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신의 오후 (앙리 마티스 에디션)
스테판 말라르메 지음, 앙리 마티스 그림, 최윤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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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를 주로 배경지식 없이 접하는 편이다. 문학에서의 다른 장르와 놓고 볼 때 비교적 내가 더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나는 시의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가끔 수용의 자유를 경험하기 위해 시를 찾는다.

목신의 오후라는 단어는 드뷔시의 음악작품에서 접하게 되었고, 문학사를 스쳐 지나가는 과정에서 말라르메는 시인이라는 정보만 알고 있을 뿐, 책에 대한 그 어떤 사전적인 지식과 정보 없이 선뜻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에 눈이 갔다. 그 사람의 시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곧 그가 생전에 지녔던 세계관을 경험한다는 것. 백지가 선사하는 여백의 미에 마음을 비우며 까만 글자를 한자 한자 읽어내려가본다.

어둠이 숙명의 법칙으로 위협할 때

어둠이 숙명의 법칙으로 위협할 때

내 척추의 욕망이며 고통인, 그 오랜 꿈은

음울한 천장 아래 소멸할 것이 비통하여

의심의 여지없는 그의 날개를 내 안에 접었다.

화려함이여, 오 흑단의 방, 한 왕을 유혹하려고 거기서

이름 높은 꽃 장식들이 스러져가며 몸을 뒤틀지만,

제 신념에 눈이 먼 고독한 자의 눈에

그대는 어둠이 기만한 오만에 불과할 뿐.

그렇다, 나는 안다, 이 밤의 저 먼 곳에서, 지구가

저를 더 어둡게 하지는 않는 흉측한 영겁의 아래에서

크나큰 어떤 광채의 기이한 신비를 뿜어내고 있는 것을.

팽창되건 부정되건 있는 그대로의 공간은

이 권태 속에서 비천한 불들을 운행하여 증언하게 한다

천재가 축제의 별로 타오르고 있다고.

[목신의 오후], 말라르메의 시가 실린 곳곳마다 앙리 마티스의 드로잉을 감상할 수 있다. 나는 처음에 말라르메 시 + 앙리 마티스의 그림 조합, 이름하여 [목신의 오후:앙리 마티스 에디션]을 문예 출판사에서 자체 기획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의 해제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이 책은 말라르메의 시에 대해 떠오르는 영감을 마티스가 직접 그림으로 그린 것은 물론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편집과 출판에 관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앙리 마티스 에디션이다. 말라르메의 생각과 그의 작품에 공감했고, 그림 외에도 책을 사랑했던 마티스의 뒷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당연히 시가 주인공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티스의 그림이 시의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림을 좀 독자적으로 놓고 보면 말라르메의 시를 접했던 당시의 마티스의 경험과 감정을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도 있고, 말라르메의 시에서 떠오르는 인상과 느낌을 그림이 주는 인상, 느낌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독자가 말라르메의 시를 접하고 받은 경험과 인상에 혹시나 그림이 방향을 제시하고 독자의 생각과 느낌을 재단할 수도 있음을 우려했는지 마티스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인물의 눈코입이나 눈동자를 넣지 않았다.

그 옛날 수능을 앞두고 접했던 시는 사회적 제도에 따라 올바르게? 해석해 내야 했던 문자들의 조합이었다면, 이제 그럴 의무와 부담이 없는 상태에서 보는 시는 일종의 사유, 느낌, 감상의 유희가 되었다. 쫓기며 사는듯한 이 바쁜 세상에 시를 접한 적 언제인가. 마음이 바쁘면 시집을 펼칠 수 없다. 책을 읽는 사람에게 차분한 마음가짐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시집이다. 머리를 비우고 그림과 함께 감상의 세계에 젖고 싶다면 말라르메와 마티스의 조합 [목신의 오후:앙리 마티스 에디션]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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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몰랐던 일본 문화사 - 재미와 역사가 동시에 잡히는 세계 속 일본 읽기, 2022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도서
조재면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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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일본을 잘 모르지만, 처음 일본에 갔을 때 느낀 감정은 '안정감'이었다. 족히 백 년 이상은 되어 보이는 오래된 가게와 깨끗한 거리, 몇 대째 내려오는 장인이 만들었다고 하는 우동, 스시... 관광으로 간 일본 여행이었지만 지금도 그 첫인상을 잊을 수가 없다.

