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해! - 100가지 도전에 성공한 청년 모험가의 이야기
최지훈 지음, 김형기 그림 / 처음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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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개였던 내성적 아이가 100가지 도전을 하다

[리뷰] 그냥, ! (100가지 도전에 성공한 청년 모험가의 이야기)(최지훈, 처음북스, 2019.08.01.)

 

100가지 도전이라는 카피를 접했을 때 유튜브에서 ‘100가지 거절이라는 TED 영상이 떠올랐다. 100번을 거절당하며 자신의 꿈을 이뤄가 한 중국계 미국인의 이야기다. 최지훈 작가 역시 105번 째 도전을 통해 이 책 그냥, !를 출간했다. 100여 가지가 넘는 도전이라... 특히 많은 부분은 운동 쪽에 도전이 많았다. 나라면 감히 못 했을 도전 목록들이다.

 

모험가 최지훈 씨는 사실 본인이 도전과 성공의 아이콘이라기보단 실패의 아이콘에 더욱 가깝다고 고백했다. 원래 선천적으로 게으르고 대인기피증이나 고소공포증이 있기 때문이다. 참 신기하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도전을 해낼 수 있었을까. 특히 집안 사정이 녹녹치 않아서 정말 많은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했던 그이다. 다만 그냥, 하다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학창 시절 쫄개라고 불릴 만큼 내성적이고 우유부단한 최지훈 씨. 그는 게임을 더 하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야간 자율학습을 피해 체대 입시학원을 다니게 됐다. 그러면서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터닝 포인트가 생긴 것이다. 체육교육과를 목표로, 모의고사 꼴찌이던 학생이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 성적이 안 되니 운동으로 승부를 보아야 했던 것이다.

 

 

쫄개에서 체육교육과에 합격하기까지

 

수상인명구조원에서 한 번 고배를 마셨던 도전가 최지훈 씨. 그는 20년 후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다시 도전에 나섰다. 그리고 결국 1년만에 도전에 성공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수상인명구조원이라는 더욱 어려운 과정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혼절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결국 모험가 최지훈 씨는 해냈다. 책에 있는 늠름한 사진은 얼마나 당당해보이는지 모를 정도다.

 

말도 잘 못하고, 스키의 자도 모르던 최지훈 씨는 결국 스키강사에서도 성공을 이룬다. 해낸 것이다. 그는 500명을 스키로 만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작가 최지훈 씨는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수천, 수만 개의 세상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20살 겨울, 나는 처음으로 버킷리스트를 쓰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재수 끝에 육군 장교 소위로 임관한 최지훈 씨는 처음에 부대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소대원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힘들었고,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대원들의 일상을 사진으로 담아 부모님들과 소통하면서 그의 군 생활은 조금씩 피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최지훈 모험가는 나에게 두려움이란 인생의 나침반이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최지훈 씨가 언제나 도전에서 성공만 한 것은 아니다. 호주로 떠나 1,500킬로미터 길이의 그레이트빅토리아사막을 횡단하려는 프로젝트는 허가증을 받기 힘들어 포기해야 했다. 그러면서 모아둔 돈도 모두 써버렸다. 자신을 반성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문장으로 이제 좀 되네?’, ‘할 만하네?’라는 것이라고 설정했다. 겸손해야만 한 걸음이라도 더욱 정진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그가 세상에 내놓을 도전들이 계속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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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붓다
이응준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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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남을 더욱 사랑해야 하는 ‘인간’

[리뷰] 해피 붓다 (엣쎄이소설)(소설가 이응준, 은행나무, 2019.07.01.)

 

작가 이응준 씨를 늦게나마 만난 건 참 다행이다. 신하균 주연의 <내 연애의 모든 것> 원작자이기도 한 작가가 바로 이응준 씨다. 이 엣쎄이 소설 해피 붓다은 정말 독특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 돈키호테를 인용하며 시작된 소설은 어느 새 주인공이 나가, 풍차괴물을 향하 불이 되어 달려가면서 끝이 난다. 묘한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어느 한 작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소설 해피 붓다은 마지막에 이르러 정말 붓다를 만나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당신이 해피 붓다냐고 묻자 네가 나다라는 묘한 선문답이 이어진다. 마치 이게 나라냐?’라는 물음에 철학자 김상봉 교수가 네가 나라다라고 선언한 것이 떠올랐다. 해피 붓다는 무정부주의적이면서도 매우 강한 급진적 성향을 보이는 냄새가 났다.

