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유대교의 일신론자들에게는 이러한 혼합주의가 불가능했습니다. 헬레니즘과의갈등은 기원전 168/167년 셀류코스(시리아)의 통치자인 안티오쿠스 4세에피파네스 Antiochus IV Epiphanes 가 성전을 더럽히면서 잔인할정도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에피파네스는 헬레니즘을 강요하려고 성전을 야, 바알, 제우스를 모시는 신전으로 바꾸었습니다(마카베오상 1:41-64; 마카베오하 6:1-11). - P23
아우구스티누스의 경우 구약성서를 야만적이며, 철학적으종교에 접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혐오했다가, 러한 해석 방법을 통해 처음 가졌던 생각을 넘어섰습니다. - P22
이야기의 표면에 나타난 의미보다 더 깊고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갈라디아서 4:24). 결과적으로 철학자들은 신화의 진정한 의미가 철학적 진리를 상징으로 나타낸 것이기에, 신화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식으로 알레고리적 방법이 전통을 재해석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때문에, 물려받은 종교 전통을 모조리 거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 P22
그러나 철학자들은 ‘알레고리적‘ 해석 방법으로 신화를해석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 P21
소크라테스식 교육법의 목표는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에관한 이성적 ‘지식‘에 기초하여 덕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것입니다(cf. 로마서 12:2; 빌립보서 4:8), - P20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Philo of Alexandria, BCE 200-CE 40? 은교육받은 유대인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그리스 철학과 지적으로교류한 좋은 예를 보여 줍니다. 필론에겐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철학적 개념을 통해서 유대교를 풍성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일한 개념적 자원을 사용하여 이방인들에게유대교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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