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쳐 - 양자와 시공간, 생명의 기원까지 모든 것의 우주적 의미에 관하여, 장하석 교수 추천 과학책
션 캐럴 지음, 최가영 옮김 / 글루온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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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억 심장 박동 수 인류시적 자연주의와 우주

[서평] 빅 픽쳐 (양자와 시공간, 생명의 기원까지 모든 것의 우주적 의미에 관하여)(션 캐럴, 최가영 역, 사일런스북, 2019.11.11.)

 

정말 대단한 책을 만났다. 케임브리지대 장하석 교수가 추천한 과학책 빅 픽쳐라고 해서 과연 무슨 의미인가 궁금했었다. 책의 부제가 어색하지 않게, 양자역학과 시공간, 존재의 기원까지 제대로 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철학과를 나왔지만 그동안 잊고 지내던 충족이유의 원리라든가 양상추론’, ‘귀추법등 용어들을 다시 만났다. 특히 저자 션 캐럴이 말하듯,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지적 탐구야말로 과학의 본질이 아니던가.

 

빅 픽쳐를 이해하기 위해선 저자의 논리를 좇아야 한다. 그는 우선 시적 자연주의를 설명한다. 자연주의란 쉽게 말해 신적 존재를 배제하고 이 세상을 설명하는 시각이다. 일종의 범신론과도 비슷하게 들린다. 세상은 자연계 단 하나라고 바라보는 게 바로 자연주의다. 여기서 시적이란 표현은 하나의 주제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논한다는 의미다. 문학에서의 시가 아니다.

 

이 책을 옮긴 최가영 씨는 자연주의와 시적 자연주의를 구분한다. 전자가 진실의 측면에 닿아 있다면, 후자는 옳음의 측면을 고려한다. 옮긴이는 저자는 인류 과학사와 철학사의 어느 부분도 놓치지 않으면서 베이즈 추론이라는 과학적 태도를 견지한다. 그렇게 통합성과 체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613)고 적었다.

 

따라서 시적 자연주의를 인정하고 나면 그 안에서 이뤄지는 설명의 모형(이론이 아니라 모형이다.)은 그 제한된 영역 안에서 유효하다는 게 저자 션 캐럴의 주장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뛰어넘는 현대의 양자역학은 그 한계 내에서 모두 정당하게 진실이라는 주장이다. 이건 2이해하다에서 많이 다뤄진다.

 


 

통합성과 체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

 

저자 션 캐럴은 진지하면서도 도발적이다. 그는 생명이나 물질이 특정 조건에선 스스로 조직화 하고 정교한 구조체가 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과연 정체성을 설명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방금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확연히 다르다. 원자의 배열도 다른 것이고 감정도 다르다. 그래서 그는 테세우스의 배를 통해 정체성 규정의 어려움을 논한다.

 

우리는 원론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편리하기 때문에 (테세우스의) 배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외장을 다 교체한 후에도 같은 배냐고? 나도 잘 모르겠다.”(23)

 

저자 션 캐럴이 종교나 철학, 심리학이 아니라 자연주의를 도입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정리된다. 26쪽에서 인용한다. 자연주의. 1. 세상은 자연계 하나다. 2. 세상은 절대불변의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3. 세상을 제대로 배우는 유일한 방법은 관찰하는 것이다. 시적 자연주의 1. 세상을 논하는 화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2. 좋은 화법은 모두 서로 일맥상통하며 세상의 모습과 부합한다. 3. 현재 우리의 목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화법을 찾는 것이다.

 

시적 자연주의는 자유와 책임의 철학이다. 자연계는 우리에게 생명의 원료들을 선물했고 우리는 그것들을 이해하고 결과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28)

 

빅 픽쳐계면(interface, 界面)’이 등장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계면은 기체상, 액체상, 고체상 등의 3상 중 인접한 2개의 상()사이의 경계면이다. 여기선 특이한 현상들이 나타난다. 마치 남북한이 맞닿아 있는 DMZ 같다.

 

시적 자연주의가 가진 설명의 가능성

 

과학사든 철학사든 그동안 인과론은 이 세상을 지배해왔다. 하지만 션 캐럴 저자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현대 양자역학의 차원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원인과 결과가 늘 나타나는 건 아니다. 이에 대해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식 원인의 존재론에서 라플라스식 패턴의 존재론으로 옮겨왔다고 설명한다. 운동량 보존과 정보 보존의 법칙이 변화를 겪은 것이다.

