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Sings The Rosemary Clooney Songbook
기타제작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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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대중음악 선진국의 딴따라 하기에서 중심은 바로 법고창신이다.

본래 법고창신은 조선시대 실학자 연옹 박지원이 주창한 개념이었다.

중국에서 배워온 온고지신에는 실천 방안까지 제시된 문장이 아니므로 4자 성어에 실현시킬 원리까지 설명이 요약되어야겠다~ 하는, 보다 실용주의적 발상에 근거하여 창제한 문장이다.

그런데 이토록 우수한 조상들을 후손들이 못따라가서인지 현대 한국인들은 유사 백인되기를 자청하면서도 정작 법고창신을 잘 하는 것은 항상 라틴 음악인들과 영어권 음악인들이기 일쑤다.


한국인보다 한국 조상들의 가르침을 더 잘 구현하여 언제나 세계를 정신적으로 지배할 실력을 유지하는 미국 대중음악에는 관례가 있어왔다.

바로 가장 상업적인 어덜트 컨템포러리에서도, 아니 잘 살펴보니 어덜트 컨템포러리를 할수록 고전가수에 대한 헌정을 그의 고전 가요에 대한 재창조를 통해 해오곤 했다.


그 경우 대개 원곡이 본질적으로 지닌 가장 크거나 핵심인 매력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최신 음악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그 중에는 죽 쑨 경우도 없지는 않고, 그냥 옛 편곡을 최신 연주와 최신 기술에 의한 녹음으로 따라만 한, 무사안일주의(?)는 더욱 허다하다.

그래도 미국 대중음악 산업에서 원곡을 원곡보다 더 잘 살리는 리메이크가 비교적 잦은 편이어서 이것이 또한 미국 대중음악의 실력에 밑천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그런 미국 대중음악인들의 법고창신에서는 오히려 중심이 바로 어메리캔 스탠다드 팝이다.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가장 거대시장을 갖고 있으며 시장의 동향을 좌우하는 어덜트 컨템포러리로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토니 베넷이 여전히 하는 활동 중 절반 쯤은, 자신에게도 돌아가신 선배들에 해당되는 주디 갈런드, 빙 크로스비, 냇 킹 콜, 프랭크 시내트라들에 대한 헌정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 미들러는 데뷔는 훨씬 늦었지만, 뮤지컬 배우로, 영화배우로 성장한 것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유사하지만, 특히 1960년대 후반까지 활약했던 어메리캔 스탠다드 팝 가수들을 들으며 자라났고 경력을 쌓아왔다는 것도 똑같다.


게다가 초창기 미국 스탠다드 팝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익히게 된 비엔나와 파리의 오페레타와 베를린의 레뷰, 영국의 설리번 오페라, 그리고 이탈리아 오페라의 작법을 옮겨다 놓으면서 출발하다 보니 자연히 가수들의 밥수저 놀리는 방식도 만능 엔터테이너 방식일 수 밖에 없었는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도, 베트 미들러도 평생 살아온 인생이 그와 똑같았다.


그러다 보니 그 둘이 모두 경력 초기에 고전 스탠다드 팝 선배가수들과 무대를 함께 해본 경험이 있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아얘 어메리캔 스탠다드 팝의 시조 중 한 명이었던 주디 갈런드와 1960년대 초반에 TV 무대를 함께 했었다.

낸시 시내트라와 동세대 출신에 동시대 데뷔한 사이다보니 자연히 그 부친이었던 프랭크 시내트라


그에 비해 베트 미들러는 로즈마리 클루니의 헌정앨범인 본 앨범을 발표했던 것이다.


로즈마리 클루니는 미국 스탠다드 팝의 초기 가수 중 하나였고, 빙 크로스비와 함께 영화,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주연을 맡았던 4인 중 한 명이었다.

작곡가이기도 했던 어빙 벌린, 주디 갈런드, 빙 크로스비, 그리고 도리스 데이와 냇 킹 콜에 이은 다음 세대 가수였고, 프랭크 시내트라와 의 가까운 후배였다.

