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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미술관
이은 지음 / 노블마인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추리 소설은 많은 매니아를 두고 있으면서 많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사랑 받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추리 소설은 작품도 많지 않고 또한 사람을 잡아 끄는 힘이 고전 추리 소설에 비해 약해 눈길이 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마네, 피카소, 고흐 등의 작품을 둘러싼 추리를 담고 있는 이 책 <수상한 미술관>(노블마인.2009)은 달랐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사건은 어느 날 아침 9시 눈을 번쩍 드는 순간 시작 되었다. 알지 못하는 핸드폰 속 한 남자는 음성 변조기로 목소리를 숨긴 채 아내를 납치 했다고 했다. 그리고 아내를 풀어준다는 조건을 걸고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꿔놓기 위해” 말도 안되는 게임을 제안한다. 그 게임은 정해진 시간까지 서울 시내의 미술관을 다니며 자신이 낸 문제를 맞히는 것이다.
이 책은 유명 작가의 작품과 그와 유사한(패러디 한) 작품 40여점의 컬러 사진들을 통해 패러디한 목적과 그 배경을 설명한다. 마지막 마네 작품까지 다섯 군데의 장소를 쉴 새 없이 달리며 주인공은 서양 미술사에 감춰진 표절과 패러디의 경계를 독자들에게 알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주인공 입장에서는 괴롭고 가슴 떨리는 일이지만)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매우 섬세하고, 긴장감과 위기감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미술 문제를 푸는 장면은 더 깊은 긴장감을 주는 부분으로서 독자도 현장에 함께 있는 듯 빠져 들고 만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은 매우 빠르다. 사건의 시작과 종결은 아침 9시에 시작해 만 하루가 채 되지 않는다. 사건의 구성도 신선하지만 짧은 시간 때문에 긴장감이 계속 유지된다. 그래서 책 속으로 나를 잡아끄는 힘이 대단했다. 손에 잡자마자 단숨에 읽어버렸으니 그 힘을 족하고도 남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핵심은 결말이다. 결말의 범행 동기와 범인이 밝혀졌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 다양한 상상과 책에서 발견한 정황들을 통해 범인을 추리해 보았지만 여지없이 실패하고 말았다. 허를 찌르는 범인을 담아낸 저자의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듯 작가(이은)의 상상력의 힘은 대단하다. 꼭 현장에 함께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힘이다. 작가는 등장인물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듯하다. 공간 묘사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자연스러운 대사와 주인공의 감정을 정교하게 들어내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거기에다 서양 미술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퍼즐을 끼우듯 연결이 자연스럽다.
인간은 ‘완전한 무’가 아닌 ‘결여의 무’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그 중심에는 인간의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 만든 창의성의 작품들을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창조라기 보다는 변형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책을 덮은 지금도 표절과 패러디의 경계는 모호하기만 하지만 수많은 유명화가가 그린 패러디의 그림은 좋은 경험이 되었다. 상세한 감정 표현과 빠른 전개 안에 담은 미술과 관련된 흥미로운 글을 경험한 색다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