 

해피 붓다는 한 정신 나간 작가의 꿈같은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사회와 인간 세계에 대한 통찰력 있는 철학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인간성에 대한 해부 같은 일침 등은 가슴을 뜨끔하게 만든다. 이응준 작가는 소설 작가의 입을 통해 궤변 같지만, 막상 잘나가는 것들에게는 자유가 없다. 잘나가는 것들은 제 무지와 불안을 허세로 포장하기 마련이거든. 희망 없는 세상, 공갈로 사는 거지 뭐.”라면서 가장 한심하면서도 가장 해악한 노예는, 자신의 과거에 사로잡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예다. 그들은 자기가 노예인 줄도 모르는 채 세상만사에 주인 행세를 하려든다.”고 적었다.

 


 

자유와 노예, 무정부주의 작가의 일침

 

해피 붓다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문기술자 이근안 씨에 대한 얘기였다. 그가 목사가 된 것까지는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는데, 그가 파문당했다는 소식은 알 수 없었다. 부암동에 살 때 김근태 의원을 만나 인사를 드렸던 게 지금도 생각난다. 이근안 씨가 파문당한 이유는 고문은 예술이다라는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작가 이응준 씨는 하나님도 참 힘들겠다고 일갈했다.

 

오랫동안 고민해오고 있는 것은 인간은 정말 이기적인가 하는 점이다. 작가 이응준 씨는 사람이 이기적이라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강조한다. 인간은 참 초라하다. 작가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을 위해 누군가를 자신보다 더 사랑해야 하는, 가슴 아프고 불안하지만 아름다운 존재다.”. 얼마나 안쓰러운 존재인가. 그래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노 스승의 말은 더욱 깊이 다가온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더 크고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가. 작가 이응준 씨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시대라는 환경이 외부에서 모든 인간들을 감싸고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사람들 각자 안에서 이 시대는 다르게 적히는 것이다. 인간이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점이다. 작가 이응준 씨는 마지막으로 자신과 타인과 세계를 통해서 인간의 모순을 구경하고 체험해 뭔가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은 한 번쯤 사는 것이 아까운 인간일 수도 있다.”고 적었다. 작가의 다른 책들도 매우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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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 이제야 기억합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북핀 편집부 지음 / 북핀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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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투쟁이 여성투쟁남자의 덧붙이 아니다

[서평] 그녀의 이름은 (이제야 기억합니다, 여성 독립운동가)(편집부 저, 북핀, 2019. 06.28.)

 

지금의 대한민국은 남녀노소 모두가 힘써 이룬 국가다. 우리가 학창시절 배운 독립운동가나 예술가는 주로 남성이다. 또한 여성 독립운동가 또는 3.1운동이라 하면 유관순 열사 한 분만을 떠올려 왔다. 하지만 여성 독립운동가와 3.1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은 수없이 많다. 대한 독립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이, 학력, 신구의 제한 없이 수많은 항일운동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한 여성들도 무수하다. 그녀의 이름은은 그런 여성들의 활동을 간략히 소개하며 기리는 듯한 얇은 인명사전이다.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인물이 몇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고공 농성을 벌인 노동운동가 강주룡 지사는, 일본의 불합리한 임금삭감, 노동 착취를 고발하기 위해 시위를 벌인 여성항일노동운동가다. 파업 도중 일본경찰에 의해 공장에서 쫓겨나게 되자 강주룡 지사는 늦은 밤 자그마치 높이 12m의 을밀대 지붕 위로 올라가 여성해방과 노동해방을 외쳤다.

 

훌륭한 위인의 곁에는 훌륭한 조력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는 배우자일 수도 친구일 수도 부모일 수도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조력자 뒤에는 그의 어머니인 곽낙원 지사가 계셨다. 권기옥 지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비행사다. 상해 망명 후 항공 학교를 입학하고자 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지만 운남육군항공학교 제1기생 중 유일한 여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졸업 후 중국 공군에서 10여 년 동안 일본군과 맞서 싸우며 약 7000시간의 비행기록을 세웠으며, 상해사변에서 공을 세워 훈장을 받기도 했다.

