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연쌤의 파란펜 - 세계적 문호들의 문장론 & 이낙연의 글쓰기
박상주 지음 / 예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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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낙연쌤의 파란펜]

- 글쓰기는 자유다, 다만 선택받는 글은 따로 있다 -

학창 시절 국어시간에 글쓰기에 대해 배울 때 왜 그렇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나 싶다. 국어시간에 왜 그렇게 따분해하고 졸거나 영수와 밀회를 했는지 싶다. 이제 글쓰기에 약간 재미가 들었다고 생각이 들 무렵 과거 그 시간들이 후회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에 일기라도 많이 써볼 걸 그랬다.

나름의 꾸준한 독서를 시작하면서 새로이 감지되는 현상이 하나 있다면 바로 특정 장르의 책에 대해서 설레거나 흥분되거나 기대되거나 하는 등의 책에 대한 감정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자크 데리다가 저자는 곧 '문지기'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책의 맨 앞표지는 커다란 성문 혹은 대문이 될 것이고, 나는 문 앞에 서서 잠시 그 안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며 어떤 설렘의 감정에 휩싸이는 것 같다.

'낙연'이라는 글씨가 크게 되어 있어서 이낙연의 글쓰기 세계만 생각했었다. 서문 읽기가 반을 넘어가면서 글에 아리스토텔레스, 볼테르, 유협, 박지원과 이오덕 등 이른바 글쓰기에 있어 대문호의 이름들이 거론되자, 약간의 회의감이 들었다. 이낙연은 이낙연이고, 그들은 그들인데, '이낙연의 글쓰기를 그들과 엮는다?' '이낙연=대문호?'라고 하는 본문을 읽기도 전에 생겨버린 편견과도 같은 문장과 공식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비교적 지근거리에서 '이낙연'이라는 사람을 경험한 저자와 '이낙연'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독자로서의 나 사이에 생겨날 수밖에 없는 감정의 간극이 존재함을 알았다. 책의 서문을 읽고 나서 그랬다. 이 간극은 이 책, 특히 각 챕터 마지막 부분마다 실려있는 '이낙연 연설 수정본'을 꼼꼼히 살펴보고 나서 말끔히 해소되었다.

나는 어떤 특정 인물을 찬양하거나 신격화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 사람에 대한 한치 건너 소문이나 매스미디어 영상으로 인해 그 사람에게 매몰되는 것을 항상 주의하려고 한다. 정치인의 경우 더욱 이에 해당한다. 나의 이런 성향과 앞서 서문을 읽고 난 뒤 들었던 약간의 회의감이 '이낙연의 연설 수정본'을 더 꼼꼼히 살펴보도록 했다.

이 책은 크게 네 가지 구조로 되어있는데 각각의 하위 목차까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부 글의 마음

1. 글은 왜 쓰는가

2. 마음에 글씨를 심어라

3. 아이의 마음으로 써라

4. '마음의 탁본'을 떠라

2부 글의 뼈대

1. 기승전결이 답이다

2.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3. 칙칙폭폭 열차처럼

4. 모듈러 공법으로 쓰기

3부 글의 꾸밈

1. 백색의 글쓰기

2. 화장하지 않은 글이 더 예쁘다

3. 서사를 담아라

4. 유머를 활용하라

4부 글과 삶

1. 삶이 곧 글이다

2. 틀을 깨되 틀을 지켜라

3. 모든 초고는 허접쓰레기이다

4.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

5. SNS 소통은 선택이 아닌 필수

목차의 제목만으로도 각각의 챕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은 이게 매력이다.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원구조'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각각의 챕터에 저자가 하고 싶은 말과 그 근거로서 세계 여러 나라의 문호와 그들의 글쓰기를 필요에 따라 언급, 소개하고 마지막 부분에는 앞에서 설명한 부분의 '실제'에 해당하는 '이낙연 연설팀의 초안'과 '이낙연이 연설을 직접 수정한 수정본'을 실어놓았다. 하나의 챕터는 각 소제목에 따르는 '이론'과 '실제'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이론'에 해당하는 앞부분에서는 글쓰기에 대한 좋은 말들을 만나볼 수 있다. "씨앗은 생명을 품고, 글씨는 생각을 품는다(p.27)"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글씨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바로 해동해 꺼내 먹는 인스턴트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이 구절은 나에게 묵직하게 다가왔다.

