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의 승상 왕맹은 부견의 명을 받아 석정에게 태학을 견학시켜 주었다. 태학은 황실과 귀족의 자제들을 교육시키는 기관으로 국가에서 관리하며, 전체 유생이 숙식을 제공받고 집중적으로 학문을 익히는 곳이었다. - P90

도서원은 대단합니다. 저 많은 경서들을 어떻게 다 마련했습니까?"
"필사처럼 가장 확실한 공부는 없지요. 경서의 필사는 유생들 누구나가 반드시 해내야 할 기본적인 과제입니다. 경서뿐만이 아닙니다. 각종 역사서와 중요 문서 등도 반드시 필사하여보관해야 합니다. 저장서들은 모두 태학의 유생들이 필사하여책으로 묶은 것이지요."
"그렇군요."
석정은 이해가 되었다. - P91

유생들은 그 밖에 병서도 익히고 무술도 배우지요. 기본적으로 문무를 겸해야만 정사를 살필 수 있으니, 무술 또한 중요한 공부에 속합니다. 일종의 정신 훈련과 심신 단련으로는 무술만큼 좋은 것이 없으니까요." - P91

연나라를 멸망시킨 부견은 왕맹의 공을 크게 치하하여, 그를 전진 최고 지위인 숭상으로 삼았다. 승상이 된 왕맹은 나라 안팎을 정비하는 데 힘썼다. 밖으로 군대를 개혁하고 안으로 유학을 장려하여 나라의 체제를 정비해 나갔다. 그는 또한농민들에게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하는 한편, 상공업을 적극육성하여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 P96

일례로, 걸주에 대한 상나라 탕임금이나 주나라 무왕의 봉기가 바로 그런 전쟁 아니었을까요? 조선의 홍익인간 정신도 그와 같아서, 전쟁보다는 평화의 시대를 염원하는 국가의 정체성이 누대에 걸쳐 이어져 왔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 P97

나아가 나라가 바뀌어도 그 홍익인간의 정신이 온전히 살아 있기 때문에부여와 고구려를 비롯하여 백제·신라·가야가 모두 오랜 역사를 간직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 P97

전쟁은 평화를 전제로 할 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음은 물론이려니와 만약 전쟁을 일으키더라도 백성들을 오래도록 고통스럽게 하지 않으려면 속전속결로 결판을 내야 하는 것이고말입니다."
석정을 쳐다보는 왕맹의 눈길에는 깊은 신뢰감이 실려 있었다.
"승상께서 연나라를 경략할 때와 같은 그런 전쟁을 말씀하시는군요?"
- P98

"부끄럽소이다. 연나라는 모용황 때부터 오만했소. 그래서 고구려가 큰 피해를 입기도 했지요. 오만하다는 것은 자기 실력을 과신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곧 패망의 지름길입니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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