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지옥 여행기 단테의 여행기
단테 알리기에리 원작, 구스타브 도레 그림, 최승 엮음 / 정민미디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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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브라운의 '인페르노'를 읽고나서 단테의 신곡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중 '인페르노'의 베이스가 되었던 지옥 편이 가장 읽고 싶었는데, 로댕 박물관에서 본 지옥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로댕의 지옥문 속 동상들 - 특히 내 세례명과 똑같은 이름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했고, 서양이 생각하는 지옥은 동양이 생각하는 지옥(내가 최고의 웹툰으로 꼽는 신과 함께의 지옥편)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지 매우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신곡 시리즈는 단테가 지옥에서부터 연옥을 거쳐 천국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지옥-연옥-천국 순으로 읽게끔 구성되어 있어 내가 제일 읽고 싶었던 지옥(?)부터 읽을 수 있었다!


로댕의 지옥문을 보고 싶다면 ☞ http://jaera1990.blog.me/220400030976


지옥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300년 부활 주일 전날 밤, 35살 시인 단테는 그의 앞을 가로 막은 정욕의 표범, 교만의 사자, 탐욕의 암늑대에 가로막혀 캄캄한 숲 속을 홀로 헤메이고 있었는데, 이런 그의 앞으로 시성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그를 구해주고 천국에 있는 베아트리체에게로 그를 안내할 것임을 알린다. 천국에 가기 앞서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지옥문을 들어서는데, 지옥은 총 9개의 옥이 존재하며 죄인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따라 분류된 옥에서 그에 따른 형벌을 받고 있다. 첫번째 옥 림보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게 된 어린아이들의 영혼과 그리스도 이전에 태어난 이들이 있는 곳으로, 단테는 이곳에서 살아생전 선으로 덕을 쌓은 위대한 시인과 철학자들의 영혼을 만난다. 2옥에는 애욕에 눈이 멀었던 영혼들이, 3옥에는 탐욕했던 자들이, 4옥에는 인색했던 자들과 낭비를 일삼았던 자들, 5옥에는 분노로 죄를 범한 자들이 가게 되며, 6옥에는 이교도들, 7옥에는 이웃과 자기 자신, 하느님에 대한 폭력을 저지른 자들이,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9옥에는 하느님을 배반한 루치펠로가 스승 예수를 배반한 가리옷 유다를 입속에 넣고 껌처럼 질겅질겅 씹고 있다!


신과 함께 속 지옥처럼 단테의 지옥에도 자신이 지상에서 저지른 죄에 따라 그에 맞는 옥에 가서 죗값을 치르게 되는데, 동양에서 상상한 형벌이 단테가 묘사하는 형벌보다 더욱 무겁고 잔인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옥에는 그리스로마신화의 여러 신들과 케르베로스 등이 등장해서 온전히 성경에 걸맞는 지옥을 그렸던 내 상상과는 많이 다른 부분이 있었다. 성경 외에도 서양 문화와 역사, 철학 등에 대한 깊은 배경지식이 없으면 단테의 지옥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또 하나의 포인트는 살아있는 사람의 시점에서 보는 지옥과 이미 죽어있는 영혼의 시점으로 보는 지옥이다: 단테는 지옥에서 만나는, 고통받는 죄인들을 보며 애잔한 마음을 품는데, 베르길리우스는 그들을 가엾게 생각하는 것이 하느님의 심판이 공정하지 않다고 의심하는 것이라며 그를 꾸중한다. 단테가 그려내는 지옥 속에서 죽어서는 자유의지를 잃어 죄를 씻을 수가 없고, 그 누구에게도 인정에 호소해서 죄값을 깎아낼 수도 없는데, 이에 대한 설득력이 어마어마(?)해서 살아 생전에 잘 하자(?)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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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스승님, 저렇게까지 탄식하며 울부짖을 만큼 저들의 죄가 무거운 것이었습니까?"

"저들이 울부짖는 이유가 고통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그들의 지로 인한 형벌이 매우 고통스럽기도 하겠지만 정작 저들의 괴로움은 다른 데 있다네. 즉, 자신들에게는 죽음조차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 채 영원히 죄의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

"그렇다면 저들이 죽은 게 아니란 말씀입니까?"