'마음의 그림'과 '마음의 소리'를 문장으로 담아내는 방법을 얘기하는 데 있어 저자가 언급한 '마음의 탁본'에 대한 글귀도 인상적이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어찌 그릴 것인가. 마음의 그림과 마음의 소리를 문장으로 담아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건 비문을 탁본하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 비문을 탁본할 때는 우선 비석의 표면을 깨끗하게 닦는다. 표면에 골고루 먹을 칠한다. 그 위에 하얀 종이를 덮어 구석구석 문지른다. 가만가만 떼어낸다.

마음의 탁본도 비슷하다. 우선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 글제를 마음에 담는다. 고요히 사색을 한다. 우후죽순처럼 여러 생각들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돋아나는 생각들을 하나씩 종이에 옮겨 적는다. 작은 자투리라도 버리지 말고 일단 옮겨 담아라. 구슬을 꿰어 목걸이를 만들듯 이젠 옮겨 놓은 여러 생각의 조각들을 엮기만 하면 된다.

p.63

사실, 이 책의 주인공은 소개된 여러 대문호의 말과 글이라기보다는 '이낙연의 글과 글쓰기'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책의 기획의 시작은 '이낙연식 글과 글쓰기'가 먼저였고, 이런 이낙연의 문장론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대문호의 말과 글에서 찾은 것이다. 이낙연의 글들은 위에 제시된 목차, 그러니까 글이 글 다워지기 위한 그 특징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실제 '이낙연의 글'에 대해서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낙연의 수정본을 보여주는 부분에는 대개 그에 앞서 연설팀의 초안이 위치한다. 같은 소재를 두고 전개한 글의 특징과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낙연의 수정본 두 가지를 꼽으라면 '스웨덴 의료지원단 참전 기념사''2019 고졸 인재 일자리 콘서트 개막식 축사'를 들 수 있겠다. 이들 글은 기본적으로 위에서 말한 글이 글 다운 특징을 다 담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각각 '서사'를 부각시키고, '진실함'을 담은 글의 모습을 느낄 수가 있다.

'스웨덴 의료지원단 참전 기념사'는 그 멀리서 6.25전쟁에 의료지원단을 파견했던 스웨덴의 의료지원단 참전 69주년을 기념하고자 작성된 글이었다. 연설팀의 초안에 실린 '대한 제국 시절 황실에 놓인 최초의 전화기 - 스웨덴 에릭슨 제품'에 대한 언급은 처음부터 좀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이낙연의 글을 살펴보고자 했던 내 눈에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스웨덴에 대한 감사와 스웨덴을 높이고자 한 그 저의는 알겠으나 연설의 시대적 배경이 6.25인 만큼 그로부터 시대적 거리가 있는 대한 제국 시절 얘기를 꺼낸다는 것이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화기가 스웨덴 제품이라서 전화기 하나 때문에 대한 제국을 소환하고 전체 글의 주제가 흐려진다? 연설팀이 이낙연에게 지적받은 재미있는 일화 중 하나였다.

연설팀은 연설문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들로 나열해놓았다. 대한제국 소환과 별개로 이낙연은 초안에 좀 지루한 감을 느꼈는지 기념식에 혹시 그 당시 참전하셨던 스웨덴 의료지원단 당사자가 계실지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린다. 생존해계시는 분들이 얼마 되지도 않고 다들 연로하셔서 참석하지 못하신다는 답을 받았다. 내가 보기에도 듣는 당사자가 그 자리에 있으면 글이 좀 더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고, 살아있는 글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 의료지원단 참전 당사자가 아무도 자리하지 않는 기념사, 주인공이 없는 자리에서 이낙연은 기념사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이낙연은 그 글에서 연설팀의 편년체를 걷아내고, 거기에 하나의 '서사'를 담아냈다. 표기된 연도를 따라 나열해놓은 한국과 관련된 스웨덴의 역사적 사실들로 채워진 연설팀의 초안을 보고 이어 이낙연의 수정본을 봤는데...