 

 

독립 운동과 여성 해방을 동시에 외치다

 

당시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항일투쟁의 길이 여성해방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광복창간호에 지복영 지사도 이중 삼중의 압박에 눌리어 신음하던 자매들! 어서 빨리 일어나서 이 민족해방 운동의 뜨거운 용로 속으로 뛰어오라. 과거의 비인간적 생활은 여기서 불살라 버리고 앞날의 참된 삶을 맞이하자.”는 글을 기고했다. 차미리사 지사는 남자의 덧붙이가 되지 말라는 말을 했다.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

 

최은희 지사는 경성여고보 3.1운동, 배천 3.1운동의 주도자이며 일제강점기에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여성기자다. 그녀는 신문 지면에 가정란을 만들어 부인들이 알아야 할 상식, 여성의 위치, 여권을 높이는 길에 관한 기사를 썼으며 남자들조차 꺼렸던 아편굴, 매음굴과 같은 사회의 그늘진 곳을 취재하여 사회상을 드러내는데 힘썼다. 1984년부터 매년 헌신적인 취재와 보도 활동을 하는 여성 기자들에게 최은희 여기자상을 수상하고 있다.

 

영화 <암살>의 여성저격수 안옥윤역할의 모티프가 된 남자현 지사는 48세의 나이에 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만주로 망명해 연락책, 무기 운반, 무장투쟁 등 독립을 위해 어떤 일이든지 가리지 않고 선봉에 서서 활약했다. 박차정 지사는 남경조선부녀회 선언문에 민족해방과 여성해방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글을 썼다. 의열단 활동을 하면서 여생도의 교육을 담당하며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를 양성했고,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으로서 여성대원들을 이끌고 항일부장투쟁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한국광복군 기간지 광복창간호에 오광심 지사의 글 한국 여성동지들에게 인언을 드림이 기고되었다. “광복군은 삼천만 국민의 군대이며 그 가운데 반은 여성이기에 광복군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며 여성의 것도 된다.”는 이야기다. 여성의 존귀한 존재성을 강조하면서 여성의 독립운동 참여를 호소한 분이다. 이병희 지사는 이육사 시인의 친척이자 동지였으며 일제로부터 그의 시신과 유고시를 인도받아 유족에게 전해준 사람이었다.

 

정칠성 지사 역시, 가정과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열등한 인간 취급을 받던 여성들에게 깨어나라는 외침을 한 자이다. ‘금죽이란 기명으로 살아가던 그녀의 삶은 191931일 이후로 180도 달라졌다.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할 때 그곳에서 일하던 그녀도 동참하면서 이전까지의 삶과 작별을 고했다. 좌우합작여성항일단체 근우회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민족해방과 여성해방을 부르짖으며 순회강연을 다니고 글을 써서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기도 했다.

 

직책과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똑같은 글이나 그림을 여러 장 찍어내는 수동식 인쇄기인 등사기가 있다. 1919331, 김현경 지사와 동료 교사, 학생들은 경성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바탕으로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선언서를 작성한 후 1,000장을 등사했다. 그리고 41, 공주시장에서 선언서와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고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김현경 지사는 유관순 열사가 옥중 순국하자 유해를 인수하여 장례를 치러주기도 했다.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폭탄 의거, 이봉창 의사의 일왕 암상 시도 의거에는 여성 조력자가 있었다. 이화림 지사는 윤봉길 의사와 일본인 부부로 가장한 후 현장답사하며 사건을 계획했으며, 이봉창 의사에게 폭탄을 숨길 바짓가랑이 주머니를 만들어 주고, 나물 장사, 수놓기 등으로 돈을 벌어 임시정부에 경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조신성 지사는 대한독립청년단의 총참모이면서 48세임에도 불구하도 무수한 일을 해냈다. 일본 관공서 파괴, 일본에 부역했던 관공리 처단, 일본경찰서와 군청에 사형선고서. 협박장 발송, 무기 탈취, 호랑이굴 안에서 인쇄기 3대와 12000자의 활자로 선전물을 제작했다. 또한 지역 소학교, 이화학당을 거쳐 도산 안창호 선생이 설립한 진명여학교의 교장을 지내는 등 교육활동에 힘썼다. 우리는 이러한 여성들의 이름을 한 번씩 보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 속에서 행했던 노력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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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264 : 아름다운 저항시인 이육사 이야기
고은주 지음 / 문학세계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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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무지개 같은 시들 남긴 ‘264(이육사)’의 삶

[서평] 그 남자 264 (아름다운 저항시인 이육사 이야기)(고은주(소설가) , 문학세계사, 2019. 07.04.)

