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배워 잊어버려서인지 새롭게 알게 된 것만 같은 문명에 대한 깨알지식 몇가지를 적어보자면 이렇다. 위 6대문명중 가장 오래된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이 문명의 특이점은 수레바퀴발명, 포도주와 맥주를 빚었다 한다. '포도주와 맥주를 빚었다'는 구절을 본 순간 나도모르게 절로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만들어진 문명을 내가 이미 한국에서 마시고 애용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문명전파는 이미 입증된 셈이라고 생각했다.
각각의 문명은 홀로 탄생해 홀로 그 문명을 유지한듯 보이지만, 육상과 해상경로를 이용한 교역과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것으로 보인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인더스문명에 큰 영향을 주고, 기원전 7세기 아시리아 제국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통일(이를 오리엔트세계라 한다)하면서 메소포타미아문명은 이집트 문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가령, 인더스문명의 산물인 청금석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로 건너가 파라오투탕카멘의 마스크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톨텍문명, 테오티우아칸문명, 아즈텍문명, 사포텍문명, 올멕문명, 마야문명을 묶어 이르는 고대 아메리카문명에서 본 특이점은 안데스 산맥이 원산지였던 감자를 아즈텍문명에서 '추뇨'(얼린감자를 발로 밟아 으깨 수분을 제거하고 볕에 말려 만드는 저장식품)형태로 비축, 보존식품으로 활용했는데, 이것이 훗날 유럽으로 전파, 30년전쟁시대에 독일에서 널리 재배하게 되었다. 이는 유럽의 인구증가에 기여하였다고 한다. 이제 '감자'하면 독일?이 아니라, 아즈텍?!으로 기억해둬야할듯 하다.
세계사에 있어서 인류의 이동과 이주, 이민, 식민, 교역, 전파, 육로, 해상길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를 대표하는 '에게해 문명'이 그리스고유의 문명이라기보다는 '오리엔트문명의 일부'로 보는 관점이 시선을 끌었다. 저자가 그렇게 보는 그 근거는 인류가 사용한 '길'에 있다. 즉, 에게해 연안에 자리하고 오리엔트문명의 영향을 받아 청동기문명을 형성한 에게문명은 기존의 오리엔트지역의 해상교역을 통해 하나의 문명권을 형성한 것에 불과하다고 본것이다. 따라서 오리엔트문명의 영향을 받은 에게해 문명은 오리엔트문명의 일부요, 에게해문명을 간직한 그리스문명은 역시 오리엔트 문명의 일부인 것이다. "그리스를 정말로 유럽이라 말할수 있을까?"라고 내놓은 저자 스스로의 질문에 저자는 "유럽문명의 원천은 그리스보다 오리엔트 문명이라고 보는것이 더 정확하다"라는 답을 한다. 나는 여기서부터 세계사의 중심으로 기술되는 서양사관에 저항하고자 하는 저자의 심리를 느낄수 있었다.
이동과 정착으로 문명이 탄생하고 전쟁을 통한 식민지건설로 문명과 문명이 융합되거나 사라지거나 하는등의 일련의 역사적 사실들이 소개된다. 페르시아전쟁, 알렉산드로스대왕의 동방원정, 포에니전쟁, 서로마제국을 멸망을 이끈 게르만민족의 대이동 등.
이책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오늘날 코로나시대를 연상케하는 흑사병에 관한 기술이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유럽을 강타했던 흑사병은 본래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한것이라고 한다. 흑사병이(14세기 중반 무렵) 그렇게 단시간에 유럽까지 퍼져나가 수많은 인명피해를 내게된 데에는 몽골제국이 교역 네트워크를 성대하게 이룬 '팍스 몽골리카(몽골의 평화, 안정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칭기즈칸이 몽골제국을 세우고, 그의 손자 쿠빌라이칸이 안정기로 이끈 몽골제국은 당시 '원'을 국호로 내세우며 유라시아대륙의 상당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 앞서 많은 반란을 진압하고 안정기에 접어든 몽골제국은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내치에 힘쓰게 되는데 이때 도입한 것이 '역참제',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획기적인 시스템'이었다.
몽골어로 '잠치'라고 하는 몽골의 '역참제'란 수도 대도를 중심으로 주요 도로를 따라 10리마다 역참을 설치한 제도였다. 역참에는 100호의 참호(역참(驛站)에서 입역(立役) 또는 거주하는 자에 대한 명칭)가 속하고, 관의 명령에 따라 여행하는 관리와 사절등에게 말과 식량을 제공했다. 참호에게는 관리와 사절 등에게 필요한 물자를 제공하고, 시중을 드는 노동력을 제공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편리한 교통시스템을 바탕으로 몽골제국은 서방출신 상인과 이슬람상인이 자주 드나들정도로 상업이 발달하고 활발한 동서교류와 무역을 이루었다. 마르코폴로도 역참제덕분에 이 당시 대도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 편리한 시스템은 흑사병이 '창궐'하는데 기여하기도 하였다. 몽골제국의 교역 네트워크로 유럽과 중앙아시아가 밀접하게 이어지면서 병이 퍼져나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규모가 커졌다는 것이다. 흑사병은 동서교류활성화의 비극이었던 셈이다.
이책은 크게
1. 인류,민족의 '대이동'이란 무엇인가?
2. 세계의 '교역'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3. '이민'이 유럽의 번영을 가져왔을까?
이렇게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처음 한 파트만 보아도 세계사의 절반을 공부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번째파트에서는 교역의 주역(?)들이 소개되는데, 대표적으로는 이슬람상인, 바이킹족, 포르투갈이 있다. 예전에 중국사에서 당나라를 공부할때 이슬람상인에 관한 얘기는 이미 들어 익히 알고 있었고, 제국주의 시절 포르투갈이 한때 엄청난 나라였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둘의 교역에 관한 얘기는 별로 새롭지 않았는데, 나에게 '약탈'의 대명사였던 '바이킹'족이 교역에 종사했던 '상업민족'이었다는 사실은 좀 충격이었다. 지식을, 특히 세계사를 단답형으로 배우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한심스러운 일인가를 생각했다.
오랜만에 세계사를 들여다보았다. 공부한다는 느낌보다는 시간순의 인류를 따라다닌 느낌이고, 여러나라를 돌아본 기분이었다. 마지막에 책에서 언급된 난민문제의 원인을 제국주의로 보는 시각에, 세계사는 과거의 기록, 그것을 넘어서 '현재 진행하는 시간'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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