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기쁨과 슬픔 - 너무 열심인 ‘나’를 위한 애쓰기의 기술
올리비에 푸리올 지음, 조윤진 옮김 / 다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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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노력의 기쁨과 슬픔]

- 애쓰는 인간들을 위한 삶의 지침서 -

피아노 연습을 하다 그날따라 유독 잘 안되는 부분이 있다. 옛날 같으면 죽기 살기로 잘 안되는 부분을 뜯어고쳐 클리어하게 넘어갔을 테지만 몇 번 해봐서 안되면 쿨하게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날은 그걸 손대지 않는다. 내키면 다음날에 다시 보거나 한 달까지 쳐다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타이핑을 하다 어떤 부분이 막히면 일어나서 기지개를 한 번하고 커피를 타러 간다. 잠시 창문 밖을 바라보며 딴 생각을 한다.

하고자 하는 말이 있어 머릿속에서 문장이 술술 나오는데 전체적인 맥락에 있어서 맞는 건지 어쩐 건지 신경이 쓰이다가도 ‘그건 나중에 다시 보고 검토하면 되지’라는 생각에 맞춤법도 패스하고 줄줄이 써 나갈 때가 있다.

옛날 같으면 촘촘하게 계획을 세워놓고 완성과 미완성, 달성과 미달성을 체크하며 완성과 달성이 되었을 때는 기쁨의 미소를 짓지만, 미완성과 미달성이 되었을 때는 뭐 슬픔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반성하며 나 자신을 다그치곤 했던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점차 나이 듦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인생, 꼭 그럴 필요 없다고...’

우리는 살면서 한 번씩 경험해봤을 것이다. 내가 죽기 살기로 노력했는데 그 결과가 그만큼은 아니었던 그 순간을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위에서 말한 나의 일상 습관은 노력에 따른 감정적 손실을 방어하기 위한 하나의 방어기제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한다.

[노력의 기쁨과 슬픔]은, 우리가 이미 경험해봤을 ‘내가 죽기 살기로 노력했는데 그 결과가 그만큼은 아니었던 그 순간’에 대해서 눈여겨보고 있다. 인간이 행하는 노력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노력은 무용할 뿐 아니라 비생산적이기까지 하다.’라는 명제에서 이 책의 논의는 시작된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목표한 바에 닿을 수 있는 느긋함, 손쉬움, 수월함이다. 얼핏 보면 ‘성과를 거저먹으려는 날도둑 같은 심보의 요행’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것과 달리 ‘무의식적인 태도로 이루는 삶의 기술 내지 태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프라이팬을 태웠을 때 가장 바람직한 해결 방법은 미친 듯이 문질러 닦는 것이 아니라 물에 담근 채 내버려 두는 것이다. 절대로 문지르지 말아야 한다기보다는 적당한 때 문질러 닦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르다. 즉, 더 효율적으로 행동하라는 뜻이다.

p.9

뭔가 더 잘하려고 하면 유독 안되는 느낌을 글쓰기에서 자주 받는다. 뭐, 글쓰기뿐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간에 더 잘하고자 하는 태도에서 오는 긴장감과 많은 생각들이 우리가 시작하기도 전에 족쇄처럼 작용하거나 지속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계속하기 - 앞을 향한 시선이 우리를 지탱하는 줄이다

목차의 첫 번째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을 나는 글쓰기 비유를 통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면 글의 내용이 아니라 쓰기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많이 써볼수록 잘 쓸 수 있다. 이미 썼던 것을 다시 보지 말고, 계속 써 내려가라.

"여기서 깨달은 바가 있다." 알랭은 말한다.

"잘 쓰는 기술의 비법은 고쳐 쓰지 않고 계속 써 내려가는 것이다.

써놓은 문장 하나가 백지보다 낫다. 문장이 조악하고 고르지 못하더라도 거기서 무언가 배울 것이다."

