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은 말없이 조용히 살다가 찾아오는 현상이 아니다. 강풍에 일어난 파도가 좌충우돌하여 거품을 일으키듯, 사회가 통제되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인 끝에 망국이라는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로마 제국최후의 주인공들은 세 가지 부류 가운데 어디에 속하느냐에 따라 성질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야만족‘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 P31
로마인은 예로부터 이민족과 결혼하여 피를 섞는 데 저항감이없었다. 다만 옛날에는 트라야누스 황제처럼 로마인 병사와 이민족 여자의 결혼에서 태어난 혼혈인이 많았지만, 4세기 이후에는 야만족 남자와 로마인 여자의 결합이 지배적인 경향이 된다. 이런 면에서도 공수가 바뀌었다. - P32
로마 사회는 부계사회여서, 어머니가 야만족이라도 아버지가 로마인이면 그 자식은 로마인이지만, 어머니가 로마인이라도 아버지가 야만족이면 그 자식은 어디까지나 야만족이었다. 로마식으로 플라비우스 스틸리코라고 이름을 대도, 그를 로마인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을것이다. - P32
로마인들은 적어도 전쟁을 함에 있어서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최대로 한 후에 오로지 전투만 집중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다 갖춘 후에 비로서 시작된다.
다리를 놓을 때는 강폭이 넓고 물살도 느린 편이 적당했다. 그렇다면 유럽 최대의 하천인 도나우강에 놓은 배다리의 전체 길이는 적어도 1킬로미터를 넘었을 게 분명하다. - P81
로마군의 경우, 사령관이 병사들 앞에서 행하는 연설은 "힘내라!"를외치는 것이 아니다. 트라야누스의 연설문은 남아 있지 않지만, 다른장수들의 연설문을 보면 설득을 통해 병사들을 독려하는 경우가 많다. - P82
너희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그러니까 분발하라는 것이다. "로마군은 병참으로 이긴다"는 말을 들은 것도, 병참이라는 확정적 요소를 소홀히 하지 않아야만 비로소 정신력이라는 비확정적 요소가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P82
아군 병사의 퇴로를 차단하고 병사들을 전쟁터에 투입하는 편이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도망칠 곳을 확보해줌으로써 병사들을 안심시키고, 그 안도감을 용수철로 이용하여 사기를 높이는 편이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것은 당연하지만, 로마 장수들은 대부분 후자를 채택했다. - P83
게릴라 전법을 구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적이 가장 무섭다. 로마군 사령관은 되도록 아군 병사의 눈에 적군이보이게 하려고 애썼다. - P84
로마가 불편하고 특별한 도시가 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체감해보려면 콜로세움 부근에 있는 산클레멘테 san Clemente 교회를 찾으면 좋을 것이다. 18세기에 바로크식으로외관을 새로 단장해 젊은 느낌을 풍기지만,안으로 들어가 보면 진짜 나이를 실감할 수 있다 - P25
이게 끝이 아니다. 4세기에 세워진 이 교회 아래에서 또 다른 공간이 발견되었다. 1세기, 즉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미트라교 사원이다. 4세기 교회도 1세기에 지어진 이 고대 사원을 덮고 만들어졌던 것이다. 거의 2천 년 동안의 퇴적, 산클레멘테 교회는 로마의 시공간을 축소모형으로 구현해놓은 듯하다. - P26
로마만의 특별한 시공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을 하나 더 소개하고 싶다. 현대 로마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가장 큰 대로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 가도 한편에, 라르고 디 토레 아르젠티나Largo di Torre Argentina 라는 광장이 있다. 이곳엔 무려 로마공화정 시대(고대 로마의 ‘공화정 시대‘라 하면 무조건 2천 년이 넘었다고 보면 된다)의 신전 세 채의 유적이 있는데, 20세기 중반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앞에서 말한 이유로 이 유적의 지표면은 십수미터의 지층 아래에 있다. 마치 싱크홀이 발생해 숨겨진 지하 공간이 우연히드러난것 같은 광경이다. - P26
도시 한복판에 있는 2천 년 전 신전들의 유적지. 이곳에 다른 시공간을 살고 있는 존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고양이다. 사실 이유적지의 진짜 매력은곳곳에서 잠을 자거나 한가롭게 거닐거나 장난을 치는 고양이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다. 이곳은 도심 속의 고양이 마을, 고대 로마식으로 표현하자면 고양이들의 포룸(forum)이라고 할수 있겠다. - P27
앞서 이야기한 라르고 디토레 아르젠티나 주변을 보자. 바로크 건축의신기원인 제수 교회와 그 유명한 판테온이 걸어서 5~10분 거리에 있다.발길이 판테온에 이르렀다면 비슷한 거리에 있는 나보나 광장이나 콜론나 광장을 선택할 수 있다. 전자라면 바티칸에 가까워져 있을 테고, 후자라면 트레비 분수나 스페인 광장에 이르게 된다. 가는 동안 여유를 갖고주변에 관심을 기울이면 사이사이 볼거리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처럼구경거리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로마에서는 가보고 싶은 곳이 없거나 무엇을해야할지 몰라서 걸음을 멈추는 일이 거의 없다. - P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