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 - 유대인 5000년 지혜의 원천 파워의 근원
샤이니아 지음, 홍순도 옮김 / 서교출판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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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은 우리가 흔히 구약이라고 부르는,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 받은 말씀을 적은 모세5경(토라)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사고를 구성하는 현실적인 경전은 탈무드라고 볼 수 있다. 탈무드는 예로부터 유대인 사이에서 구전되던 그들의 역사와 위인 이야기 등을 묶어 만든 이야기 책으로, 유대인들은 탈무드를 한 명당 한 권씩 가지고 있으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동안 읽고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 역시 곁에 가까이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이 필요해서 탈무드를 읽기로 했다.

 

어렸을 때, 어린이 버전의 얇은 탈무드를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여우와 포도밭, 당나귀와 다이아몬드, 공주를 살린 막내 아들의 마술 사과, 솔로몬의 재판, 세 친구 등……. 유대인들이 이렇게 속담과 비유, 이야기를 통해 가르치려했던 까닭은 답을 직접적으로 가르쳐주는 것보다 은유적 의미 학습이 훨씬 각인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마다 표현 방식은 다르더라도 서로 유사한 격언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격언들이 경험을 통해 혹은 사물에 대한 오랜 관찰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경험과 관찰이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p.133) 그렇지만 유대인들처럼 일상 속에 있던 옛 사람들의 지혜와 교훈을 글로 엮어 대대손손 물려줌으로써 한 민족의 세계관을 공통되게 만든 민족은 매우 드물다. 사고와 이념을 하나로 묶어주는 탈무드가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 이후에도 계속해서 하나의 민족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 탈무드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우리에게도 비록 땅은 분단되어도 한 민족으로써 통일된 가치관을 잃지는 못하도록 만드는 책이 한 권 있었더라면.

 

탈무드는 글로 된 율법이나 구전 율법에 근거한 미쉬나와 미쉬나를 평가하고 토론한 게말라로 구성되어 있다. 또, 탈무드는 바빌로니아 탈무드와 팔레스타인(예루살렘) 탈무드,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하는데, 일반적으로 탈무드는 바빌로니아 탈무드를 가리킨다. 서교출판사의 [탈무드]는 방대한 분량의 탈무드 원본 중에서 유심론적 내용을 삭제하고 현대인에게 맞는 이야기를 엄선하여 번역한 것으로, 사람의 도리, 자신과 타인, 결혼과 가정, 육체생활, 도덕생활, 사회생활 총 6개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는 사람의 도리 편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이 책에는 특별부록으로 유대사 연표와 세계사 연표 비교가 들어 있는데, 약간의 오류를 발견했다. 2쇄에서는 깔끔해서 수정되기를.

p.346 / BC1792~1750년: (유대사 연표)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인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진입. 유대인이 가나안 땅 정복. (표가 분리되어 있음.)

p.356 / 1997: (세계사 연표) 영국, 중국에 홍 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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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먼저 개체로 창조되었다. 이는 하나의 생명을 죽이는 것은 세상을 죽이는 것과 같고​ 하나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세상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깨우쳐 주기 위해서다. (p.15)

유대인의 법에서는 자기에게 불리한 것을 증언하면 무효다. 따라서 자백은 인정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백은 고문에 의해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p.50)

하느님은 정직한 사람과 악한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엄하시다. 그분이 현세에서 정직한 자들이 지은 작은 잘못까지도 벌하시는 까닭은 더 나은 내세의 삶을 주시기 위해서다. 그러나 악한 자들에게 현세의 편안한 삶을 주시고 그들이 행한 약간의 선행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 까닭은 그들에게도 천국에서의 삶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p.61)

세상의 범죄를 막을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은 세상이 지은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p.126)

"네가 한 말은 행동으로 옮겨라, 그러나 네가 한 선행은 말로 옮기지 마라." (p.127)

누군가를 비난해야 한다면 초점을 그에게만 맞추도록 하라. 예를 들어, 누구를 비난하면서 그의 가족이나 친지, 종교에 대해서까지 험담을 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을 비난하면서 여러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지 마라. (p.132)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을 한 자와 그 험담을 막지 않고 들은 자, 또 이 험담으로 피해를 보는 자가 그들이다. (p.133)