이미 썼던 글을 고치기보다는 계속 써 내려가는 편이 낫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p.28

이 책에서는 우리 삶의 수월함을 위한 격언과도 같은 목차 10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프랑스인인 저자는 이 책에서 각 목차에 해당하는 비유와 예시를 모두 프랑스인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삶의 수월함을 위한 '프랑스식 삶의 기술'이라고도 혹자는 말할지 모르나, 그건 저자가 프랑스인이라는 특성상, 책의 논의를 가장 수월하게 풀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이었기에 선택한 저자 나름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의 태도에 있어서 프랑스식, 한국식 뭐 그리 큰 차이가 있을까 싶다.

'2장 시작하기 - 우리는 망설이기 때문에 길을 잃는다'에서는 1974년에 미국의 쌍둥이 빌딩을 줄 하나로 건넌 곡예사의 예를 들고 있다. 인간의 삶이 전적으로 곡예라고 단정 지을 수 없겠지만은 곡예사의 줄을 타는 모습으로 시작하기가 어떤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곡예사가 줄 앞에서 망설인다면 이미 그 곡예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 이후부터는 평정심을 잃고 저 아래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곡예사 필리프 프티는 그렇지 않다. 일단 한발 내디디면 생각 없이 나아가야 한다.

당신이 쌓아올린 벽돌은 다음에 놓아야 하는 벽돌의 모양을 짐작하게 해준다.

벽이 쌓여갈수록 망설임이나 우연히 들어설 자리는 없어지고, 당신은 필요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 그냥 전진이다.

망설임이 이는 건 방향을 몰라서가 아니라 첫걸음을 어떻게 내디뎌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걸음을 떼면 그다음부터는 선택지가 없다. 어떤 활동이든지 시작하는 방법에 따라 미래의 성패가 좌우된다. 그냥 시작하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신 있게 시작해야 한다. 말 타기든, 달리기든, 일이든, 사랑이든,

첫 단추를 잘 끼워야 그다음 일도 잘 풀리는 법이다.

p.45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쇼팽콩쿠르 당시 영상이나 손흥민의 번리전 70미터 골 영상을 보면 그들이 각각 연주와 경기의 순간에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로 철두철미하게 계산하면서 작업을 수행해나갔다고 보기 어려운데, 이러한 사례들이 바로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행위의 지점'이 아닐까 한다. 시합 전날 나이트클럽에서 시원한 음주 가무를 즐기고 새벽에 집에 와 얼마 안 있다 점심때 시합에서 우승을 차지한 테니스 선수 야니크 노아는 이를 두고 '영역 안에 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한다.


'행위의 지점'과 '영역 안에 있다 in the zone'은 최상의 플레이를 선보이는데 고민할 필요가 없이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술술 흘러가는 흐름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 이때, 이곳에서는 의도와 행위의 경계가 사라지고, 집중의 지점이자 자기 자신에 대해 잊게 되는 망각의 지점과 만난다. 자신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곳이자 행위가 가장 활발해지는 곳이다. 이 지점에 이른 사람은 의도하지 않게 몸의 흐름에 맡겨 알아서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행동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성공의 순간 - 신은 노력하지 않는다.


생각 멈추기 - 과도한 생각은 존재 전체를 오염시키고 심지어 위협한다.

'수월함'은 주로 동물의 특성을 따를 때 발생한다.

본능은 생각하지 않고도 발현이 가능하지만,

지성은 의식적이며 간접적인 특성이 있어 다루기 힘들 때가 많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면 직접성이 주는 이점은 사라져 버린다.

본능에는 질문이 따르지 않는다. 그냥 행동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p.180

이외에도,

자세 찾기 - 이완된 몸이 긴장한 몸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

버티기의 기술 - 우리를 말하고 춤추게 하는 건 의무감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이다.

목표하지 않고 이루기 - 어떤 목표는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달성될 수 있다.

집중의 비법 - 너무 열심히 보려고 하면 오히려 보지 못한다.

꿈의 힘 - 진정한 노동자라면 누구든 몽상가다.

