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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으로 시작한 영어 - 당신에게 희망의 한 조각을 드립니다
송은정 지음, 김종원 주인공 / 글단지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영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물론 맞지만, 영어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이루고자 하는 한 가지에 어떻게 그렇게 집중할 수 있었고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해내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읽는내내 자기반성의 시간을 끊임없이 갖게 한 김종원 할아버지의 이야기
집안이 가난해서 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마을을 어슬렁거리던 소년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들이 텐트를 치고 자리잡고 있는 학교 주변에서 한 미군에게 초콜릿을 얻어먹게 된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너무 맛있는 초콜릿에 반하여 그에게 초콜릿을 한 조각이라도 더 받아먹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학교 주변을 배회하고 그러다가 뭐라도 조금 얻어먹게되면 그게 그렇게 좋아서 밤새 잠도 못이루고 다음날을 다시 기다린다. 그러던 중 시작하게 된 영어와의 첫 만남.
처음 시작은 초콜릿이었다. 초콜릿을 건네주는 미군의 영어를 조금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다면 그나마 먹을 것을 더 나눠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시작한 영어에 대한 호기심은, 결과적으로 집을 뛰쳐나오고 미군들의 생활 깊숙이 들어가게 되고, 자신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보호해주고 챙겨주던 어느 한 흑인병사의 애정과 정성에 보답하고 부흥하기 위해 영어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영어공부는, 정말 요즘 우리가 영어공부하는 것에 비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고, 힘들고, 체계나 이렇다할 수준별 교재도 없이 혼자서 시행착오에 거쳐가며... 그리고 일과 병행하면서 생기게 되는 체력문제와, 또 자기자신과의 싸움을 견뎌가며 천천히,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김종원 할아버지의 영어 실력은 성장하게 된다.
할아버지가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영어공부를 하면서 얻게 된 소중한 팁들이 책을 보는 중간 중간에, 아낌없이 드러나고 있는데 우선, 생각나는 것을 정리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 문법공부에 치중해서 따로 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문법을 암기하고 그에 집중하여 공부하는 것은 당장의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따는 데에는 이로울 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영어실력 향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문법공부를 어떻게 했느냐, 문법에 형식이다 뭐다 있는것은 지금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많은 문장을 소설이나, 신문에서 많이 보고 읽고 외우고 하다보니 저절로 익숙해졌을 뿐이지 따로 문법이라고 해서 공부한 적은 한번도 없으시다는 것.
# 모든 영어공부에는 순서가 있는 법인데, 비단 영어뿐만이 아니라 어떤 언어를 배우던지 읽기와 쓰기가 아닌 듣기와 말하기를 우선적으로 학습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특히 할아버지는 듣기를 시작으로 영어에 익숙해지고 친해질 것을 강조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어린 아기가 읽고 쓰기 전에 말하고, 또 말하기전에 듣는 것부터 하면서 서서히 언어를 학습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해보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지금의 교육현장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처럼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도 나 어릴적만해도 그다지 강조되지 않았다. 영어의 시작은 거의 다 ABCD 알파벳 쓰기부터 시작하지 않았던가.
# 자신의 현재 상황에 맞는 학습 방법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뭐 어떤 방법이 좋다고 하면 우르르르, 또 이런 방법이 좋다고 하면 우르르르,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방법들이 설령 실제로 좋을지 몰라도 자신과 맞지 않는다면 말짱꽝! 형과 함께 리어카에 야채를 팔러 다닐적에는 조그마한 단어 메모장을 들고 다니면서 보고, 미군들이 많이 드나드는 클럽에서 일할때에는 자신이 듣는 데에 서툴다는 것을 파악하고 아침일찍 일어나 라디오를 쉼 없이 듣기 시작하고, 또 이태원에서 옷장사를 할 적에는 수많은 외국인들을 대하면서 말하기를 연습하고, 그리고 자동차 세차장에서는 이렇다할 메모장을 꺼내서 볼 시간조차 없으니, 자신의 눈이 자주 가는 벽에 화이트 보드를 걸어놓고 하루에 다섯단어만 완벽하게 익히자는 생각으로 단어암기를 시작하고, 결국 점차 영어실력이 늘기 시작했고, 결국 공장에 다닐적에는 외국인 바이어들에게 공장을 소개하고 물건을 팔며 거래를 성사시키는 공장의 중추적인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 자신에게 맞는 영어 학습법을 택하는 데에 있어서 읽는 걸 좋아한다면 영어 소설을 택하되, 주의할 점은 남의 이목을 생각해서 너무 어렵고 고차원적인 내용으로 택하여 스스로의 기를 죽이지 말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평이한 문장에 어느정도 그림이 섞여있는 것으로 시작해도 무방하다는 것. 물론 할아버지도 그런식으로 시작하셨다. 그리고 듣기 공부를 위해 영화를 선택하여 들을적에도 한글자막과 영어자막 모두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듣기 자체에 집중하는 데에 효과적이며, 어느정도 반복적으로 들은 후에, 스크립트는 문맥과 영화 정황상의 어휘 확인차원에서 보는 것이 좋다는 것. 이러한 모든 방법들을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자신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발견하게 된 것들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할아버지가 처음에 영어와 만나게 되는 것에서부터 지금 대전에 있는 어느 아파트에서 외국인 입주자들까지 고려하여 영어로도 방송을 하며 경비 일을 하고, 또 청소년들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조금이나마 이야기를 해주기 위한 (책과 비슷한 취지의)강의를 하게되기까지의 전체적인 여정을 설렘, 관심, 용기, 실수, 노력, 기쁨 등 여섯파트로 나누어 구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마무리부분의 마지막 파트는 공부를 시작하려하고, 또 하고 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도 말했듯이 영어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고 목표를 정하고 성취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모든 경우에 할아버지를 떠올려,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고 정말 "할만큼 다 했다"고 말할정도까지 끝까지 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