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내릴 경우, 판결이 판사들의 전원 일치로 이뤄지면 그 판결은 무효이다. 재판에 있어 항상 두 가지 견해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한 가지 견해밖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재판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p.330)

판사는 반드시 정의와 평화를 모두 추구해야 한다. 만일 정의만을 추종한다면 평화는 잃고 만다. 따라서 정의도 파괴하지 않고 평화도 함께 지킬 수 없는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타협이다.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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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 - 아름다운 우리 땅 그림 순례, 도원을 꿈꾸다 조선 땅을 만나다
이태호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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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이태호 씨는 현재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이자 문화예술 대학원장 경기도 · 충청남도 문화재위원으로, 초상화, 풍경화, 진경산수화 등 조선 후기 회화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이 책은 저자가 조선 후기 진경 산수화의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카메라로 찍은 실경과 그림을 비교, 분석해 쓴 글 30편 중 9편을 엮어 만든 것이다. 원래 이 책은 생각의 나무에서 2010년 5월 출판했었으나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되어 마로니에북스를 통해 재판한 것이다. 저자는 2010년 이후 쓴 다른 글과 묶어 따로 출판할 요량으로 '고지도의 회화성 부분'을 신판에서는 제외시켰다고 한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고 그동안 내가 우리나라의 미술과 문화재에 너무 무관심했고 무지했음을 깨닫고 크게 반성했다. 그래서 조선 후기 산수화를 다룬 이 책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에 관심을 가지고 서평단을 신청했는데, 한국 미술 초보자에게 낯선 인명과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고, 본문 속 그림 설명과 삽화 페이지 매칭이 중구난방이라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따라 잡기가 어려웠다.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을 가지고 쓴 책이 아니라 논문을 이어붙인 글이라 중복된 내용도 많다. 중복된 내용은 일독 중에도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는 장점이 있지만, 책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단점도 있다.

 

미술에 대해, 특히 한국화에 대해 아는 것이 적은 대중을 배려해서 용어 및 화풍 설명을 뒤쪽에 따로 덧붙인다던가 작품 연표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 책에서 설명하는 그림의 가짓수를 줄이고 그 대신 설명하는 그림은 모두 책 속에 삽입시켰더라면. 책 속에 소개된 그림 수가 삽화수에 비해 월등히 많다. 책에서 중복해서 소개되는 그림들이 있다보니 <박연폭도> 같은 경우, [1-1.보고 그리기와 기억으로 그리기]에서 처음 언급되었지만 [2-1. 겸재 정선]에서 삽화가 등장한다. 사계정사도의 경우는 19페이지와 445페이지에 중복해서 삽입되었더라. 삽화에도 일정한 규칙을 두어 처음 그림을 언급할 때 삽화를 넣고 뒤쪽에서 그림이 반복해 등장할 때 삽화 페이지를 언급하거나 반대로 그림이 뒤에 등장하더라도 앞쪽에 그림의 이름이 언급된 경우, 그림이 있는 뒷쪽 페이지수를 표기했으면 독자가 보기에 편리했을 것이다. 또, 정선과 김홍도에서 계속 등장하는 이름, 표암 강세황을 따로 다루지 않은 것이 아쉽다.

 

책의 편집 부분은 아쉬움이 크지만, 내가 모르는 조선 진경산수화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던 '소장할만한' 책이다. 시간을 두고 재독, 삼독하여 책 속에 있는 내용들을 모두 내 것으로 소화하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저자의 다른 책에도 관심이 생긴다.

 

 

아래는 책의 내용 단순 요약이다:

 

