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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나무 imagepress 1
이미지프레스 글.사진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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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쟁이의 동지적 지지와 연대를 보내며...

이렇게 제목을 뽑아놓고 보니 다소 거창하다. 그리고 어딘가 80년대 풍이다. 위의 말들을 요새 식으로 말하자면 한 마디로 촌스럽다고 하는 거다. 촌스럽다는 말이 의미하는 게 무얼까?  '시대착오적'이란 말을 듣기 불편하지 않게 자연스레 탈바꿈시켜 놓은 말일 게다. 언제부터 도시와 촌락이 구별되고, 도시에 비해 촌락이 뒤처진 시대착오적인 공간이 되었을까? 거기엔 아마도 "근대성(modernity)"의 문제가 깊이 개입되어 있을 게다. 근대의 도시 풍경들이 빚어낸 악마같은 소비욕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부(재력)이다. 근대화된 도시의 시민들이 절대적으로 추구하는 "부자되기"로부터 자연스럽게 도태된 이들, 그들이 바로 근대의 풍경으로부터 소외된 촌락민들의 운명이었다.

촌스럽다는 말엔 그런 인물들에 대한 조소가 깃들어 있다. 여기 너무나 시대착오적이어서 촌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웹진 "이미지 프레스(http://www.imagepress.net)"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7년간 인터넷이란 온라인 공간에서 3년간 마당 청소하고, 다시 3년간 빨래하고, 1년간 밥 짓는 악전고투 끝에 하산하여 강호제현(江湖諸賢)들에게 내민 것이 바로 다큐멘터리 사진 전문 무크지 "여행하는 나무 - imagepress vol. 01, landscape"이다. 인터넷 공간에 웹진의 형태로 출범한지 어느새 7년이나 되었던가? 이미지 프레스의 편집인이자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상엽의 "책을 펴내며"를 읽는 심정은 마치 제갈 공명의 출사표를 읽는 듯 비장하기 그지 없다.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비장하게 만들었는가.

<이미지프레스>를 창간했던 1999년을 전후한 우리 사회는 과거 어느 시기보다도 사진 이미지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유통. 소비하는 시기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다큐멘터리 사진이 실리던 시사 주.월간지는 수만 부씩의 발행부수를 자랑했고, 많은 사외보가 사진가들의 든든한 '밥줄'이 되어 주었습니다. 거기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이미지프레스> 같은 웹진과 사진가들의 홈페이지들이 속속 등장해, 다큐멘터리 사진의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는 전환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2005년 봄에는 다큐멘터리 사진 잡지 <지오>가 폐간되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여전히 잘 나가는데?"하실지 모르지만, 편집권이 없는 한국판 <내셔널 지오그래픽>과는 달리 국내 사진가들과의 활발한 교유를 통해 좋은 작품들을 게재해 온 <지오>의 폐간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본문 4-5쪽>

과연 그랬다. <지오>의 폐간 소식은 월간 <키노>의 폐간 소식 못지 않게 충격이었다. 잡지와 단행본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천재"와 "평범"한 학생 100명의 차이와 같다. 뛰어난 단행본은 우연히 한 명의 천재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으나, 잡지는 천재 한 명이 아니라 평범한 학생 100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를 뛰어난 천재 한 명에게 의지한다고 치자. 그 결과는 한국 스포츠가 지난 독재 체제 아래에서 엘리트 스포츠 위주로 흘러왔던 것과 흡사한 모양새가 될 것이다. 실제로 문화를 즐기는 이들은 없는데, 단지 몇몇 사람들만이 국제 무대에 나가 인정받는 것 말이다. 늘상 하는 이야기지만 한 권의 잡지엔 수많은 이들이 관계를 맺는다. 예를 들어 <지오>에는 수많은 사진작가들의 사진을 게재하는 방식으로 이 잡지와 관계를 맺어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최소한 한 두명은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이다. 비록 시작은 평범하였으나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작업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키노>와 <지오>의 폐간이 의미하는 것은 단지 한 잡지의 실패, 시장에서의 퇴출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많은 영화비평가들, 다양한 이론들, 대중과의 소통, 사진작가들, 사진 작품들, 그들이 빚어낸 독특한 사진의 풍경들이 일시에 거리에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잡지는 그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현단계 문화 수준을 적확하게 반영하는 매체이다. 두 잡지의 퇴출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문화 저변이 넓어졌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시절에 일어난 일이란 점이다. 영화잡지 <키노>는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와 맞붙어 승리를 거두던 시기에, 사진잡지 <지오>는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 카메라 바람과 더불어 외국의 유명 작가는 물론 국내 사진 작가들의 품격있는 전시회가 성공리에 개최되던 시기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과연 우리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기에 이 사람들은 이토록 비장한 발간사를 준비한 것이 아닐까? "새로운 진지전"을 위해 이들은 새로운 참호 하나를 파고 있다. 스스로 말하길... "그 참호 안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살아남을지, 아니면 또다른 폭탄을 맞고 장렬히 산화(?)할지는 독자들만이 알고 있습니다. 자! 이제 책을 시작하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십시오."라며 발간사를 정리하고 있다. 지난 80년대 기동전을 펼치던 사진가들이 장렬히 산화한 뒤, 21세기 현재의 사진가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무크 이미지프레스>는 "여행하는 나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유목민과 농경민의 시선을 결합해보고자 하는 시도일까? '참호'란 진지전을 펼치기엔 너무 불편하고, 승기를 잡아 치고 나가야 할 때는 발목을 잡는다며 짐짓 충고 한 마디 던지려던 찰나에 다시 발견한 부제를 보니 그런 충고를 던졌다간 단단히 창피 받을 각오를 해야할 듯 싶다. 이들은 이미 다 계산해두고 있었던 거다. 이번 무크지의 테마는 "풍경(風景 , landscape)"이다. 한자로든, 영어로든 흘낏 바라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풍경이란 궁극적으론 뿌리없는 자의 시선, 바로 바람의 시선이다.

