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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없이 개미귀신 ㅣ 창비시선 377
최금진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평점 :
분명히 진하게 사랑해서 연애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너 없으면 못살 것 같았는데 이제는 너만 아니면 살 것 같은 날이 있다. 몸과 마음이 아픈 날에는 버스를 타고 걸어서 먼 길을 달려가 그 풍경을 보고 와야 잠들 수 있었는데 이제는 뭐 대단한 게 있다고 그 고생을 했을까, 싶은 날이 있다. 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는 것과 어떤 지혜나 성취도 헛된 것뿐이라는 <전도서>의 말은 확실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랑이나 열정이 없어도 인생은 계속된다. 사랑이 없어도 살아야 하고 절망에 기대더라도 살아내야 한다. 그러기에 인생의 진가는 중년이 되어서야 알 수 있게 된다. 타락과 절망과 희망없음에도 살아야 한다면 인생은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
시 속에 숨어도 될까, 이 나이에
절망에 기대어도 되는 걸까, 그건 무엇보다 확실하며
언제나 내게 있었고 언제나 예상한 대로 온다
시인이 한 사람의 정체성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 언젠가
-최금진 시집<사랑도 없이 개미 귀신>에 나온 시인의 말 중에서
시집 <새들의 역사>를 오래 전에 읽은 기억이 나서 올 8월에 출간된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그의 시는 서사가 진하게 배어있는 한편의 영화 같은 느낌이 있어 좋았다. 이번 시집은 곡진한 중년을 살아가면서 도달하게 된 삶에 대한 도저한 인식을 보여준다. 시인은 세속적인 삶을 어떻게 살고, 느끼고, 쓰는가.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고질적인 타성에 젖어 조금씩 더 타락하게 되는데 시인이라고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푸시킨의 노래는 기쁨의 날을 기다리라는 말로 끝나는데 최시인의 결말은 그와는 사뭇 다르다.
늙어가는 첫사랑 애인에게
주인 없는 황량한 뜰에서 아그배나무 열매들은 저절로 떨어지고
내가 만든 편견이 각질처럼 딱딱하게 손끝에서 만져질 때
아침엔 두통이 있고, 점심 땐 비가 내리고
밤새 달무리 속을 걸어가
큰 눈을 가진 개처럼 너의 불 꺼진 창문을 지키던 나는 이제 없다
그때 너와 맞바꾼
하나님은 내 말구유 같은 집에는 다신 들르시진 않겠지
나는 어머니보다 더 빨리 늙어가고
아무리 따라하려 해도 안되는 행복한 흉내를 거울은 조용히 밀어낸다
혼자 베란다에 설 때가 많고, 너도
남편 몰래 담배나 피우고 있으면 좋겠다
냄새나는 가랑이를 벌리고 밑을 씻으며
습관적으로 욕을 팝콘처럼 씹어 먹고
아이의 숙제를 끙끙대며 어는 것이 정답인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너무 많은 정답과 오답을 가진 머저리, 빈껍데기 아줌마
가 되어
네 이름을 새겨놓았던 그 아그배나무 아래로
어느날 홀연히 네가
툭, 툭, 내 발 앞에 떨어져내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세상에 종말이 오겠지
위대한 경전이 지구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걸린 시간
사랑한 자들이 한낱 신의 노리게였음을 깨닫는 데 걸린 시간
트럭이 확 몸을 밀고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던 날들이었다
뽀얗게 분을 바르고 우는 달을 보면서
여자들은 잃어버린 자신의 청동거울을 떠올리고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술을 끊으라는 의사의 조언은 거짓이다
나는 이제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하나님은 아그배나무 속에 살지 않고
그 붉은 열매 속에도 없고, 그 열매를 따 담은 내 주머니에도 없으니
그런가, 너도 나처럼 무중력을 살고 있는가
함박눈 내리던 그날 내 손에 잠시 앉았다 날아간 새처럼
너도 이 밤에 젖은 휴지처럼 풀어진 날개를 접고 앉아
사랑과 슬픔을 혼동하고 있는가
여기가 지옥이 아니라면 분명 꿈속일 것인데
내가 꾸는 꿈엔 나비와 꽃과 노래가 없으니
사랑이 없는 시간, 사랑이 없어도 아침이 오는 시간
주인 없는 뜰에서 아그배나무 열매는 아픈 목젖처럼 빨갛게 익어가고
하나님은 더듬거리며 너를 찾다가 나와 함께 어두워져
마침내 악수를 나누고 헤어진단다
선운사
몇번을 왔다가 입구에서 돌아갔다, 선운사
갈 기분이 아니었고, 가야 할 때가 아니었고, 날이 저물었고, 싸웠고 또 싸웠고
약장수들이 꺼내놓은 신경통에 좋다는 두충과 위염에 좋다는 느릅나무, 겨우살이
겨우겨우 살았던 놈이 부처에게 무얼 더 내놓고 가야 한단 말인가
버스가 떠나고, 매연처럼 콜록거리는 어머니와 둘이 남아
신세 한탄이나 할 것이지, 무슨 재미로 상사화를 보다 갈 것인가
위대한 시인의 시비 앞에서 시비나 걸고 싶은 마음
선운사는 보지 못하고 선운사가 있다는 표지석만 보면서
지상에 진짜 선운사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선운사 왔다 간다고
후일 몇번의 여행 기록을 자랑할 때 얼마나 미쁘게 선운사를 들먹일까
거기 동백이 좋았어, 여자애들 잠지 같은 꽃
기린 같은 나무들 모가지가 고향까지 돋아난 길
집도 버리고, 사람도 버리고
초저녁 막걸리에 취해 우는 우리 어머니 같은 꽃 말이야,
미친놈아, 미친놈아
미친 건 아닌데, 술을 마시지 않아도 미치게 되더라, 나이 사십쯤에도 말이야
몇번을 왔다가 갔는지 몰라, 선운사, 서운해서 선운사
부처야 죽은 다음에 만나면 될 것을 뭘 그리 서둘렀던가
도랑물에 앉아 돌멩이를 함부로 던지며 늙은 어머니와 싸웠다
다신 오지 않겠다고, 이렇게 먼 길을 왜 미련스럽게 왔다가 가는지 모르겠다고
도대체 선운사가 있으면 내가 달라질 것이 뭐가 있다고,
그깟 선운사
그깟 사랑, 물수제비 뜨면 순식간에 건너편 동백숲에 가 박히는 저녁 별 몇개
조상 중에 누가 지극한 공을 들여 나신 몸이라는데, 고작 이러려고 어머니와 나는
뭐 새로울 것 없는 세상에, 변할 것 같지 않은 나 자신의 삶에, 큰 기대를 거는 일은 이제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약간의 분노와 진절머리 나는 절망이 하루를 지탱해줄 힘이 될 때가 있다. 행과 불행의 널뛰기에서 벗어나면 절망 속에서 희망이 보인다. 시인처럼 시를 쓰든지 농부처럼 시를 뿌리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