조선 전기 산수화는 중국의 송 · 명대 산수화 형식을 쫓은 관념산수화였던 것과 달리, 17세기 중반 명 · 청교체기를 기점으로 '소중화', '조선중화', '주자종본주의'가 싹트며 이 영향을 받아 조선풍과 개성미를 추구하는 조선 후기 진경 산수화가 출발한다. 특히 금강산에 대한 사대부들의 사랑과 문예 경향은 모화사상을 극복하고 조선주체적 성리학과 문화예술을 창출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정철의 <관동별곡>이 정선의 <금강전도>보다 150년을 앞선 것으로 보아 회화가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에 더 적합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기행문학이 먼저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 중후반은 중국 산수화풍 관념미에서 조선 땅 현실미 전환의 과도기로써, 익숙한 중국 화풍이 국내 풍경을 묘사하기에 맞지 않았던 탓에 그림 표현법에서 약간의 미숙함이 드러나는데, 숙종부터 영조까지 이 시기 조선 산수화를 대표하는 인물은 겸재 정선이다. 겸재는 진경산수화가 담고 있는 두 가지 의미, 진경(실재 경치)와 선경(이상향)에서 후자에 중점을 두었고, 변형과 상상을 통해 실재감이 뛰어난 그림을 그려냈다. 그런 탓에 저자가 그의 그림을 들고 현장을 방문했을 때, 저자가 그림을 그린 자리를 찾기 어려웠으며 광각 렌즈 또는 파노라마 카메라 만이 그림과 비슷한 구도를 담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겸재의 그림의 큰 특징은 다시점(<인왕제색도>), 부감시(새처럼 위에서 본 형상을 그린 것, <금강전도>), 과장법(<박연폭도>, <박생연도>와 비교해볼 것)의 활용이며, 그의 필법에는 양필법(한 손에 붓 두필을 들고 그림), 수직준(난시준 또는 열마준으로 위에서 아래로 죽죽 그어내림), 미점(붓끝으로 반복해 점을 찍음), 적묵법(농묵 붓자욱 중첩), 丁자형 송림 표현 등이 있다. 강희언, 김윤겸 등 도화서 화원과 중인층 화가들은 겸재의 화풍을 적극 따랐으며, 선비화가들 역시 겸재의 영향을 받아 기행과 사경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남인 실학파 성호 이익은 이형사신을 강조했고, 북인 표암 강세황은 사생 및 사진을 중시여겼는데, 이 영향을 받아 정조와 순조 시기에 활약했던 인물이 단원 김홍도였다. 겸재가 전기 고전 형태를 지닌 엄격 양식을 유행시켰다면, 단원 이후로는 다양하고 발랄한 후기 고전 양식을 열리게 된다. 그는 겸재와 달리 주로 평원법을 사용했다. 저자는 28~35mm 카메라로 그의 그림과 똑같은 실경을 잡아낼 수 있었다. 단원은 진경산수화에서 더 나아가 사경산수(일상적 풍속이나 화조를 풍경에 담음)을 발전시켰으며,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의 도화서 화가였던 이인문과 신윤복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20세기 일제강점기와 남북분단을 겪고 우리나라의 산수화는 퇴조를 겪는다.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금강산이 광고 목적과 기념품용으로 많이 그려졌는데, 이 시기에 우리나라 산수화가들이 서양화법과 일본산수화풍을 배워 그림에 섞는다. 남북분단 후로는 금강산을 직접 갈 수 없게 되어 화가들이 사진이나 기록을 통해 금강산 '추상화'를 많이 그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응노 씨의 <몽견금강도>는 개인적으로 보기에 좋아서 방에다 걸어놓고 싶은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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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소년 탐정단 오사카 소년 탐정단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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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자>, <탐정클럽>, <방과 후는 미스터리와 함께> 등 단편추리가 여러 개 묶인 가벼운 탐정(단)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번역)작, 오사카 소년 탐정단에 대한 기대가 컸다. 오사카 소년 탐정단은 오사카 토박이 히가시노 게이고가 오사카 배경과 오사카 출신 주인공을 채택해 쓴 유일한 작품이자, 1988년에 쓴 초창기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체 작품 중에서 그의 처녀작 <방과 후>를 가장 좋아한다. 오히려 그의 최근 작품 중에는 불호였던 작품이 많았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오사카 소년탐정단을 이끄는(?) 6학년 5반 담임을 맡고 있는 26살 다케우치 시노부로, 얼굴은 동글동글하게 생긴 미인이지만 오사카 변두리에서 자라 말투가 거칠고 섬세한 면이 없는 여자다. 수사 드라마광 열혈 담임 덕분에 일년 내내 사건사고에 휘말리게 되는 불행한 6학년 5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책 제목 속 '오사카 소년 탐정단'이 된다. 여자 선생이 탐정이고, 그녀의 학생들이 추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실종, 도난 등의 '학교 내' 소소한 사건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 될 줄 알았는데, 첫 편부터 난데없이 살인사건이 등장한다. 오사카 남쪽을 흐르는 야마토 강 제방에서 그녀 반 학생인 후쿠시마 도모히로 아버지의 사체가 발견된 것이다. 시노부는 자신의 반 학생들이 후쿠시마가 아버지를 죽였을 거라고 말싸움을 벌였다는 사실을 알고 제자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넓고 깊은 오지랖을 발휘하여 후쿠시마 집 근처에서 탐문 수사를 벌인다. 이 과정에서 시노부는 신참 형사 신도를 만난다. 사소한 단서를 바탕으로 형사 못지 않은 추리력을 발휘하는 시노부에게 첫 눈에 반한 신도는 이후 등장하는 시노부의 맞선남 혼마와 삼각구도를 형성, 연애전선을 펼치는 남자주인공격 캐릭터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서 좀처럼 등장하지 않던 러브라인에 많이 당황했다. 아니 이게 뭐지. <명탐정의 규칙> 두 시간 드라마의 미학인가. 시독률을 위해 주인공인 여자 탐정과 형사가 연인 관계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설정을 둔건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오사카 소년 탐정단은 졸업을 하지만, 시노부 선생이 2년간 파견 유학을 떠나기로 결정하며 신도의 프로포즈를 유보한다. 이를 통해 시노부 형사 시리즈가 계속 될 것임을 독자에게 간접적으로 예고하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연애결말을 알고 싶으면 다음 권도 읽으라는. 일본드라마 트릭을 통해 많이 당한 트릭이다. 흑흑.