 

가끔 우리는 원인을 얘기하지만, 원인은 더는 존재론의 필수 구성요소가 아니다.”(38)

 

초기 조건을 알면 이 세상의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고 하는 라플라스의 악마 같은 세계관은 양자역학과 비슷하다. 그래서 현 상태가 어떤지 더욱 파헤치며 설명하려고 한다. 어느 방향으로 간다는 나침반보다는 현 상태와 함수만 존재하는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라이프니츠의 충족이유의 원리 혹은 최선의 원리를 검토하며 우리가 언제나 원인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보았다.

 

션 캐럴 저자는 형이상학은 배제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이상학적 사고에 많이 매몰돼 있지만, 왜 현상이 그런가라는 이유보단 어떤 현상인가를 밝히는 데 주목하고자 한다. 시간의 순서는 우리를 옥죄지만 그 흐름이라는 순서는 현 시점에서 보자면 결코 온당치 않다. 좀 쉽게 얘기해보자면 내가 지금 살찐 이유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의 조합이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살찐 게 중요하지 왜 살이 쪘는지 정확하게 밝혀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빅 픽쳐에서 흥미로웠던 건 활시위에 대한 내용이다. 활시위를 당길 땐 양상추론 등 우리가 가진 배경지식과 낮은 엔트로피라는 과거의 특별한 성질 등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활이 어디로 날아갈지를 결정하는 건 양상추론이나 낮은 엔트로피에 전적으로 기대지 않는다. 화살을 뒤에서 밀어주는 힘이란 건 과연 무엇일까, 라는 질문보다 그 화살이 현재 어느 상태이고 계속 어디로 나아가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믿음의 정도다. 통계학 용어로는 신뢰도라고 한다.”(89)

 

저자 션 캐럴이 많은 지면을 할애해 설명하고 있는 베이즈 추론은 100% 믿음을 불신한다. 업데이트되는 정보에 따라 신뢰도를 높이거나 낮추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회의주의와 비슷하다. 빅 픽쳐에선 극단적 회의론으로 볼츠만의 뇌가 등장한다. 볼츠만의 우주에선 우리의 존재가 우주 요동으로 우연히 저절로 태어난 것으로 간주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입자들이 서로 충돌하고 넘실대는 카오스의 존재자들에게 그냥 우연이라고 설명하는 게 적합한지 의문을 던진다.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것인가

 

빅 픽쳐에서 또한 많은 설명을 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창발성이다. 철학사에서 창발론은 기계론과 생기론 중간 즈음에 있다. 책에서 예로 든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는 단순한 원자 배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색의 조화나 심상, 고흐의 인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원자 수준으로 분석을 하면 물론 고흐의 그림은 원자들의 조합이다. 하지만 그 그림이 갖고 있는 예술적 형상화는 원자 수준 이상이다. 이때 창발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론의 포괄성과 실용성은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127)

 

빅 픽쳐에선 공간을 채운 공기에 대한 분자 이론과 유동체 이론이 언급된다. 분자 이론은 미시적이다 입자가 곱다 기본적이다. 유동체 이론은 거시적이다 입자가 굵다 창발적이다. 분자이론들을 아무리 분석해도 공기의 흐름을 나타나는 유동체 이론이 되진 않는다. 마치 시적 자연주의는 창발론처럼 모든 게 물리적으로 환원된다고 보는 기계론이나,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어떤 생명력이 있다고 보는 생기론 사이에 존재한다. 이 세계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197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필립 앤더슨은 1992년도 논문 ‘More is different(더 많은 것은 다른 것이다).’에서 모든 것이 환원되는 가장 원초적이고 확실한 이론은 찾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대신 여러 이론들이 중복되고 때론 배리되더라도 각각 연구할 가치가 있다. 시적 자연주의는 비슷한 노선을 갖는다. 모형 의존적 실재론(model-dependent realism)은 원자, 탁자, 의식 등 모두 실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 역시 틀리지 않다고 간주한다.

 

션 캐롤 교수는 10가지 고려 사항으로 책을 마무리 한다. 삶은 영원하지 않다. 욕구는 삶에 내장되어 있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모든 욕구와 애정을 쏟아 부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 중요하다. 우주는 인간을 개의치 않지만 우리는 우주를 신경 쓴다. 우리는 언제나 더 잘할 수 있다. 경청하는 자세는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한다. 원래 그냥 그런 것은 없다. 세상은 다양한 가치로 이루어져 있다. 우주의 운명은 우리 손안에 있다. 우리는 행복 이상의 것을 이룰 수 있다. 현실에 길이 있다. 환상은 유해하다. 하지만 진실이 주는 보상은 훨씬 더 크다.

 

션 캐롤 저자는 묻는다. 현대 인류는 의학의 발전으로 30억 심장 박동 수만큼 살 수 있다고. 당신은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당신에게 모든 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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