그러나 사진가의 시선에 붙들린 풍경은 젤라틴 실버프린트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종종 더 좋은 기록 매체들이 속속 출현하는 현실 속에서 사진이란 기록 매체의 미래가 암담하단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사진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을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찾는다. 카메라의 렌즈 저 너머의 대상은 그저 고정된, 혹은 흘러가는 대상이 아니라 카메라 뷰파인더의 시선과 눈을 맞추고 있는 대상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사진가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렌즈를 통해 대화하는 자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담긴 대상뿐만 아니라 그것을 담아낸 자를 함께 바라본다.

카메라는 오랫동안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매체였다. 우리의 잠재 의식 속엔 오랫동안 카메라가 포착해낸 대상이 실재한 대상이란 사실을 꾹꾹 새겨 놓는다. 즉, 사진 인화지에 담긴 풍경은 현존했던 것이란 말이다. 지금은 소멸되었을지라도... 우리의 의식, 무의식 속에 그것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진이고, 그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명이 다하지 않는 까닭이다. "여행하는 나무"는 바로 그런 시선에 대한 상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잡지의 이번 특집은 최근 국내에서 전시되고 있는 <'결정적 순간'의 대가 앙리 카르티에 - 브레송을 추모하며>가 아니라 양수겸장(兩手兼將)으로 포진해 있는 <우리의 풍경> 그리고 <아시아의 풍경>이다. "여행하는 나무의 생각하는 풍경"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이 잡지를 전달받고 그날 중으로 다 읽고, 다시 또 읽었다. 물론, 현재의 내게서 이 잡지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은 나오기 힘들다. 그 까닭은 이 잡지에 대해 냉정한 시선을 확보할 만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탓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문제들은 지적하고 싶다.(물론, 이런 지적들이 얼마나 배부른 소리인지 잘 알고 있다.) 우선 판형의 문제이다. 물론 일반 단행본에 비해 다소 큰 판형이긴 하지만 사진을 주요 콘텐츠로 삼는 책이라고 하기엔 아직도 다소 작다. 다음의 문제는 지질의 문제인데, 무크지인 만큼 시간에 구애를 덜 받는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각각의 사진에 어울릴 만한 다양한 지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광택지의 사용 문제와 지질의 색깔 등도 적절히 안배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사진이 본래의 빛깔을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거기에 덧붙여 현재에도 물론 인쇄의 질을 나무랄 수는 없겠으나 인쇄 상태가 좀 더 좋아져야만 한다는 건,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보다 이 책을 만든 이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들의 시대착오적인 도발 혹은 반동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기 바란다. 그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불행히도 우리들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 참호 안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살아남을지, 아니면 또다른 폭탄을 맞고 장렬히 산화(?)할지는 독자들만이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까닭은 죽고 싶지 않다는 절규가 이니겠는가. 종종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뒤적이며 <매그넘> 사진 작가들의 이름을 줄줄이 암송할 수 있는 지식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네들이 우리들의 삶, 우리들의 흘러가는 시간을 포착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말은 알량한 민족적 자존심이나 국수주의적 시각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도 말하지 않았던가? 먼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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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가족, 가족 이데올로기와 사회 복지
가족은 없다 - 사회과학신서 22
다이애너 기틴스 / 일신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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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너 기틴스의 책 "가족은 없다 - 가족이데올로기의 해부"를 읽으며, 누구 다른 사람의 리뷰는 없을까 싶어 찾아보았으나 아무도 리뷰를 하지 않아서 의아하게 생각했다.(그랬더니 따우님이 2005년 3월에 쓴 글이 있었다.) 누군가와 견주어지는 일이 썩 기분좋은 경험은 아닐수도 있겠으나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비교 혹은 견주어보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아무런 이정표 없이(라고 말할 때 대개의 한국 사람들은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왜 변화무쌍한 자연이 있기에 그러나 정말 특색없는 자연지형 속에 살거나 넓은 평야 지대에 사는 이들, 당장 아파트 같이 획일화된 공간에서)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찾아갈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따우님의 리뷰는 내 나름대로 견주어가며 이 리뷰를 쓰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그것은 따우님이 다분히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이 책을 보았다면 내 경우는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날 스탈린이 엄청난 독재자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1930년대 중후반 소련 인민들도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우리는 오늘날 환경문제의 심각함을 알고 있다. 과연 1950년대의 사람들도 그러했을까? 우리는 오늘날 글로벌 미디어로서 TV의 엄청난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과연 1952년 처음으로 미국 전역에 최초로 1년 내내 상시 방송이 진행될 무렵, 오늘날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이 처음 발간된 1985년 무렵 이 책이 주장하던 "가족 이데올로기"의 상당수는 대한민국 사회에선 아직 낯선 이야기였고, 국내에 이 책이 번역된 것이 지난 1997년의 일이니 10년도 지난 후의 이야기이다. 올해가 2005년이므로 이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이 벌써 20년 전의 일이 된다. 따라서 기틴스가 이 책에서 주장한 이야기들의 상당수는 이미 다른 국내외 다른 학자들의 대뇌 피질에 흡수되어 다른 형태로 재생산되어 이제 우리가 스탈린을 비판하듯, 환경문제의 심각함을 알고 있듯 상당한 형태로 축적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지닌 의미가 반감되는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가족은 현재에도 여전히 존속하는 시스템이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지속될 전망이란 점에서 이 책이 지닌 의미는 감소하지 않았다. 그건 "가족연구기초"란 강좌에서도, 여성학 분야  이외의 다른 대학의 사회과학 영역에서도 대부분 이 책을 가족에 대한 기본 교재로 채택한다는 것이 잘 증빙해주고 있다. 흔히 사회학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의 최소 단위가 가족이다. "나와 너"는 철학적 담론의 대상이 될 수는 있을지 언정 사회학적 담론의 대상은 아니다. 사회의 최소 단위는 3인 이상일 때를 상정한다. 이 책에는 편집자 조 캠플링의 서문이 있는데(아주 마음에 드는 일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가족관련 텍스트들이 부적절하다는 불만"에서 낡은 텍스트들을 걷어치우기 위해서라도 이 책이 필요했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서구의 가족 이야기임을 밝힌다. 과연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된 사례들은 영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재미있는 건, 한국 사회가 일부 특수한 사례들을 제외하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례와 그다지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추측건데 두 가지다. 하나는 가부장제 형성은 세계 전체적인 현상이었다는 것(물론 이 책이 예시하고 있듯 예외도 일부 존재하긴 하지만)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 걸어온 길은 개화기 이후 한국 사회가 걸어온 길(서구화)과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서론을 포함하여 모두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장은 각각의 질문과 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원인과 사례, 분석으로 구성된다. 그럼에도 각각의 장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우리가 학문적으로 '가족'하면 대뜸 '여성학' 분야를 연상케 하는 것처럼 이 책 "가족은 없다"가 담고 있는 기본적 틀이 페미니즘적이란 사실을 연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다이애너 기틴스는  "가족""가족 이데올로기"를 구분하여 다루려고 노력하지만, 종종 이 두 가지 개념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이데올로기는 의식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며 그로인해 단순한 관념이 아닌 물리적인 힘으로 작동한다. 가족에 대한 사회의 고정된 관념 혹은 이데올로기는 법을 제정하게 만들고, 사회적 제관계를 구성해내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실체를 지닌다. 기틴스는 1장 '가족은 어떻게 변해 왔는가'를 통해 가족이란 개념이 역사적으로 고정불변의 가치를 지닌 개념이 아니라 역사적 상황에 따라 여러 형태로 변모해왔음을 밝힌다. 2장 '가부장제는 가족을 이해하는데 적합한가'에서 저자는 가부장제가 경제적, 사회적, 성적 통제를 강화하는 형태로 발전해 왔으며 이런 틀 밖에 놓인 여성들은 종종 마녀란 혐의로 박해받았음을, 또한 이런 가혹한 박해에도 불구하고(죽음을 각오한) 일부 여성들은 가부장적인 보호(억압)의 틀 밖에 놓이길 희망했음을 말한다. 3장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은 보편적인가?'에서는 문화인류학적 접근과 사례들을 통해 가족이 반드시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다. 심지어 오랫동안 인류의 보편적 체험인 것으로 가정되어 온 '어머니'와 '모정'조차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며, 이를 모든 문화에 보편적으로 적용하려는 것이 그렇지 않은 다른 사회에 대한 자민족중심적이며 편협된 방법이라 말한다.

