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이동, 식민, 이민의 세계사
다마키 도시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in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이주,이동,식민,이민의 세계사]

- 책으로 들여다보는 세계화의 명과 암 -

책을 받았는데, '세계사'라는 방대함을 풍기는 그 제목에 비해 크기가 작고 얇은 소책자에 가까워 깜짝 놀랬다. 이제껏 서평으로 받아본 책중 가장 작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크기가 작다고 내용의 양을 우습게 볼수 없었다. 역사적 사실이 단편적으로 쉬지않고 열거되는 통에 나의 이해력에 의구심을 품고 독서를 이어나갔다. 중2때 세계사를 단답형으로 암기해 시험쳤던 것이 생각났다. 그당시 단답형으로 외웠던 아는 단어가 나올때마다 순간순간 중2때로 돌아갔다왔다. 나는 이책으로 세계사를 다시 공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답형이 아닌 이번엔 제대로된 '이해'로써 말이다. 머릿속으로 세계지도의 공간을 그리며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넘어서는 그런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이 책은 고대 인류의 탄생부터 현재 계속 이슈가 되고 있는 난민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시간의 길이가 말해주듯 엄청난 양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게다가 그 엄청난 양의 역사를 마치 핀셋으로 집어내듯 '이주,이동, 식민, 이민'이라는 키워드에 해당하는 역사적 이야기들을 엮어 풀어내고 있다.

세계사는 곧 문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러나 문명의 역사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인간의 무수한 이주과 정착, 다시 이동과 이민, 식민이라는 행위를 통해 전파되고, 다져지고, 다시 전파되기를 반복하면서 변화, 발전하게 된 것이다.

책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약 700만년전 아프리카 중북부에 살았던 '사헬란트로푸스차덴시스'라 한다. 이후 인류는 여러과정을 거쳐 오늘날 현생인류로 여겨지는 호모사피엔스에 이르렀다 한다. 책에서는 출아프리카(아프리카를 떠남)를 단행했던 호모사피엔스의 이동을 '세계최초의 이민'으로 보고 있다. 왜 이동했는지 정확하게는 알수 없으나, 이들의 이동으로 하여금 인류역사와 생물전체의 역사, 지구환경이 크게 뒤바뀐것으로 보고있다. 즉, 호모사피엔스의 '세계최초의 이민'으로 문명이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세계 6대문명은 다음과 같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허강, 양쯔강, 고대 아메리카. 아프리카대륙을 떠나 인류는 이동하고, 정착했다. 일부 정착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자신들만의 문명을 만들어냈다. 만들어진 문명은 다시 이동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곳으로 전파되었다. 문명과 문명의 전파는 이동과 정착, 다시 이동이라는 패러다임을 지니는 것이다.

인류는 정착이라는 한가지 선택지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정착을 선택한 사람도, 이동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다. 이 두 부류는 무관하지 않다. 일정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이들 중에도 계속 이동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땅에 정착하는 사람도 있었다. 계속 이동하는 이도 언젠가 정착하고, 정착을 선택한 이도 언젠가 그 땅을 버리고 떠났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인류가 지구 전체로 퍼져 나갔기에, 설령 뭍으로 이어져 있지 않아도 인류의 기술과 문화가 다른지역으로 이동하고 문화권으로서 연속성을 유지하는게 당연했다고 추정할수 있다.

p.34

오래전에 배워 잊어버려서인지 새롭게 알게 된 것만 같은 문명에 대한 깨알지식 몇가지를 적어보자면 이렇다. 위 6대문명중 가장 오래된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이 문명의 특이점은 수레바퀴발명, 포도주와 맥주를 빚었다 한다. '포도주와 맥주를 빚었다'는 구절을 본 순간 나도모르게 절로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만들어진 문명을 내가 이미 한국에서 마시고 애용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문명전파는 이미 입증된 셈이라고 생각했다.

