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도 괜찮지만 오늘은 너와 같이 - 잠든 연애세포를 깨울 우리 사랑의 기록
나승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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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퇴근길 코인 노래방에서 연습 하는 이유

[서평] 혼자도 괜찮지만 오늘은 너와 같이 (잠든 연애세포를 깨울 우리 사랑의 기록)(나승현, 21세기북스, 2019.10.28.)

 

사랑에 죽을 만큼 아파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사랑을 꿈꾼다.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는 꿈. 그 꿈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일을 한다. 이 책의 저자 나승현 씨는 KBS 라디오 <사랑하기 좋은 날 이금희입니다>의 메인 작가이다. 그동안 수많은 사랑의 이야기를 다뤄왔다. 있는 그대로의 사랑 이야기. 무척이나 궁금하다.

 

저자는 혼자 사는 게 행복하지만 1년에 365일 중 한 계절 정도만큼 누군가가 함께 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라디오에 온 사연들은 A4 몇 장이나 될 만큼 긴 것들부터 3문장짜리도 있었지만, 모두 구구절절했다. 다른 이들의 사랑이야기는 결국 나를 대입해서 나의 이야기가 된다. 진솔한 사랑이야기를 듣다보면, 겸손해지기 마련이다.

 

연애가 사법고시도 아닌데 몇 년째 준비 중인 이들이 있다.”(8)

 

첫 번째 등장하는 사연부터 흥미롭다. 극장에서 첫 소개팅을 하기로 했는데, 하필이면 두 쌍의 커플이 우연히 같은 시간, 같은 극장에서 소개팅을 하기로 한 것이다. 결국 각각의 이성이 따로 만나는 불상사가 이뤄졌고, 여자는 일주일 동안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좌석을 착각해 잠깐 잘못 만난 남자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통재라!

 

해외에서 우연히 만나 관심을 이어가는 커플도 있다. 나승현 작가는 밥에 정이 붙는다면 차에는 열과 성이 붙는다”(24)이 적었다. 커피 한 잔 하자는 권유는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 나에게 커피 한 잔 하자고 말해주면 좋겠다.

 


 

영화와 밥과 커피의 여유

 

무슨 신문을 보느냐는 질문에 당황한 한 여자가 있다. 연애는 생활이기 때문에 같은 성향과 관심사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여러 개의 창들 중 하나의 창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섹시하다고 여자는 고백했다.

 

소개팅에 나갔다가 40분 만에 나온 사연이 있다. 몇 시간 동안 준비해서 나간 자리를 만약 상대방이 금방 일어나게 된다면, 얼마나 속상할까? 나승현 작가는 소개팅을 주선할 때의 기준을 적었다. 내가 만나기는 힘든 상황이고 다른 사람에게 주기는 아까운 사람을 소중한 사람에게 소개해줘야 한다고 말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 마찬가지로 나이도 상관이 없다. 마음에 드는 누군가를 만나면 소중한 마음을 함께 해볼 수 있는 것이다. 퇴근길 매일 노래방을 가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썸을 타는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래 연습하러 노래방에 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인연은 잘 되지 않았다. 작가는 10, 20, 30대마다 노래하는 사연이 달라진다고 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연은 서로에게 이로운 번역기가 되어주길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언어 사전을 갖고 있다는 게 나승현 작가의 조언이다. 아내와 죽을 만큼 싸우다보면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내 마음을 온전히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언어는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언어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혼자 있는 순간, 누군가 만나고 싶어진다면 연애 세포가 꿈틀 대는 것이다. 혼자도 괜찮지만 오늘은 너와 같이으로 사랑을 공감해보고 그대를 만나러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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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ors 살아남은 자들 : 다가오는 어둠 3 - 그림자 속으로 Survivors 살아남은 자들 : 다가오는 어둠 3
에린 헌터 지음, 윤영 옮김 / 가람어린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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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개들의 무리에 투영된 인간의 모습

[서평] 살아남은 자들 23 (그림자 속으로)(에린 헌터 저, 윤영 역, 가람어린이, 2019. 10.10.)