정치체제가 다른 중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유민주주의 사회라고 하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그래도 비슷할 줄 알았는데, 각 나라에 여러 번의 정권이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에서 포착된 모습은 일본 사회에서는 공통점으로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 세습은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그것이 하나의 전통이란다. 물론 어느것에나 일장일단은 있겠지만, 이것 하나만으로도 일본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참으로 뭔가 쉽게 바뀌기 어려운 나라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가 좋게 말하면 '안정감'을 주고, 나쁘게 말하면 변화에 '취약하다' (혹은 변화하길 거부하는)고 볼 수 있는 데에는 세습과 오랜 전통을 고수하는 일본인들의 특성에 있는 것 같다. 맛집, 먹거리 등 어느 특정 가게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백 년 이상은 기본이고, 아들이든, 가족이든 기술과 노하우가 전파되는 데에는 식당은 물론 사회와 국가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인 영역까지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겠지만,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그 아들이 다른 국회의원보다 진급이 빠른 것도 이해가 안 가고, 그걸 용인하고 뽑아주는 국민성도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읽는 것인지도...

이렇게 낯선 모습을 지닌 일본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한구석이 우리와 닮아있는 부분도 있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 부분을 읽으면서는 우리의 삼포세대, N포세대를 떠올리게 했다. 1991년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여러 가지 사회 복합적인 요인으로 일본에는 장기 불황이 들어서게 되었다. 부동산 버블을 시작으로 이 10년의 시기를 흔히 사람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른다. 1980년대, 199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사토리는 '득도, 깨닫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증권사와 은행의 도산과 파산 등 불안한 경제와 사회를 보면서 자란 이들이 막상 사회로 나오게 되었을 때 마주한 것은 비정규직의 격차사회였다.

이러한 세대들의 등장은 사회소비현상을 바꿔놓기도 하였다. 버블 이전에 만연했던 사치와 허세 풍조, 명품과 같은 비싼 소비재에 대한 소비는 줄고, 이른바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자 사회적 현상으로서 사토리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토리가 품고 있는 '깨달음, 득도'에는 정말 복합적인 뉘앙스가 담겨있는 듯했다. 그들은 뭘 깨달았을까. '이 사회, 내가 아무리 열심히 애쓰고 발버둥 쳐봐야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거? 그러니 작고 확실한 행복에만 몰두하는 것이 내 삶에 바람직하다는 거?' 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손닿지 않는 사회에서 애쓰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동일본 지진 이후 그나마 있었던 물욕마저 내려놓았을지도 모른다. 일본으로부터 불어온 바람, 미니멀리즘 열풍은 그렇게 탄생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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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뚝딱 철학 : 생각의 역사 2 5분 뚝딱 철학 : 생각의 역사 2
김필영 지음 / 스마트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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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철학책으로서 정말 손색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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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뚝딱 철학 : 생각의 역사 2 5분 뚝딱 철학 : 생각의 역사 2
김필영 지음 / 스마트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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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가뜩이나 머리 아픈 학문인데 제목이 [5분 뚝딱 철학]이라 한다. 요즘 세태를 반영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본래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라 하더라도 그대로 있으면 사람들이 찾기 힘들다. 좀 더 가볍고 캐주얼하고, 세련되어야 사람 손이 닿는 세상이다. 이 책이 그런 트렌드를 충족시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5분 뚝딱'이라는 약속을 해주는 것 같아 거부감 없이, 아니 오히려 어떤 호기심이 발동해 책을 넘기게 되었다.

