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혁명 - 당신을 살리는 기름, 해치는 기름
시라사와 다쿠지 지음, 박현아 옮김 / 동아엠앤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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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탄수화물보다 기름이 낫다?

[리뷰] 일본인 의학박사가 전하는 『기름 혁명』


건강하려면 기름을 잘 먹어야 한다는 주장이 실린 책이 있다. 『기름 혁명』(시라사와 다쿠지 저, 동아엠앤비, 2017.)의 저자는 올바른 오일 라이프를 하게 된다면 과식이나 달콤한 과자 등에 대한 강한 욕구를 사그라트릴 수 있다고 했다. 밥과 과자보다 기름을 우위에 둔 주장이라서 놀라웠다.




밥과 같은 탄수화물의 경우 1g에 4kcal의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기름은 1g에 9kcal의 에너지를 만든다. 같은 양으로도 칼로리가 높아 포만감을 갖게 된다. 그런데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의 경우 기름진 음식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기름을 먹지 않는 다이어트를 했던 이들은 피부가 까칠까칠해졌다는 하소연을 많이 하는데 이는 세포에 기름이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저자는 식단 조절을 할 때에도 기름을 꼭 먹으라고 한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에 저지방식을 식생활 지침으로 장려했었다. 기름을 삼가고 탄수화물을 늘리는 식생활을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이후 당뇨병 환자가 오히려 더 늘어났다. 미국 뿐 아니라 대부분 선진국에서도 기름을 피하라고 장려를 한다. 한국의 환자들 역시 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때면 “기름진 음식을 피하세요.”라는 말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저자는 “탄수화물 식을 피하세요.”가 옳은 말이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웬만해서는 빵 등의 탄수화물을 삼가는 편이 좋지만 행여 먹을 일이 생긴다면 버터를 발라서 먹는 것이 좋다. 저자는 이야기를 들려주듯 “~입니다.”는 투로 나긋나긋한 글을 써 나갔다. 덕분에 신체와 음식 섭취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이 쉽게 느껴졌다.


책에는 특히 코코넛 오일에 관한 부분이 많았다. 저자는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는 힘이 바로 코코넛 오일이라고 주장하였다. 게다가 코코넛 오일은 파킨슨 병 등의 신경계통의 병, 당뇨병 등의 생활 습관병까지 예방 및 개선할 수 있다. 파격적인 주장이다. 코코넛 오일을 활용할 때 주의할 점은 매끼 식사 때 한 큰 술이 적당량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침 식사 때 탄수화물을 먹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탄수화물로 생성되는 포도당이 체내에서 코코넛 오일의 성분을 분해하기 때문이다. 코코넛 오일의 성분 중 케톤산이 특히 분해될 가능성이 높다. 탄수화물 뿐 아니라 달콤한 탄산음료도 체내에서 포도당을 만들어 내기에 주의해야 한다. 게다가 탄산음료를 많이 마신 뇌는 쉽게 포도당이 부족하다는 착각을 일으켜 공복감에 짜증을 내게 되고, 이 짜증이 폭력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코코넛은 정말 무조건 좋을까


빵 역시 탄수화물이기에 코코넛 오일과 함께 먹으면 케톤체를 만들 수 없는데, 빵과 코코넛 오일을 함께 먹도록 장려하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저자는 이를 지적하며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적극 내세워 나갔다. 한편으로는 코코넛 오일에 대해서 무조건 적으로 좋다는 식으로 전개가 되어 읽는 내내 불편하기도 했다. 책의 부제로는 코코넛 오일 뿐 아니라 “들기름, 올리브 오일, 아마씨 오일, 등 푸른 생선의 기름 제대로 먹는 법”이 적혀 있는데 이들 기름에 대한 설명은 책에 거의 없었다. 있더라도 한 줄이 끝이었다.


책은 여러 사례가 많았다. 카레에 코코넛 오일을 넣어 먹고서 알츠하이머병이 치료되고 사교댄스를 즐기면서 일상을 보내게 된 사람이나,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남편에게 코코넛 오일과 MCT 오일 두 가지를 매일 먹였더니 2개월 뒤 남편의 증상이 훨씬 좋아졌다는 내용 등이 그렇다. 그러나 책 전반적으로 나온 예는 10개가 채 되지 않았다. 표본이 너무 적었다. 사람들이 치료된 이유가 과연 코코넛 오일 덕분인지 확실치 않아보였다.


