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책
앤 후드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시간의 고통은 책으로 치유된다

[리뷰] 상처받은 시간들을 위한 『내 인생 최고의 책』


시간의 고통을 북클럽 활동으로 아름답게 승화시킨 주인공이 있다. 어차피 시간이 흘러야 끝나는 고통이라면 그 시간을 너무 우울하게는 보내지 말자는 취지로 주인공이 선택한 것이다. 주인공 에이바는 “그래도 책을 읽다보면 시간이 흐르더라고요.”라면서 종종 스스로를 위로했다. 도대체 주인공은 무슨 일을 겪었기에 시간이 흐르기를 간절히도 바라는 것일까.

때는 크리스마스가 끼어 있는 12월이었다. 사랑이 싹트고, 새해를 마무리하고, 보고픈 사람들을 만나는 시기다. 그런데 눈이 쌓인 추운 거리를 주인공 에이바는 외롭게 거닐었다. 원래 남편이 있던 두 아이의 엄마였지만 어느 순간 남편에게 버림받은 주인공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앤 후드의 『내 인생 최고의 책』 (책세상, 2017.)은 그렇게 시작을 한다.




책에서 흐르는 시간은 1년이고 공간 배경은 프랑스 파리와 어느 북클럽이 주였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액자식 구성이 간간히 끼어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에이바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것에 보다 못한 친구 케이트가 북클럽에 초대를 한다. 총 10명으로 구성된 클럽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간단히 소개 후 앞으로 1년간 함께 이야기 나눌 책을 뽑는 시간을 가진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책을 뽑는 시간이었다. 에이바는 어릴 적 알 수 없는 여인으로부터 “너를 위한 책이다”는 말과 함께 받은 책을 내세운다.


『내 인생 최고의 책』의 북클럽에 등장하는 책들은 실제로 앤 후드가 몇 해에 걸쳐 아는 사람들로부터 추천받은 책 목록들이라고 한다. 이는 소설에 녹아들었고, 소설 속 인물들이 나름대로 선정한 책에 대한 사연은 매달 조금씩 밝혀지게 된다. 주인공 에이바가 고른 책의 경우 어릴 적 여동생 릴리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충격 받은 엄마가 1년 쯤 뒤 다리위에서 강으로 떨어진 뒤 받은 것이다. 제목은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로 주인공 엄마가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의미로 살아 있는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포기하고 죽은 영혼을 만나 함께 동굴에 남기로 결심한다는 내용이었다.


우연히도 에이바의 딸 매기도 프랑스에 있는 동안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를 읽게 된다. 당시 작가가 되려고 파리로 가 있던 갓 스무 살 매기는 자기보다 20살 많은 남자를 만나 마약에 빠졌다가 방황도 하며 정착 못한 생활을 했었다. 정신이 없던 에이바는 그런 딸을 잘 돌보지 못했는데, 자신마저 북클럽에 적응을 잘 못하고 있던 때였다. 이에 반해 당시 다른 클럽 인원들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읽고 일주일 동안 요리에 매달리거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고 남북 전쟁 이전 시대 드레스를 입지 못하거나, 하며 즐거운 독서를 누리고 있었다. 에이바는 ‘남자가 아내를 원한다’는 내용을 보고 비난을 하거나 ‘사랑과 결혼과 연애로 찬 책’을 공들여 읽기를 거부하는 등 처음에는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두 달 정도 지나 에이바는 차츰 바뀌게 된다. 북클럽 선정 책인 『안나 카레니나』의 첫 줄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를 읽을 때에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자신이 선정한 책의 저자를 찾아보려고 노력을 한다. 이 과정에서 에이바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가 실은 죽지 않았고 심지어 책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를 쓴 저자가 가명을 쓴 엄마였다는 것이다. 엄마는 죽지 않았고 이모와 함께 오래 전 프랑스에 가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에이바와 엄마가 만나면서 아름답게 끝난다.


『내 인생 최고의 책』은 몇몇 작위적인 부분이 있었다. 사건들이 자연스럽지 않고 갑작스레 튀어나오거나 진행되는 부분들이 그랬다. 또한 북클럽에서 토의되는 책들에 대해 작가만의 생각이나 감상이 들어 있지 않은 것도 아쉽기는 했다. 한편으로는 『내 인생 최고의 책』 의 완성도는 문장력이 아닌 내용이 전하는 따스함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자 앤 후드는 실제로 다섯 살짜리 딸을 급성 질환으로 단 며칠 만에 여읜 적이 있다. 그 충격으로 글을 전혀 읽을 수 없게 되었다가 일 년 남짓 지나 다시금 첫 책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 책을 펼쳐서 끝까지 한숨에 읽었다. 그러고 나서 울었다. 잃어버린 딸을 생각하며 울었다.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생각하며 울었다…… 말이 주는 위로를 생각하며.” 자신이 책으로 고통을 치유 받은 것처럼 독자들 역시 그러길 바라는 점이 있었다. 책에는 대여섯 개의 사건이 마지막에 가서 하나로 합쳐지는 장관이 드러난다. 분열되었던 저자의 혼란스러움이 책을 쓰면서 회복이 된 듯해 안쓰러우면서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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