각각의 문명은 홀로 탄생해 홀로 그 문명을 유지한듯 보이지만, 육상과 해상경로를 이용한 교역과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것으로 보인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인더스문명에 큰 영향을 주고, 기원전 7세기 아시리아 제국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통일(이를 오리엔트세계라 한다)하면서 메소포타미아문명은 이집트 문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가령, 인더스문명의 산물인 청금석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로 건너가 파라오투탕카멘의 마스크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톨텍문명, 테오티우아칸문명, 아즈텍문명, 사포텍문명, 올멕문명, 마야문명을 묶어 이르는 고대 아메리카문명에서 본 특이점은 안데스 산맥이 원산지였던 감자를 아즈텍문명에서 '추뇨'(얼린감자를 발로 밟아 으깨 수분을 제거하고 볕에 말려 만드는 저장식품)형태로 비축, 보존식품으로 활용했는데, 이것이 훗날 유럽으로 전파, 30년전쟁시대에 독일에서 널리 재배하게 되었다. 이는 유럽의 인구증가에 기여하였다고 한다. 이제 '감자'하면 독일?이 아니라, 아즈텍?!으로 기억해둬야할듯 하다.

세계사에 있어서 인류의 이동과 이주, 이민, 식민, 교역, 전파, 육로, 해상길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를 대표하는 '에게해 문명'이 그리스고유의 문명이라기보다는 '오리엔트문명의 일부'로 보는 관점이 시선을 끌었다. 저자가 그렇게 보는 그 근거는 인류가 사용한 '길'에 있다. 즉, 에게해 연안에 자리하고 오리엔트문명의 영향을 받아 청동기문명을 형성한 에게문명은 기존의 오리엔트지역의 해상교역을 통해 하나의 문명권을 형성한 것에 불과하다고 본것이다. 따라서 오리엔트문명의 영향을 받은 에게해 문명은 오리엔트문명의 일부요, 에게해문명을 간직한 그리스문명은 역시 오리엔트 문명의 일부인 것이다. "그리스를 정말로 유럽이라 말할수 있을까?"라고 내놓은 저자 스스로의 질문에 저자는 "유럽문명의 원천은 그리스보다 오리엔트 문명이라고 보는것이 더 정확하다"라는 답을 한다. 나는 여기서부터 세계사의 중심으로 기술되는 서양사관에 저항하고자 하는 저자의 심리를 느낄수 있었다.

이동과 정착으로 문명이 탄생하고 전쟁을 통한 식민지건설로 문명과 문명이 융합되거나 사라지거나 하는등의 일련의 역사적 사실들이 소개된다. 페르시아전쟁, 알렉산드로스대왕의 동방원정, 포에니전쟁, 서로마제국을 멸망을 이끈 게르만민족의 대이동 등.

이책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오늘날 코로나시대를 연상케하는 흑사병에 관한 기술이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유럽을 강타했던 흑사병은 본래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한것이라고 한다. 흑사병이(14세기 중반 무렵) 그렇게 단시간에 유럽까지 퍼져나가 수많은 인명피해를 내게된 데에는 몽골제국이 교역 네트워크를 성대하게 이룬 '팍스 몽골리카(몽골의 평화, 안정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칭기즈칸이 몽골제국을 세우고, 그의 손자 쿠빌라이칸이 안정기로 이끈 몽골제국은 당시 '원'을 국호로 내세우며 유라시아대륙의 상당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 앞서 많은 반란을 진압하고 안정기에 접어든 몽골제국은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내치에 힘쓰게 되는데 이때 도입한 것이 '역참제',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획기적인 시스템'이었다.

몽골어로 '잠치'라고 하는 몽골의 '역참제'란 수도 대도를 중심으로 주요 도로를 따라 10리마다 역참을 설치한 제도였다. 역참에는 100호의 참호(역참(驛站)에서 입역(立役) 또는 거주하는 자에 대한 명칭)가 속하고, 관의 명령에 따라 여행하는 관리와 사절등에게 말과 식량을 제공했다. 참호에게는 관리와 사절 등에게 필요한 물자를 제공하고, 시중을 드는 노동력을 제공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편리한 교통시스템을 바탕으로 몽골제국은 서방출신 상인과 이슬람상인이 자주 드나들정도로 상업이 발달하고 활발한 동서교류와 무역을 이루었다. 마르코폴로도 역참제덕분에 이 당시 대도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 편리한 시스템은 흑사병이 '창궐'하는데 기여하기도 하였다. 몽골제국의 교역 네트워크로 유럽과 중앙아시아가 밀접하게 이어지면서 병이 퍼져나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규모가 커졌다는 것이다. 흑사병은 동서교류활성화의 비극이었던 셈이다.

