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남인 이광정을 이조판서로 정세를 홍문관 부제학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광정은 곧 낙마하고 만다. 새정권에서 벼슬을줄 때 중요한 기준은 과거의 행적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폐모논의에참여했느냐의 여부가 가장 중요했다.  - P30

이광정은 평소 청렴결백하다는찬사를 들었지만 폐모 정청(논의의 결말을 짓기 위한 회의에 참여했던 하자가 있었다. 이광정이 이조판서에 임명된 직후 정사에 참여하려 하자 김자점은 과거의 행적을 거론하며 면전에서 질책했다. "모정청에 참여한 사람이 어찌 이조판서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 면박을준 것이다. 결국 이광정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 P30

북인 중에서 드물게 폐모논의에 반대하다가 쫓겨났던 그는 절의를 인정받아 등용되었다. 정온을 제외한 나머지 북인 출신들 가운데정치색이 옅으면서 실무 능력이 뛰어난 인물들도 구제되었다.  - P30

김신국, 심열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평안감사에 임명된 김신국은 명민하고 재주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정치 이력이 복잡했다.
선조 말년에는 유영경에게 광해군대에는 유희분과 박승종과 결탁하여 폐모 논의에 참여했던 ‘하자‘가 있었다. 하지만 과거평안도에 근무하면서 민심을 얻은 점이 참작되어 다시 평안감사가 되었다. 심열은 광해군 정권에서도 손꼽히는 재정 전문가였다. - P30

실제로 이중환의 택리지>에 따르면 반정공신들은 이조판서 이상의 관직은 남인들에게 절대로 넘겨주지 말자고 밀약했다고 한다. 물론 이원익을 영의정에 임명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그는 사실상 새 정권의 ‘얼굴마담‘일 뿐이었다.  - P32

서인 반정공신들의 견제가 심하여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어려웠던 것이다. 권력의 실세로 떠오른 서인 공신들은 이원익의 명망과 경륜을 인정하면서도 인조가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몹시 경계했다.
남인들조차 이렇게 견제받고 있던 상황에서 북인들의 정치적 위상은보잘 것이 없었다. 인조반정 이후 등용된 북인들은 그야말로 ‘정권의들러리‘였다.  - P32

폐모론에 반대하여 유배되었던 전력을 가진 정온만이 삼사의 고위직을 역임하며 어느 정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뿐 나머지 인물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심열은 당시 자신의 처지를 가리켜 ‘도필지임자조하기까지 했다. ‘도필‘이란서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 P32

심열은 또한 다른 신료들이 자신을 공장처럼 여기고 있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조정에서 살아남기는 했지만정치적 힘이나 존재감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던 것이다. - P32

3월 17일 인조는 반정공신들을 불러 모았다. 이광수, 이서, 한교심기원, 김자점 등에게 인조가 했던 첫 발언은 자부심이 한껏 넘치는 내용이었다. "오늘날 이 의거가 성공한 것은 경들의 힘 덕분이다. 금수의 땅에서 다시 사람의 세상이 되었으니 뭐라 형언할 수없다." 주목되는 것은 광해군대의 조선을 ‘금수의 땅이라고 규정한점이다.  - P33

모문룡이 동강진을 설치했던 가도는17세기 초 조선과 만주, 명사이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이었다. - P34

가도는 조선과 만주의 지척에 있는 데다 요동반도와 발해만, 그리고 산동 등지로 연결되는 지리적 요충이었다.
1622년 가도로 들어온 모문룡은 ‘요동수복‘을 표방하며 동강진을 배후에서 후금을 견제하는 전진 기지로 삼았다.  - P35

후금 입장에서는 적잖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가도가 바로 코앞에 있지만 수군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후금에게 모문룡과 동강진은 ‘목에 걸린 가시‘였다. - P35

 1619년 사르에서 참패한 직후 개원이 무너졌고, 1621년에는 요양이, 1622년에는 광녕마저 넘어갔다. 정치·군사적 요충인 요양과 광녕을빼앗긴 이후 명은 요하 동쪽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했다. 그것은명과 조선을 잇는 육로가 사라졌음을 의미했다. 이제 양국 사신들은평안도 선사포에서 요동반도 연해를 거쳐 산둥 반도의 등주登州로 이어지는 해로로 왕래해야 했다. 그러나 해로는 위험했다. 난파 사고가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 P35

육로의 단절로 명의 조선에 대한 영향력과 ‘통제력‘이 약화될 위기를 맞았다. 그때 혜성처럼 나타난 인물이 바로 모문룡이다.  - P35

광해군은 모문룡을 화근으로 여겼다. 모문룡이 진강을 휘저어놓은데다 조선에 다시 들어와서도 ‘요동수복‘을 떠벌리며 후금을 계속 자극했기 때문이다. 실제모문룡 때문에 격앙된 후금은 조선을 협박했다.  - P36

