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아드마와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소멸된 평지의 성읍이다(창 14:8; 19:24-25; 신 29:23). 이곳은 평지에 있던 작은마을이지만 하나님은 그곳을 기억하셨다.
- P1592

11:8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은 한이 없다.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고부패하며 거짓 동맹을 맺은 후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안심이되는지 모른다. 우리 믿음이 약하고 우리의 영적 헌신이 냉담해지는 듯 보여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 P1592

11:5 북왕국은 예루살렘과 절연하고 나서 겨우 두 세기 동안 살아남았다. 영적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백성에게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에 한 나라로서 그들은 결코 회개하지 않았다. 호세아는 북왕국의 몰락을 예언했다. 그 일은 주전722년 앗수르의 살만에셀이 이스라엘을 정복했을 때 일어났다. 유다 역시 포로가 되었지만 남은 자들은 고국으로 귀환했다 - P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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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든 범죄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그들은 생각도 못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저분한 죄를 뒤집어쓰고 있는 그들,
나는 그들의 본색을, 그들이 하는 짓을 다 보고 있다. - P644

오만이 집채만큼 부풀어 오른 이스라엘,
세상 앞에 망신거리다.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이 떠도는 이스라엘,
그 모든 경고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무시하고 다닌다. - P665

그들의 통치자들은 칼에 베이고, 살해될 것이다.
조롱과 신성모독의 대가다.
그들의 최후는?
세상 모든 사람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다." - P666

그들은 왕들을 세우면서, 내게 묻지도 않는다.
제후들을 세우면서, 내가 그 일에 관여하지 못하게 한다.
대신에, 그들은 은과 금으로 여러 우상을 만든다.
그들을 파멸시킬 우상들을.
사마리아야, 금송아지 신상을 쓰레기통에 던져라!
그 쓰레기 때문에 내 노가 끓어오른다.
- P667

도대체 언제가 되어야 바로잡히겠느냐?
너희 이스라엘은!
그것은 사람이 조각한 물건이다.
하나님이 아니다.
그 사마리아 송아지, - P667

나 하나님은 조금도 기쁘지 않다!
아주 지긋지긋하다. 그들의 죄를 낱낱이 기억해 둘 것이다.
그 죄를 벌하여,
그들을 다시 이집트로 돌려보낼 것이다.
- P668

이스라엘은 자기 창조자를 잊었고,
그저 궁궐 짓는 일로 분주했다.
유다는 요새 세우는 일에만 몰두했다.
내가 그 도성에 불을 보내어,
그 요새들을 불태워 버릴 것이다." - P668

너희 가운데 어떤 자들은 이집트에서 파산하고,
어떤 자들은 앗시리아에서 환멸을 맛보게 될 것이다.
너희는 이집트와 앗시리아에서 피난민 신세가 되어,
하나님을 예배할 기회도 얻지 못할 것이다.
배급받는 빵과 물로 겨우 연명하지만,
- P669

너희 영혼은 더러운 영적 공기에 오염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추방된 너희는하나님에 주릴 것이다.  - P669

" 나의 하나님이 그들에게서 손을 떼셨다.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는 그들이방 민족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떠돌며,
방랑하는 처지가 될 것이다. - P671

이스라엘은 한때 푸르게 우거진 포도나무였고,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그러나 수확이 풍성해지자,
그만큼 예배가 난잡해졌다.
- P671

돈이 많아지자,
자기들 형상대로 우상을 만드는 일에 
돈을 쏟아부었다.
다들 환한 미소를 짓고 다니지만, 
순전히 거짓이다.
범죄와 다름없는 미소다. - P671

사마리아 사람들이 ‘죄의 도시‘로 몰려가서금송아지 신을 숭배한다.
흥행사격인 제사장들의 안내를 받아밖으로 나가서, 소리를 질러 대고 날뛴다.
송아지 신을 가운데 두고 잔뜩 폼을 잡지만, 다그것이 얼마나 거짓되고 부끄러운 일인지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앗시리아로 가져가서,
대왕에게 선물로 바칠 계획까지 세운다.
- P672

그렇게 에브라임은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그 우스꽝스런 우상들로 이스라엘을 욕보인다. - P672

이것이 바로 너희,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너희 앞에 놓인 일이다.
이것이 모두 너희가 저지른 전대미문의 악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너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보면, 이지이스라엘이, 왕과 왕국도 사라져 버린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P674

 "이스라엘이 어린아이였을 적, 나는 그를 사랑했다.
‘내 아들아!‘ 하고 큰소리로 그를 불러냈다.
 이집트에서불러냈다.
그러나 다른 자들이 부르자,
그는 나를 버리고 가 버렸다.
- P674

