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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팅 마인드 - 섹스는 어떻게 인간 본성을 만들었는가?
제프리 밀러 지음, 김명주 옮김, 최재천 감수 / 소소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19세기에 원숭이로 둔갑한 다윈이 있었다면, 21세기엔 페르몬을 풍기며 발정난 다윈이 있었다.
성(性)이란 키워드는 이제 터부를 벗어나 오히려 식상할 정도의 그 드러냄이 과용되는 오늘이다. 그런 전반의 분위기에 편승하듯 'sex' 에 대한 인문과학적 고찰은 자칫 진부해 보이기도 하다.
제프리 밀러가 이 책에서 쏟아내는 이 이상야릇(?)한 이론들은 이미 다윈의 <인간의 유래 및 성에 관한 선택>(1871)에서의 '성선택'이란 기본 뼈대에 최근의 '인류학, 진화심리학, 인지행동학, 언어학, 사회학, 철학, 체육, 예술 이론등을 망라하여 살을 붙여놓고 있다. 그러니 책이 두꺼워질 수 밖에, 700쪽. 그러나 역자도 말했듯이 이 책을 한번 붙들면 놓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왜 인간만이 정교한 언어구조를 갖게되었을까? 인간의 문학, 미술, 음악 등의 창의적 재능들은 과연 신의 축복인가? 남성의 음경은 왜 다른 영장류들에 비해 유난스레 클까? 왜 여성의 배란은 감추어졌는가? 왜 남자는 결혼을 앞두고 도망치고 싶어할까? 이 세상에 쏟아지는 책,작품,성과물들은 왜 유독 남성만의 전유물처럼 보이는가? 왜 재벌가들은 매년 엄청난 액수의 자선을 베풀면서 돈을 벌때는 또다시 비정해지는 것일까? 왜 파란색의 표현형은 남색, 하늘색, 쪽빛, 푸르딩딩 등의 과도하게 다양해졌을까?
인간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 습성, 행동양식 등을 형성하게 되었는지, 일명 성선택 (짝 고르기) 이론으로 결딴을 내고 있다. 얼핏 유전자 결정주의, 환원주의라는 누명을 쓰기 쉽상이지만, 솔직히 그렇게 비난을 한다해도 이미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버린 뒤다. 손에 확 잡힐듯한 구체적인 사례분석과 반론의 틈이 없는 인과성으로 인해 머리속을 송두리째 점령당하는 기분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최후의 미개척지가 이제 백일하에 드러날 날을 초읽기 들어간 듯 하다.
제프리 밀러는 소위 높은 인간성을 의미하는 도덕적 가치들, 이를테면 이타주의, 고상함, 예술지상주의, 고급취향, 사상의 고매함 등의 본디 의도를 곧이곧대로 보지않고 모든 것은 '짝 고르기'라는 번식본능의 2차 효과일 뿐이라며 평가절하하면서도 반면에 지적 활동들의 욕망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긍정적인 잠재성으로, 미완의 여지를 남겨두어 독자로 하여금 아리송한 상태에 처하게 만든다. (저자는 이 속성중 맑스의 '상부구조'를 거론하는데 물론 거론으로만 그친다.)

책의 막장을 넘기면서 미적지근한 느낌이 가시지가 않았는데, 저자도 스스럼없이 드러냈듯이 '유렵 사회주의, 정신분석학, 프랑스 철학' 에 대한 그의 섣부른 규정 때문이었다. 과연 그것들이 그리 쉽게 일축해버릴 수 있는 문제인지 과연 의문이다. 이기적인 성선택 본능에 역행하거나 오롯이 외적동기로서만 형성된 인간형질은 과연 없을까? 욕망이 욕망을 낳는다는 정신분석은 고삐 풀린 성선택의 또다른 이름일 수도, 어쩌면 숨겨진 이면일 수도 있다. 무의식과 코뮨주의는 성선택 본능에 반하는게 아니라 단지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마치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가 태양(성선택)에 빚지고 있다는 형이상학으로 군림하는 꼴인데, 이는 태양빛이 미치지 못하는 심해저에 지구의 메탄가스로만 살아가는 생물이 있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는 진화심리학을 너무 신봉한 나머지 자신의 주관적 가치관으로 진화심리학의 이름을 빌려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단해버리는 오류를 범했다. 이 책의 에필로그는 그냥 혼자 마음속에 접어두었어야 할 개인 에세이였다. 비정치적인 위치에서 너무나 정치적인 발언을 하고 만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가 진정으로 가치로울 수 있었던 것은 돌연변이라는 예측불가능성, 이는 곧 모순속의 모순 (변증법)이자, 클리나멘 운동(니체)이었다는 것을, 제프리 밀러는 머리로는 알면서도 느끼지는 못하는 반쪽 짜리 회의론자로 남았다.
이 아쉬움과 억울한(?) 심정을 안고 어느 누군가 이 진화심리학을 껴안고 맑스, 프로이드, 푸코에게로 뛰어들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