타히티에서는 젊은 여성이 공인되고 안정된 혈연관계를 가질 준비가 되어 있다고 판단되거나 또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기 도전에 한 두 명의 아이를 가지는 일이 종종 있다. 이런 젊은 여성의 아이들을 그녀의 부모나 근친자에게 입양하는 것은 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 소녀는 아이에 대한 그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 때문에 '어머니임'이 강요되는 일은 무분별한 일이다.(Edholm, 1982:170). <본문 103쪽>

4장 '사람들은 왜 결혼하는가', 5장 '사람들은 왜 자녀를 갖는가', 6장 '여성의 일은 왜 끝이 없는가'에서도 가족에 대하여, 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앞서의 장들에서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역사적 사례를 빌어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이 현재까지 의미를 갖는다고 앞서 말했는데, 그것은 여성학(여성학적 관심을 포함한) 분야보다는 도리어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까닭은 이 책의 마지막 두 장이 던지는 질문의 묵직함 때문이다. 7장과 8장의 질문은 '국가: 가족 연대의 창조자인가 파괴자인가?', '가족은 위기상태에 처해 있는가?'이다. 나는 이 질문이 맞지만 좀더 정확해지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국가"가 아니라 "국가 혹은 자본: 가족연대의 창조자인가 파괴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만 오늘날 '가족은 위기상태에 처해 있는가?'라는 질문의 함의를 좀더 풍성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가족간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좌우익의 이론가, 페미니스트와 반(反) 페미니스트들은 일견 혼동되고 서로 상반되는 관점을 놓고서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논쟁의 주요 쟁점은 국가, 특히 복지국가의 성장이 실질적으로 가족의 위치와 가족의 '연대'를 강화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의 보다 견고한 가족 연대와 가족 보호를 더욱 쇠퇴시키고 침식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견 차이에 있다. 양편은 모두 다 '국가'와 '가족'에 대해 다소 전형적인 해석을 하기 때문에 곤란을 겪는 경향이 있다. <본문 195쪽>