 

1927년 그의 나이 23세일 때 첫 번째 옥살이에서 264라는 수인 번호를 얻었다. 이후 사십 평생 열일곱 번 붙잡히고 갇혔다. 시사평론 쪽 글을 쓸 때는 이활이라는 필명을 쓰면서도 논리적으로 서구적 교양을 보여주는 시나 수필에서는 육사이육사라는 이름을 썼다. 그 남자 264는 총탄과 화약 냄새 가득한 나라에서 시를 쓰며 저항한 이육사를 아름답게 다루었다. 독자들은 책을 통해 잘 알지 못했던 이육사의 이면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나라가 망하고 빈곤에 찌들려도 백성들의 눈은 빛났다. 아름다움을 보는 눈빛은 꺼지지 않았다. 백성들은 이육사의 시나 산문을 되풀이해 읽으며 사람들은 호흡을 가다듬곤 했다. 위험하고 불길하게 여겨지는 열정이었지만 그 안에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국내 신여성 현실을 고민한 이육사

 

누군가 이육사에게 물었다. “수인 번호, 수감 번호, 죄수 번호무엇으로 부르든 불길한 이름인데 왜 하필 그것으로 필명을 삼으려 하셨는지.” 이육사가 답했다. “불길한 것은 불온한 것과 닿아 있으니까. 불온은 혁명의 밑바탕이니까. 조선인들 중에서 좀 더 배웠다는 이유로, 좀 더 민족을 생각한다는 이유로 이런 모진 일을 당해야만 한다면 차라리 그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제대로 하고서 잡혀가는 게 낫지 않을까. 이육사라는 이름은 그래서 주어진 것이 아닐까.”

 

이육사가 바라본 문제는 단순히 국가 간 갈등만이 아니었다. 국내 남성들 사이에서도 모순적인 상황은 있었다. 일본과 싸울 용기도 없고 가부장제를 지킬 힘도 없는 남자들이 특히 그랬다. 그들은 그저 혼자 사는 약한 여성한테 공격을 하고 있었다. 기생첩이나 끼고 놀 줄 알았지 남자들은 신학문을 배운 여성과는 제대로 연애할 능력조차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육사는 당시 신여성들의 상황을 묘사했다. “신여성들의 사생활로 선정적인 기사를 만들려고 없는 이야기까지 지어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과장된 소분에다 허구까지 더해서 이런 소설로 야유하고 풍자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요? 여성이 등단하여 소설도 쓰고 시도 쓰며 활발히 활동한 것이 신남성 동료들에게는 무척이나 아니꼬웠던 모양입니다.”

 

시 속에 담긴 당시 백성들의 정서

 

시라는 것은 무릇 우리말로 우리의 정서를 노래해야 마음에 다가온다. ‘청포도청포가 같은 소리로 다른 뜻을 품고 등장하는 이육사 시의 정서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찌 알까. 칠월이 이 땅에서 어떤 의미인지 다른 기후의 사람들은 알 리가 없다. 이육사는 다음처럼 말했다. “무릇 유언이라는 것을 쓴다는 것은 80을 살고도 가을을 경험하지 못한 속배들이 하는 일이오. 그래서 나는 이 가을에도 아예 유언을 쓰려고는 하지 않소. 다만 나에게는 행동의 연속만이 있을 따름이오. 행동은 말이 아니고, 나에게는 시를 생각한다는 것도 행동이 되는 까닭이오.” 육사는 단순히 시를 통해서만 저항을 한 시인이 아니라 실천적 행동 의지로 항일 투쟁에 나선 투사였다.