광해군의 끈질긴 설득에 밀려 모문룡은 1622년 가도로 들어간다.
모문룡이 가도로 들어가자 명 조정은 고민에 빠졌다. 그에게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명의 산동에서 가도에 이르는 바닷길이 험해 수송이 쉽지 않았다. 필자엄이 모문룡에게둔전을 경작시키라고 했던 것은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P37

요구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모문룡을 경솔하고 위험한 인물로 여겨섬으로 밀어 넣으려 했고, 그가 가도로 들어간 뒤에는 이런저런 원조요청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문룡을 ‘찬밥‘ 취급했던 것이다.
모문룡은 광해군에 대해 앙앙불락할 수밖에 없었다.
‘인조반정‘으로 정권이 바뀌자 모문룡은 반색했다. 자신을 푸대접하던 광해군이 폐위되었기 때문이다.  - P37

실제 새 정권의 모문룡에 대한태도는 달라졌다. 인조는 즉위하자마자 남이공南을 모문룡의 문안사로 삼았다. 남이공을 가도로 보내 ‘조선은 마음을 같이하여 협력할 준비가 되었다‘, ‘새 정부는 둔전과 염전 설치 등을 허용하고 성의껏 돕겠다‘고 약속했다. 모문룡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 P37

맹양지는 본래 1622년 군사 원조를 요청하려고조선에 왔었다. 그런데 광해군은 병을 핑계로 그를 만나 주지도 않았다. 이에 맹양지는 광해군을 만나려고 귀국하지 않고 버틴다. 그러다가 인조반정을 맞았던 것이다. 인조는 정변을 일으켜 권좌에 오른만큼 명에 대해 충성을 다짐함으로써 광해군과 차별성을 부각시키고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맹양지가 꺼내지도 않은 병력동원 문제까지먼저 거론한 것은 ‘오버‘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 P38

정권을 잡은 직후에는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기 마련이다. ‘오랑캐와 화친하고 명을 배신했기 때문에 광해군을 폐위시켰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운 이상,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도 친명의 분위기를 띄울필요가 있었다. ‘천명‘의 실천은 곧 후금과 대결의 길로 가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조선은 후금과 맞설 군사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 P41

그는 북경에 보낸 주문에 덧붙인 글에서조선의 정변을 ‘찬탈‘이라 규정하고 ‘중국의 승인 없이 함부로 광해군을 쫓아낸 역적들의 죄를 성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광해군을 복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가립은 주문사 일행에게 광해군의 생존 여부 등을 물은 뒤, 그를폐위시킨 까닭이 무엇이냐고 힐문했다.  - P44

향정문을 바친다. 섭향고는 우산 아래 서서, 비를 맞으에게며 바닥에 꿇어 엎드린 조선 사신들을 힐난했다. 그 또한 ‘인조 등이거사 당일 궁궐에 불을 지르고, 광해군을 죽였으며, 일본군 3천 명을끌어들이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경전 등은 강하게 부인하고, ‘모문룡이 지척에 있기 때문에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섭향고는 ‘정변과 관련된 전후 사정을 사문한 뒤에 인조를 책봉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선언했다. 8 - P45

월10일 예부를 찾아갔을때, 예부시랑 이근수도 "광해군이 무슨 죄가 있기에 명의 허락도없이 함부로 폐위했느냐?"고 몰아붙였다. 예부 또한 조선에 사문관을파견하여 전말을 조사한 뒤 책봉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었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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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게도, 원하는 바는 보통 개인의 능력과 행복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동일한 말씀인 산상수훈안에 중요하게 들어 있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 7:7)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서, 즉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면서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다. - P90

축복과 순종이 관련되어 있긴 하지만, 야웨께서 다윗과의 언약을 주도하시며 하신 약속은 다윗의 후계자가
‘죄를 범하더라도‘ 벌은 받을지 모르지만 그분의 사랑‘은 없애지 않으신다는것이었다(삼하 7:14-15). 이후에, 당시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야훼가 호의를 보이는 지점이 몇 있는데 이는 다윗과의 언약과 관련 있다." - P90

그의 최우선순위는 하나님 백성의 복지다. 왕인 그는 통치할 때, 또 정의를 행할 때 많은 결정을 할 것이다(오늘날의 국가들과는 달리, 입법, 행정, 사법 권력의 구분이 없었다). 이를 위해 그는 "주의 이 많은백성을 재판할 수 있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듣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9절). 칠십인역은 문자적으로 듣는 마음"(a heart to hear)이라 번역했다(NIV는 discerning heart로, 개역개정은 ‘듣는 마음‘으로 번역했다-역주), 지도자들은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는 은사를 아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 P91