책의 아쉬운 부분은 또 있었다. 현대인의 단백질 섭취를 원시인의 1일 에너지와 비교한 것이다. 중세도, 근세도 아닌 너무 먼 인류와의 비교였다. 게다가 기름과 관련 없는 부분이 책의 4분의 1이나 차지했는데, 예를 들면 “당신을 살리는 음식은 이것” 장이 그렇다. 이 장에서는 라멘과 카레라이스 중 뭐로 점심을 먹는 게 좋나, 고등어된장조림 정식과 고기야채볶음 정식 중 어느 것이 점심으로 좋나, 햄버거와 크로켓 중 몸에 좋은 것은, 생과일과 과일주스 중 어느 것이 좋나, 와 같은 뜬금없는 내용들이었다. 차라리 기름 관련 내용을 더 넣었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책은 얇은 편이다. 그럼에도 그 안에 기름에 대한 충분한 이야기를 넣지 못하여 얇은 만큼 공허하다는 느낌이 든다. 다만 식사를 할 때 기름 역시 중요한 에너지원임을 주장한 점은 아주 좋았다. 자신의 식사 습관이나 식단을 돌아볼 기회가 되는 책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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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안에서 이불 안에서
김여진 지음 / 빌리버튼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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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아침에 딱 어울리는 에세이집

[리뷰] 『이 불안에서 이불 안에서』(빌리버튼, 2017.)


9월 첫 주가 시작되었다. 선선한 아침 에세이 한 권을 읽었다. 김여진의 『이 불안에서 이불 안에서』(빌리버튼, 2017.)이다. 다양한 주제를 모아놓은 여타 에세이집과 달리 사랑과 이별이라는 주제가 한 권에 쭉 새겨져있다. 유난히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


“나에게 교훈을 주는 건 대부분 타인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절대로 너와 나 사이에 어떠한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게.”


이 책이 보여주는 모든 주제가 집약된 문구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고 오래도록 그리워하고, 다시 그 때를 돌아보는 순간순간의 생각들이 모여 있는. 이불 안에 들어간다는 건, 밤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잠을 자야 함을 의미한다. 그 순간이면 정신이 몽롱하고 지난 그리움이 몰려온다. 그리움 중에서도 사람에 대한 아쉬움은 가장 크게 몰려온다. 때문에 작가는 에세이집은 불안과 이불을 접목시켜 상실의 느낌을 표현해나가고 싶었던 것이리라.



에세이는 전반적으로 가벼웠다. 흘러나오는 감정을 2차원적으로 적은 듯하다. 감정을 더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그 순간과 닮은 비유나 감동적 문구를 떠오르는 대로 적은 책과 같았다.


“어젯밤, 눈은 따가워지고 피곤이 몰려오는데 잠만은 오지 않았다. 아침에 마신 반 잔의 커피가 원망스러웠다. 밤늦도록 눈을 감고 있다가 겨우 잠들었지만 깊은 잠은 아니었다.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가는 꿈을 꾸었다”는 특징의 문구들이 많았는데 남의 일기를 몰래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안네 프랑크의 일기처럼 현재 배경이나 시대가 드러나지는 않고 그래서 문학적 가치 역시 들어 있지는 않았다. 의식이 중점인 글들이다.


사소한 에세이 묶음으로 생각하며 가볍게 읽다가 문뜩 더는 읽지 못하고 책을 덮어버렸다. 불현 듯 아련함이 몰려와서 글에 집중을 못했다. 잠시 책을 덮고 추억에 빠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가을 아침에 읽기 딱 좋은 에세이집이라고. 글쓴이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불 속에서 이별과 상실의 감정에 젖어 있었을까 생각을 했다.


이불 속에서 느낀 이별과 상실


글에는 종종 타인의 생각도 인용되어 있는데 그 중 맘에 들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앤디 워홀은 한 가지 종류의 향수를 딱 삼 개월 동안만 뿌렸다고 한다. 얼마가 남았든 상관없이 그에게 향수의 유효기간은 개봉 후 삼 개월. …… 그렇게 하면 언제고 향수의 뚜껑을 열어 향기를 맡았을 때, 그 향수를 뿌렸을 시기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 부분이다. 혼자만의 시간 속에 있으면 예쁜 옷이나 신발, 가방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진다. 내 존재를 증명해줄 가장 좋은 방법은 향기다. 그래서인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나 역시 유독 향에 집착하는 편이다. 앤디 워홀도 다양한 감정 중 후각을 중요시 여긴 걸 보니 고독한 사람이었나 생각이 든다.

읽다보면 종종 혼란스러운 전개가 있다. “정신을 가다듬어야지. 몸을 움직이기로 하고 잠에서 방금 깨어난 기분으로 샤워를 하고 나오니 새소리가 들렸다. 같은 박자로 여덟 번을 운다.”를 보더라도 시점이 두 번 바뀌어 있다. ‘나’라는 1인칭에서 ‘새’라는 3인칭으로 바뀐 것이다. 글쓰기에는 기본 법칙이 있게 마련이다.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를 쓰더라도 중심 시점이 있어야 읽는 이가 편히 읽을 수 있다.