"물론 육신은 이미 죽은 상태지. 고통만이 존재하는 그들로서는 영원한 안식을 위해서라도 차라리 영혼마저 소멸되는 두 번째의 죽음을 얻어야 하는데 결코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네." (p.32)


"스승님, 성문 앞에 서서 잔악한 표정으로 이를 갈고 있는 저 영혼은 도대체 누굽니까?"

"그는 신들의 왕 제우스의 아들 미노스라네. 죽어서 이곳에 온 영혼들은 우선 제2옥을 지키는 저 미노스 앞에서 죄를 낱낱이 고백해야만 한다네. 그러면 그는 어둠과 불멸의 신답게 아홉 곳의 지옥 중 그 영혼들에게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지옥에 따라 숫자의 꼬리를 감으면 영혼들은 심판에 따라 곧바로 그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지."


"저 둘은 비극적인 사랑의 운명을 타고난 프란체스카와 파울로라네."

"비극적인 사랑의 운명이라고요?"

"그렇다네. 프란체스카는 이웃 나라의 성주 지안치오토와 정략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지안치오토는 추남일 뿐만 아니라 성격 또한 포학한 자였네. 그래서 지안치오토는 결혼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잘생기고 마음씨 부드러운 동생 파울로를 내세워 대신 결혼식을 올리게 했지. 결혼 뒤 이 사실을 알게 된 프란체스카는 크게 낙심했고 또 파울로에 대한 연모의 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네. 어느 날 지안치오토가 집을 비운 사이 프란체스카와 파울로는 서로의 간절한 마음을 불태우며 밀회를 즐기고 있었지. 그때 시종의 밀고를 듣고 달려온 지안치오토가 그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결국 그는 자기 손으로 두 사람을 살해했다네." (p.57)


"자, 어서 지나가세."

"그렇지만 스승님, 망령들이 기진맥진하여 길을 가로막고 누워 있습니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데 어떻게 이 길을 지나가지요?"

"이들은 이미 육신을 잃은 상태여서 형체는 있으나 무게가 없다네. 그래서 그 위를 밟고 지나가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네."

"아, 죽은 이들은 모두 무게가 없는 영혼으로 변하는군요!"

"그런 건 아닐세. 깊은 지옥으로 내려갈수록 무게를 갖게 되고 마침내는 자신의 몸뚱이조차 지탱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워지지." (pp.63-65)


"죄는 원래 먼지처럼 가벼운 것이라 쉽게 그 두께를 알지 못하고 무게 또한 느끼지 못한다네. 그래서 저자들은 먼지가 쌓여 자신의 몸에 열 배가 될 때까지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계속 죄를 짓다가 여기로 오게 된 것이지. 하지만 살아생전에는 죄의 먼지 하나하나가 저 바윗돌만큼이나 무겁고 크게 변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바위가 먼지처럼 두텁게 쌓인 무거운 그 죄를 손이나 발이 아닌 가슴으로 밀고 다니게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군요. 진정 가슴 깊이 느끼고 반성하라는……."

"생각해보게, 저들로 인하여 고통받고 비참해져야 했던 더 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의 상처를……." (pp.71-72)


"사람은 태어날 때 운명을 부여받지만, 그때의 운명은 확실히 결정된 것이 아니라 쉴 새 없이 그 모습을 바꾸기 마련이라네. 선행은 사람의 운명을 천국에 가깝도록 만들고 필연은 운명을 재촉하는 역할을 하지. 그래서 하느님 말씀에 따라 선하게 사는 사람은 비록 비천한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영화롭게 죽을 수 있는 것이라네. 그러나 비천한 운명을 탓하며 운명에 도전해 보지도 않고 굴복하는 자는 끝내 비천하게 죽을 수 밖에 없네."

