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땅, 완벽 혹은 후회의 다른 이름

새벽 1시 반, 
갑자기 삶을 정성스럽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야심한 시각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생전 처음 있는 일이라 
이상한 기분이었다 - P104

딸과 달리 말수가 적고 
생색을 내지 않는 엄마는 
계속 호떡을 굽다가 
어느 날부터 굽지 않았고, 
다시는 굽지 않는 것으로 
그 고단함을 조용히 마무리했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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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희는 이십년 가까이 
신경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는데,
정확히 무엇을 견디기 힘든 것인지는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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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이 남자를 미워했다. 
그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아무 자책 없는 표정을 미워했고, 
그의 얼굴은 계속 그렇게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얼굴을 
후려치고 싶었던 기분을 기억했고, 
앞서 말했듯 나는 그것이 무서웠다. 
그 감정 말이다. 나는 누구든 
다른 인간 존재를 때린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느꼈었다. 
그 감정은 내 안 아주 깊숙히 숨어 있다. - P149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그 사람은 나여야 했다고. 
그 노인을 위해 내가 그렇게 했어야 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그 여자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긴 줄에서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날 뭔가를 배웠다.
나 자신과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각자의 이기심에 대해.
내가 그 노인을 위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 P153

언니가 말했다. 
"내가 왜 너한테 말하지 않았는지 
궁금한 거니? 솔직히, 루시, 네 반응을 봐."
나는 갑자기 피로가 몰려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무례하게 말할 생각은 없었어." 
내가 말했다.
"음, 무례했어." 비키가 말했다.
"하지만 용서할게." - P179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
어머니는, 내 어머니였기에, 
어린 내 삶에 크고 무거운 영향력을 미쳤다. 
내 인생 전체에 그랬다. 
나는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지만, 
어머니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어머니였고, 따라서 
내 일부는 어머니가 말한 것을 계속 믿는다. - P189

그리고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내가 그 돈을 받았어. 루시.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을 기부했는지 
말하지 마, 나도 많은 돈을 기부한 건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누구도 실제로 
자기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기부하진 않아. 
그래서 나는 그 돈을 받았고, 
여전히 가지고 있어."
그가 먼 곳을 보았고, 다시 나를 보았다. 
"그리고 그게 나는 아주 역겨워."  - P251

그러자 윌리엄이 말했다. 
"당신을 위해 작업실을 준비했어, 루시." 
그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는데, 
정말로 감정이 격해진 것 같았다. 
그가 말했다. "여기서 일하라고."
그리고 그들은 가만히 서 있었다. 
두 남자가 두 사람 모두
얼굴에 억누른 흥분의 표정을 드러낸 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작업할 수 있는 방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나만의 방을 결코.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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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에게 그 사람은 봄이었다. 
봄은 언니를 들뜨게 하고 꿈꾸게 하는데 
그 사람도 그렇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서 나는 
그를 봄씨, 라고 불렀다.

언니는 여전히 내 눈길을 피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이방인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마음이 편해. 
나는 한국이 너무 답답하거든.

여기도 한국이잖아.

외국인이 많잖아. 
그들한테 한국은 
스쳐 지나가는 장소일 거야.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
한곳에 머물며 
모든 것에 마음 쓰고 싶지 않아. - P41

하지만 언니, 
나는 정말로 한 번도 사랑을 고백해본 적이 없어. 
이제까지 딱 세 번 연애했는데 
죄다 고백을 받았어. 
누군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마음을 활짝 열어. 
과할 정도로 많이 열어. 
연애를 시작하면 매번 양보만 하고, 
내가 원하는 건 일기장에 써. 
어쩌면 나는 언니보다 
사랑에 서툰 사람인지도 몰라. 
나를 사랑하면서 상대도 사랑하는 법을 몰라. 
그래도 나는 이별 하나는 잘해. 
빠르게 잘 잊고, 두 번 다시 연락 안해. 
관계의 시작과 단절이 명확한 사람이야 - P95

어쩌면 언니를 그런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나뿐인지도 모른다. 
언니의 과거를 잘 알고 
현재의 마음도 안다고 섣불리 짐작하며, 
언니가 자신의 추억들 중에서 
무얼 잊고 기억해야 하는지 선별해주는 폭군인지도. 
그러면서도 언니에게 내가 무해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정작 언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나는 까맣게 모를 수밖에 없는데, 
그토록 잘난 척은.
아는 척은. 
잘 살아가고 있는 척은. 
어른인 척은.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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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짐짓 명랑하게 이 모욕을 
관까지 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다. 
흔쾌히 말을 꺼내고, 듣고, 보이는 것도 
일종의 치료나 다름없다. 
마음이 찢어지고 분노가 치밀지만 
어머니에게 부담을 주고싶지 않았기에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대신 어머니를꼭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가 마음 아파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어머니는 수목장 자리가 아버지로부터 
멀면 멀수록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다음 생에 아버지를 만나지 않는 게 
가장 큰 소원이라는 점은 
우리 가족 모두 확실히 알고 있었다. - P159

우리는 어머니의 생전 장례식을 치르며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떠나기 전, 
고단했지만 아름다웠던 일생을 
함께 웃으며 회고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말했다.

"아주 만족스럽다! 
난 훌훌 떠날 테니 울지 말거라."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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