 

시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그 마음을 흔들어놓고 생각까지 바꿀 수 있다. 시가 지닌 고유의 세계만으로도 충분히 대중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육사는 말했다. “지금처럼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반드시 그 생각을 글로 남기도록 하세요. 글은 유한한 존재를 무한의 세계로 끌어올립니다.” 편하게 살려면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런데 당시는 그저 개처럼 가만히 사는 것조차도 대단해 보이는 시절이었다. 문인들은 대부분 일제의 꼭두각시가 되어 징병과 징용을 독려하는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고 있었다. 예술가들은 음악이나 미술 작품으로, 기업인들은 돈으로 일제의 전쟁을 돕고 있었다.

 

책의 저자는 소설가적 상상의 자유를 활용하여, 육사의 이 숨겨진 여인을 소설 속 첫 번째 화자로 등장시켰다. 육사와 연애 아닌 연애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맺는 여성이었다. 두 번째로 등장한 화자는 실존 인물이라 할 육사의 따님 이옥비 여사였다. 이육사가 지은 이름 옥비는 기름지지 말라는 뜻이다. 욕심 없이 남을 배려하며 간디처럼 살아가라는 뜻이다. 하지만 딸은 아버지에게 종종 서운함을 보였다. “나는 지게꾼이라도 좋으니 아버지가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늘 생각했어요.”


소설의 플롯은 육사의 시대였던 1940년대 전반기와 해방공간 그리고 현재를 넘나들었다. 이를 통해 해석적 지평을 확장했다. 책은 이육사를 깊이 알아 그가 쓴 시를 어림짐작 해석하지 않고 이해의 폭을 키우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 시인이자 동시에 조직 활동가였던 육사의 복잡하면서도 비밀스러운 행적과 그에 따르는 복합적인 의미망을 충분히 헤아리게 하였다. 또한 육사가 남긴 시들과 수필 작품들이 간간이 등장하여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동안 발표했던 시들과 미발표작까지 20편의 시가 묶인 육사시집은 그의 첫시집이자 유고시집이다. 이육사는 총을 쏠 기회는 얻지 못했으나 총탄보다 단단한 모국어로 강철 무지개 같은 시들을 남겨놓고 떠났다. 1904년 생으로 1933년 즈음 시인으로서 문단에 모습을 보였지만, 1937년의 동인지 자오선이 거의 본격적인 시인 생활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시절 동년배 작가들은 이미 한 굽이를 돌아 새로운 창작 방향을 모색하고 있을 때였다. 1910년생의 시인 이상의 경우 자신만의 문학적 생애를 이미 다 끝내고 1937년에 이미 세상을 등진 것을 생각하면 뒤늦은 문단 출현이었다. 그러나 속도보다 더 중요한 그의 시가 품은 무한한 깊이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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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결혼학교 게리 토마스의 인생학교
게리 토마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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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아름다움과 매력의 기준으로 삼아라

[서평게리토마스의 행복한 결혼학교 (Cherish)(게리 토마스윤종석 역도서출판CUP(씨유피), 2019. 06.21.)

 

수많은 부부가 결혼할 때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고 소중히 여깁니다.”로 서약한다게리토마스의 행복한 결혼학교의 저자는 책을 통해 부부관계를 고취하려는 시도를 했다힘들어도 끝내 참고 이겨내는 부부들의 사연도 필요하지만 결혼생활이 달콤하고 행복한 차원에 도달한 부부들의 이야기를 더 쓰고 싶었던 것이다.

 

인생 만족도의 85%는 인간관계에서 온다고 한다인간관계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친밀한 관계는 부부관계다인간들은 소중히 여김을 받기 원하고또 배우자를 소중히 여기기를 원한다이혼 통계와 개인 사례를 종합해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결혼 생활에 더 불만족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당신은 사납게 엄습해오는 실망에 맞서 사투를 벌여야 하는지도 모른다그렇기에 책은 주로 남편들에게 고하는 형식이었다남편들로서는 아내를 참으로 소중히 여기려면 아내를 세상에 하나뿐인 여자로 생각해야 한다자신이 그렇게 바라볼 대상은 아내뿐이다그렇다면 이렇게 기도하라. “주님제 아내를 아름다움의 정의로 삼게 하소서매력 만점의 기준으로 삼게 하소서.”