"그렇군요. 비록 운명의 시작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았지만 운명의 과정과 끝은 신이 주신 선물인 자유의지로써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로군요." (pp.74-75)


"인간은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운명적인 일들에 대해 끊임없이 감사해야 하네. 그것이 좋은 일이든 그렇지 못한 일이든 말일세. 운명의 여신은 그 누구에게든 원망을 듣게 마련이지.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찬양해야 마땅한 자들조차 욕심에 눈이 어두워 그녀를 원망하고 있으니 이는 타당치 않은 비난이요, 잘못된 생각이지." (p.75)


"자기 자신에 대한 폭력이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과 노름하느라 자신의 재산을 모두 탕진한 경우이지. 이들은 행복해야 할 곳에서 눈물로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죽어서도 두 번째 원에 갇혀 한숨과 후회로 지내야만 한다네." (p.109)


"단테, 최후의 심판의 날이 오면 죽은 자 모두가 자신의 육체를 되찾고 고통도 덜게 되지만 자살한 자들은 그렇지 못하다네. 스스로 버린 육체를 다시 소유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이들은 최후의 심판 이후에도 시체를 끌고 이 비참한 숲으로 다시 돌아와 육체를 자기 영혼의 가시나무에 매달아 두게 된다네." (p.132)


"여기서는 죄인에 대한 동정과 연민의 정을 완전히 버려야만 하느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이지. 하느님의 심판을 보고 죄인들에게 측은한 마음을 품는다면 그분께서 공의로운 심판을 하시지 않았다는 불경한 해석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그보다 더 큰 죄가 과연 있을까 싶네." (p.187)


"이곳에서 죄의 씻음을 받는 것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네. 죽은 자는 이미 자유의지가 상실되어 있으므로 심판 받은 대로 그 죗값을 치를 뿐 본인의 의지로는 절대 벗어날 수가 없지. 그래서 자유의지의 은총이 주어져 있던 살아 있을 때 올바르게 생활하고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몸을 수신해야 한다네. 단, 살아 있는 누군가가 그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할 때만큼은 하느님께서 내리신 판결이 조금은 완화되기도 하지만……!" (p.193)


"당신은 나를 싫어하면서 왜 나의 앞날에 대해 그토록 상세히 알려주는 것이오?"

"그야 간단해. 고통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맞부딪쳤을 땐 오히려 견뎌내기 쉬운 법이지. 그러나 정해진 고통을 기다리며 살기란 지옥에서 사는 삶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pp.229-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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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연옥 여행기 단테의 여행기
단테 알리기에리 원작, 구스타브 도레 그림, 최승 엮음 / 정민미디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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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을 다녀와서 단테의 신곡을 읽어보려 여러 번 시도해봤는데, 시로 구성되어 있는 원본을 읽기란 쉽지가 않았다. 정민미디어에서 펴낸 최승 작가의 <단테의 여행기>는 단테의 <신곡>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로 각색한 세계 최초의 소설본이라고 해서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호기심이 일었는데,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개념, 인명, 지명, 철학, 신학, 우주관 등이 펼쳐지기 때문에 마냥 쉽게 읽히지만은 않더라.


사실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벌을 받는 곳인 '지옥'은 굳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오랜 기간 불교국가였던 우리나라 사람 모두에게 익숙한 개념이라 내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가 쉬웠던 한 편, 천국과 지옥 사이의 중간계인 연옥은 천주교 신자인 나에게도 명확하지 않은 개념이라 전편보다 조금 더 어렵게 느껴졌다. 연옥에 있는 이 중에도 죄를 저지른 이들이 많은데, 왜 누구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누구는 연옥으로 오게 되는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지옥에 가느냐 연옥에 가느냐는 죽기 전에 회개했느냐의 여부로 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지옥에 있는 자들은 -비록 제1옥 림보에 있을지라도-  예수를 믿지 않았기에 구원의 희망이 모래사장의 모래 한알의 크기만큼이나 희박한 가능성을 가지거나 아예 없다고 봐야 하는데,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영혼들은 천국에 오르기 전 연옥을 거쳐 자신의 모든 죄를 씻을 기회를 얻는 것이다.