 

이 책은 총 다섯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편마다 사체가 등장한다. 살해 동기는 대부분 치정과 엮여 있어서 학생들이 탐정단으로 활약하기에 별로 좋은 배경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활동 반경도 시노부 잔심부름 처리반, 내지는 셜록홈즈의 베이커 스트릿 이레귤러즈 정도에 그친다. 차라리 '오사카 여선생 탐정'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렸을 것 같다.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범인과 트릭을 맞출 수 있는 중하급 난이도 트릭과 범인 설정이 아쉽다. 히가시가와 도쿠야 시리즈처럼 마냥 웃기지도 않고, 작가 이전의 단편집에서 보였던 번뜩이는 트릭도 빠진 <오사카 소년 탐정단>은 히가시노 게이고 이름의 복불복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책에 수록된 특별 보너스는 추리 여왕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해설이다. 그녀가 히가시노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시노부 선생 시리즈라고 한다. 책 속에 담뿍 담긴 오사카 특유의 향취 때문이란다. 나는 오사카 사투리 특유의 느낌을 모르지만, 책 전반적으로 괄괄해야 하는 시노부 선생 말투가 세련된 서울말씨로 번역되어 있어서 미유키가 받은 감동을 똑같이 받지는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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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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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와 동명의 이 소설은 그림 속 남자가 입고 있는 옷으로부터 시작된 의문, '도대체 그림 속 남자는 누구인가? 이 그림 속 조선인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이탈리아에 갔는가?'를 쫓는 미스테리물이다.

 

(방송 PD 출신인 저자가 자신을 모티브로 만든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이는) 주인공 진석의 직업은 다큐멘터리 PD로, 책 초반부에서 그는 <한복 입은 남자>에서 등장하는 조선인이 임진왜란 때 이탈리아로 건너간 조선인 안토니오 꼬레아라는 기존의 다수설을 뒤집는 역사 추적 형식의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있었다. 아이템을 찾기 위해 방문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우연히 자신이 그림 속 인물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엘레나 꼬레아를 만나게 되고, 그녀가 건네 준 비망록을 친구 강배와 함께 해석하는 도중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비망록의 주인은 조선 최고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이라는 것이다. 조선의 역법을 연구하고 천문대를 설치한 죄로 명 천제의 노여움을 산 영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인연이 있었던 정화의 배를 얻어 타고 이탈리아로 망명했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영실은 교황 앞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증명했는데, 이로 인해 교황의 분노를 사, 교황을 피해 달아난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난다. 이탈리아에서 영실의 발자취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 · 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을 맞은 자리에서 엘레나는 자신에게 한국의 피가 섞여 있으며, 비망록을 증거로 자신이 장영실의 후손임을 알리려고 하는데, 그런 그녀를 저지하려는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 이 소설은 진석과 장영실, 두 사람의 시점으로 나뉘어 쓰여지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비망록은 작가가 허구로 만들어낸 증거물이며, 작가가 장영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나는 [한복 입은 남자]를 쓰기 위해 찾은 자료들은 다음과 같다:

 

1. <한복 입은 남자> 그림 속 의복은 철릭과 답호인데, 답호의 길이가 철릭보다 짧은 모습은 조선 초기 의복 형태이다.