아쉽게도, 한국전쟁 당시에 활동하신 스웨덴 의료지원단의 영웅들은 아무도 여기에 오지 못하셨습니다. 지원단 1,120명 가운데 50여 명만 생존해 계시지만, 그분들도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으십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분들 가운데 폴란드 프리드 씨는 지금도 집에 태극기를 걸어놓고 대한민국의 평화와 발전을 기원하신다고 합니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셔스틴 요나손 씨는 모든 재산을 대학에 기부하면서 그 일부를 한국과의 협력에 쓰도록 당부하셨습니다. 의료지원요원들의 한국을 향한 사랑과 헌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전쟁 기간 동안 스웨덴 의료지원단은 위대한 일을 하셨습니다. 충수염을 앓던 세 살 아기는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던 열여섯 살 소녀는 살아났습니다. 다리 골수염을 치료받은 소년은 배구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병원에서 심부름하던 소년은 외과의사가 됐습니다.

p.199

199페이지에서 200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해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소름과 전율이 느껴졌다.

그분들이 여기에 오셨습니다. 스웨덴의 은인들은 오지 못하셨지만, 도움을 받고 성장한 한국민들은 여기에 모였습니다. 그런 한국민 여러분은 스웨덴 의료진의 인간애를 증명하십니다. 여러분은 한국과 스웨덴을 사랑으로 잇는 교량이십니다.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p.200

'2019 고졸 인재 일자리 콘서트 개막식 축사'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려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바야흐로 세상은 4차 산업혁명과 저출산과 고령화 등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를 겪고 있으며, 그러한 변화에 고졸 인재들은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정부는 폭넓게 지원하고, 기업은 일자리를 늘려 달라'는 요지를 담은 글이다.

연설팀의 초안은 이랬다.

청년 여러분,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 구조가 바뀌면서 직업세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도전과 혁신에 나서고 있습니다. 남보다 먼저 취업을 결정하신 여러분은 그러한 변화에 한발 앞서 동승하고 계신 겁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를 보면 통신 분야와 전문 기술, 서비스, 전자 장비 분야에서 수요가 크게 늘어납니다. 이처럼 미래산업으로 꼽히는 대부분의 직업이 여러분이 배운 교육과정과 연관이 깊습니다.

p.226-227

내가 만약 고졸로서 그 자리에 참석해 이런 얘기를 듣고 있었다면 나는 '언제 끝나지?'하는 마음으로 5분마다 시계를 들여다보거나 몰래 회장을 빠져나가거나 했을 것이다. 갑자기 그 옛날 학교 조회시간이 떠올랐다.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이어질 때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집안의 장남으로서 형제가 많기도 하고 당시 어려웠던 형편에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동생도 있었기에 이낙연은 청년들의 마음을 읽어낼 줄 알았던 것 같다. 아니,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어루만질 줄 알았던 것 같다. 만약 기념행사에 자리한 그 청년들이 내 동생이라면? 그렇게 장황하고 담론 섞인 거대한 말들을 해줄 것이며, 했다손치더라도 그러한 말들이 그들의 귀와 마음에 들어갈 것인가? 이낙연은 이런 마음으로 기념사를 수정했던 것 같다.