이른바 가족 쇠퇴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산업화(대가족 중심의 노동력을 요구했던 농경사회의 해체), 도시화(농경사회의 해체 이후 변화된 자본주의 질서가 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력 생산 기지로서의 핵가족 제도), 여권 신장 등등 여러가지 이유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변수가 가능하다는 것이긴 하다.

엥겔스는 결혼과 가족이 사유재산의 발달과 적출 상속인의 필요에 의한 역사적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옛날에 사유재산이 없었다면 결혼의 필요성은 없었을 것이며, 미래에도 만일 재산이 없어진다면 다시 결혼의 필요성은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본문 114쪽>

엥겔스의 위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가족 혹은 가정은 자본주의 혹은 국가가 담당해야 할 몫을 가정에 부여함으로써 그 책임을 상당수 모면해왔다. 도시화와 산업화 이후 자본주의는 노동력 재생산과 노동자(주로 남성으로 구성된)들의 노동력 상실을 방지하려는 차원에서(여성과 어린이 노동의 문제도 있으나 기술발달로 생산력 문제가 해결되고, 점차 노동자들의 의식이 각성하면서 자본은 노동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감소시키고 안정된 노동력 재생산의 가능하게 하기 위해)  가족을 통해 평온과 안정이란 물질적, 정신적 재화(서비스)를 공급하도록 했다. 안정과 평온으로 그득한 "행복한 나의 집"은 근대의 자본이 만들어 낸 풍경이었다. 이는 적어도 남성노동자가 중심인 사회(가부장제 사회)에서 사회적 통제 비용의 많은 부담을 가정이 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말을 다시 바꿔보면 자본주의의 존재 양식이 잉여노동에 기반하고 있으며 자본주의란 두 발 달린 자전거가 계속 굴러가기 위해서는 최후의 최후까지 착취할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자본의 가장 최후까지 존재하는 식민지는 가정이며, 자본주의가 만일 가사노동에 대해서까지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면 자본주의 체제는 온존할 수 없다는 가정이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가족내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은 이것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국가에 재정적 책임을 지움으로써 '공적'인 것이 되기 전에는 편리하게 '사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국가정책은 무엇보다도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가장 강하게 영향을 받았는데, 이 이데올로기는 개념상 남성과 여성, 어린이와 어른, 노동계급과 중간계급 사이의 불평등한 대우를 전제하고 있으며, 따라서 불가피하게 현실은 그렇지 않다손 치더라도 가족 연대의 이상을 강화시켰다. <본문 224쪽>

베블런에 의하면 원시시대부터 유한계급에겐 육체노동과 여성의 노동은 가치없는 것으로 평가절하되었다는 점에서 동일한 것으로 취급되어 왔다. 그런데 오늘날엔 자본주의가 가족의 역할 중 상당 부분을 시장의 기능으로 흡수하거나 대체한다. 즉, 가정이 제공하던 식사는 식당이, 가사노동은 다른 형태의 임금 노동으로 대체된다. 현재 가속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일반적인 정책 방향은 사회복지의 축소를 상정한 것들이다. 만약 위의 가정이 맞다면 국가 혹은 자본은 자살을 결심한 것일까? 근대의 노동 환경이 일부라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물론 사회주의와 임금 노동자들의 각성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그와 반대로 자본이 기술발달에 따른 생산력 향상과 노동력 재생산의 안정적 시스템 확보를 위해 노동자의 삶을 좀더 안정적으로 구축해주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국가와 자본은 가족의 해체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잡아가고 있는 것일까?

가족 이데올로기는 현존하는 사회, 경제, 정치, 그리고 젠더 체계를 결합시키고 입법화하는 데 절대 필요한 하나의 수단 - 절대 필요한 유일한 수단 - 이었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것은 전체 사회 체계에 도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결과로 사람들이 특정한 가족가구 형태에서 서로 살아가고 상호작용하는 것을 중지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합의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함을 의미한다. 가족가구들은 어떠한 형태의 사회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데올로기는 그렇지 않다. ....<중략>.... 가족 이데올로기가 없었다면, 근대 산업사회와 그 정치 체계는 실제로 매우 달랐을 것이다. 가족 이데올로기가 없다면, 남성, 여성,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의 실체를 재고하고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며, 같이 살아가고 일을 할 때 좀더 평등하고 서로 배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본문 244-245쪽>