 

계급이 나눠진 야생 개 무리 속에는 사냥견, 순찰견이 있고 강아지들이 있다. 살아남은 자들 23 (그림자 속으로)은 야생 개들의 삶을 소설로 다룬 이야기다. 이미 에린 헌터가 쓴 야생 고양이들의 삶을 소설로 쓴 이야기를 읽었던 터였다. 나로서는 고양이만 키워보았지 개의 생활은 잘 몰랐기에 책에 호기심이 갔다.

 

책에는 인간의 용어가 많이 나왔다. 작가가 강아지를 의인화했다고는 하지만 처음 읽을 때는 쉬이 들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한 예로 강아지를 계속 반복한 문구가 있었다.

 

실은 너한테 뭘 좀 부탁하려고 왔어. 알파가 강아지들을 키우느라 밖에 못 나가서 갑갑해하거든. 강아지 넷이 있는 올가미 집이 따로 없대.”-44p

 

개들이 자신의 새끼들을 강아지라고 부를 리는 없었다. 인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은 좀 더 개의 시각에서 수정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야생 개의 소소한 일상이 전개된 이 책은 신비로움의 연속이었다. 강아지들의 싸움과 말리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삶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의 세계에서 어느 날 사건이 발생하게 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동료들과 나눠 먹으려고 쌓아 둔 먹이에 투명한 돌들이 산산이 부서진 채로 박혀 있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무리 안에 배신자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처음에 개들은 사나운 개라는 이유만으로 애로우라는 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의로운 개인 스톰은 애로우가 용의자로 몰리는 상황이 마땅치 않았다.

 

책은 야생 개들의 무리 속에서 인간의 삶을 보이고 있었다. 야생 무리는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다. 때문에 무리에서 작은 변화와 사건이 생길 경우 예민해 한다. 어제까지 친했던 친구가 다음 날 적이 되곤 했다. 물론 개 무리는 뭉쳐 다니며 엄니 주둥이를 죽이거나 물에 떠내려갈 뻔했던 강아지들을 구하는 등 협동을 보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개들의 직감이 크게 묘사되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디테일하게 묘사되었다. 사냥견이 되기까지의 집단 갈등과 순간순간의 위험과 위기에서 개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내며 갈등을 빚었고 또는 해결을 해나갔다. 이외 사냥, 무리 이탈 등의 사건도 있었다.

 

책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야생 개들이 자연물을 경외 시 한다는 점이었다.

 

<‘호수의 개여, 제발 저 물결을 데리고 가세요. 거기 계시다면, 제 말이 들리시면 제발 우리 강아지들을 데려가지 마세요!’> 라고 마치 신에게 비는 듯한 부분이 나왔다. <‘우린 정말 하나로 똘똘 뭉쳤어.’ 스톰은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서로 힘을 합쳐서 강아지들을 구했어. 무리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니까.’>-335p


이야기는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무리를 염탐하는 개에 대한 비밀스러움이 밝혀질 것처럼 새로운 사건을 암시하며 끝이 났다. 아마 다음 권에서 사건이 마무리 될 것이 분명했다. 큰 갈등은 없었지만 긴장감의 연속이 읽는 내내 이어졌다. 마치 야생 개들의 험난한 야생 생활을 직접 겪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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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이기는 철학 -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공부법과 사고법
오가와 히토시 지음, 장인주 옮김 / 처음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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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해야 유연, 공부-긍정-공존이 AI 이긴다!

[서평] AI를 이기는 철학(오가와 히토시, 장인주 옮김, 처음북스, 2019.09.30.)

 

저자 오가와 히토시는 시청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정작 철학을 전공해놓고도, 박사학위에 미련이 많았던 나를 반성해본다. 저자 오가와 히토시의 전공은 공공철학과 정치철학이라고 한다. 그는 인공지능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바로 철학적 사유라고 강조한다.