청년 여러분께서 어느 경우에도 포기하지 마시고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시면 여러분께 반드시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정책으로 뒷받침하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배가 제일 안정적일 때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배는 정박하려고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배는 항해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안정을 추구하는 것, 편할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인생은 아닙니다. 배가 바다로 나가야 하는 것처럼 청춘도 길로 나서야 합니다.

p.228

세계적인 대문호들의 말과 글에 대한 철학을 소개받을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참 좋았지만, 연설의 초안과 수정본을 차근차근 비교해보면서 이낙연식 글쓰기에 나타난 그 특징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한 사람의 마음과 그가 지닌 철학, 삶에 대한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에 따라 글에서 글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글은 단순히 문자의 조합과 모음을 넘어서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임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책에서 발췌한 각각의 예시는 특히나 이낙연식의 서사적 글쓰기와 진솔하고 참된 마음으로 하는 글쓰기라는, 어떤 글쓰기의 일부로서의 그 특징들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결국 그런 방법들을 통해 이낙연 그가 자신의 글에 녹여내려고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이낙연'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글을 통해서 읽어낼 수 있다. '항상 겸손하고, 듣는 사람을 배려하는 말과 글을 하는 사람, 이낙연'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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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연쌤의 파란펜 - 세계적 문호들의 문장론 & 이낙연의 글쓰기
박상주 지음 / 예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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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미술사 - 현대 미술의 거장을 탄생시킨 매혹의 순간들
서배스천 스미 지음, 김강희.박성혜 옮김 / 앵글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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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관계의 미술사]

- 보이는 것 그 이면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감상의 맛을 더하다 -


마티스 & 피카소



마티스의 <삶의 기쁨>과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새로운 미술사조는 예술가의 개성이 확고하게 정립되어 자신의 틀을 깰 뿐 아니라, 다른 개성과 맞붙어 고투하며 관습들을 굴복시켜야 태어난다. 직관적 입체주의자이자 '야수들의 야수' 마티스와 상징적 해체주의자이자 '욕망으로 충만한 고양이' 피카소는 근본적인 독창성을 배경으로 치열한 운명의 대결을 펼친다.

- 목차에서 -

두 사람은 서로의 작업실을 정기적으로 방문할 정도로 자주 만났다. 공원을 함께 산책하기도했고, 만나면서는 당대작가들과 선배들에대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피카소가 마티스보다 12살 아래이고, 피카소의 프랑스어가 서툴기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사람은 자주 만났다.

위 그림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삶의기쁨>은 마티스가 새로운 세계를 완벽히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누군가의 화풍을 모방한것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삶의 기쁨>을 보기위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풍성한 색채, 자유분방함, 관능미에 사람들은 압도되었다.

화단의 선두주자로 있던 마티스는 과거 불행했던 동료들을 생각해서 피카소를 일종의 동료애로서 잘 대해주었던 것 같다. 오랜기간 가난했던 인상주의자들, 인정받지 못한 마네, 삶그자체가 불행했던 반고흐, 무명의 세잔등. 그러나 피카소의 입장으로 보자면, 어릴적부터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는 분위기에서 성장해온 그의 자존감으로서는 마티스와 가깝게 지낸다하더라도 누군가의 추종자가 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피카소도 성공을 바라보며 달렸을 것이다. 위대한 그림을 보여줄수 있느냐가 피카소의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마티스의 <삶의 기쁨>과 <푸른누드>를 뛰어넘는, 힘과 충격을 지닌 무엇인가가 피카소에게 필요했다.

마티스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았다.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그 충격이 조금씩 사그러들때쯤 마티스는 피카소의 작품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쉽게 인정할수는 없었겠지만, 마티스가 보기에 피카소는 단순한 후배정도가 아니었다. 대담한 작품을 통해 세상을 놀라게하는 기질이 흡사 혁명가와 같았고, 이제는 후배가 아닌 라이벌로 의식해야하는 인물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배울것이 많은 동료일수도 있다.

"입체주의는 회화의 공간구성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고. 그 과정에서 현대회화의 새 장을 열었다."(p.214) "한때 마티스와 함께 야수파의 일원이었던 드랭과 브라크는 이제 피카소 편으로 완전히 돌아섰다."(p.212)

"마티스가 죽은 1954년 이후 피카소는 마티스를 향해 복잡한 헌정의 의미가 담긴 그림을 계속 그렸을 뿐 아니라, 마티스가 그린 마티스의 딸 마르그리트의 초상화를 끝까지 자랑스레 자기 집에 걸어두었다. 한때 자신의 친구들이 화살을 던지며 농락했던 바로 그 그림을 말이다."(p.25)

"피카소에게 있어 마티스는 어떤 의미를 갖는 사람이었을까?"