저자 다이애너 기틴스는 이렇게 결론 짓고 있다. 그러나 나는 기틴스의 이 결론이 추구하는 바에 동의하지만 위의 결론 부분에서 가족 이데올로기가 마치 산업구조, 사회구조와 외따로이 떨어진 섬과 같이 존재하는 무엇으로 오해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가족 이데올로기는 기틴스가 여러 역사적 사례를 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타히티와는 다른 가족 이데올로기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틀(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구조)의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다. 다시 환원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나 가족 이데올로기가 이것들을 규정한 것이 아니라 이런 구조들이 가족 이데올로기를 규정한 차원이 보다 상위의 차원일 거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다시금 위에서 던졌던 질문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가족의 해체를 촉진시킬 수도 있는 복지의 축소 정책을 강행하고 있으며, 강제하고 있는가? 현재까지 고민해 본 나름의 결과는 세계자본의 강화에 비해 과거의 (민족)국가 단위의 권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측면에서 세계 자본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국가 권력이 휘둘리는 것은 아닌가(예를 들어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과 같이)하는 것이고(이 때의 가정 중 하나는 국가가 어느 정도는 그 구성원의 이득을 염두에 둔다는 것, 혹은 국가 권력과 세계 자본이 동일한 지향점을 갖지 않는다는 설정을 내포해야만 한다는 문제가 있다), 제레미 리프킨으로부터 *앙드레 고르에 이르는 노동사회의 종말과 맞물려 지식사회 내지는 아직 무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생산구조의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선진국(다국적 자본)의 생산구조의 변화가 더이상 노동에 의존하지 않는 구조로 변모해가고 있는 탓에 노동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감소한 까닭은 아닌가 하는 것(이 부분은 다시 미래학의 영역이라 해야할까)이다.

*앙드레 고르는 노동일 감축과 자유시간의 증대, 자유시간의 자기조직화를 통해 문화 활동의 증대가 삶의 중심적인 활동이 되는 사회가 오늘날의 발전된 생산력을 기초로 현실화될 수 있는 조건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노동사회에서 문화사회’로의 이행이라는 대대적인 문명적 변동이 사회 성원의 다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극소수에게만 한정된 혜택으로 국한된다면 이는 유례없는 가공할 야만 상태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라고 예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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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이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나는 한국 사람이 아니었다.
재일교포 2.5세 '노란구미'의 한국.일본 이야기
정구미 지음 / 안그라픽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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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만화가 있는 줄도 모르다가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정구미"라... 어감이 쉽게 입에 달라붙지 않는다. 한국식 이름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 점에서는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 지식인과 그 사상 1980 - 90년대"을 썼던 윤건차 선생의 이름도 그렇다.  생각외로 한국에서 이름을 지을 때 사용하는 한자는 많지 않다. 어쨌거나 정구미의 "재일교포 2.5세 '노란구미'의 한국.일본 이야기"란 만화책을 소개받을 때만 해도 나는 그저 그런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 체험담을 다룬 책으로 생각했다. 사실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나 라이프 스타일을 다룬 책들은 결코 적은 편이 아니지만, 민족적 편견을 조장하거나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고 나름대로 객관적인 포즈를 취한 책들의 경우에도 과거사의 무게에 짓눌린 느낌을 전해받기 십상이다.

나는 지난 겨울에 인천 영종도에서 재일교포 3세를 만난 일이 있다. 우리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재일교포 3세, 그것도 재일조선적(在日朝鮮籍)이라 한국에 한 번 들어오려면 여러가지 절차를 밟아야만 하는 처지였다. 국적(nationality)이라 함은 국민으로서의 신분을 말하거나 국민이 되는 자격을 의미한다. 태어날 때부터 한국 국적을 갖고 태어난 대다수 한국인들은 국적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백인들이 자신의 인종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것과 같고, 남성들이 성차별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것, 이성애자는 자신의 성적 취향의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는 백인, 황인, 흑인이라고 말하지만 백인들의 세계에서 백인은 색이 아니다. 그것은 단적으로 유색인종(有色人種, Colored People)이란 표현에서도 알 수 있다. 서구인들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백인들은 백색을 색(color)으로 생각지 않으며 인종문제로 고민해야하는 것은 오직 유색인종들 뿐이다. (즉, 이미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위해 고민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종종 왜 남성대학은 없는데 여대는 있고, 남성학과는 없는데, 여성학과는 있는가? 어째서 남성부는 없는데 여성부(그나마도 최근엔 남성들의 등쌀에 밀려 '여성가족부'로 명칭을 변경했다)는 있는가?를 항의하는 사람들을 보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은 경험이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 스스로 차별을 자초한다는 주장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일화가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의 강연에서 한 남성 청중이 "남성적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질문했을 때 뤼스 이리가레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당연하지요. 세상엔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왜 여대는 있는데, 남대는 없나? 왜 여성학과는 있는데, 남성학과는 없는가? 왜 여성부는 있는데 남성부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가?란 물음에 대해 뤼스 이리가레의 표현을 빌어 답하자면 "당연하지, 나머지는 전부 남성들 거잖아."라고 말할 수 있다.