그리고 토니 베넷과 코니 프랜시스의 가까운 누나였고, 언니였다.


로즈마리는 지적 매력이 넘치는 용모이면서도 경쾌한 인상을 주는 것이 매력이었다.

게다가 지나 1990년대까지도 여전히 무대에 서곤 했는데, 그 탓인지 2천년대 이후 타개할 때까지 "다 늙어 갖고는" 오지랖 넓어뵈는 아줌마같은 인상을 하고 무대에 여전히 섰었다.

죽는 날까지 온전한 모습을 간직했으니 진짜 제대로 잘 살다 간 셈이다.


그런데 생전에 노래하는 것 하나 만은 실제로 오지랖이 넓었다.

바로 본 앨범은 그녀의 "생전 오지랍" 을 베트 미들러가 집대성했다고도 할 법 한데, 컨트리 곡이 하나 들어있어 그야말로 초기 컨트리 음악이라는 이름이 생길 당시의 고전을 들을 수 있고, "Mambo Italiana" 같은 경우에는 영어로 노래하는 미국식 라틴음악의 진수를 들어볼 수 있다.


실은 로즈마리 클루니는 한국인에게도 익숙하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알려져왔고, 영화 화이트 크리스마스 덕택에 올드팬들이 확보된 탓도 있지만, 근래 신세대들에게 오히려 가장 인기있는 중견배우 조지 클루니가 바로 로즈마리 클루니의 조카다.


본 앨범에서 베트 미들러와 편곡자에 대해 한가지 칭찬해주고 싶은 것은 바로 "Mambo Italiana" 편곡이다.

현대적인 악기의 사운드로 대체하고 약간 손 본 정도의 편곡이지, 리메이크라고 할 것은 없었는데, 오히려 그 결과 곡이 지닌 광란의 잔치같은 성격을 기막히게 부각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외에는 전반적으로 로즈마리 클루니의 주요 곡들을 알게 해주는 정도지만 꽤 성공했다.


적어도 미국 스탠다드 팝이 걸어온 꽤 오래된 길을 알게 해주는 길라집이용 음반으로서는 딱이다.

미국 어덜트 컨템포러리는 스탠다드 팝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을 당시 어떻게 시작하여, 어떤 음악들을 이유식 삼아 모방하고 차용하며 성장했는가를 짐작케 해준다는 점에서는 차라리, 엔터 비즈니스의 종사자들을 위한 교재처럼 쓰면 어떨까 싶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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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Patricia Kaas - Sexe Fort
파트리샤 카스 (Patricia Kaas)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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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화에 대한 이미지 중에서 퇴폐성을 아주 빼버릴 수는 없다.

캉캉도 그렇거니와 최초의 오페레타였던 오펜바흐의 오페레타들도 퇴폐성을 팔아먹는 것이었다.


그 뿐인가?

프랑스하면 물랑루즈와 리도로 상징이 되는 전 세계 캬바레의 종주국 아니던가?


그런데 프랑스가 수입된 문화 중에서도 퇴폐성을 잘 부각시키는 것이 있다.

바로 미국의 블루스다.


미국의 블루스는 향토적이고 고전적인 블루스가 있고, 화려한 시카고 풍이 있고, 백인들이 좋아하는 록음악풍이 있다.

미국 대중음악 중 블루스와 조금이라도 관련있는 음악들은 이 3가지 풍을 활용하는 유형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수입해서 발전시킨 블루스는 미국의 블루지이~ 하고는 좀 다르다.

바로 퇴폐적인 블루스다.


사실 프랑스의 블루스는 미국 이상으로 유서깊다.

블루스 하면 향토적인 미국 남부의 블루스 외에는 아직 달리 없었을 뿐더러 미국 대중들이 블루스의 가치를 모르던 1920년대에 이미 프랑스에서는 블루스 음악을 하는 가수들이 많았다.