이책은 크게

1. 인류,민족의 '대이동'이란 무엇인가?

2. 세계의 '교역'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3. '이민'이 유럽의 번영을 가져왔을까?

이렇게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처음 한 파트만 보아도 세계사의 절반을 공부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번째파트에서는 교역의 주역(?)들이 소개되는데, 대표적으로는 이슬람상인, 바이킹족, 포르투갈이 있다. 예전에 중국사에서 당나라를 공부할때 이슬람상인에 관한 얘기는 이미 들어 익히 알고 있었고, 제국주의 시절 포르투갈이 한때 엄청난 나라였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둘의 교역에 관한 얘기는 별로 새롭지 않았는데, 나에게 '약탈'의 대명사였던 '바이킹'족이 교역에 종사했던 '상업민족'이었다는 사실은 좀 충격이었다. 지식을, 특히 세계사를 단답형으로 배우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한심스러운 일인가를 생각했다.

오랜만에 세계사를 들여다보았다. 공부한다는 느낌보다는 시간순의 인류를 따라다닌 느낌이고, 여러나라를 돌아본 기분이었다. 마지막에 책에서 언급된 난민문제의 원인을 제국주의로 보는 시각에, 세계사는 과거의 기록, 그것을 넘어서 '현재 진행하는 시간'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주, 이동, 식민, 이민의 세계사
다마키 도시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in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으로 들여다보는 세계화의 명과 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년의 독서 - 김형석 교수를 만든
김형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김형석 교수를 만든

[백년의 독서]

- "지금도 독서는 내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열정과 꿈을 준다" -

사실 말이 쉽지 사람이 백 년을 산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서 산다는 건 의식 없이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아닌 온전한 나의 정신을 지니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냥, 백년의 삶을 지낸 사람의 생각이 들어보고 싶었다. 어떤 시간들을 거쳤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막연히 궁금했다. 주변에 이만큼 연세 있으신 분 찾기도 어렵고, 간단한 검색으로 자료와 영상을 손쉽게 얻으므로써 지식을 전달하는 선생님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고립의 시대에 나는 인생의 선배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더욱이 책을 사랑하는 인생의 선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독서하기 참으로 힘든 세상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우리 세대에 이렇게 통용되는 말일 것이다. 컴퓨터, TV 등 영상만 주구장창 보거나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못하거나. 그러나 그 비교조차도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로 저자의 독서환경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1920년생인 저자 김형석 교수의 삶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굵직굵직한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6.25전쟁을 거쳐 여러 번의 정부가 바뀐 오늘날까지 그의 삶 자체가 살아있는 우리 근현대사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가난한 시골에서 무슨 책이었겠는가?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38년생이셨던 우리 외할머니의 얘기를 떠올려보자면 학교는 고사하고 굶지 않고, 어딘가 끌려가지만 않아도 그것만으로도 다행인 인생이라고 하셨었다. 그 시대 인생은 곧 굶주림, 숨기, 도망, 피난 등의 단어로 점철된 긴박한 시대 안에서의 살아냄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저자가 처음 마주한 책 다운 책이라 한다면 그것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였다. 그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를 거쳐 만주와 중국 북동부를 침략하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당시의 문제의식으로 [전쟁과 평화]를 선택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저자가 한국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와 시인을 회상하는 부분이었다. 교과서에서나 작품을 읽어보고 그 이름만 들었던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 [소나기]의 황순원, [별 헤는 밤]의 윤동주 모두 저자의 기억 속 한 부분에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저자는 같은 반이었던 윤동주와 가깝게 지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와 친하게 친했더라면 한국 현대문학에 대한 관심과 문학적 소양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나는 저자가 홀로 독서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던 계기를 첫째, 중2라는 이른 나이에 다소 어려웠던 [전쟁과 평화]를 접했던 것. 둘째, 중학교 3학년 시절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학교를 떠나 1년간 도서관에서 홀로 독서한 시간으로 본다. 저자는 학교를 다니는 대신 매일 아침 일찍 도서관에 와 독서로 공부를 대신했다. 이때 철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철학에 관련된 서적을 많이 접했던 것으로 보인다. 철학 입문, 철학개론, 철학사, 철학 사상사, 논리학, 윤리학, 윤리학사, 형이상학, 인식론 등을 이 시기에 탐독했다고 한다.