다윗이 구한 지혜와 야웨께서 주시는 지혜라는 두 ‘지혜‘ 사이에 대조가분명하게 드러난다. 앞의 지혜는 자기방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뒤의 지혜는 모든 사람을 위한 정의에 초점을 맞춘다.  - P92

지혜를 얻은 다음에 서술된 솔로몬의 행동은 사회의 주변부에서 가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의를 시행한 것이다. 진정한 지혜는 야웨만을 경배하는 것과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정의롭게 행하는 것을 결합시킨다.  - P93

내러티브는 이름을 명기하지 않고 신분을 나타내는 ‘여자‘, ‘창기‘, ‘왕‘이라는 단어만 사용함으로써 사회적 차이를 강조한다. 오늘날도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당시에 여자는 노예 제도나 사회 경제적 필요 때문에 창녀가 되었다. 보호해 주는 남자(남편, 아버지, 남자 형제, 남자 사돈, 성인 아들 등)가 없는 여자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 하나님이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시[]" 한 가지 이유가 여기에 있다(시 146:9, 새번역). - P93

고대 근동 전체에서 왕의 주요한 역할은 정의 구현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예를 들어, 주전 1700년경 바빌론 왕 함무라비는 이렇게 썼다. 가장 높은 신들이 "나를 지명하여 백성의 복리를 증진시키고... 땅에 정의를 편만하게 하고, 부도덕한 이들과 사악한 이들을 멸하게 했다. 이는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억압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다"고 언급되고(삼하 8:15) 성경 다른 부분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일"은 한결같이 왕의 주요한 책임으로 주어진다(예를들어, 왕상 10:9; 시 72:1-3; 렘 22:3, 15;겔 45:9)."  - P95

이 장은 그렇게 행하려면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함을 보여 준다. 이는 잠언 서두에서 글의 목적을 서술하는 부분에서도 제시되는 요점이다. "지혜… 알게 하며…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하게 하기 위해] (잠 1:2-3). - P95

의미심장하게도 이스라엘에서는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 왕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책임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셨다(창 18:19)고 말씀하셨다. 이는 수많은 선지자에게 선포의 기반이 되는 말씀이다." - P96

슬프게도 솔로몬은 생애 말년에 변했고, 그를 뒤이은 왕들도 그 이상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소망의 메시지가 있다. 여호와께서는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라고 선언하신다(렘 23:5) - P9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세리와 죄인의 친구‘ (마 11:19)이자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할(마 12:18) 그 ‘지혜로운‘ 왕임을 본다. 그리스도의 존재와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서, 무엇보다도 십자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본다(고전 1:24).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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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ah looks for the woman he slept with so that he can retrieve thebelongings he gave her as a pledge.  - P120

He does not persevere in his search,
however, fearing that he will be put to shame if people find out aboutwhat he has done.  - P120

Once again, we are given an insight into Judah‘s deepspiritual deficiencies. - P120

 Though he has committed grave sins against God, Judah‘s only concern is to avoid
being embarrassed before strangers.  - P120

Itseems that he has completely forgotten the God of his fathers. May wenever drift so far from God that we become shameless about our sins.
- P120

Let us cling to God, depending on His Word to be a light for our pathso that we would not stray. - P120

Father, forgive me when I try to find remedies to my problems outside of Your will.  - P120

Make me sensitive to the guidance of Your Spirit so that I may walk in Yourways and not sin against You. In Jesus‘ name, amen. - P120

[NIV] 24 About three months later Judah was told,
"Your daughter-in-law Tamar is guilty of prostitution,
and as a result she is now pregnant." Judah said, "Bringher out and have her burned to death!" - P124

26 Judah recognized them and said, "She is more righ-teous than I, since I wouldn‘t give her to my son Shelah."
And he did not sleep with her again. - P124

29 But when he drew back his hand, his brother cameout, and she said, "So this is how you have broken out!"
And he was named Perez.
30 Then his brother, who had the scarlet thread on hiswrist, came out. And he was named Zerah.
and he was named - P125

When news of Tamar‘s pregnancy reaches Judah, he quickly concludesthat she must be burned to death. But when Tamar sends him proofof who is responsible for the pregnancy, Judah is shocked to learn thathe has been duped by his daughter-in-law.  - P126

While he does not expressany remorse over the sexual sin he has committed with Tamar, Judahacknowledges that she is "more righteous" than he.  - P126

