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글로 출근한다
그레고르 파우마 지음, 김희상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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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8년 세종서적 서평단 마지막 활동으로 받게 된 두 권의 책 중 하나인 <우리는 정글로 출근한다>는 정글과 같은 사무실 속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부터 법칙을 찾아 읽어주는 비즈니스 심리학서다. 나는 2018년 세종서적 서평단으로 활동하며 세종서적에서 출간한 다양한 책들을 누구보다 먼저 접할 수 있었고 다방면의 이야기를 접함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세종서적의 신간은 무조건 읽었고 또 대부분 다 즐겼다보니, <믿고 보는 세종서적>이라 이 책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컸더랬다. 그랬지만…….


수위는 기업에서 위상이 높지 않으며, 오히려 기초 등급으로 분류된다. 대게 오랜 동안 구직 활동을 했다거나, 다른 일을 하다가 중간에 실직했다거나, 그냥 이런 직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수위를 한다. 이들은 문을 열어주거나 입구 주변을 감시한다. (…) 상대를 하찮게 여기지 말라, 누가 아는가, 언제 그가 도움을 줄지. 그러므로 수위와 마주칠 때마다 상냥하게 인사하자. 친절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수위는 내가 출세하는 걸 막을 직접적인 위협을 주지 않는다. 수위가 경비실을 떠나 마케팅 부서 근무자로 자리를 옮기는 일은 거의, 심지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승진과 관련해 수위를 걱정할 일은 별로 없다. 경쟁자 하나는 확실히 적어지는 셈이다. 그러니까 수위에게 친절하게 굴자! 우리는 정말 얼마나 계산적인 존재인가! (pp.83-84)


여자는 이혼한 남자들이 젊은 여인을 찾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여자 자신이 높은 신분의 나이 많은 남자를 배우자로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의 신분으로 자신의 지위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아마도 남자 부장은 인턴 여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그러나 부장이 여성인 경우 인턴 남 직원은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바로 이런 것이 높은 신분을 가진 여인의 문제다. (p.188)


시나리오1: 새 직원이 팀에 합류했다. 그는 정말 잘생겼으며, 요구되는 능력을 모두 갖춘 인재로 기업에게는 진짜 성공한 이적 사례로 꼽힌다. 동료 여성 직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 신참을 두고 여자들은 신이 나서 쑥덕거리며 말 그대로 여성 사이의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한다. " 저 남자 생긴 것 좀 봐. 아무래도 동성애자가 아닐까……." (p.194)


학교에서 가장 지위가 낮은 사람은 보통 수위다. 무슨 대단한 학력이 필요하지 않으며, 수입도 조촐하고 별로 아름답지 않은 일터에서 수위는 일한다. 그렇지만 열쇠를 가진 사람은 수위다! 누구든 그를 통과해야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 수위는 열쇠 덕에 일종의 권력을 가졌다. (p.230)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기대했던 건, 상사와 동료를 대할 때나 협력업체 사람들을 대할 때, 그들의 언어와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를 배우고, 내 기분을 비즈니스맨 답지 않게 관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나의 행동과 표정, 말투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싶어서였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이 책은 그런 깊이가 없어 보인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건, 책 뒷표지에 나와있는대로 <이 인간은 사장이 되기 전에도 고함을 질러댔을까? 왜 이상한 사람들도 수위에게만큼은 친절하게 굴까? 수다는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정보 창구, 특권층은 사치를 부리고 낭비할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청중은 언제나 발표자가 실수할 순간을 기다린다>와 같은, 실질적인 비즈니스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은 정보만을 다룬다. 그래서 아쉽다. 책의 저자가 굉장히 오만하고, 권위적이며, 여자들에 대해 편협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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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뉴사우스웨일즈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조지프 폴 퐈스는 사회적 상호작용, 사회적 판단, 사회적 인지를 연구한다. 그리고 그는 놀라운 효과 하나를 발견해냈다. 기분이 나쁜 사람은 실수를 적게 하며, 업무에 집중하고, 평가에 보다 더 비판적이며, 기분이 좋은 사람보다 훨씬 더 일관도니 생각을 한다. (…) 포가스가 이끈 연구팀은 나쁜 기분이 빠르고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이끈다는 것을 확인했다. 기분이 나쁜 사람은 새로운 상황에 더 빠르게 적응하며 변화를 받아들이고 이미 이에 맞출 궁리를 하는 반면, 기분이 좋은 사람은 혁신에 저항하며 기존 질서를 고집한다. 그저 겉으로만 꾸미는 신뢰는 나쁜 기분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그 결과 행동은 더 유연해진다. 공정함과 정의 같은 윤리적 측면도 꼼꼼히 따지는 기분 나쁜 사람 덕분에 더 의미를 얻는다. (pp.2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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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아름다움 - AI, 빅데이터에 숨어 있는
우쥔 지음, 한수희 옮김, 권재명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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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구글 초창기 연구원이자 자연어 처리 및 정보 검색 전문가인 중국인 우쥔이 저술했다. 이 책의 가장 멋진 점은 저자가 과학자들에게 수학적으로, 즉 간단하면서 치밀하게 사유하는 방식을 가르치려고 이 책을 썼다는 점이다. 그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그가 낸 시험 문제-지난 10년간 주요 IT 잡지 표지에서 중점적으로 추천한 기술을 찾아서 그중 성공한 기술은 무엇이며, 등장하자마자 사라진 기술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그 원인을 분석하라-에 대한 답으로, 정확한 설계를 위한 사고법이 있는 기술은 비기술적인 요소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한다고 볼 수 없지만, 정확한 설계를 위한 사고법이 없는 기술은 예외없이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단다.