니체와 키에르케고르에서부터 시작해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여러 사상가들에 대한 소개와 그들의 이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가장 공감되는 부분은 그 많은 사상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 현시대에 대한 철학적 진단이었다.

탈 이데올로기 시대, 남은 것은 휴머니즘뿐

(...)

최근에는 탈 이데올로기 시대라는 말이 어디에서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당위성을 갖고 인정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만일 이데올로기가 아닌 어떤 사상이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휴머니즘이 가능할 뿐이다. 휴머니즘은 언제 어디서나 긍정적으로 용납되며 인류가 추구할 올바른 사고방식이다. 마르크스 사상이나 공산주의도 그 자체는 목적이 못되고 휴머니즘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태어났다가 사라질 운명을 갖고 있을 뿐이다.

p.153

철학은 사실 어렵다.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뭔가 우리의 현재 삶과는 동떨어진, 형이상학적 학문으로 생각되기도 하고 철학적 용어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철학적 개념에 대한 각자의 이해는 어느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지적 사고의 과정이다. 저자도 철학적 개념 이해의 어려움을 지적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를 계속 전진하라고 조언한다. 철학 읽기를 우직하게 이어 나가다 보면 처음에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두 번째 볼 때 다르고, 다른 관련 책을 찾아 읽었을 때 그 축적된 이해도가 계속해서 현재의 이해를 돕는다는 것이다. 내가 어느 글에서도 쓴 바 있지만, 사람도 첫눈에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 않은가.

학문적 성장에 필요한 체계적인 독서 필요

(...)

세계 역사도 그렇다. 선진사회에서는 인간개발이 앞서고 그 뒤에 사회개발, 그리고 경제발전과 경제개발이 뒤따른다. 그것이 역사의 과정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정신사적 절차를 밟지 못했다. 서양에서는 르네상스와 휴머니즘을 먼저 겪은 후 인간과 사상과 인문학이 발전했고, 그 뒤에 사회과학이 발전했다. 그리고 정치의 변화와 사회문제의 해결이 모색되었다. 그 후에 자연과학과 기계 과학이 발달하면서 오늘의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그 과정을 밟지 못했다. 오히려 경제개발을 먼저 추구하다 보니까 사회개발이 없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사회개발을 계획하는 동안에 인간의 정신적 가치가 탐구되지 못했다는 현실을 발견하기에 이른 것이다.

p.230

나는 요즘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매일같이 뉴스에서 들려오는 사건, 사고 관련 슬픈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 삶에 대한 사유를 심화시키는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과 인문학 독서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쉽게 편하게 공부하고, 가상현실 등 다양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시대적 변화를 역행하여 과거 고된 근현대사 속에서 힘들게 독서할 수밖에 없던 그 시대를 예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실시간 넘쳐나는 단편적 정보들의 수용과 생각 없이 이루어지는 무심한 행동들, 자기반성이 결여된 일상, 인간과 인간 존엄에 대한 물음과 이야기가 없는 세상에 대한 공포심이 인문학의 부재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그래도 그 옛날 '인문학'이라는 것이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신념과 가치를 굳건히 지탱해 주던 때가 있었다. '인간'에 대한 진지하고도 오랜 시간 진통 끝에 얻어낸 사유의 결과는 결코 가벼울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이미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그저 평소와 같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을 뿐인 귀갓길이 가족들과의 헤어지는 일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었고, 우리 이웃이었다.

사회문제 해결의 열쇠는 건전한 독서에 있다.

(...)

