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단테의 지옥 여행기 ㅣ 단테의 여행기
단테 알리기에리 원작, 구스타브 도레 그림, 최승 엮음 / 정민미디어 / 2015년 7월
평점 :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를 읽고나서 단테의 신곡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중 '인페르노'의 베이스가 되었던 지옥 편이 가장 읽고 싶었는데, 로댕 박물관에서 본 지옥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로댕의 지옥문 속 동상들 - 특히 내 세례명과 똑같은 이름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했고, 서양이 생각하는 지옥은 동양이 생각하는 지옥(내가 최고의 웹툰으로 꼽는 신과 함께의 지옥편)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지 매우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신곡 시리즈는 단테가 지옥에서부터 연옥을 거쳐 천국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지옥-연옥-천국 순으로 읽게끔 구성되어 있어 내가 제일 읽고 싶었던 지옥(?)부터 읽을 수 있었다!
로댕의 지옥문을 보고 싶다면 ☞ http://jaera1990.blog.me/220400030976
지옥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300년 부활 주일 전날 밤, 35살 시인 단테는 그의 앞을 가로 막은 정욕의 표범, 교만의 사자, 탐욕의 암늑대에 가로막혀 캄캄한 숲 속을 홀로 헤메이고 있었는데, 이런 그의 앞으로 시성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그를 구해주고 천국에 있는 베아트리체에게로 그를 안내할 것임을 알린다. 천국에 가기 앞서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지옥문을 들어서는데, 지옥은 총 9개의 옥이 존재하며 죄인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따라 분류된 옥에서 그에 따른 형벌을 받고 있다. 첫번째 옥 림보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게 된 어린아이들의 영혼과 그리스도 이전에 태어난 이들이 있는 곳으로, 단테는 이곳에서 살아생전 선으로 덕을 쌓은 위대한 시인과 철학자들의 영혼을 만난다. 2옥에는 애욕에 눈이 멀었던 영혼들이, 3옥에는 탐욕했던 자들이, 4옥에는 인색했던 자들과 낭비를 일삼았던 자들, 5옥에는 분노로 죄를 범한 자들이 가게 되며, 6옥에는 이교도들, 7옥에는 이웃과 자기 자신, 하느님에 대한 폭력을 저지른 자들이,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9옥에는 하느님을 배반한 루치펠로가 스승 예수를 배반한 가리옷 유다를 입속에 넣고 껌처럼 질겅질겅 씹고 있다!
신과 함께 속 지옥처럼 단테의 지옥에도 자신이 지상에서 저지른 죄에 따라 그에 맞는 옥에 가서 죗값을 치르게 되는데, 동양에서 상상한 형벌이 단테가 묘사하는 형벌보다 더욱 무겁고 잔인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옥에는 그리스로마신화의 여러 신들과 케르베로스 등이 등장해서 온전히 성경에 걸맞는 지옥을 그렸던 내 상상과는 많이 다른 부분이 있었다. 성경 외에도 서양 문화와 역사, 철학 등에 대한 깊은 배경지식이 없으면 단테의 지옥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또 하나의 포인트는 살아있는 사람의 시점에서 보는 지옥과 이미 죽어있는 영혼의 시점으로 보는 지옥이다: 단테는 지옥에서 만나는, 고통받는 죄인들을 보며 애잔한 마음을 품는데, 베르길리우스는 그들을 가엾게 생각하는 것이 하느님의 심판이 공정하지 않다고 의심하는 것이라며 그를 꾸중한다. 단테가 그려내는 지옥 속에서 죽어서는 자유의지를 잃어 죄를 씻을 수가 없고, 그 누구에게도 인정에 호소해서 죄값을 깎아낼 수도 없는데, 이에 대한 설득력이 어마어마(?)해서 살아 생전에 잘 하자(?)라는 생각을 했다.
- - - - - - - - - - -
"그렇지만 스승님, 저렇게까지 탄식하며 울부짖을 만큼 저들의 죄가 무거운 것이었습니까?"
"저들이 울부짖는 이유가 고통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그들의 지로 인한 형벌이 매우 고통스럽기도 하겠지만 정작 저들의 괴로움은 다른 데 있다네. 즉, 자신들에게는 죽음조차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 채 영원히 죄의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
"그렇다면 저들이 죽은 게 아니란 말씀입니까?"
"물론 육신은 이미 죽은 상태지. 고통만이 존재하는 그들로서는 영원한 안식을 위해서라도 차라리 영혼마저 소멸되는 두 번째의 죽음을 얻어야 하는데 결코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네." (p.32)
"스승님, 성문 앞에 서서 잔악한 표정으로 이를 갈고 있는 저 영혼은 도대체 누굽니까?"
"그는 신들의 왕 제우스의 아들 미노스라네. 죽어서 이곳에 온 영혼들은 우선 제2옥을 지키는 저 미노스 앞에서 죄를 낱낱이 고백해야만 한다네. 그러면 그는 어둠과 불멸의 신답게 아홉 곳의 지옥 중 그 영혼들에게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지옥에 따라 숫자의 꼬리를 감으면 영혼들은 심판에 따라 곧바로 그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지."
"저 둘은 비극적인 사랑의 운명을 타고난 프란체스카와 파울로라네."
