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 - 아름다운 우리 땅 그림 순례, 도원을 꿈꾸다 조선 땅을 만나다
이태호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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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이태호 씨는 현재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이자 문화예술 대학원장 경기도 · 충청남도 문화재위원으로, 초상화, 풍경화, 진경산수화 등 조선 후기 회화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이 책은 저자가 조선 후기 진경 산수화의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카메라로 찍은 실경과 그림을 비교, 분석해 쓴 글 30편 중 9편을 엮어 만든 것이다. 원래 이 책은 생각의 나무에서 2010년 5월 출판했었으나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되어 마로니에북스를 통해 재판한 것이다. 저자는 2010년 이후 쓴 다른 글과 묶어 따로 출판할 요량으로 '고지도의 회화성 부분'을 신판에서는 제외시켰다고 한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고 그동안 내가 우리나라의 미술과 문화재에 너무 무관심했고 무지했음을 깨닫고 크게 반성했다. 그래서 조선 후기 산수화를 다룬 이 책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에 관심을 가지고 서평단을 신청했는데, 한국 미술 초보자에게 낯선 인명과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고, 본문 속 그림 설명과 삽화 페이지 매칭이 중구난방이라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따라 잡기가 어려웠다.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을 가지고 쓴 책이 아니라 논문을 이어붙인 글이라 중복된 내용도 많다. 중복된 내용은 일독 중에도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는 장점이 있지만, 책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단점도 있다.

 

미술에 대해, 특히 한국화에 대해 아는 것이 적은 대중을 배려해서 용어 및 화풍 설명을 뒤쪽에 따로 덧붙인다던가 작품 연표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 책에서 설명하는 그림의 가짓수를 줄이고 그 대신 설명하는 그림은 모두 책 속에 삽입시켰더라면. 책 속에 소개된 그림 수가 삽화수에 비해 월등히 많다. 책에서 중복해서 소개되는 그림들이 있다보니 <박연폭도> 같은 경우, [1-1.보고 그리기와 기억으로 그리기]에서 처음 언급되었지만 [2-1. 겸재 정선]에서 삽화가 등장한다. 사계정사도의 경우는 19페이지와 445페이지에 중복해서 삽입되었더라. 삽화에도 일정한 규칙을 두어 처음 그림을 언급할 때 삽화를 넣고 뒤쪽에서 그림이 반복해 등장할 때 삽화 페이지를 언급하거나 반대로 그림이 뒤에 등장하더라도 앞쪽에 그림의 이름이 언급된 경우, 그림이 있는 뒷쪽 페이지수를 표기했으면 독자가 보기에 편리했을 것이다. 또, 정선과 김홍도에서 계속 등장하는 이름, 표암 강세황을 따로 다루지 않은 것이 아쉽다.

 

책의 편집 부분은 아쉬움이 크지만, 내가 모르는 조선 진경산수화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던 '소장할만한' 책이다. 시간을 두고 재독, 삼독하여 책 속에 있는 내용들을 모두 내 것으로 소화하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저자의 다른 책에도 관심이 생긴다.

 

 

아래는 책의 내용 단순 요약이다:

 

조선 전기 산수화는 중국의 송 · 명대 산수화 형식을 쫓은 관념산수화였던 것과 달리, 17세기 중반 명 · 청교체기를 기점으로 '소중화', '조선중화', '주자종본주의'가 싹트며 이 영향을 받아 조선풍과 개성미를 추구하는 조선 후기 진경 산수화가 출발한다. 특히 금강산에 대한 사대부들의 사랑과 문예 경향은 모화사상을 극복하고 조선주체적 성리학과 문화예술을 창출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정철의 <관동별곡>이 정선의 <금강전도>보다 150년을 앞선 것으로 보아 회화가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에 더 적합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기행문학이 먼저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 중후반은 중국 산수화풍 관념미에서 조선 땅 현실미 전환의 과도기로써, 익숙한 중국 화풍이 국내 풍경을 묘사하기에 맞지 않았던 탓에 그림 표현법에서 약간의 미숙함이 드러나는데, 숙종부터 영조까지 이 시기 조선 산수화를 대표하는 인물은 겸재 정선이다. 겸재는 진경산수화가 담고 있는 두 가지 의미, 진경(실재 경치)와 선경(이상향)에서 후자에 중점을 두었고, 변형과 상상을 통해 실재감이 뛰어난 그림을 그려냈다. 그런 탓에 저자가 그의 그림을 들고 현장을 방문했을 때, 저자가 그림을 그린 자리를 찾기 어려웠으며 광각 렌즈 또는 파노라마 카메라 만이 그림과 비슷한 구도를 담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겸재의 그림의 큰 특징은 다시점(<인왕제색도>), 부감시(새처럼 위에서 본 형상을 그린 것, <금강전도>), 과장법(<박연폭도>, <박생연도>와 비교해볼 것)의 활용이며, 그의 필법에는 양필법(한 손에 붓 두필을 들고 그림), 수직준(난시준 또는 열마준으로 위에서 아래로 죽죽 그어내림), 미점(붓끝으로 반복해 점을 찍음), 적묵법(농묵 붓자욱 중첩), 丁자형 송림 표현 등이 있다. 강희언, 김윤겸 등 도화서 화원과 중인층 화가들은 겸재의 화풍을 적극 따랐으며, 선비화가들 역시 겸재의 영향을 받아 기행과 사경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남인 실학파 성호 이익은 이형사신을 강조했고, 북인 표암 강세황은 사생 및 사진을 중시여겼는데, 이 영향을 받아 정조와 순조 시기에 활약했던 인물이 단원 김홍도였다. 겸재가 전기 고전 형태를 지닌 엄격 양식을 유행시켰다면, 단원 이후로는 다양하고 발랄한 후기 고전 양식을 열리게 된다. 그는 겸재와 달리 주로 평원법을 사용했다. 저자는 28~35mm 카메라로 그의 그림과 똑같은 실경을 잡아낼 수 있었다. 단원은 진경산수화에서 더 나아가 사경산수(일상적 풍속이나 화조를 풍경에 담음)을 발전시켰으며,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의 도화서 화가였던 이인문과 신윤복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20세기 일제강점기와 남북분단을 겪고 우리나라의 산수화는 퇴조를 겪는다.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금강산이 광고 목적과 기념품용으로 많이 그려졌는데, 이 시기에 우리나라 산수화가들이 서양화법과 일본산수화풍을 배워 그림에 섞는다. 남북분단 후로는 금강산을 직접 갈 수 없게 되어 화가들이 사진이나 기록을 통해 금강산 '추상화'를 많이 그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응노 씨의 <몽견금강도>는 개인적으로 보기에 좋아서 방에다 걸어놓고 싶은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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