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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스위치를 켜다 - 고도지능 아스퍼거 외톨이의 기상천외한 인생 여정
존 엘더 로비슨 지음, 이현정 옮김 / 동아엠앤비 / 2017년 8월
평점 :
품절
아스퍼거 환자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말하다
[리뷰] 세상을 보는 ‘아스퍼거 증후군’의 다른 시각 … 『뇌에 스위치를 켜다』(동아엠앤비, 2017.)
자신에게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지 모르고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 날 “당신은 아스퍼거입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떨까. 실제로 『뇌에 스위치를 켜다(고도지능 아스퍼거 외톨이의 기상천외한 인생 여정)』(동아엠앤비, 2017.)의 저자 존 엘더 로비슨은 40대에 들어선 1997년 아스퍼거 판정을 받았다. 책 제목처럼 뇌 실험은 정말로 우리 뇌에 스위치를 켜줄까. 켠다면 어떤 스위치일까.

아스퍼커 증후군이 있는 자들을 보면 남들과 대화는 하지만, 말투에 운율이 부족하거나 또는 과장된다. 때론 눈치가 없다는 평을 받는데, 의사소통 중 얼굴 표정과 몸짓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어서이다. 게다가 말을 너무 많이 하거나 너무 적게 하는 경향이 있고 또한 말할 때 억양이 이상하고 문맥과 다른 부적절한 단어를 반복하기도 한다. 즉 대인관계에 관심이 있으나 보통 사람이 듣기에 독특한 말을 하여 상호교류가 잘 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이의 자서전
아스퍼거에 대한 전문 의학 책 설명은 너무 어렵다. 그러나 『뇌에 스위치를 켜다』는 의학적 설명을 하나의 이야기처럼 풀어내 일반인들의 이해를 도왔다. 저자가 바로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이기에 내용이 더 선명한 점이 있었다. 이야기는 사고 장면을 목격하는 저자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시작된다. 심리추리 소설 같은 전개이지만 주인공인 저자는 사고 현장에 대한 어떠한 공포나 두려움 없이 무덤덤하게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는 읽는 이들을 약간은 소름끼치게 한다. 사건 현장 목격자이지만 제 3자의 입장으로 사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스퍼거를 가진 저자는 가식을 부리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그래서 놀이터나 학교에서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고 힘센 또래 애들에게 무시당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저자는 훗날 결혼을 하는데 그의 아들 역시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었다. 저자의 선조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니 다소 유전적인 부분이 있는 듯하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사회적 행동을 본능적으로 가지거나 깨닫지만 저자는 흉내를 내며 살아가야 했다. 사회적으로 거의 바보였다. 그러다가 린지 오버만 박사를 만나고, 자폐 증상 완화법 실험 대상이 된다. 전자기장을 이용해 뇌 피질에 신호를 유도하고 자극을 주어 사회 교류를 높이는 실험이었다. 여기서 저자는 뇌의 과부하를 자신의 전공인 전자회로 과부하와 연관시켜 묘사하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저자는 실험 전체 과정을 소설의 근본 배경으로 깔고서 새로운 이야기를 뒤에 깔아 전개를 해나갔다. 무엇보다 책을 쓴 1순위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서라며 자신의 치부부터해서 온갖 일생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책은 전개가 될수록 아스퍼거 증훈군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였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생활이지만 저자에게는 정말로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게다가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관련된 뇌 과학 지식을 “뇌 속 전선의 방향성은 무엇일까…… 사람들의 신체가 서로 비슷한 것처럼 뇌의 전선도 비슷한 패턴으로 구성될 거다…… 뇌과학계 전반에서 그 패턴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처럼 전문 용어보다는 쉬운 용어로 설명한 점이 매우 좋았다.
TMS 실험으로 세상의 감정을 느끼다
책이 쓰인 시기는 저자의 감정이 평범하게 바뀐 뒤였다. 이는 문장 곳곳에 나온다. “나는 긴장을 풀고 에리카가 손에 전극을 붙이게 나뒀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왠지 강아지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대고 싶은 기분이었다.” 등은 상대인 강아지의 기분을 알아야만 묘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또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찾으러 내게 전화하는 어머니들을 보니 왠지 슬퍼졌다.”는 부분도 그렇다. 치료 전 같으면 “전화를 해서 부탁을 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이지만 어머니들의 ‘슬픈 감정’까지 느끼진 못했을 것이다. 이런 묘사를 책에 했다는 건 책을 쓸 당시 저자의 사회성이 많이 좋아졌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저자는 중간 중간 일반인이 모를 자폐인만이 느끼는 세상을 실감나게 묘사해나갔다. 그 중 첫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자신의 말투에 톤이 생김을 깨달은 장면은 인상 깊었다. 말의 톤이 올라가거나 내려갔다는 점은 감정이 실려 있음을 의미했다. 이와 함께 저자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 톤에 담긴 감정도 느꼈다. 목소리들의 굵고 가늠보다도 따스함, 분노 등의 느낌을 말이다. 당시는 TMS(모든 뇌 자극 기술을 통칭해 일컫는 말.) 첫 치료 효과가 끝났어야 할 시간이지만 무슨 일인지 저자에게는 그 효과가 조금 더 지속되었던 셈이다. 집에 가는 도중 세상의 진실을 처음으로 맛본 저자는 황홀해 했다. 마치 색맹인 사람이 세상에 여러 색이 존재함을 잠시 맛보고 다시 흑백으로 돌아간 것과 같았다. 저자의 경우도 그랬다. 다시 색을 볼 때까지 색맹인 사람이 색깔을 상상하며 버텨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험이 진행될수록 감정에 대한 이해가 한 폭 더 넓어져갔다. 노래 한 곡 한 곡마다 숨어 있는 감정을 느끼는 시간도 늘었다. 이전 같으면 저자는 통찰 없이 감정을 느꼈었다. 예로 ‘저러다 저 사람 돌아가시겠다.’고 먼저 생각 후 슬픔이 밀려와 울었다. 이제는 그 사람이 되어 느끼고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이 변하고 살찌기 시작했음을 알았다. 뇌의 한 부위를 억제하여 다른 부위가 소통할 기회를 가진 것, 바로 뇌 가소성으로 뇌에 새로운 길이 닦인 것이다.