부제가 '생각의 역사'이니만큼 그동안 철학사에서 전개되어왔던 생각들을 시간순으로 접하게 된다. 이 생각들은 또한 크게는 진, 선, 미라는 개념 아래 존재론, 인식론, 논리학, 과학과 수학, 언어와 구조, 윤리학, 종교철학, 정치철학, 심리학, 미학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철학의 어느 한 가지 성격에 치우치지 않고, 생각의 종류들을 골고루 접해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들어 철학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기 시작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통해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부분은 제4장 과학과 수학 부분이었다. 대개 나의 철학 공부는 고대 중세 근대에서 독일철학을 관통해 현대에 이르러 존재론으로 끝이 났다. 다른 한편에서 현대 영미 철학이나 과학철학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잘 모르는 용어나 이야기가 나와 건너뛰곤 했던 기억이 있다. 항상 부족하다고 느낀 부분이 과학철학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어렵게만 느껴지던 양자역학, 반과학주의, 상대성이론, 불완전성 정리 등 현대 과학철학에서 한 번씩 들어봤음직한 과학적 용어와 정리들을 재미난 그림과 함께 설명해 주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이 책에 그래도 가장 강점은 과학과 수학 부분에 대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전기공학 전공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전체적으로 설명이 쉽고, 재미있다. 또한 중간중간에 우리 주변의 예시를 들어 설명에 대한 집중력을 높인다. [5분 뚝딱 철학 2]는 2탄인데, 이 저자의 첫 번째 책은 어떤 책이었을지 찾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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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고전의 세계 리커버
장 자크 루소 지음, 황성원.고봉만 옮김 / 책세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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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얘기를 하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누군가로부터 이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은 그때가 행복했겠구나 하는 어렴풋한 짐작을 한다. 누군가에게 돌아가고 싶은 '그때'는 분명 행복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우리 형제에게 일절 '공부하라'라는 말씀과 그 어떤 부모의 욕심, 강요가 없으셨던 부모님 덕분에 나는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때 잘 놀고, 잘 웃고, 잘 뛰어놀던 즐거운 기억과 행복했던 추억의 힘으로 지금 성인의 삶을 단단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말로만 듣던 루소의 [에밀]을 읽으면서 그 어떤 슬픈 소설과 같은 장르가 아님에도 카페 한구석에서 눈물이 글썽거리는 경험을 했다. 내가 내 유년 시절을 생각하면 그건 잠시나마 행복한 추억에 빠지는 잠깐의 이벤트가 됐지만, 성인이 되어 보고 들은 여러 아이들에 대한 소식과 불행한 상황 등을 순간적으로 떠올렸을 때, 그것이 내 유년 시절의 행복과 비교되서인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울컥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에밀]은 나의 유년 시절을 거쳐 지금 현재의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나는 루소를 내 방식대로 이해한다면 '계몽주의의 이단아'내지는 '진정한 계몽주의자'라고 본다. 이 두 가지 표현은 좀 아이러니하긴 한데, 프랑스의 집단지성이라고 하는 백과전서파의 활동 등, 인간의 지식과 이성을 최고로 여기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규범, 제도에 대한 맹신이 사회적 분위기를 이루던 시절, 루소는 오히려 인간의 이성과 이성을 바탕으로 탄생한 사회적 산물들이 인간의 선한, 자연적 본성을 망친다고 보았다. 인간 이성과 계몽을 추종하던 거대한 흐름에서 루소는 인간에 가해지는 이것들의 경계를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루소는 프랑스의 계몽주의를 설명할 때 따로 분류되어 언급되곤 한다.

그러나 지금, 계몽, '진정한 계몽'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본다면 [에밀]을 비롯해 그의 여러 저작에서 피력한 그의 주장은 소름 끼치는 설득력을 갖는다. 그래서 나는 그를 우리 시대의 '진정한 계몽주의자'로 보기도 한다. 이성과 과학이 손잡고 만들어낸 산업화 그리고 그 컨베이어 벨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인간성, 20세기 세계대전의 참상 등.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이성과 그것을 통한 계몽이라는 하나의 이념 아래 맞아하게 된 인간의 슬픈 역사다. 인간이 인간을 어떤 목적에 부합하도록 혹은 수단으로 대하게끔 하는 인간 이성에 대한 맹신은 지금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이성은 그저 하나의 도구였고, 계몽은 그저 허울좋은 빛이었음을.

