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영성의 1차 텍스트는 성경‘이라고 한 영성 신학자 유진 피터슨은, 정작 현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텍스트이자 최고 권위자는 ‘자아‘인 것 같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 P29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정말로 겁나는 것은, 내가 성경을 전혀 모른다는 게 아니라 조금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 P31
성경을 바르게 묵상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성경 읽기와 묵상을 자아충족의 수단으로, 성경 본문을 점괘나 타로카드뽑기 수준으로 활용하는 ‘나쁜 묵상‘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그 이름을 욕되게 하고 짓밟는 참담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될 것입니다. - P31
성경 본문의 한 구절이나 표현, 단어를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근거로 끌어다 붙이는 ‘아전인수‘나 ‘견강부회‘식 적용을 했을 듯도 합니다. 이 경우가 바로 존 스토트가 말한 바, "거기에 없지만, 할 수만 있다면 거기서 발견하고 싶은 그런 것으로 곡해하여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 해당할 터입니다. 그런 사례도 성경 묵상이라부를 수 있다면, 이야말로 지극히 자기주관적인 ‘오만한 묵상‘이 아닐는지요. - P34
기본적 자세로 성경을 읽는 이들일수록 대체로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확인시켜 주는 명확한 ‘시그널(신호, signal)‘이나 ‘표지 sign‘ 를 찾기 마련이다. 말이 좋아 시그널이지, 사실상 ‘점화‘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점괘같은 시그널이나 표지를 보여 주지 않는다. ‘안내자 guide‘를소개할 뿐이다. 그래서 성경대로 사는 삶은 언제나 ‘안내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요구한다. - P35
성경 읽기와 묵상 또한말씀과의 관계 맺기‘일진대, 이 과정에 알게 모르게 개입하는 우리의 ‘오만과 편견‘도 가벼이 지나칠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오만이 단절을 낳고 편견이 시야를 가리는일이 어찌 200 년 전의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겠습니까? - P37
만일 우리가 마음을 결정한 상태로 성경에 와서, 성경으로부터자신의 생각의 반영만을 듣기 원하고 하나님의 천둥 같은 음성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을 것이며,우리는 자신믜 편견만을 확인받게 될 것입니다. - P37
그는 객관적이고 편견 없이 성경을 대할 수 있다는 환상을 내려놔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우리 내면에 문화적 편견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 P38
면 "묵상은 우리가 성경을 사용하여 나의 왕국을 이루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성경을 사용하여 우리를 ..… 당신의 나라로 이끄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P40
성경 묵상이 하나님과 무관하게 나의 나라를 강화하는 도구로 전락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복 돋고 하나님의 나라 (다스림)를 추구하는 통로가 되려면 말이지요 - P40
그렇게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오종종 설레발치며 이책 저책 참고자료를 뒤적이다가 예기치 않은 성구를 만났습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와서 들어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살 것이다. Give ear and come to me; hear me, that your soul may live. (사 55:3, 새번역/NIV) - P43
오직 "들어라, 내게 들어라" (사 55:2) 하십니다. - P43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그러할 테지만, 제가 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은 성경과 기도입니다. 이 가운데 특별히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이 깃든 텍스트‘입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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