블루 아이드 소울 음악은 영국보다는 프랑스에서 먼저 태어난 셈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그냥 도회지 풍의 블루스는 이미 미국의 세인트 루이스와 시카고 등에서 자라나고 있었지만 도회지풍 블루스에 퇴폐적인 성격을 부각시킨 블루스는 프랑스가 먼저였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자랑인 캬바레 문화와 어울린 결과다.


그러나 그 결과 오히려 지극히 정통 블루스다운 블루스가 나와버렸다.

비결은 "하~도 진~~~~ 해서" 였다.


이런 퇴폐적인 블루스에서 끝장을 보고야 만 가수가 하나 나왔다.

그녀가 파트리샤 까스다.


퇴폐성을 블루스라는 음악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극대화시켰다고 할 수 있는 것이 파트리샤 카스의 음악세계다.


그 결과 극대화된 퇴폐성은 블루지~ 한 것과는 전혀 다르면서 관능성과도 달랐는데, 그 도발성을 굳이 논하자면 글램 계열의 음악은 무대분장갖고 장난치는 것에 불과할 지경이다.


결국 파트리샤 카스는 "블루스 말고 딴 음악" 만들었다고 해야 할 지경이 되었으니, 끝장을 보아도 아주 "지대루다가" 끝장 본 셈이다.


비결은 허스키한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끈적끈적한 메조 소프라노의 목소리, 그리고 끓어오르는 정염을 억지로 절제하는 듯한, 파트리샤 카스 특유의 창법이었다.


그런 파트리샤가 잠시 특유의 블루스 음악을 버린 듯 했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블루스로 돌아왔다.


여전히 퇴폐적이고, 여전히 끈적끈적했지만, "블루스 말고 딴 음악" 까지는 아니었다.

그냥 블루스였다.

샹송다운 곡도 있어, 아주 예전의 그 세계로 복귀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어쨌건 미국제보다는 진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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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WALELA
기타제작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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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드신 분들일수록 잘 알만한 리타 쿨리지

그 리타는 1970년대에 청춘이셨던 분들에게는 몇 안되는 히트곡들과 크리스 크리스토퍼슨과의 연애로도 알려져왔다.

1980년대 초반에 청춘이셨던 분들에게는 007 제임스 본드의 원작자 이언 플레밍이 저술한 원작 007 소설 5편을 칭하는 퀀텀 오브 솔러시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인 007 옥터퍼시를 영화로 제작했을 때 그 주제곡이었던 "All Time High"로 기억될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세대들에게는 비록 큰 상업적 성공은 못거두었지만 영화 스플레쉬의 러브 테마 "Love Came For Me."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사실은 그야말로 아는 사람들만 아는 사실인데, 리타 쿨리지는 바로 스코틀랜드와 체로키 인디언 혈통이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자매들과 함께 인디언 음악을 들려주는 보컬 트리오를 조직하여 내놓은 음반이 본 음반이다.


들어보면 가스펠이라고 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컨트리 음악 풍의 찬송가라고 여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확한 답을 얘기하자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기기 전에 인디언들의 노래로부터 영향을 받아 웨일즈 감리교와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교회음악이 변한 것이고, 그 와중에 아얘 인디어들의 음악을 통째로 옮겨온 것들이 세월따라 변해온 결과가 미국식 개신교 찬송가라는 것이 가장 정확하면서, 도덕적으로도 정직한 답이 될 것이다.

트리오는 그 사실을 아얘 본 앨범 끄트머리에서 2번째 곡에 담아 "굳이 밝혔다."


바로 "어메이징 그레이스" 다.


적어도 대중음악에 관한한 미국 음악은 흑백 음악 모두 인디언 음악의 영향으로 변하면서 생기지 않은 음악이 없는 셈이니 이렇게 따지면 모든 미국 음악의 뿌리는 결국 반은 미국 땅에 온 자들의 음악이고, 반은 미국 땅에 있던 자들인 인디언들의 음악인 것이다.