그는 인기 좋은 음란한 신들을 숭배하고,
갖고 놀기 좋은 신들로 종교 놀음을 벌였다.
그래도 나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에브라임의 길을 인도해 주었다.
압제받던 그를 구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나의 도움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 P674

내 백성은 나를 저버리는 일에 필사적이다.
바알 신에게 달려가 도와달라고 기도하지만,
그 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무산되었다.
그러나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단념하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단념하겠느냐? - P675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망하도록 놔두며,
가련한 스보임처럼 황폐해지도록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견딜 수 없다.
내 온몸이 거부한다.
아무리 노여워도 나는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에브라임을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러겠느냐? 나는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거룩한 하나님‘이며, 지금 여기 너희 가운데 있다. - P675

10-12 내 백성이 마침내 하나님을 따르게 될 것이다.
내가 포효하리라.
사자처럼!
그러면 놀란 내 자녀들이 서쪽에서 뛰어오리라.
그들이 놀란 새들처럼 이집트에서 나오고,
겁먹은 비둘기들처럼 앗시리아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다시 고향집으로 데려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 P675

에브라임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
이스라엘이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믿을 수 없다.
유다도 나을 것이 없다. 그도,
값싼 신들에 중독되었다. - P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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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년 3월 14일, 인조 명의로 팔도에 반포했던 조서의 내용이다.
광해군 정권을 무력으로 쫓아낸 명분을 거론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폐정의 원흉으로 광해군이 아닌 이이첨을 지목하고 있는 점이다. ‘이이첨이 국정을 제멋대로 하여 인목대비와 광해군을 이간시켜백성과 나라를 망쳤다는 것이다.
- P27

나라를 망친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모자 사이를 이간하여일으킨 윤리적 변고,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한것을 뜻한다. 둘째, 부모와 같은 중국 조정을 배신한 것. 후금과 화친하여 명의 군사 원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을 의미한다. 셋째,
백성을 곤궁하게 하고 재정을 고갈시킨 것. 궁궐 건설을 비롯한 많은토목공사를 벌였던 것을 가리킨다. - P27

핵심 요직은 반정공신들의 몫이었다. 반정군의 대장이자 원훈인 김류를 병조참판으로, 또 다른 원훈 이귀를 이조참판으로, 거사를 일으키던 당일 주력군을 이끌었던 이서를 호조판서로 삼았다. 정권을 사실상 움직이는 이조, 병조, 호조 등을 인조를 추대하는 데 앞장섰던 서인 원훈들에게 맡긴 것이다. 역시 반정에 참여한 공신홍서봉은병조참의에, 최명길은 이조좌랑에 임명되었다.
- P28

남인들에 대해서도 배려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부분은 남인의 원로 이원익 영의정에 임명한 사실이다. 이원익은 1608 년 광해군이 즉위했던 직후에도 영의정에 임명되어 정국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비록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유배되었지만, 광해군 또한 함부로 하지 못했던 명망과 경륜을 지닌 원로였다.  - P28

이원익李元翼
광해군 집권 직후에도 영의정이 되었던 이원익은 두 정권의 초대 재상을 지냈다.
인조는 인품과 경륜이 탁월한 이원익을 통해 집권 직후의 정국을 수습하려 했다. 하지만 이원익은 정권의 실세였던반정공신들에 밀려 ‘얼굴 마담‘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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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성종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적 관계인 왕비는 폐출뿐만 아니라 사사까지 집행했다. 최고의 공적 존재인 국왕의사적인 생활은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 공식적인 업무로 변화하는 경우가많다. "종사의 대의를 생각해 처결한다"는 표현이 잘 상징하듯이,
윤씨의사사는 부부의 사적인 갈등으로 출발했지만 종국에는 국정 운영의일부로 집행한 사안이었던 것이다. - P62

해당 사안이 번져가는 과정은 이런 성격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윤씨 문제를 관통하는 죄목은 투기와 음모였다. 성종 8년 3월 폐비와 별거를 지시했을 때 그 투기와 음모는 후궁에 국한되어 있었다.  - P62

그러나 성종 10년 6월의 사건은 본질적으로 달랐다. 이때 윤씨의 실행과 저주는 국왕을 직접 겨냥했고, 국왕과 대비들은 그것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판단했다. 즉 그것은 이제 가장 중대한 국가적 범죄인 국왕의 살해, 즉 역모로 규정할 만한 공적 사안으로 변모한 것이었다.  - P63