 

요새 어느 매장을 가든 사람이 아니라 키오스크가 주문을 대신한다. 주문과 결제까지 다 완료가 되는 것이다. 이러다가 정말 사람의 모든 일자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제 과학뉴스를 보니, 인공지능이 스타크래프트2한테도 승리를 했다. 계산적이고 전략적인 부분에서 인공지능은 이제 인류를 앞서고 있다.

 

저자는 인공지능이 철학을 하기 힘들다고 강조한다. 철학은 계산적 사고로만 이뤄져 있지 않다. 저자가 제기하는 인공지능의 약점은 다음과 같다. 상식을 모른다. 계산밖에 하지 못한다. 경험이 없다. 의지가 없다. 의미를 모른다. 신체가 없다. 본능이 없다. 감정이 없다. 융통성이 없다. 애매함을 모른다. 10가지나 된다.

 

컴퓨터는 형식적인 정의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사물의 의미와는 다르다. 사물의 의미란 더 깊은 법이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들어감으로써 더 깊어진다.”(35)

 


 

상식과 의미를 모르는 인공지능

 

인공지능의 낙관론에 따라 인간의 삶은 편리해질 것이다. 그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창조적인 것이다. 오가와 히토시 철학자는 앞으로 인공지능과 오히려 경쟁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나는 인공지능이 만든 게 좋은데, 다른 사람은 인공지능이 만든 걸 싫어할 수 있다. 취향이 달라진다. 한편, 인재와 노동이 인공지능에 의해 양극화 한다. 그래서 필요한 건 꾸준히 공부하는 슬로우 스터디. 앞으론 계속 공부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철학은 가장 오래된 학문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을 이길 것이라고 저자 오가와 히토시는 말한다. 철학은 사물을 좀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으로 바라본다. 비판적 사고법이야말로 철학의 본류다. 계속 의심해서 그 사물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좀 더 단계적으로 밝히면, 의심하기 재구성하기 언어화하기다.

 

인간과 인공지능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불완전함이다. 이 불완전함은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더욱 노력할 수 있다. 하지만 완벽을 추구하려는 인공지능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려 들 것이다. 저자 오가와 히토시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불완전해야 더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 것이다.”(74)

 

이전의 철학자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당신에게 있는 것들이 개화하거나 나의 사고를 통해 창조가 가능하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선의 경지다. 구체적으로 AI를 이기는 철학에선 명상 사고법, 메타 사고법, 우주 일체화 사고법 등이 소개됐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 오가와 히토시는 다시 인간에 대해 묻는다. 미래를 살아 기기 위해선 놀이로서 공부 긍정 철학 공존을 강조한다. 이 셋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기계와 공존하기 위해선 긍정의 철학으로 기술을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강조했다. 미래에 생존하기 위해서 귀담아 들을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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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읽고 울어 봤어?
송민화 지음 / 문이당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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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해지는 순간은 공통의 기억童詩로 울다

[서평] 동시 읽고 울어봤어? (온 가족을 위한 동시)(송민화 글, 임현지 그림, 문이당, 2019. 10.15.)

 

한 글자, 한 문단이 바로 이해되고 공감되는 시는 처음이다.

 

엄마, 주름은 왜 생겨?// ……/ 주름은 훈장이야/ 기쁜 일 슬픈 일/ 괴로운 일, 외로운 일까지/ 다 견디고 온 사람에게만 주는 거야” -<주름> 27p

 

동시 읽고 울어봤어?에 담긴 이러한 시들은 감성적이다. 때론 감성적 묘사가 과학적 설명보다 기억에 남고 깊은 의미를 지닌다. 시집은 한동안 사는 게 바빠 감성적인 측면을 잃었던 내게 신선한 기분을 주었다.