천주교 신자라면 한 번씩은 누구나 도전해봤을 9일 기도. 한 단을 바칠 때마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구원송을 바치는데, 나는 그 중에서 구원송을 매우 좋아한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지옥불에서 구하시고,  모든 영혼들을 천국으로 이끌어주시며, 특히 자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영혼들을 돌보소서." 연옥에 있는 이들이 우리의 기도와 전구를 간절히 원하고 이를 통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기간이 단축된다는 말이 좋았다. 이미 죽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해줄 수 있는 것이 남아있다고 하니까.


단테는 베르기우스 뿐만 아니라 스타티우스의 안내를 받아 일곱 개의 죄악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면서 가벼워진 몸으로 지상낙원, 에덴으로 올라가 그 곳에서 꿈에 그리던 베아트리체를 만나게 된다. 연옥에서의 가장 큰 핵심은 우리가 자신의 죄를 빠짐없이, 거짓없이 고백함으로써 하느님의 의지를 좇을 수 있는 자유의지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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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에 머물러 있는 영혼들일지라도 자신의 기도만으로는 천국에 오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다만 세상에 남아 있는 가족이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 많은 기도와 함께 선행을 베풀면 연옥에서의 시간이 그만큼 단축되는 것이었다.


"해가 진 다음에는 이 선조차 넘을 수 없습니다. 태양은 하느님의 은총을 뜻하므로 그 하느님의 은총이 사라진 밤 시간에는 연옥의 산 위로 결코 올라갈 수 없답니다. 위로 오르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어둠일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나 그 어둠이 능력을 빼앗고 기력을 잃게 만듭니다. 해가 수평선 아래 갇혀 있는 동안에는 밤의 어두움과 함께 아래로 내려가서 산 밑을 헤맬 수 밖에 없습니다." (p.71)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말에 따라 문지기의 발밑에 엎드린 다음 자비하심으로 문을 열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런 뒤 생각과 말과 행실에 대한 세 가지 죄를 뉘우치는 고백의 표시로 가슴을 세 번 두드렸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입니다."

백옥의 흰색, 금이 가 있는 자주색, 핏빛의 붉은색은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순백에 물들여 짓게 되는 죄의 상징적 고유 의미였다. 단테는 이 죄의 댓가를 겸손히 고백의 기도를 통해 참회했던 것이다. 단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문지기는 그의 이마에다 칼끝으로 알파벳 P자를 일곱 개 썼다. 문지기가 쓴 P자는 일곱 가지 큰 죄로써 교만, 질투, 분노, 태만, 탐욕, 탐식, 음란을 뜻한다. 이것들은 모두 지옥에 떨어질 만한 죄악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문지기가 단테를 향해 말했다.

"문 안으로 들어가거든 반드시 이 상처를 하나하나 씻어내도록 하라!"

문지기는 타다 남은 잿빛 같기도 하고 메마른 흙빛 같기도 한 옷자락 밑에서 두 개의 열쇠를 꺼냈다. 하나는 흰빛이고 다른 하나는 누런빛이었다. 문지기는 그것을 단테의 손에 쥐어 주었다.

"연옥 문을 지키시는 근엄하신 천사여! 이 두 개의 열쇠는 무엇이옵니까?"

"황금 열쇠는 인간의 죄를 사하시는 하느님의 권능의 열쇠이고, 은 열쇠는 참회하는 자를 판단하는 사제의 재량을 표시하는 열쇠이다. 열쇠 중 하나라도 자물쇠에 맞지 않아 열리지 않는다면 너희는 연옥으로 결코 들어갈 수가 없다."(pp. 91-92)


