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기쁨과 슬픔 - 너무 열심인 ‘나’를 위한 애쓰기의 기술
올리비에 푸리올 지음, 조윤진 옮김 / 다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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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노력의 기쁨과 슬픔]

- 애쓰는 인간들을 위한 삶의 지침서 -

피아노 연습을 하다 그날따라 유독 잘 안되는 부분이 있다. 옛날 같으면 죽기 살기로 잘 안되는 부분을 뜯어고쳐 클리어하게 넘어갔을 테지만 몇 번 해봐서 안되면 쿨하게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날은 그걸 손대지 않는다. 내키면 다음날에 다시 보거나 한 달까지 쳐다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타이핑을 하다 어떤 부분이 막히면 일어나서 기지개를 한 번하고 커피를 타러 간다. 잠시 창문 밖을 바라보며 딴 생각을 한다.

하고자 하는 말이 있어 머릿속에서 문장이 술술 나오는데 전체적인 맥락에 있어서 맞는 건지 어쩐 건지 신경이 쓰이다가도 ‘그건 나중에 다시 보고 검토하면 되지’라는 생각에 맞춤법도 패스하고 줄줄이 써 나갈 때가 있다.

옛날 같으면 촘촘하게 계획을 세워놓고 완성과 미완성, 달성과 미달성을 체크하며 완성과 달성이 되었을 때는 기쁨의 미소를 짓지만, 미완성과 미달성이 되었을 때는 뭐 슬픔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반성하며 나 자신을 다그치곤 했던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점차 나이 듦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인생, 꼭 그럴 필요 없다고...’

우리는 살면서 한 번씩 경험해봤을 것이다. 내가 죽기 살기로 노력했는데 그 결과가 그만큼은 아니었던 그 순간을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위에서 말한 나의 일상 습관은 노력에 따른 감정적 손실을 방어하기 위한 하나의 방어기제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한다.

[노력의 기쁨과 슬픔]은, 우리가 이미 경험해봤을 ‘내가 죽기 살기로 노력했는데 그 결과가 그만큼은 아니었던 그 순간’에 대해서 눈여겨보고 있다. 인간이 행하는 노력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노력은 무용할 뿐 아니라 비생산적이기까지 하다.’라는 명제에서 이 책의 논의는 시작된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목표한 바에 닿을 수 있는 느긋함, 손쉬움, 수월함이다. 얼핏 보면 ‘성과를 거저먹으려는 날도둑 같은 심보의 요행’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것과 달리 ‘무의식적인 태도로 이루는 삶의 기술 내지 태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프라이팬을 태웠을 때 가장 바람직한 해결 방법은 미친 듯이 문질러 닦는 것이 아니라 물에 담근 채 내버려 두는 것이다. 절대로 문지르지 말아야 한다기보다는 적당한 때 문질러 닦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르다. 즉, 더 효율적으로 행동하라는 뜻이다.

p.9

뭔가 더 잘하려고 하면 유독 안되는 느낌을 글쓰기에서 자주 받는다. 뭐, 글쓰기뿐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간에 더 잘하고자 하는 태도에서 오는 긴장감과 많은 생각들이 우리가 시작하기도 전에 족쇄처럼 작용하거나 지속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계속하기 - 앞을 향한 시선이 우리를 지탱하는 줄이다

목차의 첫 번째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을 나는 글쓰기 비유를 통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면 글의 내용이 아니라 쓰기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많이 써볼수록 잘 쓸 수 있다. 이미 썼던 것을 다시 보지 말고, 계속 써 내려가라.

"여기서 깨달은 바가 있다." 알랭은 말한다.

"잘 쓰는 기술의 비법은 고쳐 쓰지 않고 계속 써 내려가는 것이다.

써놓은 문장 하나가 백지보다 낫다. 문장이 조악하고 고르지 못하더라도 거기서 무언가 배울 것이다."

이미 썼던 글을 고치기보다는 계속 써 내려가는 편이 낫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p.28

이 책에서는 우리 삶의 수월함을 위한 격언과도 같은 목차 10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프랑스인인 저자는 이 책에서 각 목차에 해당하는 비유와 예시를 모두 프랑스인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삶의 수월함을 위한 '프랑스식 삶의 기술'이라고도 혹자는 말할지 모르나, 그건 저자가 프랑스인이라는 특성상, 책의 논의를 가장 수월하게 풀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이었기에 선택한 저자 나름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의 태도에 있어서 프랑스식, 한국식 뭐 그리 큰 차이가 있을까 싶다.

'2장 시작하기 - 우리는 망설이기 때문에 길을 잃는다'에서는 1974년에 미국의 쌍둥이 빌딩을 줄 하나로 건넌 곡예사의 예를 들고 있다. 인간의 삶이 전적으로 곡예라고 단정 지을 수 없겠지만은 곡예사의 줄을 타는 모습으로 시작하기가 어떤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곡예사가 줄 앞에서 망설인다면 이미 그 곡예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 이후부터는 평정심을 잃고 저 아래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곡예사 필리프 프티는 그렇지 않다. 일단 한발 내디디면 생각 없이 나아가야 한다.