 

어느 추운 겨울밤/ 은행 후문 쓰레기통/ 그곳이 저의 고향입니다// 여름밤이면 좋았으련만/ 밤서리 맞고 장애가 왔습니다// 먼 훗날/ 횡단보도 지나다/ 벚꽃놀이 갔다가/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라도/ 지나치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내 어머니이길 바라봅니다// 어머니 냄새를/ 내 영혼이 멀리서나마/ 맡을 수도 있으니까요// 내가 그리운 그만큼/ 내가 외로운 그만큼/ 내 어머니의 삶/ 꽃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육원에서 온 편지> 30p

 

이 시는 읽자마자 충격을 받았는데, 여타 어른들이 생각하는 감정의 범위를 넘어선 아이의 헤아리기 힘든 고결한 심정을 담고 있어서였다. 반전 영화를 보는 듯했다. 나에게 고통을 준 이의 행복을 비는 이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있을까 싶다. 상대를 너무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얼굴을 내밀어 봐/ 우리가 발목을 잡아 줄게// 처음엔/ 눈이 부실 거야/ 바람이 뺨을 스쳐도/ 놀라지 마/ 햇살 먹으며/ 아침 저녁으로 키가 클 거야// 땅 밖 사람들은/ 너를 이렇게 불러/ ‘, 새싹이다’// 흙 어머니/ 지렁이 형님/ 개미 누나까지/ 우린 언제나 널/ 사랑한단다” -<3월의 속삭임> 35p

 

시는 대상을 꼭 사람이나 동물로만 한정하지 않았다. 추상적인 ‘3이라는 존재마저 자신을 묘사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여러 대상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동시에 담긴 지극한 울음들

 

하늘이 불치병에 걸렸습니다/ 파랬던 몸이 회색빛이 되었습니다/ 들어 놓은 보험도 없고/ 걱정입니다// 집 나간 푸른 하늘/ 실종신고를 합니다/ 있을 때 잘해 줄걸/ 마음이 미어집니다” -<미세먼지> 48p

 

이러한 아름다운 시들은 살아가는 것 뿐 아니라 저무는 순간까지의 인생도 생각하게 한다. 모든 문학 작품 속에는 그 작품을 쓴 사람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의 흔적이 고여 있다. 시는 그 가운데서도 유별나게 그 작품을 쓴 시인의 삶, 그의 느낌과 생각, 그리고 문체가 뚜렷하게 새겨지는 장르다.

 

책에 따르면 열하일기를 쓰신 박지원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사람들은 인간의 감정 중에서 오로지 슬픔만이 울음을 일으키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사실은 인간이 지닌 감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낸다.” 기쁨, 즐거움, 사랑, , 미움, 욕심 모두에서 울음은 나온다. 울음이란 인간의 모든 감정이 지극하면 울려나오는 것이다.

 

인간 감정이 지극해지는 순간은 자신의 사정이나 형편의 가장 깊고, 가장 끝인 곳에서 생겨난다. 만약 한 사람의 시인이 울고 있다면 그는 어떤 지극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울게 된다면 그 역시 어떤 지극한 감정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 시집 동시 읽고 울어봤어?는 어린 아이의 시선과 마음으로 우리가 살아 왔고, 살고 있으며, 또 살아가야 할 세계의 순수성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수많은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의 기억이자 경험이 담겼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풍경을 잔잔하고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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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쳐 - 양자와 시공간, 생명의 기원까지 모든 것의 우주적 의미에 관하여, 장하석 교수 추천 과학책
션 캐럴 지음, 최가영 옮김 / 글루온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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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억 심장 박동 수 인류시적 자연주의와 우주

[서평] 빅 픽쳐 (양자와 시공간, 생명의 기원까지 모든 것의 우주적 의미에 관하여)(션 캐럴, 최가영 역, 사일런스북, 2019.11.11.)

 

정말 대단한 책을 만났다. 케임브리지대 장하석 교수가 추천한 과학책 빅 픽쳐라고 해서 과연 무슨 의미인가 궁금했었다. 책의 부제가 어색하지 않게, 양자역학과 시공간, 존재의 기원까지 제대로 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철학과를 나왔지만 그동안 잊고 지내던 충족이유의 원리라든가 양상추론’, ‘귀추법등 용어들을 다시 만났다. 특히 저자 션 캐럴이 말하듯,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지적 탐구야말로 과학의 본질이 아니던가.