삶의 수월함을 위한 격언과도 같은 주옥같은 문장들이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하나하나 그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고 싶지만 끝없이 길어질 것만 같은 글에 이제 마침표를 찍고자 한다.

이 책은 자신의 삶에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거나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하는 행위의 격률 속에 그것을 믿고 살아오다가 한 번쯤 쓰라린 고통과 좌절, 패배감을 맛본 사람들을 위한 삶의 지침서이다. 노력 그 자체를 폄훼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이 때로는 무용지물 하며 때로는 그것 없이도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마법의 비밀을 넌지시 속삭여주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읽었다] 이후로, 이 책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읽으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으니까(글감), 잘 쓸 수 있겠다(서평)'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그 잘 쓰고자 하는 마음'때문에 혹은 '잘 쓸 수 있겠다는 기대감'때문에 글을 시작하는 데 애를 좀 먹었었다. 무엇인가 잘하고자 애쓰는 마음은 언제든 나를 잠식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내 마음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보았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내용이라는 것은 없다. 어쩌면 인생에서 '쉼'을 강조하는 책들의 또 다른 버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작정 앉아서 쉬고 관망하는 자세를 강조하지 않는다. 좌절과 고통 없이 수월함으로 자신의 삶에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은 기획되었으며 이 책은 작가의 그러한 신념과 의도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어떤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나는 이 책을 프랑스 파리에서 쓰기 시작해 드라기낭에서 집필을 이어갔지만, 책을 쓰는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사실 그리스다. (...) 고백하건대 파리에서보다 훨씬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이렇듯 수월함은 상황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 나는 책을 쓰는 동안 완벽주의를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해 책에 담긴 모든 규율을 준수하고자 했다. 글을 쓰는 동안 느꼈던 행복감을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내가 원하던 바를 그렇게

애쓰지 않고,

숙고하지 않고,

목적으로 삼지 않고

이루어낸 셈이다.

p.320-321


자신도 모르게 인생에 무던히 애쓰는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웬만하면 서평 글에서 책 사라는 말은 안 하는 나인데, 매일 당신과 같이 출퇴근하는 가방에 부적처럼 하나 넣어 가지고 다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어느 날 또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 열기처럼 애쓰고 있을 당신에게 가방 한켠의 이 책은 말할 것이다. "물 좀 뿌려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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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기쁨과 슬픔 - 너무 열심인 ‘나’를 위한 애쓰기의 기술
올리비에 푸리올 지음, 조윤진 옮김 / 다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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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쓰는 인간들을 위한 삶의 지침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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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살고 있습니다
김혜지 지음 / SISO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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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살고 있습니다]

여행 아닌 이민을 생각하신다면... -

작년,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나는 남편과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3국을 여행했을 것이다. 2년 전부터 준비한 계획이어서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 2년 차, 여행에 대한 로망이 날로 커져 가던 찰나에 이 책을 서평 책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책 속의 글과 그림이 나의 이런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 시켜 줄 거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이 이탈리아에서 ‘여행하고’ 있습니다가 아닌, ‘살고’ 있습니다...라는 것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은 내 탓이 크다. 나의 여행 욕구에 대한 불만은 ‘살고’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해보지도, 인식하지도 않고 이 책으로 손이 가게 했다.

인생은 선택이고, 기회비용이라 했다. 한국에서도 그렇겠지만, 외국에서 사는 삶은 이 부분을 더욱 크게 느끼게 한다. 내가 좋아서 사는 삶인데, 내가 선택한 1분 1초 그곳에서의 삶이 진행되는 동안, 그만큼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지금 한국에 있다면 부모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볼 텐데.’와 같은 후회들...

저자는 한국에서의 화장품 세일즈를 그만두고 홀로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에 정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 정착하게 되는 과정과 이탈리아에서의 삶의 모습, 코로나 이후 현지 상황, 마지막으로 코로나 종식 이후를 염두에 둔 베네치아 여행정보를 책에 기록했다.