그러므로 이때 폐서인과 출궁을 단행함으로써 신분과 거처를 근본적으로 격하하고, 무엇보다도 곧계비를 확정함으로써 윤씨가 복위할 가능성을 봉쇄하는 등 그녀에 대한 대응이 크게 달라진 까닭은 거기에 있었다. 요컨대윤씨의 운명은 이 시점에서 질적인 변화를 겪은 것이다. - P63

그러나 성종과 대비들이 그 뒤 윤씨의 사사까지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뛰어난 성실함과 인내로 수행되어온 성종의 통치방식은 그런 극단적 결과를 자제할 가능성이 컸으며, 특히 왕자의 존재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최종적이며 궁극적인 처리 방법인 사형은 지대한부담을 후세에 이월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 P63

정동이 황제께 "폐비는 독한 질병이 있었다"고 아뢰었는데, 이것은 나를위해 숨긴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황제를 속일 수 있겠는가. 정동이 그렇게말했다고 해도 사실대로 말하면 된다. (・・・) (황제가-인용자) 무슨 부덕함이있었느냐고 물으면 "주상을 억눌러 이기려는 술책을 썼으며 순종치 않았다"고 대답하라 (성종11.12.25경오).  - P64

성종 14년 1월 세자 책봉을 요청하는 임무로 중국에 파견되면서 한명회는 국왕의 의견을 물었다. "중국 조정에서 폐비 윤씨의 일을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그러자 성종은 사사했다는 사실은 숨기도록 했다. "폐출해 사가에 있다고 대답하라. 끝까지 물을 경우는 근심에 시달려 파리해져서 죽었다고 대답하라." 아무리 정당한 사유가 있었더라도결국 사사는 분명히 부담스러운 결과였던 것이다(성종14.1.4정유 · 8신축), "
- P64

요컨대 윤씨는 투기와 불순종, 국왕에 대한 음모와 집권의 가능성때문에 폐출되고 사사까지 된 것이었다. 이런 죄목들은 당초 후궁들에게 국한되었지만 점차 국왕과 대비들을 직접 겨냥하면서 처벌의 수위또한 높아졌다. 즉 그것은 사적인 갈등으로 출발했지만 최고의 공적인존재들과 관련되면서 국가적 범죄로 처벌된 것이었다.  - P64

연산군의 정치가 거대한 폭정과 파탄으로 귀결된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그가 본질적인 사안과 비본질적인 문제를 혼동하거나 동일시하는 중대한 판단 착오를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그런 측면은 이 사건을 소급해처벌하는 과정인 갑자사화에서 가장 또렷하고 기이하게 드러났다.  - P65

어쨌든 성종은 다른 측면에서 보여준 자신의 인내와 절제를 가장 민감한 사적 관계에서는 견지하기 못했다. 그것이 실수였는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를 판단하는 데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결정이 여느 사건들과 달랐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이런 차이는 그 뒤 거대한폭력의 핵심적인 도화선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 P65

실록의 정확하고 방대한 내용과 엄격하고 객관적인 편찬 방식 등이 될 것이다. 그결과 조선의 각 왕대를 구성한 여러 역사상은 해당 시기의 실록을 가장기본적인 자료로 삼아 재구성되어 왔으며(인조대부터는 실록보다 훨씬 방대한약 4배]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남아 있어 좀더 자세한 1차 사료로 기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실록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 P69

적어도 연산군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즉각 명확하게 내려졌다. 그것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은 그에게 국왕에게 부여되는 ‘조‘나 ‘종宗‘이아니라 ‘군‘의 칭호를 붙인 조처일 것이다. 이미 형식에서 천명된 이런 격하는 다른 측면들에도 연쇄적으로 적용되었다. 연산군일기」라는이름도 그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다. - P69

우선 그 편찬이 순조롭지 않았다. 기록과 발언에 대한 연산군의 편집증적인 추적과 소급 처벌을 경험한 관원들이 중종의 치세가 시작된 뒤에도 편수에 참여하기를 꺼렸기 때문이었다. 이에 중종 2년(1507) 6월 17일(기축) 사초史草를 누설할 경우 엄벌하겠다는 하교를 내려 그런 우려를 불식시킨 뒤, 동왕 4년부터 편찬을 시작해 같은 해 9월에 완성했다.
- P70

역시 비슷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여겨지는데, 권말에 편찬 날짜와 편찬자들의 명단이 붙어 있는 다른 실록과는 달리 『연산군일기」에는 그것이 빠져 있다. 그러나 편찬을 완료한 직후인 중종 4년 9월 19일(무신) 차일암에서 세초하는 광경을 그린 「일기세초지도에 편찬자의 명단이 기재되어 있어 그 전모를 알 수 있다.  - P70