글쓴이는 자신의 친구 사연들도 글 속에 녹여 내어 함께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어나갔다. 독특한 작법이었다. 대화체가 많이 들어간 에세이는 처음이었다. 하나의 주제로 쭉 이어나가는 솜씨는 좋았다. 여러모로 괜찮았다. 덕분에 가을에 흠뻑 젖어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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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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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날 다가오자 사라진 남편, ‘일본인 증발’

[리뷰] 자발적 증발 선택 … 원인은 성공 압력과 체면 / 『인간 증발』(레나 모제 저, 이주영 역, 책세상, 2017.)


이것은 납치나 인신매매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인간 증발(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레나 모제 저, 이주영 역, 책세상, 2017.)은 프랑스 저널리스트와 프랑스 르포 사진작가가 5년 간 일본을 탐사한 보고서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인구수에 비해 많은 사람이 증발한 국가다. 불가사의하다. 저자는 책의 첫 표지에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 대목을 적어 놓았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물의 이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거의 비슷한 비율로 숨어 있다.” 비슷하게 우리나라의 소설가 이승우도 책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를 통해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숨은 본질을 살펴보길 주장하기도 했다.


어느 자본주의 국가가 그렇듯 일본도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저자는 이를 ‘압력솥’이라 표현하였다. 약한 불 위에 올라간 압력솥 같은 사회에서 압력을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리는 사람들. 매일 일본인의 90명 정도가 자살을 한다. 자살은 앞으로 작가가 소개할 증발과도 관련이 있는데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일본인들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일본인들은 죽는 순간까지 타인의 트라우마를 걱정하며 열차에 뛰어들기를 주저하고 조용한 곳으로 숨는다고 한다.




스스로 증발의 삶을 택한 일본인들


스스로 증발해 숨어 사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은 과연 누굴까.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잘못된 곳에 투자를 했다가 4억 엔을 날려 고객들의 비난과 책임을 받게 된 남자. 이 남자는 1970년 어느 날 아침 아무런 말도 없이 무작정 열차를 타고 그대로 사라졌다. 작가는 이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떠나는 순간 새로운 삶 따위는 생각도 않고 도망쳤다고 한다. 오직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했던 것이다. 남자가 말하는 ‘살아남는 것’이 ‘떠남’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일본 경제가 큰 위기를 맞던 1990년대는 빚쟁이들의 눈을 피해 야반도주하는 자들이 특히 많았다. 특히 1990년대 청년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금융 위기로 인해 부채가 심각한 사회와 맞서야 했다. 백수로 지내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를 전전했고,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의 집에 얹혀살았다. 이 과정에서 증발하는 사람들이 대거로 발생했다. 1990년대 이 시기는 일본인들에게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린다. 엄격한 교육으로 늘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나 결혼, 직장 스트레스는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일본은 독특하게도 고립된 섬 안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탄생시켜 뿌리내리고 있었다. 국수주의 감정 또한 강력하여 자신들이 다른 민족과 다르다는 집단 우월감이 높은 상태였다. 이런 일본인들에게 체면이란 그래서 매우 중요했다. 프랑스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미국이나 사교육, 권력, 부, 명예 문제가 같은 현상으로 일어날지라도 그에 대한 반응은 ‘문화’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여기서 일본인들의 반응은 자발적 증발이었다.


경제 악화로 현실을 도피하려는 부류


책이 인간의 증발을 말하고는 있지만 어디론가 떠나는 것만이 도피는 아니었다. 스스로가 만족하는 것이 가벼운 손짓이건 춤이건 노래건 코스프레건 상관없이 현재를 생각하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증발과 같았다. 예로 오타쿠들을 들 수 있다. 사회적 압박으로 가상의 세계에 빠져 현실과는 다른 삶을 상상하며 스스로 ‘사라져 간다’고 힘주어 말하는 부류다. 오타쿠들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신만의 취미에 몰두하며 혼자 방에 틀어박혀 생활한다. 일본 열도에만 약 30만 명 정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긴장하고 불안함을 간직해야만 정상적인 삶이라 할 수 없는 시대이기에 가상의 삶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인들의 증발은 그들의 경제를 통해서도 이해가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발전에 전념한 일본은 1980년대에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버블경제’가 붕괴한 이래 2001년 말까지 장기불황을 겪게 된다. 4.6%에 달하던 연평균 성장률은 1992년부터 2001년까지의 잃어버린 10년 동안에는 0.9%대로 하락하고 만다. 얼마나 많은 일본인들이 가슴을 졸이고 초조한 나날을 보냈을까.


부동산 가격이 매달 두 배로 뛰어오르던 버블경제 시기에 일본 야쿠자들은 합법적 비즈니스로 뛰어들었는데, 정재계 인사들과 골프를 치거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둥 서로 뒤를 봐주는 관계를 맺었다. 이 과정에서 사업가들은 개발 예정지의 낡은 집을 허물고 사람들을 내쫓아 새집을 건설하기 위해 야쿠자들을 동원한다.