이야기가 약간 딴 길로 조금 샜다. 최근 자주 듣게 되는 표현 중 하나가 '코시안'이다. 코시안이란 "코리아+아시안"의 합성어로 한국으로 이주해온 아시아계 외국인(대다수가 여성인)과 한국인의 결혼으로 태어난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코시안의 출현과 더불어 이들에 대한 차별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나는 진정으로 차별을 염려한다면 '코시안'이란 표현부터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장애인을 장애우로 부르는 행위와 흡사한데, 장애인에 대한 차별 자체는 온전시키면서 그들을 친구라고 호명하여 본질 자체를 왜곡하는 결과를 빚기 때문이다. 코시안이란 호칭 자체가 다른 각도로 보자면 그들이 "우리와 같은 '코리안'이 아니다"로 구분하기 위한 호명, 코리안으로 받아들이기 싫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의 경우 2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한국 국적을 취득할 자격을 얻을 수 있으며 2년이 지난 뒤에도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만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우리는 한 민족, 한 겨레를 자주 입에 담지만, 이때 말하는 한 민족과 한 겨레에도 차별은 존재한다. 일단 조선족 동포들이 제외되고, 사할린 동포들이 제외된다. 이들의 한국 국적 취득 문제는 물론 한국 방문 자체도 차별당한다. 그에 비해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 이른바 재외 선진국 동포들은 언제나 환영이다. 같은 미국인이라도 백인은 선호되고, 흑인은 차별당하는 것과 흡사한 일이 한 민족, 한 겨레에 대해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거기에 더욱 복잡한 것은 바로 재일조선적(在日朝鮮籍) 동포다. 며칠전 EBS(2006.3.2)에서 "조선적을 아십니까? 돌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이란 다큐 프로그램을 해준 적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조선적을 아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대개 중국의 조선족을 먼저 생각한다. 재외동포 700만 시대, 조선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중국의 조선족이 아니라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60만 재일동포들 중에서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고, 한국 국적을 선택하지 않은 채 '조선'이라는 기호를 자신의 출신지로 삼은 이들(대략 13만에 이른다고 한다)을 일컫는 말이다.

일제 시대 한반도에는 남한도, 북한도 존재하지 않았고, 해방 이후 분단이 고착될 때 남한과 북한 어느 곳도 택하지 않은 사람들의 국적은 그냥 조선이었다. 그러나 남한 사회에서는 이들을 총련계로 분류하였고, 2005년까지 이들의 한국 유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들이 남한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배경에는 여러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앞으로 통일된 조국이 생기면 그것이 당연히 자신의 국적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기에 덧붙여 남한의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남한 국적이 아니니 당연히 북한 국적일까?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일본과 북한은 아직까지 국교를 수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에 북한 국적을 가진 재일동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차별을 받더라도 조선인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이들이지만 남과 북, 어디에서도 이들을 보호하지 않으며 왕래조차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조선적을 포기하고 일본인으로 귀화하면 서울과 평양 어디든 일본 국적으로 편하게 오고갈 수 있다. "재일교포 2.5세 '노란구미'의 한국.일본 이야기" 144쪽 '수학여행' 편에는 모국으로 수학여행을 왔던 구미의 경험담이 들어 있다. 5박 6일 일정의 모국 여행, 어딜 가든 그들은 어색했다. 불국사 여행길 창 밖으로 한국 남학생들을 가득 실은 관광버스가 지나가는데 학생들이 차창을 열고 환호하며 소리를 지른다. 반가운 마음에 창을 연 구미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반족발, 일본놈들아!"였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는 공항에서 구미의 여권은 대한민국 것이었으나 구미는 일본인 여권심사대를 이용해야 했다. 구미는 칸칸으로 막힌 만화의 한쪽에 이렇게 적어 놓는다. "이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나는" "한국 사람이 아니었다."

구미의 "재일교포 2.5세 '노란구미'의 한국.일본 이야기"의 가장 큰 장점은 정직한 느낌, 그리고 편견없이 한.일양국을 바라보려는 열린 마음가짐에서 다가오는 신선함이다. 일본에서 재일교포 2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22년간을 성장한 구미는 그래서 스스로를 재일교포3세가 아닌 재일교포 2.5세라고 표현한다. 22년간의 일본 생활 때문에 그녀는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어정쩡함, 어색함도 느낄 만하고, 실제로 이 작품집이 담고 있는 내용의 원천 역시 그런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 자신의 성장사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작품집 어디에서도 기성세대라면 짊어졌을 법한 역사의 무게, 시대의 무게가 주는 묵직함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작품집에 진지함이 결여되어 있는 신세대 감수성으로 충만한 이야기도 아니다. 구미는 누구보다 진지하지만 짓눌려 있다기 보다는 그 자체를 가볍고 신선한 변화로 받아들인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걱정하고, 고민하면서도 동시에 이것을 오랜 역사, 갈등 속에 놓인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단절을 이어주는 매개, 서로를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도리어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극복해낸다. 그것이 구미의 이 작품집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이자 감동의 원천이다. 작지만 당당한 구미의 한국행이 후회없는 것이었길, 그것이 앞으로 한국과 일본의 미래 세대에게 같은 인류로서 공감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되길 바란다. 또 내가 다른 이와 지닌 무수한 차이가 지닌 가치를 우리가 진실로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폭력성의 원천은 차이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남과는 다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차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있다. 나는 당신과 다르다. 그게 무슨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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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문화연구의 입장에서 본 아놀드 하우저 - 4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영화의 시대,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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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의 입장에서 본 아놀드 하우저 - 4