이 책은 수학의 발전사와 실제 사례를 결합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현대 과학기술 분야와 관련된 중요한 수학이론의 기원과 발전, 그 작용을 체계적으로 서술했다. 숫자와 정보의 유래에서부터 검색엔진의 정보처리 이면에 숨어있는 수학 원리, 그리고 검색과 관련된 수많은 분야에서의 신기한 수학 응용에 이르기까지 우쥔 박사는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책은 특히, 즈윈이 구글에서 만난, 구글의 성공을 만든 수많은 수학자와 공학자의 천재적 발견과 자신이 직접 개발한 코딩 기술과 알고리즘 개발 과정, AI 기술 동향과 IT 미래 등 개발자가 꼭 알아야 할 정보처리에 관한 모든 지식을 담아냈다는 점이 특별하다. IT 기술의 기반이 되는 수학의 원리를 깨우치면 한 차원 높은 프로그래밍이 가능해질 터이니, 언어정보 처리, 인터넷 기술, 데이터 마이닝, 머신러닝 등 방대하고 심오하며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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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주노초파람보
노엘라 지음 / 시루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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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이 책<빨주노초파람보>는 책 제목부터 책 구성, 디자인, 소재와 분위기 모두 특이했다. 세로로 달린 띠지에는(여담이지만 세로띠지는 가로띠지와는 달리 굳이 벗기지 않고 책을 펼쳐도 덜렁거리지 않아서 좋더라.) 베스트셀러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저자의 첫 소설, 소설 출간과 동시에 영화화 확정 화제작! 이라고 적혀있었다. 이름부터 특이한 작가 노엘라는 바이올린 전공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바이올리니스트지만, 동시에 곡을 그림, 문학, 사진, 그리고 색깔과 융합시키는 독특한 시도를 해온 종합 예술가 같은 행보를 보여왔다고……. 이 책은 책 표지에서부터 그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 강한 영감을 받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책 속 등장인물들도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과 그가 남긴 말을 계속해서 언급한다.


르네 마그리트가 누구인가. 그림 속에 그림을 그리고, 사물과 이름의 관계를 깨뜨리고, 일상적인 오브제를 이질적인 공간에 배치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낯섦과 기이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의 정형화된 사고의 틀을 깨뜨리는데 막대한 공헌을 한 형이사학과 초현실을 대표하는 화가가 아닌가.