Centuries later,
Tamar‘s name would be recorded in the Gospel of Matthew as one ofthe few women mentioned in the genealogy of Jesus Christ.  - P126

AlthoughGod certainly does not condone sin, His grace is able to redeem brokenpeople and wretched situations for His good purposes.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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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When Tamar was told, "Your father-in-law is on hisway to Timnah to shear his sheep," 14 she took off herwidow‘s clothes, covered herself with a veil to disguiseherself, and then sat down at the entrance to Enaim, which is on the road to Timnah.
 For she saw that,though Shelah had now 
grown up, she had not beengiven to him as his wife. - P118

15 When Judah saw her, he thought she was a prosti-tute, for she had covered her face.
16 Not realizing that she was his daughter-in-law, hewent over to her 
by the roadside and said, "Come now,
let me sleep with you." "And what will you give me tosleep with you?" she asked. - P118

18 He said, "What pledge should I give you?" "Yourseal and its cord, and the staff in your hand," she an-swered. So he gave them to her and slept with her, andshe became pregnant by him.
19 After she left, she took off her veil and put on herwidow‘s clothes again. - P119

Many years pass, but Judah‘s third son Shelah is not given to Tamar inmarriage as she expected.  - P120

So, Tamar takes matters into her own handsby devising a deceptive plan to produce an heir through Judah himself.  - P120

Judah further sullies his already questionable character, and Tamarachieves her ends through the worst possible means.  - P220

It is such an uglysituation we might even question why it is included in the Bible. Buteven within this horrible mess, God has a plan.  - P120

God does not rely onhuman goodness to fulfill His promises and work out His will.  - P120

It is Hisgoodness alone that can bring hope into the darkest of circumstances.
- P120

No matter how deep we have fallen into sin, God can redeem us forHis glory.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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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서도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 김일손의 사초는 단종 · 사육신·소릉 같은 중대한 정치적 사안부터 홀로 된 며느리를 취하려는 패륜에가까운 세조의 개인적인 행동까지 대단히 민감한 문제들을 건드리고 있었다. 연산군은 그 까닭을 날카롭게 추궁했다.  - P147

김일손은 자신이 반심을 품은 것은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문제된 내용은 이런저런 사람들에게서 들었거나 자신의 소박한 판단에 따라 작성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정보를 제공했다고 김일손이 지목한 인물들은 그런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자신들의 말을김일손이 기록하는 과정에서 착오를 일으켰다고 반박했다(1.7.12병오 13정미). 사실은 쉽게 확인되지 않았고, 책임의 소재는 혼미해졌다.
- P148

그동안 거의 모든 논란의 핵심에 서왔던 삼사가 등장한 시점은 이때였다. 이번에도 그들의 논점은 국왕의 판단과 상당히 어긋났다. 홍문관과 예문관은 사초의 내용보다는 국왕이 실록을 열람해서는 안 된다는원칙을 좀더 중시한 것이었다.  - P148

사화는 김일손의 사초에 담긴 불온한 내용의 출처를 규명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확대되었다(이하의 내용은 4.7.14 무신), 국왕과 주요 대신들은 사초에 연루된 인물들의 집을 수색해 증거를 수집했다. 그 과정에서 발견된 가장 중요한 자료는 이목의 집에서 나왔다.  - P149

그것은 임사홍의 넷째 아들 임희재가 이목에게 보낸 편지였다. 방금 보았듯이 이목은 김일손의 사초를 보고 성중엄이 당황하자 그것을 실록에서 누락해서는 안된다고 엄중히 경고한, 그러니까 김일손에게 매우 공감하는 자세를 보인 인물이었다. 또한 앞서도 서술했듯이 그는 성종 23년 12월 영의정윤필상을 간귀라고 지목하고 연산군 1년에는 노사신을 국왕을 우롱하는대신으로 비판한 인물이었다. - P149

 "이제 군소배가 붕당을 만들어 재상과 국를 비판하니 통렬히 징계해 그 풍습을 개혁하라." 즉 국왕은 이 사건이 김일손이라는 개인의 사초에서 발원한 고립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와 교유한 일군의 집단이 붕당을 결성해 국사와 재상을 비판한 조직적인 범죄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런 연관의 혐의를 그동안 자신의 가장 큰 정치적 걸림돌이었던 삼사까지 확장했다. " - P150

실록을 열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붕당이 드러날까 두려워서 그런 것이 아닌가." 다시 한번 지적하지만, 사화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삼사가 붕당에 관련되었다는 의심도 점차 짙어지고 있다는 이런 측면은 깊이 유념할 필요가 있다. - P150