미술 비평가인 저자는 8명의 예술가를 대상으로 글을 썼다. 단순히 그들의 일대기를 소개한 것이 아니었다. 서로 짝을 지어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관계'라는 것에 주목해 인물들을 드러내고,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각의 상대에게 받은 영향으로 인해 인물과 작품에 스며드는 작거나 큰 변화를 독자들 앞에 풀어냈다.

그 '관계'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단어나 문장으로 그 개념을 확실하고 깨끗하게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관계는 하나의 단일한 그 무엇이 아닌, 여러 요소들이 뒤엉켜 가끔은 융합하고 또 가끔은 배척과 불화를 거쳐 무엇인가는 소거되기도 하는, 항상 살아서 꿈틀거리고 변화하는 생물과 같은 것이었다.

대개 관계는 '매혹'으로 시작해서 그들 사이의 '친밀함'이라는 영역을 형성하는듯했다. 개인적으로 내가 감탄한 비평가의 시선은 이 친밀함이라는 영역에서 '관계의 역학(관계)'를 끄집어냈다고 하는 점이다. '매혹'과 매력이 두 예술가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해도 이 둘은 같은 방향, 같은 움직임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변수를 포함해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삶의 장에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한 사람은 예술적, 사회적으로 전진하고, 다른 한 사람은 정체를 거듭했다. 한 사람은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깊은 생각을 거부하고 돌진하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신중하거나 완벽하거나 하는 등의 타고난 기질 때문인지 심리적으로 가로막히기도 했다. 한쪽은 외적 대상을 동경하면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지키기에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빨간색과 파란색이 만나 보라색이라는, 또 다른 색의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그 사람은 동료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것들로부터 해방된다."(p.27) 예술가의 이러한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내밀한 경험은 창작은 물론이고, 그가 바라보는 세계와 인생에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어느 한 예술가의 초기 작품과 후기 작품에 무엇인가 다른 점을 감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바로 이것(관계)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관계가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 처음, 무언가 홀린 듯 이끄는 '매혹'과 '매력'이 뒤이어 친밀감을 형성하면 일련의 주요 사건을 계기로 관계의 고리 안에 있는 그들은 결별하거나 배신했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다소 흥미로울 수 있는 사건을 언급하며 그 과정에서 추론 가능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에도 힘썼다. 이런 재미를 감상할 수 있도록 '잘 된 좋은 번역'을 선물해 주신 김강희, 박성혜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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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미술사 - 현대 미술의 거장을 탄생시킨 매혹의 순간들
서배스천 스미 지음, 김강희.박성혜 옮김 / 앵글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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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는 것 그 이면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감상의 맛을 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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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대답들 - 10가지 주제로 본 철학사
케빈 페리 지음, 이원석 옮김, 사이먼 크리츨리 서문 / 북캠퍼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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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철학의 대답들]

- 인간이기에 궁금한 것들에 대한 안내서 -

문자로 이루어진 글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설명하면서 그 과정에서 나의 사유의 지평이 한층 더 넓어졌음을 스스로 느낄 때 나는 이 순간을 참으로 경이롭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은 그렇게 비일비재하지 않다. 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철학 책을 마주했을 때 어쩌다 한번 찾아오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선물이라 하겠다.

그래서 철학 책은, 그것이 1차 자료이건 2차 자료이건 간에 언제나 늘 나에게서 도전을 이끌어낸다. 설렁설렁 늘어진 자세로 그냥 읽을 수 없다. 그것이 다루는 주제들이 그렇게 가볍지 않은 만큼, 철학 책은 "행간에 진지하게 임할 사람만 와서 덤벼보라"라고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

살면서 '삶, 인간(자아), 지식(앎), 언어, 예술, 시간, 자유의지, 사랑, 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것들은 철학과, 철학 전공에서 흔히 다뤄지는 주제라 한다. 내가 지금 창창한 20대였다면 아마 나는 가장 먼저 지식과 예술, 시간 등 이런 것에 가장 먼저 눈이 갔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죽음'을 가장 먼저 펼쳤다.