이 책의 옮긴 이 가운데 한 명인 반성완은 이 책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지닌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사회사적 관점에서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전유럽의 예술과 문학을 통사적으로 서술한 유일한 저서이다.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 대항 ․ 필적할 만한 저서는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비록 문학에 한정되어 있고 또 방법론을 달리하고 있지만 역시 통사적 성격을 띠고 씌어진 아우얼바하의 『미메시스』와 쿠르티우스(E.R.Curtius)의 『유럽문학과 중세라틴문학』과 함께 날이 갈수록 미시적 연구에만 빠져드는 제도권 중심의 오늘날의 학문적 풍토 속에서 앞으로도 계속 하나의 기념비적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유럽의 예술사를 사회사적 시각에서 조감해보려는 문학도에게는 일종의 교과서적 역할을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하우저는 문학사가이기 이전에 미술사가이다. 그의 문학에 대한 관심과 조형예술에 대한 관심은 그가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일종의 평형 상태를 이루고 있다. 이는 예술사가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강점이다. 그가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의 조형예술에 나타나는 양식사적 현상, 즉 매너리즘을 셰익스피어 문학 해석에 적용시키고 있다든가 20세기 전위문학의 특성을 현대의 영상예술에서 찾는다든가 하는 등의 그의 미술사가로서의 시각이 없었더라면 아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우저의 이러한 특징은 현대예술을 음악과 문학의 관련 속에서 보는 아도르노의 예술이론의 특징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셋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일반적 이론과 구체적 작품 비평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변증법적으로 잘 매개되고 있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보이는 몇몇 개별적인 작가나 작품에 대한 하우저의 뛰어난 실제 비평은, 그가 정해놓은 이론의 틀을 끊임없이 교정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하나의 예술사가 빠지기 쉬운 도식적 사고에서 벗어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예술사가로서의 하우저의 이러한 특징과 입장은 이론적 ․ 체계적 비평에 매우 강한 루카치와 개별적 예술품에 날카로운 감식안을 가지고 있는 아도르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 보는 것처럼 이론비평과 실제비평이 서로 연결짓지 못한 채 이루어지고 있는 문학연구나 예술연구의 실정에 비추어 보면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갖는 이러한 특징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하우저의 사회사(사회학)적 연구방법론의 특징은 이미 언급한 대로 사회학적 연구방법론이 빠지기 쉬운 도식적 구성과 방법론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면 현대 사회과학이 제공하는 여러 사회학적 인식은 그에겐 예술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 그는 예술적 현상이 전체적으로 보면 예술 외적 요인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모든 요소에 의해서도 설명되지 않는 예술의 어떤 실체 내지 본질이 있다고 믿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예술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그는 이러한 예술의 본질적 면을 예술의 형식 내지 양식이 가지고 있는 지속성과 자율성, 그리고 예술이 갖는 보편적 기능이라는 면에서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뵐플린 식의 양식사 문제에 끊임없는 관심을 보인다든가, 현대 예술의 특징을 16세기의 매너리즘적 양식의 연속선상에서 고찰한다든가, 아니면 ‘예술의 종말론’을 강력하게 부정하고 현대예술의 존립근거와 기능을 옹호한다든가 하는 것이 그의 예술관의 이러한 면을 잘 말해주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예술연구방법론에 대한 그의 관계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아놀드 하우저가 마르크스의 이론적 틀과 변증법적 방법론은 인정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의 정치적 실천과 경제환원론이 예술의 문제, 문화의 문제를 규정지을 수 있다는 입장에는 확실한 반대 입장을 보이는 것은 문화연구의 입장과 흡사하다. 이는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나치의 독일 지배에 대한 반성에서 출현했던 것처럼, 영국의 문화연구가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대한 영국 내 신좌파의 반응으로 출현했다는 것과 묘한 일치를 보인다. 문화연구는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문화를 계급간 헤게모니(도덕적이고 지적인 지도력)를 놓고 벌이는 대립과 충돌의 장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문화연구에 대해 "가면을 쓴 마르크스주의"라는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이것은 문화연구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아주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마르크스주의는 문화연구에 매우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연구는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계급과 더불어 성별, 인종적 혈통 등에 따라 불평등이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다른 한 가지는 문화연구가 마르크스주의의 문화유물론을 인정하고 수용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문화연구는 문화적 힘이 어떻게 사회구조에 역사적 형태를 부여하는가의 관점에서 사회구조를 분석한다. 문화가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사회구조뿐만 아니라 역사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문화연구는 역사와 경제 결정론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환원주의적 마르크스주의와 구별된다.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드러내고 있는 가장 큰 한계는 그의 시각이 서양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서구에서 출간된 많은 통사들이 그러하듯 실제로는 "서양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제1세계의 문학사는 서양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했고, 제2세계의 문학사는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노출한다. 문화연구 역시 오늘날 몇 가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 중 하나는 학계 외부에서 대립적인 지적 전통의 하나로 출발했던 문화연구가 점차 학제 내부로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문화연구 역시 점차로 학문의 한 분야로, 학문제도와 권력구조의 일부로 변모해가고 있으며, 문화연구가 마치 서구(미국과 유럽이 제공하는)의 유치하기 그지없는 대중문화를 정당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아메리카나이제이션의 문제). 그렇기에 문화연구는 결과적으로는 앵글로색슨의 문화적 식민지화 작업에 봉사할지도 모를 앵글로색슨의 하위계급에 대한 연구이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지역연구여야 하며 진부하기 짝이 없는 연구들을 되풀이하기 보다는 비판이론으로서의 새로운 틀을 갖추어야만 할 때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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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잔혹한 신의 선물, 자살
자살의 연구
앨 앨버레즈 지음, 최승자 옮김 / 청하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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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알프레드 알바레즈의 "자살의 연구"가 국내에 처음 번역소개된 것은 1982년의 일이었다. 우리 사회 전체에 죽음의 분위기가  넘쳐나던 바로 그런 시기에 이 책이 옮겨졌다는 것은 다소 의미심장하다. 이 책의 원제는 "The Savage God: A Study of Suicide"이다. 말그대로 "잔혹한 신: 자살의 연구"인 셈이다. 얼마 전 나는 게르트 미슐레의 "자살의 문화사"란 책에 대한 리뷰를 올린 바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자살 보다는 죽음(Thanatos) 에 대해 좀더 관심이 있고, 공자의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삶도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논할 수 있으리요"만 에로스와 타나토스(Eros et Thanatos)는 사실상 한 몸이기에 나는 에로스의 영역에도 관심이 많은 셈이 된다. 에로스와 타나토스(Eros et Thanatos)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애에 대한 탐구이며 동시에 예술의 기본 재료들에 대한 탐구이다.