중종4년(150) 9월 19일 연산군일기의 편찬을 마친 뒤 세검정 차일암에서 세초하는 광경과 수찬에참여한 관원의 명단을 기록한 자료다. 맨 위에는 ‘
제목이 씌어져 있고 상단에는
‘라는희미하게 그림이 남아 있으며, 그 아래 두단으로 66명의 관직과 이름을 적었다. 본문에서 설명했듯1. 연산군일기」에는 누락된 수찬관의 면모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다. 보물 제901호로 충재 권벌(1478-1548)의 생가(경북 봉화군 내성면 유곡리)에 건립된 충재선생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94.2cmx 59,2cm. - P71

 조사 결과 가장 자세한 자료는 『세종실록』이었으며, 그 반대는『성종실록』이었다. 「세종실록』의 방대함은 다른 왕대를 압도한다. 흥미로운 흐름은 세종대 이후는, 세조대를 빼면 모두 개월당 1만 자 이상이었으며, 그 격차도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은 세종대부터는실록의 편찬이 그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다는 하나의 방증이 될 것이다. - P72

우선 소설에서 연산군과 그의 시대를 다룬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월탄 박종화朴鍾和(1901~1981)의 「금삼의 피」일 것이다. - P76

『연려실기술』의 내용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이는 그 제목은 그 뒤 연산군과 폐비 윤씨를 가리키는 대중적 상징의 하나가 되었다. 장르의 특성상 그 소설은 연산군과 그 시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국왕의 불행한 경험과 거기서 연유한 심리적 고독과 파탄에 초점을 맞추어 궁중의 사건들을 위주로 서술했다고 평가되었다. - P76

정비석도 소설 연산군(1956)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는데, 박종화와 비슷하게 연산군 개인과 궁중의 갈등을 서술의 중심에 두었다. 소설에서는 작가의 역량이나 작품의 수준, 대중적인 성공 등을 고려할 때 이 두 작품이 가장 대표적인 성과였던  - P77

연산군 이융은 성종 7년(1476) 11월 7일(정미) 적장자로 태어나 18년 뒤 부왕이 재위 25년 만에 붕어하자(성종25.12.24기묘) 닷새 뒤 창덕궁에서 조선의 제10대 국왕으로 즉위했다(0.12.29갑신) 19 그 뒤 그는 12년 동안 조선의 최고 통치자로 군림하다가 왕조 최초의 반정으로 폐위되었으며(12.9.2기묘), 그날로 강화도에 유배되어 두 달 만에 30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는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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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au wants to accompany his brother, but Jacob says he will move alongslowly at the pace of his children and young livestock. - P75

 Jacob also declinesEsau‘s offer to leave some men with him.  - P75

So, Esau returns to Seir, and Jacobgoes to Sukkoth and builds shelters there. Jacob buys a plot of ground in thecity of Shechem in Canaan and sets up an altar. - P75

Jacob is now a changed man, as his new name, Israel, attests.  - P76

Whilehe and his brother, Esau, are reconciled, Jacob finds it more prudentto settle in the land away from his brother.  - P76

So, Esau departs with hismen, leaving Jacob to build a place for himself.  - P76

Reconciliation does notalways mean a complete restoration of broken relationships. Like Jacob‘ship, some things cannot be mended.  - P76

But as Christians, we should seekto live at peace with all people while building lives that follow God‘splans and purposes in all that we do.  - P76

Like Jacob, we must learn to livewith others while maintaining our spiritual identity and calling. - P76

Archeological excavations indicate that Shechem was a major centerof pagan worship.  - P76

Like his grandfather Abraham and his father Isaacbefore him, Jacob builds altars of his own as he travels through these
idol-worshiping territories.  - P76

He calls the altar El Elohe Israel, whichbeaconmeans "mighty is the God of Israel."  - P76

This altar thus serves as aproclaiming Israel‘s God, and it stands as a declaration of faith in God‘sgracious promise to the descendants of Abraham.  - P76

We may not buildphysical altars today, but we can and should claim our communitiesand cities for Christ in prayer while living as lights that testify to God‘sgrace and power. - P76

Like Jacob, we are sometimes called to slow down.  - P77

Instead of frantically tryingto keep up with others, we need to set aside time to seek God‘s counsel.  - P77

As wefast and pray, let us examine our goals and make sure we are following God‘sguidance. - P77

Lord, may I reflect the image of Christ as I embrace the specific calling You have set
before me.  - P77

May my identity in Christ serve as a witness to Your matchless love and grace. In His name, amen.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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