'죽음'이라는 것이 '나랑은 아주 먼 얘기'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생각은 죽음에 대한 사유를 회피하거나 접어두거나 하는 식으로 항상 내 생각밖에 머무르게 했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키워드를 달리 생각하게 해준 은인? 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이다.

이 책을 통해 하이데거를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책에 있는 표현을 빌려 잠시 소개하자면 하이데거의 '죽음'에 대한 관점은 이렇다.

'죽음을 향한 존재'

마르틴 하이데거는 죽음을 '진정성 있게'(자신에게 진실 되게) 살라는 동기를 줄 수 있는 기투 가능성으로 간주한다. 자신의 유한성으로 중요한 것에 한계를 설정한다.

p.332

죽음이 존재하는 유한한 삶의 모습은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불사조와 같은 영원한 삶의 모습과는 다를 것이다. 우리는 흔히 한 번쯤은 우스갯 얘기로 주고받아봤을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은 '죽음'이라는 것이 분명 현재 우리의 생각, 삶에 대한 계획, 더 나아가 삶에 대한 자세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마냥 이유 없이 회피하고 싶었던 습관에서 벗어나 '죽음'에 대해 좀 더 용기 있게 들여다보는 자세를 지니게 된 것은 철학 책 덕분이었고, 앞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했던 인생의 선배, 하이데거 덕분이었다. 그렇게 사람은 책을 통해 스스로의 지평을 넓혀가고, 성장하는 존재였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이 책은 우리가 살면서 쉽게 갇힐 수 있는 편견과 선입견을 제거하고 각 주제들에 대한 보다 넓고 깊은 사유를 시도해 보도록 하는 안내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전공자가 보기엔 각주제에 대해서 논의가 그렇게 깊게 이어지지 않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입문서로 보기에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죽음'파트에서 '하이데거'에 대한 부분은 실리지 않았지만 하이데거 이외에 '죽음'에 대해 생각했던 여러 철학자들의 다양한 관점을 만나볼 수 있다. 같은 관점으로 논쟁을 벌인 것은 아니고, 책에서는 그야말로 '죽음'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소개한다.

헤라클레이토스

루크레티우스

미셸 드 몽테뉴

알베르트 카뮈

버나드 윌리엄스

데릭파핏

셸리 케이건

스티븐 루퍼

'죽음'이라는 주제로 모인 사람들(철학자)이다. 이 중에 셸리 케이건과 스티븐 루퍼는 현직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라 눈길을 끈다. 과거 긴 역사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같은 주제를 두고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지 우리 시대 철학자는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 현시대감을 느낄 수 있다.

'죽음' 이외에도 이 책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관점을 소개한다. 살면서 나는 한 번쯤 궁금해봤는데 딱히 어디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없다거나, 독서력을 좀 더 상승시키고 싶으신 분들, 내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깨뜨리고 싶은 분들, 철학에 입문하고 싶으신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을 듯하다.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보신 것처럼 여기 '옮긴이의 말'가운데 '내가 철학 책을 읽는 이유'를 발견해 그 글귀를 소개하고 마치고자 한다.

독단과 도그마는 철학이 지양하는, 인간의 합리성이 피해야 하는 오류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주제별로 철학적 사고의 흐름과 다양성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며, 여러 주제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되돌아볼 수 있는 사고 공간을 제공한다. 결국 철학은 삶의 주체로서의 자각과 이를 방해하는 요소들에 대한 비판적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더 나은 삶을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촉매제다.

p.361-362

'죽음'이 있기에 살아있는 동안 '우선순위'와 '가치'를 논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철학 책, 내 손에 들어 읽고 때로 곱씹으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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