<빨주노초파람보>는 야간비행, 빨주노초파람보, 딥퍼플, 이카루스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단편소설 모음집인줄 알았는데, 등장인물들과 사건이 서로 얽히고 설킨 하나의 장편소설이더라. <야간비행>은 신혼부부로 보이는 은하와 현재의, 과거와 현재, 미래 이야기가 복잡하게 번갈아가면서 전개되는데, 읽는 내내 긴장감과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다. 사랑에 대해 정형화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같은 사람들. 특히, 은하와 현재, 승환의 이야기는 이게 무슨 케이윌의 뮤직드라마 같은 스토리란 말인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다. (ㅋㅋ)


계속해서 반전이 일어난다. 글이 꿈같다. 몽환적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이야기 내의)현실인지, 누가 누구고 서로가 어떤 관계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책을 다시 읽는다. 이야기에서 반복되는, 또는 캐릭터들이 강조하는 키워드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 #꿈 #비블리스 #쌍둥이남매 #거울 #르네마그리트 #회귀 #딸기 #프리카 #꿈 #비행 #합동결혼식


"이제 우리 함께 하늘을 나는 거야. 그런데 만약 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으면 잠시 꿈꾸고 있어. 내가 그 꿈속으로 따라가 널 찾을테니까." 현재가 은하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눈을 마주치며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진지한 그의 표정에 은하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런 꿈이 있다면, 그 꿈, 영원히 반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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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문득,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밖'이고, 창밖이 '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세상이 만들어진 이후, 인간은 벽을 세우고 천장을 만들고 '안'이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스스로 '안'에 가두고 '밖'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꿈과 현실, 태어남과 죽음.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춤을 춘다.

나의 몸짓에, 바람에 모든 것을 비운다.

나의 안에서 나를 본다.

그리고, 나는 없다. (p.5)


"현실과 꿈은 같은 책의 페이지들과도 같은 것이다.

순차적으로 읽는 것은 현실이고, 여기저기 펼쳐 보는 일은 꿈과 같다." 쇼펜하우어 (p.9)


"사랑은 나의 안내로 그대가 그대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생텍쥐페리 (p.12)


'내가 왼손을 들면 저 자식은 오른손을 들고, 내가 오른쪽 입꼬리를 올리면 저 자식은 왼쪽 입꼬리를 올린다. 저놈은 나를 똑같이 따라 하지만 늘상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행동한단 말이다. (…) 가끔씩 나는 그를 볼 때 낯선 느낌이 들곤 한다. 하루 종일 그를 보지 않는 날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보고 싶었던 적은 거의 없다. 그는 평상시엔 존재하지 않다가 내가 그의 존재를 의식하는 순간에만 존재한다. 그는 마치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내가 인식할때만 존재하는, 없음의 세계에서 있음의 세계로의 변환가도 같다. 고로 그는 내가 주시하고 인식함으로써 존재하는 그런 존재이다. 그에게 실체가 있을까? 나는 인식하지 못하는, 그만이 인식하고 주시하는 세상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그가 살아 움직인다면? 그에게 생각이 있을까?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따라 하지만 그만의 의지와 생각, 감정이 그에게 존재한다면? 누군가의 말처럼 어차피 세상은 보이는 것 반, 보이지 않는 것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pp.32-33)


내 기억은 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 기억이 실제였다고 믿는다. 사실과 기억이 다를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늘 체험하며 산다. 과거는 기억만으로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존재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기억이 있다면 존재한 것이라는 역설을 가능하게 한다. 꿈 같은 나의 기억이, 꿈인지, 현실인지, 꿈이라면 내가 그의 꿈을 꾼 것인지, 그가 나의 꿈을 꾼 것인지 분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 살아있는 나의 감정, 그리고 은하와 현재를 마주했다는 것만은 사실이니까. (p.170)


지금, 이 편지를 읽는 것을 멈추고 어제 뭘 했는지 잠깐 떠올려볼래? 어때? 모든 게 다 생각나니? 하나도 빠지지 않고 기억해낼 수 있어? 몇 시에 일어나 무얼 먹고 어딜 갔는지, 무슨 옷을 입고 어떤 양말을 신었는지, 가방 안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 있었는지, 길을 걸을 때 오른쪽으로 걸었는지 왼쪽으로 걸었는지, 누구와 무슨 얘길 나눴고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은 무엇인지, 하나도 빠지지 않고 기억해낼 수 있냐고. 우리는 모든 일을 순차적으로 기억하지 못해. 모든 기억은 조각일 뿐이지. 그렇게 과거는 기억의 조각으로 존재할 뿐이야. 그래서 완전한 과거는 있을 수 없어. (p.176)


직감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어. 그냥,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들. 증거는 그다음에 나타나게 되어 있지. (p.184)


그날, 그 집을 나오면서 모든 걸 잊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나의 꿈처럼 그를 만났지.

