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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1
박지향, 김일영, 이영훈 외 지음 / 책세상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보통 정치사회분야 책이 출간될 때 책속의 내용들은 기존 사고체계속에 뛰어들어 새로운 '중심잡기' 를 꾀하려거나 기존의 이념, 개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힘겨루기를 하게 된다. 어떤 글쓰기이든지 의식변화를 꾀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이미 정치성과, 또하나의 관점성을 갖게 된다 . 글을 통한 생각의 전달이라는 '사고의 광고' 는 소위 관점주의, 상대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책에서 '재인식'이라는 대립개념화된 표제 속에는 이미 특정 자리에서 바라본 개별요소들에 대한 배제, 강조, 포괄, 추상화가 전제되어 있다. 이 책의 표적이 된 <해방 전후사의 인식> 도 본질적으로 좌파편향이다. 스스로를 객관이라 억지부리지는 않았으되 제시된 증거자료들만은 객관화된 진실임을 실증하였다. < 해방 전후사의 인식> 은 소위 분단직후 우익강점의 (우익이라 불릴 가치도 없는 수구퇴폐성향의) 헤게모니 지반위에서, 무참히 제거된 반쪽 진실과, 가치들을 복권하기 위한 지향성으로 인해, 책의 논의점들이 최종 안착할 목표가 아무리 객관(중립)이라 해도 방향자체는 좌향일수 밖에 없었다.
이런 근본 딜레마, 한계성을 고려하여 이번의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책을 최대한 수용해 보려 했으나 일단의 글들은 그동안 지겹도록 반복되었던 반쪽역사를, 가부장적 폭압으로 박제되버린 50년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스스로 표방했던 '다각적, 객관적, 실증적' 이란 수식은 견강부회하며 수집한 그들만의 자료였다. 구체적으로 꼬집자면 전쟁전후의 미군이란 존재의 정체성을 놓고 '결과지상주의' 관점 (현 남한의 체제우위의 승리?를 자축하며 과거의 모든 오류들을 긍정해버리는) 을 앞세워 특혜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소련의 책임을 전면에 부각시키기 위해 미국의 책임과 불순한 행적들을 은근슬쩍 감싸주거나 아예 빼먹고 있다.
상징적인 일례로 한반도 분단의 가장 근본적인 단초라고 할 만한 (45년 12월의 모스크바 3상회의)에 대한 이 책이 할애한 겨우 2페이지(!)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해방전후의 재인식> 제 2권, 5부 해방 공간 ㅡ p46 ~ 47)
당시 3상회의기록 전문에 대한 어떠한 증빙자료도 없이 당시 미국측 협상대표였던 '번즈'국무장관과 '조지 캐넌'의 몇마디 발언이 이 책이 내건 객관적 자료의 전부이고! 당시 미국의 음해공작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국내 동아일보의 기사(45년 12월)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는 기사, 당시 동아일보는 이승만<한민당>의 전담지였다), 한반도를 해방시켜준 댓가로 이권을 챙기려한 미국의 조직적 개입(신탁통치를 꾀하려 여론몰이)은 이미 드러난 사료史料 인데도 이 부분에 대한 의도적인 누락은 그야말로 곡학아세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논지를 펼치는 방식도 증거한다는 자료들도 50년전 논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당시 번즈국무장관에 대한 조지 캐넌의 증언을 인용한 부분인데 " 모스크바 3상회의 당시 그는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서 전혀 아는바가 없었고,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어려운 입장에 처했던 터라 당시의 회의에 대해 별 준비도, 고민도 없이 좋은방향(통일국가수립)으로 빨리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애초부터 회의결렬을 작정하고 있었던것 같다." 라는 어설픈 대목이 그대로 소개되고 있다. 이 인용문이 마치 진실의 폭로인양 소개되는 것을 보며, 이 책을 쓴 저자들이 얼마나 순진하고 졸속한 수준으로 글쓰기에 임했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당시 한반도의 운명을 앞에두고 표명한다는 비공식적(하지만 진실이 담긴) 입장이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미국의 최대견제국이던 소련,중국의 지배영역권에 속해있던 한반도 (더군다나 전국민의 80%가 사회주의에 고취되어있던 나라) 를 신탁통치를 통해 어떻게든 견제용 전초기지로 만들려한 미국의 속셈을 겨우 이따위 변명으로 숨기려 했다는 것은 졸렬함을 넘어서 우리를 우롱하는 처사라고 밖에는 생각할수가 없다. (미국은 그동안의 노력으로 현재 전세계 90개국에 점령군, 파병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신탁통치조작에서부터 전쟁발발전 미군의 의도적인 철군, 양민학살진상, 전후 정치적개입과 비밀방첩활동 등 일련의 사건들을 이야기 하게 될때, 우리들은 어쩔수 없이 반대편 주장을 거짓으로 여기며 편이 갈릴수 밖에 없게 된다. 역사를 인식함에 있어 스스로 중립이라 참칭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오만이다. 애초부터 자기는 우편이요 좌편이요 밝히는것이 차라리 솔직함일 것이다. 역사에는 정립이 없다. 단지 끝없이 이어진 설득의 과정만 있을 뿐이다.
미국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아니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저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과거 일제시대 부역지식인들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일제의 잔재들과 그 잔존세력들, 또 그들의 행적들을 어떻게든 정당하게 윤색하려는 저자들의 모습들. 서두에서 이미 밝힌, 민족주의를 역사의 구닥다리로 못박는 그들의 세계관에서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잔여물이 보이는 건 왜일까?
당시 일제가 주창했던 것이, 일찌기 근대화에 앞장선 자기네 우월인종이 아시아의 주인이 되어 민족을 초월한 전아시아의 공영(지배)으로써 서양세력과의 대결이었다. 그런데 수입된 근대사상들중 '민족주의' 사상이 일제에게는 최대의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 국내의 배알없는 몇몇 지식인들이 이에 부화뇌동하여 황국신민으로 포섭(인종상승)되길 바랐던 것이다. 그런 세력의 잔당들이 친일에서 친미로 주인을 갈아치웠듯이 요즘같이 극우민족주의가 다시 득세하는 추세에 이 책의 필진들이 과연 또 어떤 모습으로 그들의 '反민족주의'를 탈바꿈하여 그들의 입맛(극우)에 맞게 이용할지 지켜볼 노릇이다. 아니 어쩌면 지켜야할 노란피부의 민족이란 애초부터 필요 없어져버린지도 모른다. 이미 자신들과는 다른 피부의 주인(미국인)을 섬기고 있으니깐. 그래서 민족주의를 버리자는 거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