 


서로를 존중하며 더 북돋우는 일

 

강하고 실력 있는 남성 무용수가 곁에 있으면 발레리나는 단독 무대일 때보다 더 많은 동작을 시도하고 해낼 수 있다아름다움을 더 아름답게 하는 일을 남편과 아내의 임무로 생각하면 어떨까배우자를 떠받치고 안정시키고 들어 올리고 회전시켜 최고의 감점과 성품이 드러나게 해 주면상대는 혼자 할 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이미 있는 아름다움을 보아주고 인정해 주기만 해도 배우자는 한결 더 아름다워진다.

 

이 경우 자기 삶의 영향력이 줄어든 게 아니라 무한히 더 커진다서로 떠받치고 들어 올리고 회전시키고 드러내어 파트너가 가장 잘하는 부분에서 파트너를 빛나게 해 준다즉 서로의 약점 때문에 사랑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서로의 재능을 소중히 여기고 드러내서 더 강화하는 것이다배우자가 내성적이라면 사람들이 모인 상황에서 배우자를 중앙 무대로 내보내기보다는 당신이 꼭 곁에 있어줄 수 있다버팀목으로 당신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워싱턴대학교 교수이며 결혼 전문가인 존 고트먼 박사는 다음처럼 말했다. “결혼생활의 기술을 아무리 많이 배워도 존중이 없으면 소용없다.” 한 예로아는 어느 집의 자녀들은 엄마가 입을 뗐다 하면 순식간에 엄마에게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그 집의 남편이 그렇게 만들었다아이들이 즉각 반응하지 않으면 그는 그들이 보고 있던 게 무엇이든 그것을 꺼 버린다그래서 그의 아내는 결코 자신이 투명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오히려 소중히 여김을 받는 기분이다.

 

배우자에게는 종종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면가끔 홀로 떠날 기회를 줌으로써 배우자를 드러낼 수 있다또한 여자는 자기가 말을 꺼내거나 방에 들어가거나 남편을 부를 때 진지하게 주목받기 원한다대화해야 할 때 전화기나 들여다보는 남편을 원하지 않는다마찬가지로 남편들도 어두운 침실에서 주목받기 원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만남

 

존중의 방식은 존중받는 당사자가 정한다필요한 것을 주어야 존중으로 느낀다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을 준다면 소중하게 느낄 수가 없다성적 표현의 관건은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게 아니라 아내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매력을 인정해 아내를 존중하는 데 있다남편들은 죽는 날까지 단 한 순간도 아내에게 자신이 귀찮은 존재라는 느낌이 들게 해서는 안 된다그거야말로 소중히 여김의 정반대다아내가 신호를 보내올 때마다 당신은 눈빛이 밝아지면서 두 팔을 활짝 벌려야 한다.

 

배우자를 소중히 여기려면 절대로 투명 인간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잦은 전화 통화나 성관계가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면당신이 어느새 배우자를 소중히 여기고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그렇게 슬슬 멀어지다가 자칫 이혼이라는 최악의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결혼이란 외로움의 해결책만이 아니라 그 못지않게 두 사람이 서로 지원하고 돕는 일이기도 하다누구와 결혼하느냐보다 내가 결혼생활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배우자를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가 중요하다.

 

성생활대화역할 분담취미 활동 등 친밀한 부부관계의 여러 이슈는 워낙 개인적인 사안인 데다두 사람이 부부로 만나기 오래전부터 각자의 영혼 깊이 각인된 경우가 많다그래서 결혼생활은 백지상태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삶의 변화에 따라 아내도 변한다그래서 늘 새로 알아 가야 할 면모가 있고그 부분을 소중히 여기는 법도 새로 배워야 한다.

 

홀딱 반한 상태보다 더 좋은 게 있다바로 상대를 참으로 알고 소중히 여기는 일이다아내의 삶에 큰 시련이 닥칠 때야말로 소중히 여김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순간이다아내는 중병에 걸리거나임신할 수 없음을 알게 되거나돌연 체중이 불어 고민하거나난생처음 우울증과 싸우거나직장생활과 자녀 양육의 균형이 도무지 불가능하게 느껴질 수 있다남편이나 아내는 있는 그대로의 고유한 존재다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 바로 그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상대가 원하는 방식대로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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