나는 솔직히 이 책을 발췌식으로 내가 원하는 내용만 골라서 읽었다. 애초에 ‘이탈리아’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 관련된 내용만 골라서 읽었다. 책에 초반부터 드문드문 실린 엄마에 대한 내용은 건너뛰고 읽었다. 기쁘고 신나고 설레고 싶어서 선택한 책이라 슬프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현듯 독일에 비교적 긴 시간을 체류했을 때 생각이 났다. 그때 시누이가 돌아가셨다. 그 시간을 겪어봤기에 그때 기억을 떠올리는 게 싫어서 애써 모른척하려고 했지만 책은 ‘이탈리아’가 아닌, 다른 것을 통해서 나를 건드렸다.

잠시나마 여행을 하려고 책을 펼쳤는데, 먹먹한 가슴으로 책을 덮었다. 내가 선택한 책이었지만, 가끔 책이 내가 기대했던 부분과 다르게 다가올 때 상당히 당황스럽다. 여행이 아닌, 이탈리아에서 산다는 것, 그것의 삶의 무게가 어떤지 궁금하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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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살고 있습니다
김혜지 지음 / SISO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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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아닌 이민을 생각하신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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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딩 타임 - 절대적 부의 영역을 창조한 시간 사용의 비밀
대니얼 해머메시 지음, 송경진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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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스펜딩타임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스펜딩 타임]

 

당신의 삶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당신께, 시간과 부의 비밀을 알려드립니다. -

 



 

어느 날 저녁, 일을 마치고 뉴스를 켜놓고 저녁준비를 하고 있는데, 뉴스의 내용은 어제와 똑같은 것 같이 여전히 혼란스럽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사고와 사건들에 관한 소식은 안타까우면서도 하나도 개선되지 않는 현실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저녁을 준비하는데 오만가지 짜증이 올라오면서 왜 이렇게 컨디션이 안 좋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일을 마칠 때까지는 기분이 그럭저럭 괜찮았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나는 보통 요리하는 시간에 저녁상을 빨리 해치우고, 조용하게 책이나 보면서 밤이 주는 고요함과 적막함을 즐기고 싶다라는 생각도 자주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요리하는 시간을 별로 즐기지 않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하는 시간은 고정된 시간이고 자발적 퇴사를 하지 않는 한 의무이지만, 퇴근 이후의 시간들은 개인적인 시간에 해당한다. 나는 업무 이후에 뉴스를 듣고 저녁상을 차리는 것이 개인적인 시간에서 이루어지기에 자발적인 행위라고 생각했지만, 엄밀히 말해 내가 자율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나를 둘러싼 환경적 요인과 그동안 축적된 타성적 삶의 패러다임이 만들어낸 결과였던 것이다. [스펜딩 타임]에 근거해서 내 삶을 진단해보면 그렇다.

 


시간이라는 것은 참으로 희한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24시간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어떤 사람들은 부자로 불리고, 어떤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로 나뉜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고, 싫어하는 일을 할 때면 못 견딜 정도로 지루함을 느낀다. 이와 같은 현상을 놓고 보면 시간이라는 것은 부와 같은 물질적인 것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의 기분과 스트레스와도 연결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 대니얼 해머 메시는 [스펜딩 타임]에서 시간사용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것이 부와 어떠한 관계를 갖는지, 또한 시간사용이 만들어 내는 삶의 갖가지 모습들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이 사회과학 도서에 속하는 만큼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자료와 범주는 참으로 다양하다. 시간사용 개념을 중심으로 개인이라는 아주 작은 범주에서부터 시작해 미국인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어 근로시간(유급근로), 성별, 나이, 인종, 민족, 이민자, 지역, 국가에 따른 시간사용의 현상을 분석해나간다.

