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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루 기담
아사다 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사고루 기담 (沙高樓 綺譚)<문학동네.2006>
낯선 제목의 이 책은 제목만으로는 쉽게 무슨 내용인지 알기는 어렵다
풀이하자면 “모래로 쌓은 누각과 같은 이야기들”을 말한다
사고루에서 말하는 이야기들은 글로 남지 않기 때문에 화자의 죽음은 곧 이야기의 소멸로 이어진다
하지만 어느때 문득 한사람의 의식 속으로, 또는 삶속으로 신처럼 나타나 그의 인생에 관계하기도 할 것이다
기담(綺譚)이라고 기괴하고 섬뜩한 이야기는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綺)는 비단기, 고운기 자를 쓰고 있어
말함과 동시에 사라지는 아름답고 재미있게 다듬은 이야기를 뜻한다
우리에게 “철도원”<문학동네.1999>으로 친숙한 작가 아사다 지로의 장편소설 사고루 기담은
아오야마 묘지 근처의 고급 빌딩 맨 위층에 위치한 사고루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모임을 배경으로 그들의 경험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세상에서 나름대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란 한결같이 고독합니다.
누구든 남에게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슴에 품고 있기 마련이지요.
그런 마음의 독을 토해내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18p)"에서 알수 있듯이
그들은 명예와 목숨을 위해 마음에 담아 둘 수 밖에 없었던 비밀을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한다
책은 대장장이, 실전화, 엑스트라 신베에, 백 년의 정원, 비 오는 밤의 자객.
이렇게 다섯편의 소설이 옴니버스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을 잠깐 보자면
<대장장이>는
일본도를 감정하는 최고 감정 회의에서 두 번에 걸쳐 가짜를 진짜로 감정하는
실수를 범하게 되고 그 도검을 만든 장인의 비밀을 찾게 되는 이야기인데
긴장감과 스릴을 볼 수 있다
아름답고 화려하며 기품있는 일본도의 세계와 그것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잘 어울려 있기도 하다
<실전화>는
정신과의사와 어릴 적 여자 친구와의 우연한 만남을 그려내고 있다
헤어진 뒤에도 시마 유지로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장소에게 린을 만나게 되고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다 세월이 흐른 뒤 알게 된다
그것은 린의 시마유지로를 향한 병적인 집착이었다는 것을
<엑스트라 신베에>는
영화 제작의 클라이맥스 찰영이 한창인 세트장에
막부 말기의 사무라이(그의 말과 행동은 진짜 사무라이처럼 보인다)
다치바나 신베에가 나타나 엑스트라 역을 멋지게 소화한다
신베에는 극중에서 연기중 칼에 상처를 입고 안개처럼 사라진다
<백 년의 정원>은
평생 정원을 사랑한 정원지기 가쿠라이 시게
정원은 백년의 세월이 흘러야만 그 아름다움이 최고조에 이른다는 선친의 말을
생명으로 알고 그 말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
꽃을 가꾸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꽃이 되려는 욕망을 가지게 된 새로운 주인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정원을 위해 결국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된다
<비 오는 밤의 자객>은
엄청난 오해로 영웅이 되어 야쿠자계의 전설이 된 “다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그는 소심함과 나약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그는 상황과 주변 환경으로 인해
강인하게 보일 수 밖에 없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이렇게 다섯 편의 이야기들을 통해 각기 다른 인생을 모두 볼 수 있어
재미와 긴장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소설이다
“인간에게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충동이 있다
아무리 비밀스럽고 위험한 내용의 이야기라도 언젠가 한번은 뱉어내야 한다
그것을 가슴에 묻어두면 한(恨) 덩어리가 되어 인생을 무겁게 짓누를 것이다” 라는
역자의 말이 여운이 되어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