비슷한 시기 일본 서민들은 여기저기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야 했다. 연 100%가 넘는 과도한 이자율이 적용된 대부업체들이 많았는데, 이들 대부업체 역시 은밀히 야쿠자와 손을 잡고 있었다.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만이 죽어나가게 되어버린 것이다. 빚을 갚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야반도주를 택했고,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야반도주한 사람의 수가 매년 12만 명을 기록할 정도였다고 한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체면 문화


한 예로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하고는 평소처럼 아내의 배웅을 받던 남자는 월급날이 가까워지자 말끔히 차려입고 지하철에 탄 채로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단순히 직장인뿐 아니라 시험을 망친 대학생, 남편이 바람난 여자, 기숙사 잡일에 진절머리가 난 대학생 역시 번번이 야반도주를 했다. 유행하는 가벼운 사회 문화 현상처럼 인간의 증발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도주한 자들은 거의 홀몸으로 나왔는데 버리고 온 가족이 그리워 일부는 가까운 곳에 은밀히 머물거나 가명으로 다른 직장을 다녔다. 야반도주가 일상화되자 이삿짐센터들은 세 배나 비싼 가격으로 ‘야반 도주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회 문제에 맞게 이익을 추구하는 변형된 집단이 나온 것이다. 또한 사라지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들을 찾는 탐정 업체도 성행하게 된다.


안타까운 건 가족과 지인들조차 사회에서 도망치는 것을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일본 사회의 특성이었다. 예로, 불법 사채로 협박에 시달리던 40대 남자가 자가용 안에 신분증을 남긴 채 그대로 증발한 사건이 있는데, 탐정이 이 남자를 발견해 모친에게 숨어 지내는 곳을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모친은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저 아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마치 일제강점기 때 정조를 잃고 환향한 여인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려는 가족들의 반응과도 같았다. 그것이 자식에게 옳다고 여긴 건지 아니면 사회의 손가락이 더 두려운 건지. 증발했던 남편이 돌아와 다시 살게 된 한 가정의 경우 언제 갈라설지 모를 정도로 위태로운 상태가 오래도록 이어졌다니 말이다.


작가는 증발한 인간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도주한 이들이 비슷한 장소에 모여 있음을 알았다. 흩어지지 않고 모여 있었다. 입시에 실패해 부모 곁에서 증발한 스무 살 청년의 경우 부모님께 수치심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아 떠났으면서도 다른 증발한 이들과는 거리낌 없이 살고 있었다. 청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낯선 사람은 두렵지 않다.” 친인척이 남보다 더 두려워 증발한 것일까.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들은 과거의 관습 속에서 살아간다고 적었다. 윗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마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졌는데,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가능한 다른 사람들에 빚을 지지 않으려 애쓴다고 한다. 빚은 곧 자신의 체면과도 같기 때문이었다. 체면 잃은 자신의 모습을 본 친인척을 떠나 새로이 체면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정박한 것. 그럼에도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혼자가 되기보다는 무리 속에 끼어 있었고 그렇게 하나둘 모인 것이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규정에 들지 못해 떠도는 이들


부유한 자들이 즐거이 웃는 소리가 가득하다고 꼭 나쁜 사회는 아니며, 가난이 적다고 또 그 사회가 올바른 것은 아니다. 사회의 척도를 세우는 기준이 잘못되면 사람들은 그 안에서 혼란을 느끼게 된다. 무언가를 규정해 놓은 사회 속에서 규정의 옳고 그름을 생각지도 못한 국민들이 세뇌된 것처럼 규정을 읊조린다. 그리고 규정 안에 들지 못한 자신들을 낙오자로 여긴다.


한편으로는 규정이 없다면 자유로울지는 몰라도 자신들 하나하나가 규정이 되기에 ‘사회’라는 문화 자체는 없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규정은 불가피하게 제정되어야 하며 이에 맞지 않아 배척당하는 이들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규정의 범위가 더 넓어져 세계적으로 변하면 더욱 참을 수 없게 된다. 세계화는 나라만의 특정 문화를 으스러뜨리고 더욱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책 중간 중간 으스스한 골목과 주온이 나올 듯한 주택, 링이 튀어 나올 것 같은 폐가 사진들이 실려 있었다. 색감이 모두 어두웠다. 인물 사진도 종종 있는데 그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순진해 보이는 얼굴에 푹 피인 눈과 주름진 이마, 근심어린 눈매와 겁에 질린 듯 떠는 광대와 입 꼬리가 있으며, 곧 울 것 같은 눈망울과 함께 두려움에 경직되어 꽉 주먹 쥔 손이었다. 벽 뒤에 숨어 자신을 쫓는 이들을 망보는 그들의 핏발 선 눈 위의 흐릿한 조명은 그를 심문하듯 비추고 있었다. 증발한 사람들의 모습이 사진 속에서 살아 움직이듯 실감났다.