 

빅 픽쳐를 이해하기 위해선 저자의 논리를 좇아야 한다. 그는 우선 시적 자연주의를 설명한다. 자연주의란 쉽게 말해 신적 존재를 배제하고 이 세상을 설명하는 시각이다. 일종의 범신론과도 비슷하게 들린다. 세상은 자연계 단 하나라고 바라보는 게 바로 자연주의다. 여기서 시적이란 표현은 하나의 주제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논한다는 의미다. 문학에서의 시가 아니다.

 

이 책을 옮긴 최가영 씨는 자연주의와 시적 자연주의를 구분한다. 전자가 진실의 측면에 닿아 있다면, 후자는 옳음의 측면을 고려한다. 옮긴이는 저자는 인류 과학사와 철학사의 어느 부분도 놓치지 않으면서 베이즈 추론이라는 과학적 태도를 견지한다. 그렇게 통합성과 체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613)고 적었다.

 

따라서 시적 자연주의를 인정하고 나면 그 안에서 이뤄지는 설명의 모형(이론이 아니라 모형이다.)은 그 제한된 영역 안에서 유효하다는 게 저자 션 캐럴의 주장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뛰어넘는 현대의 양자역학은 그 한계 내에서 모두 정당하게 진실이라는 주장이다. 이건 2이해하다에서 많이 다뤄진다.

 


 

통합성과 체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

 

저자 션 캐럴은 진지하면서도 도발적이다. 그는 생명이나 물질이 특정 조건에선 스스로 조직화 하고 정교한 구조체가 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과연 정체성을 설명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방금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확연히 다르다. 원자의 배열도 다른 것이고 감정도 다르다. 그래서 그는 테세우스의 배를 통해 정체성 규정의 어려움을 논한다.

 

우리는 원론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편리하기 때문에 (테세우스의) 배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외장을 다 교체한 후에도 같은 배냐고? 나도 잘 모르겠다.”(23)

 

저자 션 캐럴이 종교나 철학, 심리학이 아니라 자연주의를 도입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정리된다. 26쪽에서 인용한다. 자연주의. 1. 세상은 자연계 하나다. 2. 세상은 절대불변의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3. 세상을 제대로 배우는 유일한 방법은 관찰하는 것이다. 시적 자연주의 1. 세상을 논하는 화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2. 좋은 화법은 모두 서로 일맥상통하며 세상의 모습과 부합한다. 3. 현재 우리의 목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화법을 찾는 것이다.

 

시적 자연주의는 자유와 책임의 철학이다. 자연계는 우리에게 생명의 원료들을 선물했고 우리는 그것들을 이해하고 결과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28)

 

빅 픽쳐계면(interface, 界面)’이 등장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계면은 기체상, 액체상, 고체상 등의 3상 중 인접한 2개의 상()사이의 경계면이다. 여기선 특이한 현상들이 나타난다. 마치 남북한이 맞닿아 있는 DMZ 같다.

 

시적 자연주의가 가진 설명의 가능성

 

과학사든 철학사든 그동안 인과론은 이 세상을 지배해왔다. 하지만 션 캐럴 저자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현대 양자역학의 차원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원인과 결과가 늘 나타나는 건 아니다. 이에 대해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식 원인의 존재론에서 라플라스식 패턴의 존재론으로 옮겨왔다고 설명한다. 운동량 보존과 정보 보존의 법칙이 변화를 겪은 것이다.

 

가끔 우리는 원인을 얘기하지만, 원인은 더는 존재론의 필수 구성요소가 아니다.”(38)

 

초기 조건을 알면 이 세상의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고 하는 라플라스의 악마 같은 세계관은 양자역학과 비슷하다. 그래서 현 상태가 어떤지 더욱 파헤치며 설명하려고 한다. 어느 방향으로 간다는 나침반보다는 현 상태와 함수만 존재하는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라이프니츠의 충족이유의 원리 혹은 최선의 원리를 검토하며 우리가 언제나 원인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보았다.