2. 임진왜란 때 노예시장을 통해 유럽으로 팔려갔던 안토니오 꼬레아는 어린 소년이다. 노예로 팔려가는 중에 어른의 의복을 소지하고 다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3. 그림 왼쪽 코너에 등장하는 배는 유선형인 서양 배와 달리 바닥이 평평한 동양의 배다.

4.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는 그의 또 다른 그림 <성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기적>에 등장하는 배경인물 중 한 사람을 그리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소설에서는 그림 속 여러 민족을 표현하기 위해 자료를 찾던 루벤스가 다빈치의 그림이나 스케치 속에서 장영실을 모델로 그린 조선인 그림을 발견했다고 상상했다.

5. 실학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바탕으로 KBS 역사스페셜에서 복원한 비차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행기 스케치를 보면 날개 깎인 각도며 지지대의 위치 등 유사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6.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동시에 다연발로 로켓을 발사한다는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리기 전 이미 장영실은 조선에서 신기전을 완성했다.

7. 1473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산타 마리아 델라네베의 풍경]은 유럽 최초의 풍경화로 거론된다. 저자는 다빈치가 유럽에서 최초로 산수화를 그리게 된 계기가 동양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측한다.

8. 장영실의 출생-사망연도는 1390년? ~1450년?으로 추정되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52년~1519년이다. 천인 출신이라 출생연도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가마 사건 이후로 장영실의 기록이 실록에서 발견되지 않으므로 물음표가 붙었다. 작가는 세종이 명나라로 수 차례 유학을 보냈던 인재를(심지어 관직에도 올랐던) 가마를 잘못 만들었다는 이유로 내쫓고, 어디서 언제 죽었는지, 하다못해 어디로 귀양보냈는짖도 기록하지 않은 것이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9. 정화의 출생-사망연도는 1371년~1434년이며, 무슬림 출신의 색목인 환관이었다. 장영실의 명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수십차례 중국을 방문했고, 소설에는 그기간에 조선인 출신 환관을 통해 정화를 만난 것으로 설정했다. 정화는 영락제의 심복으로 일곱 차례 대원정을 떠난 유명인물이었으니 장영실이 그를 잘 알았을 것이며, 그의 항해에 분명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이 책을 토대로 한중 합작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장영실과 다빈치가 만나는 소설인데 왜 중국이 끼어들었을까? 의문이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장영실이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How'로 등장하는 정화의 원정 때문이었다. 콜롬버스보다 100년은 앞선 세계원정, 게다가 어마어마한 크기의 함대를 자랑할 수 있으니 중국이 보기에도 중국 문화의 우수성과 위인 정화를 홍보를 할 수 있는, 괜찮은 시나리오라고 판단한 것 같다. 정화의 함대는 길이 약 137m, 폭 56m에 이르며, 총승무원이 2만 7천 여명에 달했다고 하는데, 영화 속에서 이 함대가 등장하면 정말 멋질 것 같다.

 