산야는 사회에서 배척받는 이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었다. 감추고 싶은 파괴된 인간들이 산야에 있음을 알고도 일본은 그대로 두고만 있었다. 멀쩡한 일본 국민들 역시 산야의 증발한 사람들 소식을 알았지만 그들을 일본 제국의 치부로 여겨 보고 싶지 않아한다. 차라리 그들이 죽는 것이 낫다할 정도라는 부류도 있었다.


사회에서 배척하고 가정에서 외면하다


그래서인지 일본인들은 여전히 이질적인 것에 진저리를 친다. 이질적인 것이 들어오면 배척을 하곤 한다. 지금의 규정조차 버거운데 새로운 무언가를 습득할 기력 따위 찾을 생각만 해도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저자는 처음 책을 구상하고 일본인 통역사를 구하는데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통역사들과 처음 이메일을 교환할 때는 분위기가 좋다가도 ‘인간증발’이라는 주제로 나아가면 어김없이 거절을 당했다. 실패와 마주해야 하는 두려움이나 불편한 문제를 질문해 나가야 하는 곤란한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책의 뒷부분에는 도진보 절벽 이야기가 나온다. 절망한 사람들이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지는 악명 높은 장소다. 깎아지른 절벽들은 푸른 이끼로 가득해 잘못 발을 디뎠다가는 컴컴한 물속으로 떨어져 빨려 들어가기 일쑤였다. 도진보 절벽을 보러 일본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이 몰려온다고 하는데, 자살자들 역시 많다고 한다. 하도 자살자가 많아 경찰관이 순찰을 돌 정도다.


그런데 자살을 막는 경찰이 있음에도 자살자들은 절벽을 찾는다. 왜일까. 경찰관들은 자살자들의 움직임을 잘 알고 미리 다가가 “괜찮으십니까?”라고 소곤거리며 묻는다고 한다. 이때 자살자들은 얼굴이 빨개져 대부분 울음을 터뜨리곤 한다. 따뜻한 한 마디를 기다려온 이들이었다. 이런 식으로 경찰관들은 7년 간 248명을 구했다.


함께 사는 친인척에게조차 외면 받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기댈 곳을 찾지 못해 증발을 택해왔다. 마포대교로 향하는 비틀거리는 발걸음들이 자살 방지 문구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울컥한 마음이 단지 몇 줄에 치유를 받겠는가. 사람의 손길이 직접 필요할 때다. 실제로 일본 도진보 절벽에서 자살하려다 생각을 바꾸게 된 한 여자는 대화 상대가 필요할 때마다 아기를 안고 다시 절벽을 찾는다고 한다.


작가는 책을 써 나가면서 개개의 문제를 통해 사회 문제로 교묘히 확대했다. 사례가 너무 많고 작가의 주장이 거의 없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만큼 더 객관적으로 인간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라 알차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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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스위치를 켜다 - 고도지능 아스퍼거 외톨이의 기상천외한 인생 여정
존 엘더 로비슨 지음, 이현정 옮김 / 동아엠앤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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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퍼거 환자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말하다

[리뷰] 세상을 보는 ‘아스퍼거 증후군’의 다른 시각 … 『뇌에 스위치를 켜다』(동아엠앤비, 2017.)


자신에게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지 모르고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 날 “당신은 아스퍼거입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떨까. 실제로 『뇌에 스위치를 켜다(고도지능 아스퍼거 외톨이의 기상천외한 인생 여정)』(동아엠앤비, 2017.)의 저자 존 엘더 로비슨은 40대에 들어선 1997년 아스퍼거 판정을 받았다. 책 제목처럼 뇌 실험은 정말로 우리 뇌에 스위치를 켜줄까. 켠다면 어떤 스위치일까.




아스퍼커 증후군이 있는 자들을 보면 남들과 대화는 하지만, 말투에 운율이 부족하거나 또는 과장된다. 때론 눈치가 없다는 평을 받는데, 의사소통 중 얼굴 표정과 몸짓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어서이다. 게다가 말을 너무 많이 하거나 너무 적게 하는 경향이 있고 또한 말할 때 억양이 이상하고 문맥과 다른 부적절한 단어를 반복하기도 한다. 즉 대인관계에 관심이 있으나 보통 사람이 듣기에 독특한 말을 하여 상호교류가 잘 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이의 자서전


