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내금위는 본디 정밀하게 뽑아야 하는데 근래에는 혹 알맞지 않은 자가 있다"며 문제를 지적했다. 그래서 문종은무반의 일을 아는 김종서를 시켜 내금위 간택을 관장하게 했다.  - P77

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홍달손의 임무는 도성을 순찰하는 순라를 감독하여 허술함이 없도록 하는 감순이었다. 감수의 합세는 도성의 출입을 장악할 수 있다는 의미로 순졸 수백 인을 얻는 효과와 맞먹는 것이었다. - P78

수양이 그런 꿈을 꾸었는지 누가 알 수 있으랴! 하지만 《세조실록》총서에서는 특히 날짜를 특정해 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았다. 대군 신분의 수양에게 ‘큰 욕심‘을 이루라며 권유한 노인을 등장시킴으로써 대군 그 이상으로 부상하리라는 예언을 해놓은 것이다.
- P79

그로부터 10년 후인 1453년(단종 1) 8월 수양대군 집의 가마솥이 스스로 소리 내어 울었다. 사저의 사람들이 원인을 몰라 떠들썩하고 뒤숭숭하자 수양은 "잔치를 베풀 징조이다"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무당 비파가 급히 달려와서 수양의 부인 윤씨에게 "이는 수양대군께서 39세에임금의 자리에 오를 징조입니다"라고 말했다. 점사를 들은 윤씨가 놀라 다시 묻고자 했지만, 무당은 더 이상 고하지 않고 가버렸다. - P79

오죽하면 점쟁이의 말을 《세조실록》 총서에 기록해 놓았으랴! 《실록》은 없는 사실을 기록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실록>에 대한 그런 믿음은 있다. 마침 가마솥이 균형이 맞지 않아 소리가 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관은 신통한 점쟁이가 수양의 즉위를 예언했다며 의미를 붙여특별히 기록해 놓았다. 이는 점괘를 언급할 만큼 수양의 즉위 명분을찾기 궁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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