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은 리즈번가(家)에 남은 마지막 딸이 자살할 차례였다. 이번엔 메리였고, 터리즈처럼 수면제를 삼켰다. 집에 도착한 두 구급 요원은 이젠 칼이 들어 있는 서랍이며 가스 오븐, 밧줄을 맬 만한 지하실의 들보가 어디 있는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훤히 알고 있었다.
리즈번 씨는 계속해서 조심스레 딸을 들어 올리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보기에도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었고, 서실리아가 비록 눈을 뜨고 있고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연방 입을 움직이고는 있어도 그것은 단지 신경 작용일 뿐, 이 세상에서 탈출하려던 그녀의 두 번째 시도가 성공을 거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건 애초에 체념한 내 잘못이다. 체념하는 대신 미워하면서 헤어졌어야 했는데.
하지만 문제는 정현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점이었다. 그간 자신이 선택했던 것들이 자신을 배반한 역사가 너무 길고 깊었다. 그동안 조금이라도 뭔가를 배웠다면 자신은 더는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됐다. 특히 서일을. 그러니까 자신이 내리는 판단을, 그 근거가 될 만한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신뢰해서는 안 됐다.
다른 방식으로 뇌를 작동시키는 긁읽기를 좋아한다는 점에서는 더 좋은 독서일 가능성도 있는데, 읽는 중 뇌가 불안정해지는 게 글 자체의 의도인지 번역의 문제인지는 판단 안됨. 한번 더 읽어봐야 할 듯.
그게 아버지가 세계를 보는 방식이었다. 자신의 의지와 그것을 꺾는 세계의 이야기가. 아버지는 나도, 그리고 세상 어떤 사람도 ‘여자인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큰 어려움‘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