이때 유일하게 반대한 대신은 노사신이었다. 그는 "송대에소동파의 시에 풍자한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그를 축출하니가 비판했다"면서 처벌을 확대하는 데 반대했다. 그 뒤에도 동일하게견지되지만, 노사신의 이런 태도는 상당히 중요하다. 그는 사초에서 발단된 사화가 전개되면서 그 숙청 대상 또한 서서히 확대되거나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거기에 반대한 유일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 P150

그들은 이 사건을 일군의 집단이 붕당을 결성해 국사와 재상을 비난한 범죄로 파악했다. 나아가 더중요한 측면이라고 생각되는데, 거기에 삼사가 관련되어 있다는 판단도조금씩 구체화되어갔다. 이제 조선 최초의 사화는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그 계기는 유명한 조의제문의 발견과 해석이었다. - P151

그 임무를 수행한 사람은 유자광이었다. 그는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발견한 뒤 구절마다 풀이해 이런 부도 한 말을 한 사람을 법에 따라 처벌하고 그 문집과 판본을 소각하며 간행한 사람까지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P151

연산군일기는 유자광의 동기와 역할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일찍이 성종 때 유자광은 김종직과 묵은 원한이 있었는데, 이극돈이 김일손의 사초와 관련된문제를 상의하자 그 사건의 함의를 누구보다도 민첩하게 감지해 사건의확대를 주도했다는 것이었다. - P154

유자광은 "지금은 조정을 개혁하는 시기니 크게 처벌해야지 심상하게 다스려서는 안 된다"는 말로 자신의 의지를 요약하면서 사건의 확대와 엄벌을 주도했다. 그는 국왕의 전교를 직접 작성하려고 나섰으며 의금부보다 옥사를 힘써 주장했다 4.7.15기유 · 18일자).6그러나 사건은 자신의 의도대로 전개되지 않았고, 유자광은 매우 답답해했다. 그때 그가 발견한 돌파구가 바로 「조의제문」이었던 것이다. - P154

이로써 그동안 다소 혼미했던 사건의 진상은 분명해졌다. 이 사건은김종직의 문하에서 교육받은 일군의 집단이 스승의 불온한 생각을 이어받아 그들 내부에서 교류하고 확대함으로써 역사와 현실을 부정한 범죄로 규정된 것이었다. 이제 필요한 일은 그 교유의 범위, 즉 붕당의 구성원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 P155

문제였다. 「조의제문이 발견되어 그 함의가 해석된 뒤 정문형 · 한치례 · 이극균등 거의 모든 신하들은 김종직이 지극히 부도하므로 부관참시의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 P157

이것은 이 사화에서 삼사가 직접 처벌된 최초의 사례라는 측면에서매우 주목할 만하다. 나흘전 실록의 열람에 반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이때도 대간은 이미 사망한 사람이므로 극한의 추죄罪는 불필요하다는원칙론적인 입장을 제출한 것이었다. 그러나 연산군은 바로 그런 태도를 삼사가 김종직 일파와 붕당으로 연결되어 비호하려는 확증으로 파악했다. - P158

이 사건을 계기로 사화의 주요한 처벌 대상은 김종직 일파와 삼사라는 두 부류로 좁혀졌다. 그들의 공통된 죄목은 서로 붕당을 맺어 그릇된발언과 기록을 남겼다는 것이었다.  - P159

나아가 국왕은 국무에 관련된 발언과 기록 전체를 통제하려고 시도했다. 그동안 그가 가장 불만스러워했고, 따라서 가장 이루고 싶어한 목표는 아마도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연산군은 승정원에서 출납하는공사를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승지들에게 하교했으며, 기록을 맡은주서청에는 조정 관원들이 번잡하게 출입해 모든 공사를 알게 되니앞으로는 출입을 금지시키라고 지시했다.  - P159

사관은 이 조처가 나랏일을비판한 김일손의 행태를 연산군이 대단히 싫어했고, 외부인들이 김일손에 관련된 일을 알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했다(4.7.26경신).
- P159

요컨대 김일손과 김종직의 불온한 문서에서 촉발된 사화에는 삼사도 적지 않게 연루된 것이었다. 전자의 죄목은 사제관계를 매개로 현실과 역사에 반역죄를 저질렀다는 것이었고, 후자는 그런 그들과 붕당을맺어 비호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즉 그들의 공통된 죄목은 붕당과 능상이었다.  - P160

국왕은 이 사화를 계기로 삼사의 행동을 교정하고 새로운 선발지침을 하교함으로써 그동안 가장 불만스러웠던 집단을 자신의 의도와부합되게 바꾸려고 시도했다. 이런 측면은 사화의 마지막 단계인 연루자들의 처벌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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