저자가 아스퍼거 증후군일 때는 알지 못했던 사실이 또 있었다. 안면 인식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컴퓨터 테스트를 받던 저자는 의사가 보여 준 얼굴 사진 실험에서, 맨 처음에 본 얼굴이 언제 다시 화면에 나타나는지를 맞추지 못했다. 심지어 아는 사람일지라도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만나면 알아보지 못했다. 그동안 사람 자체를 상황 속에서만 인식해왔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고 더 슬퍼지다
아버지의 죽음을 에피소드로 풀어내면서 동시에 의학적 설명을 끼워 넣은 부분이 있는데, 아스퍼거 환자가 썼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훌륭한 글 솜씨였다. 한편으로는 특정 이야기를 하다가 마저 끝내지 못하고 훨씬 뒤에 다시 이어서 하는 혼란스러운 전개를 몇 번 보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책이 괜찮은 건 자신의 경험 뿐 아니라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타인을 관찰한 경험과 뇌 치료에 대한 양 면을 동시에 설명한 것으로 인해서였다.
저자와 함께 지원했던 어떤 분은 뇌가 나아지고 나서 과거 자신이 실패했던 인간관계들을 생각하며 슬퍼했다고 한다. 인생에서 뭘 잘못했는지 감각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저자와 달리 왜 자신들이 실패자들인지를 알게 되어 괴로워한 것이다. TMS는 저자에게 음악과 색깔의 아름다움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줬고, 사회성 역시 증가시켰다. 그러나 TMS는 동시에 감정적 순진무구함을 앗아가 버렸다. 저자가 자신의 달라짐을 인지하면서 글을 쓴 부분이 있다. “감정적으로 더 똑똑해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자…… 내가 상상하던 그들이 아니었다.”
어릴 적 친구들이 “여기 내 새 덤프트럭 좀 봐”라고 하면 저자는 “진짜 멋있네” 대신 “나는 헬리콥터가 좋아” 식의 엉뚱한 답을 하곤 했었다. 답을 한 이후로도 무슨 말실수를 했는지 자주 곱씹고 며칠이나 걱정과 불안에 시달렸다. 그러다 15살에 자신에게 절대음감이 있음을 알고 홀로 그 길로 쭉 나아간 뒤로 탈 없이 살다가, 결혼을 했다. 저자의 아내는 저자가 타인의 감정에 감을 잡지 못할 때 이를 해석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TMS 덕에 저자가 타인의 감정을 읽게 되어 아내의 도움이 필요 없게 되자, 아내와 대화를 하지 않게 되고 이후 아내는 우울증에 걸렸다. 저자는 아내의 우울증을 느끼고는 아내를 더욱 멀리했다. 때문인지 훗날 아내는 백혈병으로 죽게 된다. 이를 통해 저자는 TMS가 꼭 자신의 삶을 좋게 바꾼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TMS 실험 이후 몇 주 동안 스스로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면서 저자가 깨달은 것이 하나 더 있다. 남들의 감정을 읽으면서도 자신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남들로부터 느껴지는 가장 강한 감정 중 하나가 바로 그들 자체의 불안감이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런 묘사는 오직 저자만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아스퍼거 증후군이 없다하더라도 꼭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다름에서 나오는 창조적 능력
저자는 뇌 과학의 현주소를 마지막에 소개하였다. 뇌의 ‘다른’ 연결성으로 창조적 재능을 가진 이들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베토벤, 뉴턴, 모차르트, 아인슈타인, 빌 게이츠 등이 있다. 이들을 TMS 치료로 평범하게 만들어버렸다면 어땠을까. 뇌 자극 기술이 더 발전하고 유명세를 탈수록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뇌를 개선하겠다고 찾아 나서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아직 뇌에 대한 이해는 완전하지 못하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감정 표현에 경험이 더 필요하고 시간이 더 걸리는 일일 뿐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나이가 들어 이런저런 경험을 몇 번 하자 남들이 비슷한 경험을 할 때 어떤 기분일지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랬다. 질환이 아니고 남들보다 조금 느린 것일 뿐이었다.
TMS는 아직 FDA의 공식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다. 저자는 지원자로서 참여했을 뿐이다. 장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TMS가 활성화되면 미래에 사람들은 뇌를 무분별하게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저자는 세상을 움직이는 남다른 창조성의 불씨도 함께 꺼져버리진 않을까 걱정했다. 책을 덮고 뇌 장애를 가졌다는 이가 세상을 이토록 섬세하게 느끼고 본다는 것에 한 편으로는 부러움이 일었다. 어쩌면 로봇이 만연할 미래 사회에 창의성을 획득하려는 인류의 돌연변이적 진화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간을 모두 평범하게 만들려는 뇌 과학자들의 시도를 다시 보게 되었고, 세상을 사는 ‘다른’ 이들의 입장을 이해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알찬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