아스퍼거에 대한 전문 의학 책 설명은 너무 어렵다. 그러나 『뇌에 스위치를 켜다』는 의학적 설명을 하나의 이야기처럼 풀어내 일반인들의 이해를 도왔다. 저자가 바로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이기에 내용이 더 선명한 점이 있었다. 이야기는 사고 장면을 목격하는 저자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시작된다. 심리추리 소설 같은 전개이지만 주인공인 저자는 사고 현장에 대한 어떠한 공포나 두려움 없이 무덤덤하게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는 읽는 이들을 약간은 소름끼치게 한다. 사건 현장 목격자이지만 제 3자의 입장으로 사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스퍼거를 가진 저자는 가식을 부리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그래서 놀이터나 학교에서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고 힘센 또래 애들에게 무시당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저자는 훗날 결혼을 하는데 그의 아들 역시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었다. 저자의 선조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니 다소 유전적인 부분이 있는 듯하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사회적 행동을 본능적으로 가지거나 깨닫지만 저자는 흉내를 내며 살아가야 했다. 사회적으로 거의 바보였다. 그러다가 린지 오버만 박사를 만나고, 자폐 증상 완화법 실험 대상이 된다. 전자기장을 이용해 뇌 피질에 신호를 유도하고 자극을 주어 사회 교류를 높이는 실험이었다. 여기서 저자는 뇌의 과부하를 자신의 전공인 전자회로 과부하와 연관시켜 묘사하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저자는 실험 전체 과정을 소설의 근본 배경으로 깔고서 새로운 이야기를 뒤에 깔아 전개를 해나갔다. 무엇보다 책을 쓴 1순위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서라며 자신의 치부부터해서 온갖 일생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책은 전개가 될수록 아스퍼거 증훈군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였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생활이지만 저자에게는 정말로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게다가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관련된 뇌 과학 지식을 “뇌 속 전선의 방향성은 무엇일까…… 사람들의 신체가 서로 비슷한 것처럼 뇌의 전선도 비슷한 패턴으로 구성될 거다…… 뇌과학계 전반에서 그 패턴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처럼 전문 용어보다는 쉬운 용어로 설명한 점이 매우 좋았다.


TMS 실험으로 세상의 감정을 느끼다


책이 쓰인 시기는 저자의 감정이 평범하게 바뀐 뒤였다. 이는 문장 곳곳에 나온다. “나는 긴장을 풀고 에리카가 손에 전극을 붙이게 나뒀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왠지 강아지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대고 싶은 기분이었다.” 등은 상대인 강아지의 기분을 알아야만 묘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또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찾으러 내게 전화하는 어머니들을 보니 왠지 슬퍼졌다.”는 부분도 그렇다. 치료 전 같으면 “전화를 해서 부탁을 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이지만 어머니들의 ‘슬픈 감정’까지 느끼진 못했을 것이다. 이런 묘사를 책에 했다는 건 책을 쓸 당시 저자의 사회성이 많이 좋아졌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저자는 중간 중간 일반인이 모를 자폐인만이 느끼는 세상을 실감나게 묘사해나갔다. 그 중 첫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자신의 말투에 톤이 생김을 깨달은 장면은 인상 깊었다. 말의 톤이 올라가거나 내려갔다는 점은 감정이 실려 있음을 의미했다. 이와 함께 저자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 톤에 담긴 감정도 느꼈다. 목소리들의 굵고 가늠보다도 따스함, 분노 등의 느낌을 말이다. 당시는 TMS(모든 뇌 자극 기술을 통칭해 일컫는 말.) 첫 치료 효과가 끝났어야 할 시간이지만 무슨 일인지 저자에게는 그 효과가 조금 더 지속되었던 셈이다. 집에 가는 도중 세상의 진실을 처음으로 맛본 저자는 황홀해 했다. 마치 색맹인 사람이 세상에 여러 색이 존재함을 잠시 맛보고 다시 흑백으로 돌아간 것과 같았다. 저자의 경우도 그랬다. 다시 색을 볼 때까지 색맹인 사람이 색깔을 상상하며 버텨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험이 진행될수록 감정에 대한 이해가 한 폭 더 넓어져갔다. 노래 한 곡 한 곡마다 숨어 있는 감정을 느끼는 시간도 늘었다. 이전 같으면 저자는 통찰 없이 감정을 느꼈었다. 예로 ‘저러다 저 사람 돌아가시겠다.’고 먼저 생각 후 슬픔이 밀려와 울었다. 이제는 그 사람이 되어 느끼고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이 변하고 살찌기 시작했음을 알았다. 뇌의 한 부위를 억제하여 다른 부위가 소통할 기회를 가진 것, 바로 뇌 가소성으로 뇌에 새로운 길이 닦인 것이다.