당신이 쌓아올린 벽돌은 다음에 놓아야 하는 벽돌의 모양을 짐작하게 해준다.

벽이 쌓여갈수록 망설임이나 우연히 들어설 자리는 없어지고, 당신은 필요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 그냥 전진이다.

망설임이 이는 건 방향을 몰라서가 아니라 첫걸음을 어떻게 내디뎌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걸음을 떼면 그다음부터는 선택지가 없다. 어떤 활동이든지 시작하는 방법에 따라 미래의 성패가 좌우된다. 그냥 시작하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신 있게 시작해야 한다. 말 타기든, 달리기든, 일이든, 사랑이든,

첫 단추를 잘 끼워야 그다음 일도 잘 풀리는 법이다.

p.45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쇼팽콩쿠르 당시 영상이나 손흥민의 번리전 70미터 골 영상을 보면 그들이 각각 연주와 경기의 순간에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로 철두철미하게 계산하면서 작업을 수행해나갔다고 보기 어려운데, 이러한 사례들이 바로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행위의 지점'이 아닐까 한다. 시합 전날 나이트클럽에서 시원한 음주 가무를 즐기고 새벽에 집에 와 얼마 안 있다 점심때 시합에서 우승을 차지한 테니스 선수 야니크 노아는 이를 두고 '영역 안에 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한다.


'행위의 지점'과 '영역 안에 있다 in the zone'은 최상의 플레이를 선보이는데 고민할 필요가 없이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술술 흘러가는 흐름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 이때, 이곳에서는 의도와 행위의 경계가 사라지고, 집중의 지점이자 자기 자신에 대해 잊게 되는 망각의 지점과 만난다. 자신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곳이자 행위가 가장 활발해지는 곳이다. 이 지점에 이른 사람은 의도하지 않게 몸의 흐름에 맡겨 알아서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행동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성공의 순간 - 신은 노력하지 않는다.


생각 멈추기 - 과도한 생각은 존재 전체를 오염시키고 심지어 위협한다.

'수월함'은 주로 동물의 특성을 따를 때 발생한다.

본능은 생각하지 않고도 발현이 가능하지만,

지성은 의식적이며 간접적인 특성이 있어 다루기 힘들 때가 많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면 직접성이 주는 이점은 사라져 버린다.

본능에는 질문이 따르지 않는다. 그냥 행동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p.180

이외에도,

자세 찾기 - 이완된 몸이 긴장한 몸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

버티기의 기술 - 우리를 말하고 춤추게 하는 건 의무감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이다.

목표하지 않고 이루기 - 어떤 목표는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달성될 수 있다.

집중의 비법 - 너무 열심히 보려고 하면 오히려 보지 못한다.

꿈의 힘 - 진정한 노동자라면 누구든 몽상가다.

삶의 수월함을 위한 격언과도 같은 주옥같은 문장들이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하나하나 그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고 싶지만 끝없이 길어질 것만 같은 글에 이제 마침표를 찍고자 한다.

이 책은 자신의 삶에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거나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하는 행위의 격률 속에 그것을 믿고 살아오다가 한 번쯤 쓰라린 고통과 좌절, 패배감을 맛본 사람들을 위한 삶의 지침서이다. 노력 그 자체를 폄훼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이 때로는 무용지물 하며 때로는 그것 없이도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마법의 비밀을 넌지시 속삭여주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읽었다] 이후로, 이 책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읽으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으니까(글감), 잘 쓸 수 있겠다(서평)'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그 잘 쓰고자 하는 마음'때문에 혹은 '잘 쓸 수 있겠다는 기대감'때문에 글을 시작하는 데 애를 좀 먹었었다. 무엇인가 잘하고자 애쓰는 마음은 언제든 나를 잠식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내 마음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보았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내용이라는 것은 없다. 어쩌면 인생에서 '쉼'을 강조하는 책들의 또 다른 버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작정 앉아서 쉬고 관망하는 자세를 강조하지 않는다. 좌절과 고통 없이 수월함으로 자신의 삶에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은 기획되었으며 이 책은 작가의 그러한 신념과 의도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어떤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나는 이 책을 프랑스 파리에서 쓰기 시작해 드라기낭에서 집필을 이어갔지만, 책을 쓰는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사실 그리스다. (...) 고백하건대 파리에서보다 훨씬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이렇듯 수월함은 상황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 나는 책을 쓰는 동안 완벽주의를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해 책에 담긴 모든 규율을 준수하고자 했다. 글을 쓰는 동안 느꼈던 행복감을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내가 원하던 바를 그렇게

애쓰지 않고,

숙고하지 않고,

목적으로 삼지 않고

이루어낸 셈이다.

p.320-321


자신도 모르게 인생에 무던히 애쓰는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웬만하면 서평 글에서 책 사라는 말은 안 하는 나인데, 매일 당신과 같이 출퇴근하는 가방에 부적처럼 하나 넣어 가지고 다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어느 날 또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 열기처럼 애쓰고 있을 당신에게 가방 한켠의 이 책은 말할 것이다. "물 좀 뿌려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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