'현재의 세상이 옳은 길에서 벗어나 있다면, 그 원인은 인간들의 마음 속에서 찾아야 한다.'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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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이름은 자비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대화
프란치스코 교황.안드레아 토르니엘리 지음, 국춘심 옮김 / 북라이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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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의 해에 한국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책이 쏟아져 나왔다. 너무 많은 책이 서점에 널려 있게 되자 나는 그 중 하나의 책을 고르는 일이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그 많은 책 중에서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구매 직전까지 갔던 책이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였다. 내가 그 책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단 하나, 그 책이 이탈리아 유명한 언론인이자 무신론자인 에우제니오 스칼파리와 교황의 대화를 묶어 만든 책이라 다른 사람의 글로 표장된 교황이 아니라 교황이 직접 한 말들을 통해 종교지도자로서의 신념과 가치관을 왜곡되지 않게 배우게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가장 좋고, 차선으로는 그 사람의 인터뷰를 보고 듣고, 그가 쓴 글을 읽어보는 일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말과 글에는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2016년은 교황이 선포한 자비의 희년이다. 벌써 2016년이 1/4이나 지났는데 나는 자비의 희년이 무엇이고 내가 이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회사 생활에 너무 지쳐있었고, 근무하고 있는 부서의 특성 상 사람들의 짜증이나 무시, 억지를 받아줘야 하는 일이 많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 속에 실린 교황님의 말을 읽으며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하고 감사한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기 때문에 그저 들어주십시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이 '귀를 기울여 말을 들어주는 것'이라면, 그건 충분히 내가 매일 매일 해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되자 나는 매일 일로 인해 만나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받던 스트레스가 완화되는 '은총'을 얻었다.


이 책은 매우 얇다. 글씨는 크고, 줄간격은 넓다. 그래서 읽기 쉽다.

교황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세지는 하나다.

"하느님, 우리가 당신이 주신 모든 가르침을 단순한 사랑으로 지킬 수 있게 하여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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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의 이 시대는, 우리의 이 인류는 그렇게 자비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상처 입은 인류이기 때문이지요. 인류는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어요. 인류는 어떻게 그 상처를 치료해야 할지를 모르거나 그 상처들을 치료하는 것이 아예 가능하지 않다고 믿고 있어요. (…)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나약함은 또 대속의 가능성은 없다고 믿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를 일으켜 주는 손은 없다고, 나를 구원하고 나를 용서하고 나를 다시 들어 올려 주고 나를 무한하고 인내롭고 너그러운 사랑으로 넘쳐 흐르게 하고, 나를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는 팔은 없다고 믿는 거예요. 우리에겐 자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든 사회적 지위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젊은이들과 노인들이 오늘날 점술사들과 손금 보는 사람들에게 의탁하는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쟈코모 비피 추기경은 영국 작가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의 다음과 같은 말을 흔히 인용하곤 했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모든 것을 믿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 점쟁이들, 점술사들, 손금 보는 사람들은 항상 있어 왔지요. 하지만 건강과 영적 치유를 그들에게서 찾는 사람들이 이처럼 많지는 않았지요.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자기네 말을 들어 줄 누군가를 찾습니다. 자기네 드라마와 어려움들을 듣고자 시간을 내줄 준비가 되어 있는 누군가를 찾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제가 '귀의 사도직'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것은 중요하지요. 아주 중요해요. 고해사제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말하십시오, 인내를 가지고 들으십시오,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해주십시오. 고해사제가 죄를 사해 줄 수 없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성사적 사죄 없이라도 어쨌건 축복을 해 주십시오. 성사를 받을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도 하느님의 사랑은 있습니다.  (…) 그런 사람들에게 다정한 사랑을 지니십시오. 그들을 멀리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습니다. 고해사제라는 것은 커다란 책임입니다. 고해사제들은 하느님께서 아주 많이 사랑하시는 길 잃은 양들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알아차리도록 하지 않으면 멀어집니다.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들을 안아 주고, 죄를 사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자비로 대하십시오. (pp.47-51)


내가 내 잘못들에 대해 내 형제와 함께 말할 능력이 없다면 하느님과도 그에 대해 말할 능력이 없는 것이 확실하며, 그렇게 자기 자신 앞에서 거울에다 잘못을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지요. 우리는 사회적 존재들이며, 용서에는 사회적 차원도 있습니다. 인류는, 내 형제자매들은, 사회는 내 죄로 인해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사제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다는 것은 그 순간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편에서 행동하는 다른 사람의 손과 마음에 내 삶을 두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구체적이고 참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지요.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서 현실 앞에 서는 거예요. (p.56)