저자가 아스퍼거 증후군일 때는 알지 못했던 사실이 또 있었다. 안면 인식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컴퓨터 테스트를 받던 저자는 의사가 보여 준 얼굴 사진 실험에서, 맨 처음에 본 얼굴이 언제 다시 화면에 나타나는지를 맞추지 못했다. 심지어 아는 사람일지라도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만나면 알아보지 못했다. 그동안 사람 자체를 상황 속에서만 인식해왔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고 더 슬퍼지다


아버지의 죽음을 에피소드로 풀어내면서 동시에 의학적 설명을 끼워 넣은 부분이 있는데, 아스퍼거 환자가 썼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훌륭한 글 솜씨였다. 한편으로는 특정 이야기를 하다가 마저 끝내지 못하고 훨씬 뒤에 다시 이어서 하는 혼란스러운 전개를 몇 번 보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책이 괜찮은 건 자신의 경험 뿐 아니라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타인을 관찰한 경험과 뇌 치료에 대한 양 면을 동시에 설명한 것으로 인해서였다.


저자와 함께 지원했던 어떤 분은 뇌가 나아지고 나서 과거 자신이 실패했던 인간관계들을 생각하며 슬퍼했다고 한다. 인생에서 뭘 잘못했는지 감각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저자와 달리 왜 자신들이 실패자들인지를 알게 되어 괴로워한 것이다. TMS는 저자에게 음악과 색깔의 아름다움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줬고, 사회성 역시 증가시켰다. 그러나 TMS는 동시에 감정적 순진무구함을 앗아가 버렸다. 저자가 자신의 달라짐을 인지하면서 글을 쓴 부분이 있다. “감정적으로 더 똑똑해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자…… 내가 상상하던 그들이 아니었다.”


어릴 적 친구들이 “여기 내 새 덤프트럭 좀 봐”라고 하면 저자는 “진짜 멋있네” 대신 “나는 헬리콥터가 좋아” 식의 엉뚱한 답을 하곤 했었다. 답을 한 이후로도 무슨 말실수를 했는지 자주 곱씹고 며칠이나 걱정과 불안에 시달렸다. 그러다 15살에 자신에게 절대음감이 있음을 알고 홀로 그 길로 쭉 나아간 뒤로 탈 없이 살다가, 결혼을 했다. 저자의 아내는 저자가 타인의 감정에 감을 잡지 못할 때 이를 해석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TMS 덕에 저자가 타인의 감정을 읽게 되어 아내의 도움이 필요 없게 되자, 아내와 대화를 하지 않게 되고 이후 아내는 우울증에 걸렸다. 저자는 아내의 우울증을 느끼고는 아내를 더욱 멀리했다. 때문인지 훗날 아내는 백혈병으로 죽게 된다. 이를 통해 저자는 TMS가 꼭 자신의 삶을 좋게 바꾼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TMS 실험 이후 몇 주 동안 스스로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면서 저자가 깨달은 것이 하나 더 있다. 남들의 감정을 읽으면서도 자신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남들로부터 느껴지는 가장 강한 감정 중 하나가 바로 그들 자체의 불안감이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런 묘사는 오직 저자만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아스퍼거 증후군이 없다하더라도 꼭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다름에서 나오는 창조적 능력


저자는 뇌 과학의 현주소를 마지막에 소개하였다. 뇌의 ‘다른’ 연결성으로 창조적 재능을 가진 이들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베토벤, 뉴턴, 모차르트, 아인슈타인, 빌 게이츠 등이 있다. 이들을 TMS 치료로 평범하게 만들어버렸다면 어땠을까. 뇌 자극 기술이 더 발전하고 유명세를 탈수록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뇌를 개선하겠다고 찾아 나서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아직 뇌에 대한 이해는 완전하지 못하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감정 표현에 경험이 더 필요하고 시간이 더 걸리는 일일 뿐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나이가 들어 이런저런 경험을 몇 번 하자 남들이 비슷한 경험을 할 때 어떤 기분일지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랬다. 질환이 아니고 남들보다 조금 느린 것일 뿐이었다.


TMS는 아직 FDA의 공식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다. 저자는 지원자로서 참여했을 뿐이다. 장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TMS가 활성화되면 미래에 사람들은 뇌를 무분별하게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저자는 세상을 움직이는 남다른 창조성의 불씨도 함께 꺼져버리진 않을까 걱정했다. 책을 덮고 뇌 장애를 가졌다는 이가 세상을 이토록 섬세하게 느끼고 본다는 것에 한 편으로는 부러움이 일었다. 어쩌면 로봇이 만연할 미래 사회에 창의성을 획득하려는 인류의 돌연변이적 진화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간을 모두 평범하게 만들려는 뇌 과학자들의 시도를 다시 보게 되었고, 세상을 사는 ‘다른’ 이들의 입장을 이해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알찬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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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책
앤 후드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시간의 고통은 책으로 치유된다

[리뷰] 상처받은 시간들을 위한 『내 인생 최고의 책』


시간의 고통을 북클럽 활동으로 아름답게 승화시킨 주인공이 있다. 어차피 시간이 흘러야 끝나는 고통이라면 그 시간을 너무 우울하게는 보내지 말자는 취지로 주인공이 선택한 것이다. 주인공 에이바는 “그래도 책을 읽다보면 시간이 흐르더라고요.”라면서 종종 스스로를 위로했다. 도대체 주인공은 무슨 일을 겪었기에 시간이 흐르기를 간절히도 바라는 것일까.