다만,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하다보니 스토리에 박진감이 살지 않은 것이 아쉽다. 영화로 만들 때에는 글에서 많은 부분을 덜어냈으면 좋겠다. 특히 등장하는 인물의 수가 줄었으면. 이 소설에서는 여성 인물들, 엘레나, 미령, 정의공주, 파올라 등이 전부 겉돌고 있다. 한국말을 어설프게 구사하던 엘레나가 발표에서 갑자기 어려운 단어를 술술 구사하는 것이 옥의 티처럼 어색하게 느껴졌고, 이규가 분명 미령을 어떻게 할 것처럼 보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후반부에서 장영실이 정의공주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드러내는 것도 글의 완성도를 다소 떨어뜨린다. 굳이 장영실이 노비였을 때부터 글이 시작될 필요가 있을까? 장영실의 일대기를 전부 훑다보니까 글이 장편인 것에 비해서 기대했던 다빈치와의 만남의 비중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 과학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훈민정음의 창제에도 깊게 관여했던 정의공주와 장영실이 접점이 있었으리라는 작가의 가정은 그럴싸 했지만 작가가 소설에 가정이 너무 많이 집어넣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에서는 포커스가 세종, 장영실, 정화, 그리고 다빈치에 좀더 맞춰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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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1 - 태조에서 세종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1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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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일요일 오후 10시 반에 진행되는 역사 토크쇼 '그날'이 책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방송내용이 어떻게 편집되어 글로 옮겨졌을지 호기심이 일었다. '역사저널 그날'은 시인, 영화감독 및 시나리오 작가, 번역가, 사학 교수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패널이 등장해서 우리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가 바뀐 '결정적인 하루'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 지식과 상상력을 총동원해 수다를 떠는 유쾌한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ebsi의 최태성 선생님과 이다지 선생님도 그날의 패널로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개그맨 이윤석이 나온 회차들을 재밌게 보았다.) 지난 주 금요일, 민음사 그날 서평단에 당첨되어 바로 다음날 [그날] 한질을 받았다. 1권은 태조에서 세종까지, 2권은 문종에서 연산군까지를 다루고 있다.

 

책은 방송과는 달리 조선 왕 연대순으로 편집하여 출판했다. 읽기 전에는 '그날이 아직 종영된 프로그램이 아니라서 [역사e] 시리즈처럼 방송 순서대로 담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는데(그날에서 말하는 역사는 조선으로 한정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의 방송이 조선 위주로 흘러가고 있지만, 최근 방송에서는 김춘추와 태조왕건, 궁예를 조명하기도 했다.), 책을 쭉 읽다보니 사건의 흐름이 이어져서 읽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더라. 그리고 각 장마다 해당 왕의 치적 또는 사건의 개요를 정리한 '그날을 만나며'를 도입부로 두어 독자가 토론 본문을 읽기 전 브레인스토밍을 할 수 있게끔 구성한 것도 좋았다.

 

이 책 1권에서는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난 날(방송11회), 이성계가 500년 왕조의 서막을 열던 날(방송12회), 왕자의 난(방송13회), 세자 양녕이 폐위되던 날(방송16회), 조선이 왜구와의 전쟁을 선포한 날(방송19회), 세종이 집현전을 열던 날(방송17회), 1430년, 조선 첫 국민투표가 열린 날(방송18회)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특별기획 창덕궁 가는 날이 수록되었다. 프로그램 취지대로 조선 전기에서 핵심이 될 만 한 역사전 사건들을 잘 꼽은 것 같다. 사실 태조에서 세종까지는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굉장히 익숙한 왕들이라(게다가 나는 정도전과 세종은 몇년 전 드라마 여파로 해당 인물만 집요하게 다룬 책을 여러 권 읽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1권보다는 2권을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2권도 따로 리뷰할 예정이다.) 낯선 신선한 내용은 그닥 없지마는 토론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을 접근하는 점이 다른 역사서는 가지지 못한 그날의 장점이라고 느낀다.

 

책 구성은 다소 아쉬운 면이 있다. 방송 만큼 시각적 자료가 다양하게 삽입되지 못한 것은 둘째치고, 단어 주석이 해당 페이지 아랫부분이 아니라 맨 뒷장에 따로 정리되어 있어서 매번 뒷장에서 찾아읽기 번거롭더라. 무엇보다 독자에게 책의 원조 프로그램과 주요 토론자들을 앞에서 소개하지 않은 것이 편집자의 큰 실수로 느껴진다. 그날 프로그램의 애청자만이 이 책을 구입해서 읽는 것이 아니니, 독자가 책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름들이 누구인지는 알고 본문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차라리 [이 책에 도움을 주신 분들] 페이지를 뒷장이 아니라 앞장에 담았더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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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주: 네, 저는 이 조선 건국의 주역은 역시 두 사람이지만 조선이 조선답게 만들어진 것, 그냥 예사 왕조가 아니고 그 후 500년을 버티는 좋은 나라로 설계된 것은 정도전의 생각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런 문장으로 정리해 보고 싶네요. '최초의 조선인.' 즉 정도전은 고려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생각은 고려의 틀을 벗어나 다음 왕조에 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가장 먼저 조선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 사람. 이런 의미에서 '최초의 조선인' 이런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그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정몽주는 '최후의 고려인'인 셈이네요. (p.41)

 

이익주: 저는 조선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날: 충격적인 발언인데요.