 


물론 성별부터 지역, 인종, 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주에서 그것에 속한 집단의 시간사용은 모두 다르다. 그 집단 안에서도 개인마다 달라진다. 그러나 효용성, 생산성 측면에서 놓고 보자면, 시간사용은 두 갈래로 나뉜다. 즉 시간이 부를 만들어내는 자와 시간과 부가 상관없는 자이다. 이 책에서 가장 솔깃한 주제이고, 앞서 언급한 다양한 범주를 큰 틀에서 포괄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나는 부자는 아니지만, 나의 시간사용이 그들과 비슷해지길 바라며, 나의 시간사용이 당장 어떤 막대한 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시간에 쫓기지 않는’, ‘시간부자라는 것을 의식하며 살고 싶기는 하다. 이것은 어쨌든 나의 시간 속에 내가 정신적으로 즐겁고, 더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그럼 부자들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이 답을 보기 전에 우선 인간의 시간사용에 대한 공통적이면서도 평균적인 범주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몇 십억 되는 인구의 삶 중 물론 그 틀에서 벗어나는 삶의 모습도 있겠지만, 책에서 제시하는 시간사용의 범주는 대개 4가지로 분류된다. 1)유급근로 2) 가정활동 3) 개인관리 4) 여가활동

 


유급근로는 인간에게 있어 고정적이고 의무적인 성격을 지니는 시간이다. 기본적인 삶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며, 이것은 가정활동이나, 개인관리, 여가활동을 서포트 해 주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돈을 벌어야 의식주가 해결이 가능한데, 가령 을 위해 가정활동에 해당하는 요리를 하려고해도 당장 냄비나 국자, 프라이팬, 젓가락, 식재료 같은 것들이 필요하고, 이러한 것들은 돈을 벌어야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관리는 수면과 같은 인간의 필수적인 생물학적 활동이나 목욕, 머리손질, 화장, 치장과 같은 것들을 하는 시간이다. 유급근로가 개인관리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어도 목욕을 하려면 욕조가 필요해서 그것을 사기위해 돈을 지불해야할 것이고, 수면을 취하는 가운데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수면에 특화된 값비싼 베개를 사는 것도 영향의 한 맥락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유급근로가 여가활동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가령, 사람마다 취미는 다양한데, 자신의 성격과 기질, 활동적 성향에 따라 취미가 정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자신이 부담 가능한 비용적 측면에서 결정된 취미 가령, 집에서 하는 공기놀이와 잔디밭이 드넓게 탁 트인 곳에서 라운드를 도는 골프가 같은 비용이 들 수는 없다.

 


유급근로가 가정활동, 개인관리, 여가활동 각각에 미치는 영향을 기술하면서, 가정활동과 개인관리, 여가활동이 무엇인지 그 개념들의 성격을 대략 드러낸 것 같다. 부연하면, 가정활동에는 요리뿐만 아니라 쇼핑, 설거지, 반려동물산책, 잔디 깎기, 잡다한 집안일 모두가 이에 포함된다. 개인관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이 포함된다. 수면, 먹기, 성관계, 목욕, 몸과 관련된 단장, 치장 등이다. 마지막으로 여가활동에는 TV보기, 스포츠, 운동, 독서, 콘서트관람, 행사 참석 등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것들의 특징은 행위자로 하여금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통된 범주를 기반으로 부유한 자들과 비교적 그렇지 못한 자들의 시간사용이 두드러지게 구별된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부유하지 못한 자들로 분류된 저학력층, 저소득층, 젊은층, 이민자, 히스패닉 등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시간사용을 잘못해서 시간이 부를 만들어내지 못해 부유하지 못한 자들로 전락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여배우의 말처럼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거야라는 관점에서 애초에 출발점이 달라 어쩌다보니 시간을 그렇게 사용하게 되면서 그러한 집단현상을 보이게 된 것인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하는 약간은 애매해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 어떤 근본적인 원인을 이 책에서 찾을 수는 없었지만, 시간사용에서 보이는 현상은 분명히 달라 보였다.

 


하루는 24시간인데, 이것은 부자나 나나 똑같다. 부자나 나나 입고, 먹고, 자야하므로 이를 유지하기 위해 보통 기본근로시간 8시간을 사용한다고 치자. 24시간을 하나의 동그란 파이라고 가정했을 때 8시간에 해당하는 파이를 근로시간으로 떼어놓는다. 이제 남은 것은 16시간에 해당하는 파이의 양인데 가정활동, 개인관리, 여가활동 항목에서 각각이 차지하는 비율과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성격이 달라진다고 하는 것은 질적 차이를 말한다.