나에게 그는 우주 전체와 같았지.

그의 안에서 세상을 보았고, 그의 안에서 꿈을 꾸었어.

그의 안에서 하늘을 보았고, 그 하늘을 날고 싶었지.

그 하늘이 너무도 높아 태양 가까이 갔다는 걸,

녹아내린 날개를 보며 나는 알았어. (…)

사람의 기억이란 참으로 얄궂은 것이어서,

기억하고 싶다고 기억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잊고 싶다고 잊히는 게 아닌 법이지.

잊고 싶은 기억들은 그만큼 더 강렬하게 뇌리에 박혀버리곤 해.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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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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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을 좋아한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은 그의 데뷔작 <오베라는 남자>부터 시작해서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브릿마리 여기 있다>, <하루 하루가 이별의 날>까지 착실하게 읽어왔고, 소장하고 있다. 그의 작품엔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 어느 한 곳에서 스토리가 꽉 막혀 있지 않고 개울물 흐르듯 빠르게 전진한다. 그래서 나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책을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는다. 책 어느 곳에도 손을 놓아도 좋을 만한 타이밍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레드릭 배크만은 내게 아무것도 묻고 따지지도 않고 책을 구입하게 만드는 작가 중 하나인데, 내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장편소설을 딱 한 작품 놓쳤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그 작품이 바로 이 책 <우리와 당신들>의 전작인 <베어타운>이다. 물론 전편을 보지 않은 관람객을 위한 속편 영화처럼, 이 책 역시도 전 작품을 읽지 않고도 스토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전작을 읽지 못한 나도 이 책에 폭 빠져 충분히 재밌게 읽었다.) 다만, 이 책에서 베어타운에 커다란 돌을 던진 케빈과 마야의 사건을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초반에 하키팀의 해체를 두고 어린 소녀에게 심한 2차 가해를 해대는 마을 사람들의 감정선을 따라잡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이 책의 메인 주제는 <하키>, 바로 팀 스포츠다. 슬램덩크 같은 스포츠 만화를 좋아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경기를 위한 최강의 한 팀이 구성되는 일도 만만치 않고, 또 그 팀이 성장하고 경기에서 승리하기까지 쉬운 과정 하나 없다는 걸 말이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눈이 뜨거워지는 순간이 파도처럼 계속해서 밀려들 것이란 것도.


최근에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책 속에서 정리된 문장으로 발견할 때가 있다. 이 책에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아서 상처 받은 감정을 표현한 문장들이 참 많다. 내가 나보다도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결국 모든 잘못을 나에게 묻고, 내가 나를 끔찍하게 미워할 때가 있었다. 갈 곳 없는 분노와 슬픔이 나를 멍들게 하는 순간들. 또 마야와 아나와 미라와 사켈, 모두 여자라서 겪어야만 했던 일들의 묘사에도 나는 가슴 깊이 공감했다. 그림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내게 그림을 잘 그리려면 이해와 관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씀한 적 있다. 글 쓰는 일도 그림 그리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둘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것을 남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정확히 '묘사'하는 일이니까. 좋은 묘사를 위해서는 눈으로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는 일과, 가슴 깊이 이를 공감하는 힘이 필요할 것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은 좋은 묘사력을 가진 작가다. 그는 최근 사회현상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참고로 이 책은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이다. 등장인물이 어찌나 우라지게 많은지! 이름 역시 우라지게 어렵다. <베어타운>부터 잘 따라왔으면 이 책의 조연으로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더 반가웠을 것 같단 아쉬움이 계속 남았다. 결론: 나는 <베어타운>을 구입해 읽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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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한 마을이 무너지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우리 마을이 그랬다. 나중에 우리​는 이해 여름에 폭력 사태가 베어타운을 강타했다고 얘기하겠지만 그건 거짓말이 될 것이다. 폭력의 조짐은 그전부터 있었다. 왜냐하면 서로를 증오하는 것이 워낙 쉬운 일이 되어놔서 증오가 아닌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처사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p.13)