"어린아이가 터득하는 최초의 관념은 지배와 예속의 관념이다. 말을 배우기 전에 명령하고, 행동할 수 있기 전에 복종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갖기도 전에, 아니 잘못을 저지를 능력을 갖기도 전에 아이에게 벌을 준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아이의 어린 마음에 일찍부터 편견을 심어 넣고 나중에는 그것을 자연의 탓으로 돌린다. 아이를 애써 심술궂게 만들어놓고는 아이가 심술궃다고 한탄하는 것이다."

p. 62

"어린아이는 이런 방식으로 여자들 손안에서 그녀들의 일시적 기분의 희생물이 된 채 6~7년을 보낸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이에게 이것저것을 가르친 다음, 이를테면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아이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물로 기억을 가득 채운 다음, 또 아이에게 인위적으로 심은 편견으로 자연성을 질식시킨 다음, 이 부자연스러운 존재를 가정교사의 손에 넘긴다. 가정교사는 이렇게 인위적 육성이 완성된 아이에게 수많은 것들을 가르쳐 발달을 완성시키는데,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을 아는 법, 자기 자신을 활용하는 법, 참되고 올바르게 살아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p.62

"그리하여 이 아이는 지식은 가득하되 분별력이 없고 육체와 정신이 모두 허약한 노예이자 폭군이 된 채 세상에 내던져져 무능과 오만과 모든 악들을 드러낸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를 보고 인간의 가련함과 사악함을 한탄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그 인간은 우리가 제멋대로 만들어낸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인간은 결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p.63

루소의 [에밀]보다 한참 전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이나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에서 이성의 개념으로는 포섭될 수 없는, 인간이 지닌 최후의 보루인 '인간성'에 대해 접할 수 있었는데, 존 듀이를 비롯해 일련의 현대철학자들이 루소의 주장에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에밀]이 오늘날에도 명저로 손꼽히는 이유는 18세기의 시대적 상황을 기술하고 있지만, 그 통찰력이 오늘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른에게만 권할 책이 아니다. 한 번쯤 어린 시절을 지냈고, 우리 사회, 공동체에서 아이들을 품고 있는 어른들이라면 반드시 읽고 그 무엇인가를 느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들이여, 인간답게 행동하라. 그것이 그대들의 첫 번째 의무다. 신분이나 나이에 개의치 말고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인간적으로 대하라.(...) 아이를 사랑하라. 아이가 그들의 놀이와 즐거움과 사랑스러운 본능을 마음껏 누리도록 도와주어라.

언제나 웃음이 입가에서 떠나지 않고, 언제나 마음이 평화로웠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째서 그대들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릴 그토록 짧은 순간의 환희를, 그들이 맘껏 누릴 줄도 모르는 그토록 소중한 행복을 빼앗으려 하는가?

어째서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에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고, 아이들에게도 다시 오지 않을 쏜살같은 어린 시절을 쓰라림과 고통으로 채우려 하는가?

아버지들이여, 그대들은 죽음이 언제 그대들의 아이를 데리고 갈지 알고 있는가?

자연이 아이들에게 부여한 그 짧은 순간을 그들에게서 빼앗고 후회하는 일을 만들지 마라. 그들이 존재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면 곧 그것을 누리도록 해주어라.

신이 언제 그들을 불러 가더라도 그들이 인생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죽는 일은 없도록 하라.

p.14-15(재인용)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어린 나이에 노동하는 아이들, 착취당하는 아이들, 성에 유린당하는 아이들, 매 맞아 죽는 아이들, 어른의 이기심과 욕심에 말도 안 되는 사고로 다치거나 죽는 아이들이 두 번 다시 생기지 않도록... 내 이 바람을 성탄절에 마음을 담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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