이익주: 15세기 세계 다른 지역의 역사와 비교해 볼 때, 지배층이 위민이라는 분명한 목표와 그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점, 또 그걸 실천할 수 있는 여러 제도적인 장치를 잘 만들었다는 점에서, 저는 당시에 조선 말고는 그런 것들을 성취한 나라가 없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군사적으로 강력한 나라는 아니었지만 정말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 15세기 세계에서 가장 살기 조은 나라였다고 생각합니다. (p.73)

 

김경수: 가끔 건원릉(태조무덤)에 답사를 가면 사람들이 "능 관리인 나와라. 왜 풀을 안 깎느냐" 이런 얘기들을 하는데요. 사실은 그게 아니고요. 이성계 고향의 억새를 가져다 심어 놓은 모습입니다.

그날: 아, 그렇군요. 그런데 왜 그랬나요?

김경수: 이성계는 자기 고향인 함흥에 묻히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태종 입장에서는 찾아가기가 어렵게 되죠. 그러니까 태조가 유언을 합니다. "그럼 나 죽으면 내 고향의 억새를 좀 캐다 심어다오." (p.93)

 

그날: 적장자가 왕위를 이은 경우가 일곱 번 밖에 없었대요.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놀랍네요. (p.112)

 

남경태: (샤를마뉴 · 카를대제)왕이지만 글을 몰랐어요. 그래서 신하들이 결재용 금판을 만들어 줬어요. 그 선대로 그으면 서명이 되게 한 거죠. 그렇지만 지금도 위대한 군주로 평가받습니다. 왜냐하면 카롤링거 르네상스라는 문예부흥 운동도 일으켰고 초기 대학도 많이 지원했거든요. 그러니까 서양은 군주 자신이 학문이나 교양에 능하지는 않더라도 문화적인 마인드가 있으면 충분히 문예적인 업적을 남길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반면에 우리는 군주에게 모든 것을 담기 위해 여왕벌을 키우듯이 교육을 하는 시스템이었고요.

신병주: 그래도 학문에 바탕을 두면 항상 수신을 하고 절제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생각하고 이러다 보니까 그만큼 정치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만은 분명하죠. (p.118)

 

그날: 세종대왕 시절 하면 명재상들이 많기로 유명한데요. 많은 분들이 제일 먼저 황희 정승을 떠올리실 거예요. 그런데 황희 정승이 사실은 세종대왕의 반대파였다면서요? 맨 처음엔 고려왕조 편에 섰는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두 번째는 세자 이방석 편에 섰는데 이방원이 왕이 됐죠. 세 번째가 양녕대군 편이었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충녕대군이 세종이 됐어요. 뭐 이건 조선판 펠레의 저주예요. 이렇게 촉이 안 좋을 수가 없어요. 매번 다 틀립니다. (p.185)

 

그날: 당시 경연 주제가 어떘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제가 알기론 국가 정책에 관한 것도 물론 있지만 굉장히 사소한 것들도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제가 한번 준비해 봤습니다. 경연 주제 중에서 재미있는 걸 세 개 뽑아 봤습니다.

'한식날 3일간 불을 못 피우는 관습이 올바른가?'

'동성同姓끼리 결혼하지 않는 근거는 무엇인가?'

'과연 용은 존재하는가?' (p.188)

 

김경수: 세종이 '우리 땅과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농사법을 마련해야겠다' 하는 생각을 갖고, 그런 민본주의 사상에서 펴낸 게 바로 [농사직설]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조선의 관리들이 농촌 현장에 찾아가서 농부들의 경험담을 듣고 그걸 옮겨 놓은 게 특징입니다.

그날: 아, 책상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 농사짓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녔다는 게 감동이네요.

김경수: 심지어 세종은 실제로 경복궁 후원에 논 한 결을 만듭니다. 그리고서 직접 농사를 지어서 조 한 석을 수확하는데, 그게 이전에 보고되던 것보다 더 많았던 거죠. 자신이 직접 시험해본 후 '아, 이 [농사직설]의 방법이 더 효과적이구나' 확인한 후 [농사직설] 보급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그날: 아, 이거야말로 진짜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이거네요.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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