문제는 이렇게 소중한 정신적 과업을 소홀히 여기고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만족을 위해 달리는 사회 분위기를 어떻게 건전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바꾸고 그 차원을 높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의 확실한 방법 중 하나가 언제나 독서하는 국민, 책을 가까이하는 민족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가치관의 문제는 물론이고 도덕적 기강을 바로잡는 길도 건전한 독서와 더불어 이루어져야 한다.

p.264

이 책은 '독서'라는 주제 아래 3가지 층위를 이루고 있다. 첫째, 백 년에 걸친 한 개인의 독서의 기록. 둘째, 그 독서의 기록이 비추는 우리 한국의 근현대사. 셋째, 철학도로서의 전공 독서에 대한 기록과 방법이 그것이다. 이 책은 좁게는 철학을 전공하는 혹은 전공에 뜻이 있는 자가 읽기에 손색이 없다. 철학 공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전공의 선배로서 저자가 철학을 어떻게 공부해왔는지 그 기록을 통해 나름의 노하우를 얻을 수 있다. 넓게는 백년의 시간을 거친 자가 어떤 책들을 어떻게 읽었으며 각각의 순간들마다 독서를 통해 어떤 생각을 했고, 그런 과정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어떤 사람을 만들어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한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뿌리가 깊고 튼튼한 밑동과 줄기가 있는 나무가 크게 자라 많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일으키는 글쓰기 - 인생 중반,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
이상원 지음 / 갈매나무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나를 일으키는 글쓰기]

- 백지 위에 점하나 떼기 힘든 당신에게 -

책이라는 대상을 놓고 글 작업을 하는 서평과는 별개로 오로지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만 놓고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는 이걸 '근원적인 글쓰기'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글쓰기를 언제부터 어떠한 연유로 시작했을까.

[나를 일으키는 글쓰기]는 서평과 같은 한 꺼풀 겹쳐진 글쓰기가 아닌 순수하게 '글을 쓰는 행위'와 '나'를 마주하게 하는 책이다. 서평은 대상이 의뢰받은 특정한 책이지만, 순수한 글쓰기의 대상은 곧 '나'다. 나를 글감으로 해서 글을 시작하고 끝내는 것이다. 이런 사유, 이런 글쓰기, 이런 시간에 대해서 익숙하다면 이 책을 권하기에 조금 부족하다. 이 책은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적어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글쓰기든 그 첫 번째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대상으로 해서 쓰는 글은 당연한 것이고, 서평 글쓰기를 할 때에도 책을 마주하고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갈 때, 문자와 문맥에서 전해지는 메시지에 대한 느낌과 그 울림이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에 잘 귀 기울여야 나만의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마음에 일어나는 어떤 변화되는 상태에 대해서 귀를 잘 기울인다는 것은 글과 나만 존재하는 순수한 시간이자, 내가 정직해야 하는 시간이다.

[나를 일으키는 글쓰기]는 글쓰기 '시작'을 연습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를 대상으로 글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저자는 '나'에 대한 글감을 크게 5가지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1. 내 일상을 보살피다

2. 내 마음을 이해하다

3. 내 실패를 위로하다

4. 내 과거를 발견하다

5. 내 내일을 기획하다

이 책을 순서대로 읽고 쓸 필요는 없고, 목차를 펼쳐보고 마음이 동하는 대로 그 페이지를 펴고 글을 쓰면 된다. 나는 페이지를 휘리릭 넘겨보다 저자가 제시해 준 다음의 글감이 마음에 들어서 조용히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책의 테스터로서 떠오르는 문장을 적어본 것이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날것 그대로의 '나'를 이해해 주면 좋겠다.




글쓰기의 전제조건은 자유라 생각한다. 물론 형식을 요구하는 글쓰기도 있지만, 내가 펜을 들고, 타자를 치는 순간에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야 우선 '글'이라는 것을 시작할 수 있다. 저자가 일러주는 글쓰기 팁으로 책의 글감을 하나하나 천천히 채워가다 보면 이 한 권을 끝냈을 때 어느덧 글쓰기에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영어에서 말문이 트이는 것처럼, 글쓰기에서 글문이 트이고 싶다면 나른한 일요일 오후쯤 휴대폰을 잠시 꺼두고,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이 책과 함께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길 권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일으키는 글쓰기 - 인생 중반,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
이상원 지음 / 갈매나무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백지 위에 점하나 떼기 힘든 당신에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