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3년 3월 14일, 인조 명의로 팔도에 반포했던 조서의 내용이다.
광해군 정권을 무력으로 쫓아낸 명분을 거론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폐정의 원흉으로 광해군이 아닌 이이첨을 지목하고 있는 점이다. ‘이이첨이 국정을 제멋대로 하여 인목대비와 광해군을 이간시켜백성과 나라를 망쳤다는 것이다.
- P27

나라를 망친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모자 사이를 이간하여일으킨 윤리적 변고,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한것을 뜻한다. 둘째, 부모와 같은 중국 조정을 배신한 것. 후금과 화친하여 명의 군사 원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을 의미한다. 셋째,
백성을 곤궁하게 하고 재정을 고갈시킨 것. 궁궐 건설을 비롯한 많은토목공사를 벌였던 것을 가리킨다. - P27

핵심 요직은 반정공신들의 몫이었다. 반정군의 대장이자 원훈인 김류를 병조참판으로, 또 다른 원훈 이귀를 이조참판으로, 거사를 일으키던 당일 주력군을 이끌었던 이서를 호조판서로 삼았다. 정권을 사실상 움직이는 이조, 병조, 호조 등을 인조를 추대하는 데 앞장섰던 서인 원훈들에게 맡긴 것이다. 역시 반정에 참여한 공신홍서봉은병조참의에, 최명길은 이조좌랑에 임명되었다.
- P28

남인들에 대해서도 배려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부분은 남인의 원로 이원익 영의정에 임명한 사실이다. 이원익은 1608 년 광해군이 즉위했던 직후에도 영의정에 임명되어 정국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비록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유배되었지만, 광해군 또한 함부로 하지 못했던 명망과 경륜을 지닌 원로였다.  - P28

이원익李元翼
광해군 집권 직후에도 영의정이 되었던 이원익은 두 정권의 초대 재상을 지냈다.
인조는 인품과 경륜이 탁월한 이원익을 통해 집권 직후의 정국을 수습하려 했다. 하지만 이원익은 정권의 실세였던반정공신들에 밀려 ‘얼굴 마담‘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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