자동차 한 대가 너무 빠른 속도로 밤을 가를 것이다. 우리는 교통사고였다고 하겠지만 사고는 우연히 벌어지는 것이고 이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는 걸 우리는 알 것이다. 이건 누군가의 책임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가장 아름다운 나무 아래에 묻을 것이다. (p.15)


우리가 타인에 대해 아는 사실들 가운데 최악을 꼽으라면 우리의 삶이 그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동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 나머지 바보들의 경우에도 말이다. 내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 운전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 저질스러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식당에서 너무 시끄럽게 떠들며 유치원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노로바이러스를 옮기는 아이를 키우는 사람. 주차를 엉망으로 하고 우리 일자리를 가로채며 엉뚱한 정당에 투표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도 매 순간마다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아아,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미워하는가. (p.24)


페테르는 또다시 늦게 퇴근한다. 미라가 노트북을 펼쳐놓고 식탁에 앉아 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빨래와 청소를 하려고 오늘 일찍 퇴근했다. 이제 그녀는 다시 일을 하지만 상사들은 알지 못한다. 그녀는 다른 동료들보다 일하는 시간이 더 많지만 사무실에서는 조만간 항상 일찍 퇴근하는 여자로 찍힐 것이다. 엄마 노릇은 집의 토대를 굳히거나 지붕을 고치는 것과 같다.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완벽하게 끝내도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아무도 칭찬을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한 시간 동안 야근을 하는 것은 예쁜 그림을 걸거나 전등을 바꾸는 것과 가다. 모두가 알아봐준다. (pp.299-300)


"나는 어렸을 때 공포 영화를 하도 많이 봐서 괴물은 항상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직전에 가장 무섭다는 걸 알아. 우리의 상상력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섬뜩하거든. 너도 그 일당을 똑같은 방식으로 구축했겠지. 너희들은 아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숫자가 적을 거야. 너는 사람들이 너희들을 실제보다 더 끔찍한 존재로 상상하도록 내버려두고 있어." (p.337)


팀 스포츠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단체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일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유가 단순하다. 또 하나의 가족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애초에 가족이 없었떤 사람에게는 팀이 가족일 수 있다. (p.472)


사람들에게 희망을 걸기는 쉽다. 세상이 하룻밤 새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쉽다. 우리는 공격을 당하면 시위를 벌이고, 참사를 겪으면 기부를 하며, 인터넷에 심금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일보 전진할 때마다 거의 그와 비슷하게 일보 후퇴한다. 여러 차례 입증됐다시피 모든 변화는 이루어지고 있는 당시에는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속도가 더디다. (p.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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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한문 공부 - 문법이 잡히면 고전이 보인다
정춘수 지음 / 부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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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를 배운 적이 있기 때문에 아주 낯설지는 않았던 한문 공부. 이 책은 한문 독해에 필요한 기초 교양과 문법을 알려 주는 책이다. 이 책은 49구의 문구와 287구의 연습문장을 통해 한문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얼마 전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를 읽고 한문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마침 원하던 책이 나와서(!) 구입했고 하루에 5구씩 읽었다. 나처럼 읽는다면 이 책 1회독에는 10일이 걸린다.

 


저자는 논어, 맹자, 순자, 한비자, 장자, 노자, 사기, 좌전, 난중일기 같은 여러 문헌에서 우리에게 낯익고 현대적 사유와 소통, 공감이 가능한 문장을 발췌했다. 그리고 이렇게 가려 뽑은 구절의 번역문과 함께 그 구절을 둘러싼 배경과 인물, 사상 등을 먼저 설명해준다. 한문 고전에 담긴 사상과 전례가 후대로 이어지고 재현되면서 한문에 특유한 의미 문맥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고전에 대한 교양이 없으면 한문을 독해할 때 이 문맥에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문을 설명할 때 번역문에 담긴 내용 해설에 그치지 않고 그 문장이 왜 그렇게 번역되는지 문장 구조와 표현, 어휘 같은 문법적 의미 설명이 이어진다. 특히 저자는 한문 문법이 우리말 문법과 어떻게 다른지를 가능한 알기 쉽게 설명하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어휘, 어법 설명이 끝나면 연습 문장이 이어진다. 이 책으로 한문 공부 열심히 해서 올재에서 구입한 책들을 읽으며 나의 한문 독해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시험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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