"비극적인 사랑의 운명이라고요?"
"그렇다네. 프란체스카는 이웃 나라의 성주 지안치오토와 정략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지안치오토는 추남일 뿐만 아니라 성격 또한 포학한 자였네. 그래서 지안치오토는 결혼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잘생기고 마음씨 부드러운 동생 파울로를 내세워 대신 결혼식을 올리게 했지. 결혼 뒤 이 사실을 알게 된 프란체스카는 크게 낙심했고 또 파울로에 대한 연모의 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네. 어느 날 지안치오토가 집을 비운 사이 프란체스카와 파울로는 서로의 간절한 마음을 불태우며 밀회를 즐기고 있었지. 그때 시종의 밀고를 듣고 달려온 지안치오토가 그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결국 그는 자기 손으로 두 사람을 살해했다네." (p.57)
"자, 어서 지나가세."
"그렇지만 스승님, 망령들이 기진맥진하여 길을 가로막고 누워 있습니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데 어떻게 이 길을 지나가지요?"
"이들은 이미 육신을 잃은 상태여서 형체는 있으나 무게가 없다네. 그래서 그 위를 밟고 지나가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네."
"아, 죽은 이들은 모두 무게가 없는 영혼으로 변하는군요!"
"그런 건 아닐세. 깊은 지옥으로 내려갈수록 무게를 갖게 되고 마침내는 자신의 몸뚱이조차 지탱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워지지." (pp.63-65)
"죄는 원래 먼지처럼 가벼운 것이라 쉽게 그 두께를 알지 못하고 무게 또한 느끼지 못한다네. 그래서 저자들은 먼지가 쌓여 자신의 몸에 열 배가 될 때까지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계속 죄를 짓다가 여기로 오게 된 것이지. 하지만 살아생전에는 죄의 먼지 하나하나가 저 바윗돌만큼이나 무겁고 크게 변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바위가 먼지처럼 두텁게 쌓인 무거운 그 죄를 손이나 발이 아닌 가슴으로 밀고 다니게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군요. 진정 가슴 깊이 느끼고 반성하라는……."
"생각해보게, 저들로 인하여 고통받고 비참해져야 했던 더 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의 상처를……." (pp.71-72)
"사람은 태어날 때 운명을 부여받지만, 그때의 운명은 확실히 결정된 것이 아니라 쉴 새 없이 그 모습을 바꾸기 마련이라네. 선행은 사람의 운명을 천국에 가깝도록 만들고 필연은 운명을 재촉하는 역할을 하지. 그래서 하느님 말씀에 따라 선하게 사는 사람은 비록 비천한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영화롭게 죽을 수 있는 것이라네. 그러나 비천한 운명을 탓하며 운명에 도전해 보지도 않고 굴복하는 자는 끝내 비천하게 죽을 수 밖에 없네."
"그렇군요. 비록 운명의 시작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았지만 운명의 과정과 끝은 신이 주신 선물인 자유의지로써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로군요." (pp.74-75)
"인간은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운명적인 일들에 대해 끊임없이 감사해야 하네. 그것이 좋은 일이든 그렇지 못한 일이든 말일세. 운명의 여신은 그 누구에게든 원망을 듣게 마련이지.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찬양해야 마땅한 자들조차 욕심에 눈이 어두워 그녀를 원망하고 있으니 이는 타당치 않은 비난이요, 잘못된 생각이지." (p.75)
"자기 자신에 대한 폭력이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과 노름하느라 자신의 재산을 모두 탕진한 경우이지. 이들은 행복해야 할 곳에서 눈물로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죽어서도 두 번째 원에 갇혀 한숨과 후회로 지내야만 한다네." (p.109)
"단테, 최후의 심판의 날이 오면 죽은 자 모두가 자신의 육체를 되찾고 고통도 덜게 되지만 자살한 자들은 그렇지 못하다네. 스스로 버린 육체를 다시 소유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이들은 최후의 심판 이후에도 시체를 끌고 이 비참한 숲으로 다시 돌아와 육체를 자기 영혼의 가시나무에 매달아 두게 된다네." (p.132)
"여기서는 죄인에 대한 동정과 연민의 정을 완전히 버려야만 하느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이지. 하느님의 심판을 보고 죄인들에게 측은한 마음을 품는다면 그분께서 공의로운 심판을 하시지 않았다는 불경한 해석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그보다 더 큰 죄가 과연 있을까 싶네." (p.187)
"이곳에서 죄의 씻음을 받는 것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네. 죽은 자는 이미 자유의지가 상실되어 있으므로 심판 받은 대로 그 죗값을 치를 뿐 본인의 의지로는 절대 벗어날 수가 없지. 그래서 자유의지의 은총이 주어져 있던 살아 있을 때 올바르게 생활하고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몸을 수신해야 한다네. 단, 살아 있는 누군가가 그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할 때만큼은 하느님께서 내리신 판결이 조금은 완화되기도 하지만……!" (p.193)
"당신은 나를 싫어하면서 왜 나의 앞날에 대해 그토록 상세히 알려주는 것이오?"
"그야 간단해. 고통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맞부딪쳤을 땐 오히려 견뎌내기 쉬운 법이지. 그러나 정해진 고통을 기다리며 살기란 지옥에서 사는 삶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pp.229-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