때는 크리스마스가 끼어 있는 12월이었다. 사랑이 싹트고, 새해를 마무리하고, 보고픈 사람들을 만나는 시기다. 그런데 눈이 쌓인 추운 거리를 주인공 에이바는 외롭게 거닐었다. 원래 남편이 있던 두 아이의 엄마였지만 어느 순간 남편에게 버림받은 주인공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앤 후드의 『내 인생 최고의 책』 (책세상, 2017.)은 그렇게 시작을 한다.




책에서 흐르는 시간은 1년이고 공간 배경은 프랑스 파리와 어느 북클럽이 주였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액자식 구성이 간간히 끼어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에이바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것에 보다 못한 친구 케이트가 북클럽에 초대를 한다. 총 10명으로 구성된 클럽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간단히 소개 후 앞으로 1년간 함께 이야기 나눌 책을 뽑는 시간을 가진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책을 뽑는 시간이었다. 에이바는 어릴 적 알 수 없는 여인으로부터 “너를 위한 책이다”는 말과 함께 받은 책을 내세운다.


『내 인생 최고의 책』의 북클럽에 등장하는 책들은 실제로 앤 후드가 몇 해에 걸쳐 아는 사람들로부터 추천받은 책 목록들이라고 한다. 이는 소설에 녹아들었고, 소설 속 인물들이 나름대로 선정한 책에 대한 사연은 매달 조금씩 밝혀지게 된다. 주인공 에이바가 고른 책의 경우 어릴 적 여동생 릴리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충격 받은 엄마가 1년 쯤 뒤 다리위에서 강으로 떨어진 뒤 받은 것이다. 제목은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로 주인공 엄마가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의미로 살아 있는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포기하고 죽은 영혼을 만나 함께 동굴에 남기로 결심한다는 내용이었다.


우연히도 에이바의 딸 매기도 프랑스에 있는 동안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를 읽게 된다. 당시 작가가 되려고 파리로 가 있던 갓 스무 살 매기는 자기보다 20살 많은 남자를 만나 마약에 빠졌다가 방황도 하며 정착 못한 생활을 했었다. 정신이 없던 에이바는 그런 딸을 잘 돌보지 못했는데, 자신마저 북클럽에 적응을 잘 못하고 있던 때였다. 이에 반해 당시 다른 클럽 인원들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읽고 일주일 동안 요리에 매달리거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고 남북 전쟁 이전 시대 드레스를 입지 못하거나, 하며 즐거운 독서를 누리고 있었다. 에이바는 ‘남자가 아내를 원한다’는 내용을 보고 비난을 하거나 ‘사랑과 결혼과 연애로 찬 책’을 공들여 읽기를 거부하는 등 처음에는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두 달 정도 지나 에이바는 차츰 바뀌게 된다. 북클럽 선정 책인 『안나 카레니나』의 첫 줄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를 읽을 때에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자신이 선정한 책의 저자를 찾아보려고 노력을 한다. 이 과정에서 에이바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가 실은 죽지 않았고 심지어 책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를 쓴 저자가 가명을 쓴 엄마였다는 것이다. 엄마는 죽지 않았고 이모와 함께 오래 전 프랑스에 가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에이바와 엄마가 만나면서 아름답게 끝난다.


『내 인생 최고의 책』은 몇몇 작위적인 부분이 있었다. 사건들이 자연스럽지 않고 갑작스레 튀어나오거나 진행되는 부분들이 그랬다. 또한 북클럽에서 토의되는 책들에 대해 작가만의 생각이나 감상이 들어 있지 않은 것도 아쉽기는 했다. 한편으로는 『내 인생 최고의 책』 의 완성도는 문장력이 아닌 내용이 전하는 따스함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자 앤 후드는 실제로 다섯 살짜리 딸을 급성 질환으로 단 며칠 만에 여읜 적이 있다. 그 충격으로 글을 전혀 읽을 수 없게 되었다가 일 년 남짓 지나 다시금 첫 책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 책을 펼쳐서 끝까지 한숨에 읽었다. 그러고 나서 울었다. 잃어버린 딸을 생각하며 울었다.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생각하며 울었다…… 말이 주는 위로를 생각하며.” 자신이 책으로 고통을 치유 받은 것처럼 독자들 역시 그러길 바라는 점이 있었다. 책에는 대여섯 개의 사건이 마지막에 가서 하나로 합쳐지는 장관이 드러난다. 분열되었던 저자의 혼란스러움이 책을 쓰면서 회복이 된 듯해 안쓰러우면서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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