 


이 남은 16시간 중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보통 사람들은 8시간 혹은 그 이상을 개인관리에 해당하는 수면에 할애한다고 한다. 오로지 수면에만 8시간 혹은 그 이상 할애한다면 목욕과 치장 등 기타 일들로 인해 개인관리 시간은 더 늘어나게 된다. 평일에는 대개 여가활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남아있는 최후의 6~8시간 정도의 남은 시간을 분석해보면, 출퇴근, 저녁준비, TV시청, 설거지, 각종 잡다한 집안일로 하루를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근로시간이 없는 주말에 허비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냥 늘어지기 때문이다.

 


유급근로시간을 제외한 부자들이 시간을 사용하는데 있어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많은 시간과 상대적으로 적은 돈이 드는 수면과 TV시청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대기업회장이나 기업을 일궈낸 유명한 사람의 자서전을 보면 새벽4시에 기상하라라거나 남들보다 부지런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는데, 반대로 ‘TV를 즐겨봤습니다라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던 걸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스펜딩 타임]에 따르면 이들은 수면시간을 최소한도로만 남겨놓고, 여기에 들었던 남은 시간과 TV시청에 드는 시간을 자신의 업무시간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시간당 임금이 높은 부자의 유급근로시간에 이 시간들을 더해 일하면 부를 쌓아가는 속도는 부자와 비교대상이 되는 집단과 놓고 볼 때 그 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시간당 높은 임금으로 고정된 유급근로시간에 벌어들이는 소득도 상당한데, 이들은 추가 업무에 대한 추가 ()소득이라는 매력, 그러한 동기부여로 더 많은 시간 일을 하고자 하고, 더 많은 소득을 올리게 된다. 이 추가된 소득으로 비교적 내키지 않는 집안일을 아웃소싱(외주를 주거나)을 하거나, 밖에서 편하게 사먹고, 잔디 깎기 기사를 부르고, 헤어, 피부, 이발 관리 샵을 다니는 것이다. 여가활동의 질은 말할 것도 없다.

 


반대로 이들과 대비되는 집단의 시간사용을 보면 유급근로시간에서 창출하는 소득이 기본적으로 낮은 편이고, 수면시간이 대개 많은 편이며, 가사에 할애하는 시간도 많다. 여가활동은 주로 돈이 들지 않는, 주말에 더 자기’, ‘낮잠 자기’, 하루 종일 TV보기와 같은 것 등이다. Couch Potato는 어찌 보면 그러한 시간사용의 현상을 나타내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더 깊이 들어가면 유급근로 시간에 따라 애초부터 소득의 차이가 나는 원인을 교육으로 보고 있으며, 그 외에도 추진력, 야심 등의 개인적 속성도 지적하고 있다. 교육의 격차로 만들어지는 다음과 같은 현상들 즉, 저소득층의 시간대비 과도한 노동 강도, 낮은 소득으로 어쩔 수 없이 더 할 수밖에 없는 추가근로, 그리고 자연스레 이어지는 비생산적인 비노동시간등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을 개인, 기업, 공동체 그리고 국가가 나서 각자의 역할을 맡아 개선시키고 변화시키길 바라는 관점이 담겨있다.

 


나는 개인의 범주에 한정시켜 나의 시간사용에 대한 반성을 해보자면, 가사활동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가사활동에 시간이 덜 드는 방향으로 내 삶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저녁은 될 수 있으면 간소하게,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식단을 짜고, 감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는 TV시청을 점차 줄여나감으로써 과거 이러한 일들에 소모되었던 에너지와 정신을 나의 업무,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창의적인 일에 쏟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언젠가 내 삶에 있어서 부수적인 수입을 창출해낼지도 모른다. [스펜딩 타임]은 과거 나의 타성적 시간사용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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