미국 음악의 진실은 이렇게 밝혀진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도 햇빛은 내리쬐는 셈이랄까?


그런데 왜 듣다가 화가 조금 날까?



예로부터 북미 인디언들은 미국 백인들 사이에서는 지적인 사람들, 영적으로 사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는데, 그래서일까?

어려서부터 보아온 리타 쿨리지의 인상은 여전히 지적인 귀부인상 그 자체였다.

그 인상이 백인과의 혼혈 덕이라기 보다는 북미 인디언 혈통이었기 때문에~ 라고 함이 낫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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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LITTLE LOVE LETTERS
기타제작사 / 199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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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컨트리 가수의 음반과 아론네빌을 리뷰하면서 짚고 넘어갔던 미국 대중음악의 뿌리가,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내게 된 것은 어떤 역사적 사건이 동기가 되었는가에 대한 답을 이 음반을 통해 알 수 있다.

바로 최초의 컨트리 밴드 중 하나로서, 지미 로저스와 함께 사상 최초로 음반을 발매한 컨트리 가수라는 역사적 기록을 달성한 밴드였으며...

미국 컨트리 음악계의 패밀리 밴드로서는 앞서 소개한 2가지 기록을 홀로 다 남겨, "Country First Family"로 공식 기록된...

참 역사적이래두 고루 역사적인 컨트리 밴드였던 카터 패밀리의 외손녀가 바로 본 앨범의 주인공인 칼린 카터다.

그러니까 칼린은 컨트리 역사가 낳은 또 하나의 산물인 셈이다.


그녀의 본 음반 자체는 사실 발매된지 오래되었지만, 그 수록곡들에서 혈통을 숨기지 못할 지경이어서, 카터 패밀리의 음반들과 비교하면 힐빌리 뮤직이나 마운틴 뮤직으로 불리던 1930년대 후반 이전의 컨트리 음악을 누구나 알 수 있을 지경이다.


특히 "Every Little Thing"은, 왜 미국발 록음악이 흑인음악에서 나온 것으로만 아는 것이 헛소리에 가까운가를 "들려주는" 증거다.


이 사실은 고작 칼린 카터의 음반에 들은 곡이 그렇다는 소리가 아니다.

카터 패밀리의 아들과 딸들의 세대들도 1960 ~ 1970년대까지도 계속 활약을 했기 때문에 그 집안이 배출한 가수들의 음반들을 들어본 후 칼린 카터의 본 앨범을 들어보면, 미국 컨트리 음악이 1920년대 후반 ~ 지난 1990년대 초반까지 어떻게 변해왔는지 정리가 잘 된 나머지, 흉내내어 곡을 만들면 한국 가수들이 컨트리 음악 더 잘 만들 묘안이 나오겠구나 싶을 지경이기 때문이다.


실로 미국 컨트리 음악을 시작했던 혈통이 내놓은 미국 컨트리 음악의 결과물이라고 할만하다.


그런데 최근의 칼린 카터를 보면 얼굴이 이상하게 조현아 닮은 인상이어서 자꾸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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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New Favorite
기타제작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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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크라우스의 앨범 중 먼저 리뷰했던 앨범은 미국 블루그래스의 진수를 그렇게 잘 들려준다기에는 다소 현대적이었다.

특히 미국 블루그래스가 지닌 블루스 음악적 특징 등을 위시하여, 본래 흑인음악과 인디언 음악의 영향으로 본래의 켈틱음악이 다듬어진 흔적을 찾기에는 뭔가 내쉬빌의 컨템포러리 컨트리에 가깝다는 느낌 지우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이 앨범은 좀 달랐다.

블루그래스 중에서도 가장 고전적인 형태, 즉 블루노트로 불리는 5음 음계를 중심으로 한 가락이 중심이었다.

앨리슨은 이 앨범으로 자신이 하는 음악이 결국 미국의 국악임을 분명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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