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안에서 이불 안에서
김여진 지음 / 빌리버튼 / 2017년 8월
평점 :
품절


가을 아침에 딱 어울리는 에세이집

[리뷰] 『이 불안에서 이불 안에서』(빌리버튼, 2017.)


9월 첫 주가 시작되었다. 선선한 아침 에세이 한 권을 읽었다. 김여진의 『이 불안에서 이불 안에서』(빌리버튼, 2017.)이다. 다양한 주제를 모아놓은 여타 에세이집과 달리 사랑과 이별이라는 주제가 한 권에 쭉 새겨져있다. 유난히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


“나에게 교훈을 주는 건 대부분 타인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절대로 너와 나 사이에 어떠한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게.”


이 책이 보여주는 모든 주제가 집약된 문구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고 오래도록 그리워하고, 다시 그 때를 돌아보는 순간순간의 생각들이 모여 있는. 이불 안에 들어간다는 건, 밤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잠을 자야 함을 의미한다. 그 순간이면 정신이 몽롱하고 지난 그리움이 몰려온다. 그리움 중에서도 사람에 대한 아쉬움은 가장 크게 몰려온다. 때문에 작가는 에세이집은 불안과 이불을 접목시켜 상실의 느낌을 표현해나가고 싶었던 것이리라.



에세이는 전반적으로 가벼웠다. 흘러나오는 감정을 2차원적으로 적은 듯하다. 감정을 더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그 순간과 닮은 비유나 감동적 문구를 떠오르는 대로 적은 책과 같았다.


“어젯밤, 눈은 따가워지고 피곤이 몰려오는데 잠만은 오지 않았다. 아침에 마신 반 잔의 커피가 원망스러웠다. 밤늦도록 눈을 감고 있다가 겨우 잠들었지만 깊은 잠은 아니었다.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가는 꿈을 꾸었다”는 특징의 문구들이 많았는데 남의 일기를 몰래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안네 프랑크의 일기처럼 현재 배경이나 시대가 드러나지는 않고 그래서 문학적 가치 역시 들어 있지는 않았다. 의식이 중점인 글들이다.


사소한 에세이 묶음으로 생각하며 가볍게 읽다가 문뜩 더는 읽지 못하고 책을 덮어버렸다. 불현 듯 아련함이 몰려와서 글에 집중을 못했다. 잠시 책을 덮고 추억에 빠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가을 아침에 읽기 딱 좋은 에세이집이라고. 글쓴이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불 속에서 이별과 상실의 감정에 젖어 있었을까 생각을 했다.


이불 속에서 느낀 이별과 상실


글에는 종종 타인의 생각도 인용되어 있는데 그 중 맘에 들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앤디 워홀은 한 가지 종류의 향수를 딱 삼 개월 동안만 뿌렸다고 한다. 얼마가 남았든 상관없이 그에게 향수의 유효기간은 개봉 후 삼 개월. …… 그렇게 하면 언제고 향수의 뚜껑을 열어 향기를 맡았을 때, 그 향수를 뿌렸을 시기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 부분이다. 혼자만의 시간 속에 있으면 예쁜 옷이나 신발, 가방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진다. 내 존재를 증명해줄 가장 좋은 방법은 향기다. 그래서인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나 역시 유독 향에 집착하는 편이다. 앤디 워홀도 다양한 감정 중 후각을 중요시 여긴 걸 보니 고독한 사람이었나 생각이 든다.

읽다보면 종종 혼란스러운 전개가 있다. “정신을 가다듬어야지. 몸을 움직이기로 하고 잠에서 방금 깨어난 기분으로 샤워를 하고 나오니 새소리가 들렸다. 같은 박자로 여덟 번을 운다.”를 보더라도 시점이 두 번 바뀌어 있다. ‘나’라는 1인칭에서 ‘새’라는 3인칭으로 바뀐 것이다. 글쓰기에는 기본 법칙이 있게 마련이다.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를 쓰더라도 중심 시점이 있어야 읽는 이가 편히 읽을 수 있다.


글쓴이는 자신의 친구 사연들도 글 속에 녹여 내어 함께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어나갔다. 독특한 작법이었다. 대화체가 많이 들어간 에세이는 처음이었다. 하나의 주제로 쭉 이어나가는 솜씨는 좋았다. 여러모로 괜찮았다. 덕분에 가을에 흠뻑 젖어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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