 

션 캐럴 저자는 형이상학은 배제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이상학적 사고에 많이 매몰돼 있지만, 왜 현상이 그런가라는 이유보단 어떤 현상인가를 밝히는 데 주목하고자 한다. 시간의 순서는 우리를 옥죄지만 그 흐름이라는 순서는 현 시점에서 보자면 결코 온당치 않다. 좀 쉽게 얘기해보자면 내가 지금 살찐 이유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의 조합이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살찐 게 중요하지 왜 살이 쪘는지 정확하게 밝혀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빅 픽쳐에서 흥미로웠던 건 활시위에 대한 내용이다. 활시위를 당길 땐 양상추론 등 우리가 가진 배경지식과 낮은 엔트로피라는 과거의 특별한 성질 등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활이 어디로 날아갈지를 결정하는 건 양상추론이나 낮은 엔트로피에 전적으로 기대지 않는다. 화살을 뒤에서 밀어주는 힘이란 건 과연 무엇일까, 라는 질문보다 그 화살이 현재 어느 상태이고 계속 어디로 나아가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믿음의 정도다. 통계학 용어로는 신뢰도라고 한다.”(89)

 

저자 션 캐럴이 많은 지면을 할애해 설명하고 있는 베이즈 추론은 100% 믿음을 불신한다. 업데이트되는 정보에 따라 신뢰도를 높이거나 낮추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회의주의와 비슷하다. 빅 픽쳐에선 극단적 회의론으로 볼츠만의 뇌가 등장한다. 볼츠만의 우주에선 우리의 존재가 우주 요동으로 우연히 저절로 태어난 것으로 간주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입자들이 서로 충돌하고 넘실대는 카오스의 존재자들에게 그냥 우연이라고 설명하는 게 적합한지 의문을 던진다.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것인가

 

빅 픽쳐에서 또한 많은 설명을 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창발성이다. 철학사에서 창발론은 기계론과 생기론 중간 즈음에 있다. 책에서 예로 든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는 단순한 원자 배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색의 조화나 심상, 고흐의 인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원자 수준으로 분석을 하면 물론 고흐의 그림은 원자들의 조합이다. 하지만 그 그림이 갖고 있는 예술적 형상화는 원자 수준 이상이다. 이때 창발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론의 포괄성과 실용성은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127)

 

빅 픽쳐에선 공간을 채운 공기에 대한 분자 이론과 유동체 이론이 언급된다. 분자 이론은 미시적이다 입자가 곱다 기본적이다. 유동체 이론은 거시적이다 입자가 굵다 창발적이다. 분자이론들을 아무리 분석해도 공기의 흐름을 나타나는 유동체 이론이 되진 않는다. 마치 시적 자연주의는 창발론처럼 모든 게 물리적으로 환원된다고 보는 기계론이나,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어떤 생명력이 있다고 보는 생기론 사이에 존재한다. 이 세계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197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필립 앤더슨은 1992년도 논문 ‘More is different(더 많은 것은 다른 것이다).’에서 모든 것이 환원되는 가장 원초적이고 확실한 이론은 찾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대신 여러 이론들이 중복되고 때론 배리되더라도 각각 연구할 가치가 있다. 시적 자연주의는 비슷한 노선을 갖는다. 모형 의존적 실재론(model-dependent realism)은 원자, 탁자, 의식 등 모두 실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 역시 틀리지 않다고 간주한다.

 

션 캐롤 교수는 10가지 고려 사항으로 책을 마무리 한다. 삶은 영원하지 않다. 욕구는 삶에 내장되어 있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모든 욕구와 애정을 쏟아 부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 중요하다. 우주는 인간을 개의치 않지만 우리는 우주를 신경 쓴다. 우리는 언제나 더 잘할 수 있다. 경청하는 자세는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한다. 원래 그냥 그런 것은 없다. 세상은 다양한 가치로 이루어져 있다. 우주의 운명은 우리 손안에 있다. 우리는 행복 이상의 것을 이룰 수 있다. 현실에 길이 있다. 환상은 유해하다. 하지만 진실이 주는 보상은 훨씬 더 크다.

 

션 캐롤 저자는 묻는다. 현대 인류는 의학의 발전으로 30억 심장 박동 수만큼 살 수 있다고. 당신은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당신에게 모든 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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