에로스는 궁극적으로 타나토스에 매혹되어 있으며 타나토스는 파괴의 신이자 동시에 생명의 신이란 점에서 언제나 에로스를 꿈꾼다. 모든 예술가들, 사람들에겐 근본적으로 생의 충동 즉 자기보존의 성적 충동을 표현하는 에로스와 이에 대립되는 타나토스(Thanatos, 그리스어로 죽음을 의미한다)라는 죽음 충동이 있다. 타나토스란 결국 "삶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것“이고, 에로스는 “자연에서 삶을 퍼 올리는 생식”을 의미한다. 예술이란 인간의 삶과 죽음을 그 내용으로 삼고 있으므로 당연히 섹스와 죽음은 모든 예술과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으며, 그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가지로 변주되더라도 결국 이 둘 사이로 귀결된다.

A. 알바레즈에겐 또 개인적으로 이런 극한의 경험을 한 사람을 직접 경험해 볼 기회가 있었다. 그것이 이 책의 서장에서 소개되고 있는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1963)"이다. "아빠의 살찐 검은 심장에 말뚝이 박혔어요./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조금도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어요./그들은 춤추면서 아빠를 짓밟고 있어요./그들은 그것이 아빠라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어요./아빠, 아빠, 이 개자식. 이제 끝났어."라는 언제나 나를 감동시키는 시를 지은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 시인이며, 동시에 현대를 대표할 만한 시인의 자살을 그는 가까이에서 목도하는 개인적인 경험을 한다. 실비아 플라스는 미국 보스톤대학교의 생물학 교수이자 땅벌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아버지 오토 플라스의 딸로 태어났다. 실비아 플라스의 시 세계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나이 8살 때 목격한 아버지의 죽음에 의한 충격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비아 플라스는 아버지가 죽은 이듬해인 아홉 살 때 첫 번째 자살 시도를 벌인다. 대학시절 다방면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인 플라스는 장학금을 받고,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중에 알게 된 시인 테드 휴즈와 결혼한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실비아 플라스는 1962년 자신의 집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녀의 세 번째 자살 시도가 유일한 성공이자 실패였다고 A. 알바레즈는 말한다.

대개 책의 원제에 "Study"란 말이 붙는 책은 읽기 쉽지 않다. A. 알바레즈의 이 책은 자살의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시작해 - 자살이 생을 종결짓는 한 방법으로 비교적 쉽게 용인되었던 고대 희랍 세계와 문학, 자살이 죄악시되던 기독교 사회에 이르는 - 여러 사례들을 다룬다. 그러므로 나머지 장들을 모두 읽었다면(이건 분명히 약간의 엄살이긴 하지만) 당신은 자살에 대해 나름의 식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앞의 1장 부분 실비아 플라스가 죽음에 이르기 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하며, 그것으로도 제 몫을 다 해냈다고 말할 수 있다. 옮긴 이인 시인 최승자는 우리에게 "개같은 가을"을 선사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녀의 번역은 대개 언제나 믿을 만하며, 읽는 재미를 만끽하게 해준다. 비록 이 말이 그녀에게 찬사가 될 수 없음을 나 자신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렇다면 왜 예술가들은 그토록 죽음에 대해 예민한 걸까. 그것은 이미 앞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존재 자체가, 그리고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의미 부여가 그들을 "잠수함의 토끼" 같은 존재로 규정하고 있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지표 생물이라 할 수도 있겠다. 즉, 어느 지역의 생태계에서 특정한 생물이 살 수 없다면 그 지역의 생태계가 어느 정도 파괴되고, 오염된 것인지 알 수 있다는 그 생물 말이다. 이것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하자면 한 명의 괴짜, 혹은 바보, 혹은 괴물이, (종종 예술가들을 지칭하는 말들이다) 견딜 수 없고, 살아남을 수 없다면 그 사회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더라도 병든 사회란 것을 의미한다. 한 명의 지식인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것이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죽음에 맞먹을 치욕을 사회적 징벌로서 받게 된다면 그 사회는 병들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A. 알바레즈는 "자살의 연구"를 통해 문학과 죽음, 예술의 창조자이자 동시에 사회의 파괴자로 기능하는 예술가들의 상상세계에 죽음(타나토스)의 그림자를 연구했다.(내 딴엔 짧게 쓰느라 고생했다. 그리고 혹시 자살-행동으로 취할 자살 말고-에 대해 좀더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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