루이지 쥬싸니 신부는 부르스 마셜의 소설 <각 사람에게 돈 한 푼을>에서 이런 예를 이야기하지요. 책의 주인공인 가스통 수도원장은 프랑스인 빨치산들이 곧 사형시키려고 하는 젊은 독일 병사에게 고해성사를 주어야 했습니다. 병사는 여자들에 대한 자신의 정욕과 자기가 경험한 수많은 연애담을 고백했지요. 수도원장은 그에게 통회해야 함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통회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통회는 제가 좋아하는 것이었어요. 기회만 된다면 지금이라도 하고 싶어요. 통회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그러자 이미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그 젊은 참회자의 죄를 사해 주고 싶은 가스통 수도원장은 하나의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유감스러워 하지 않는 것이 유감인가요?" 젊은이는 즉각적으로 대답합니다. "그럼요, 전 제가 유감스러워하지 않는 것이 유감이라고요." (p.72)


이제 어떤 사제가 "제가 좋은 고해사제이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묻는다면 그에게 어떤 권고들을 주시고 싶으신지요?

자기 죄를 생각하라는 것, 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랑을 가지고 들으라는 것, 주님께 당신의 마음처럼 자비로운 마음을 자기에게 주시도록 기도하라는 것, 자기도 용서를 필요로 하는 죄인이니 결코 첫 번째 돌을 던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비에 있어서 주님을 닮도록 하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제가 말하고 싶은 것들입니다. (p.89)


이탈리아 주교회의 모임 중에 어떤 형제 주교님이 성 아우구스티노의 저술 <아브라함에 대하여>에서 가져온 이런 표현을 인용하시더군요. "은총이 베풀어지는 그곳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 엄격함이 행해져야 할 때는 오직 직무자들만이 현존하며 그리스도께서는 부재하신다." (p.112)


타락은 하나의 행위가 아니라 상태입니다.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상태로서 그 상태로 살아가는 데 습관이 드는 거지요. 타락한 사람은 대단히 폐쇄적이고 자만자족에 빠져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를 토론으로 끌어들이지 못합니다. 기만하는 태도에 기초하여 자존감을 구축한 거지요. 곧 자신의 존엄성과 다른 사람들의 존엄성을 대가로 치르면서 기회주의라는 지름길 가운데로 지나갑니다. 타락한 사람은 항상 "나는 그러지 않았어!"하고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요. (p.140)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마태 5, 41),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루카 6, 29),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마태 5, 42), 마지막으로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마태 5, 44). 복음서에는 하느님의 논리인 차고 넘치는 자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 많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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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암브로시오 성당의 수녀들 - 4점
후베르트 볼프 지음, 김신종 옮김/시그마북스


 
독일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두 번의 결혼에서 쓰디쓴 아픔을 겪어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카타리나는 자신이 누구보다 의지하고 따르던 고해신부의 추천을 받아 알게 된 로마의 성 암브로시오 수도원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죽은 두 남편이 남긴 어마어마한 유산과 로마 교황과도 이어지는 든든한 연줄이 있었던 카타리나는 자신이 원하는 수도원에 손쉽게 자리를 얻어 들어갈 기회를 얻는다. 카타리나는 비록 자신이 가진 돈과 인맥으로 수도원에 손쉽게 들어갈 수는 있어도 신께 몸과 마음을 바치기로 한 번 결정한 순간 수도원을 살아서 나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보다 신중한 결정을 위해 예비수녀가 되기 전에 성 암브로시오 성당에서 일정 기간 머물러보기로 한다. 성 암브로시오 수녀원에 머무르는 동안 카타리나는 철저한 순종과 자기절제로 점철된 수도원 속 수녀들의 삶이 자신이 생각하던 이상적인 삶과 부합한다고 생각했고,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수녀가 되는 일을 더이상 망설이지 않기로 한다. 루이사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부여받은 카타리나는 자신의 새로운 삶에 만족해했다. 적어도 그녀가 예비수녀원장이자 수도원의 수녀원장대리를 겸직하고 있는, 천사같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라 생각했던 마리아 루이사의 기행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예비수녀복을 입게 된 순간, 드디어 수도원의 '진실된' 삶을 보도록 허락받은 카타리나는 수도원 생활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로 전혀 성스럽지 않다는 사실에 놀란다. 귀족 출신인 카타리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마리아 루이사는 미국인 페터 크로이츠부르크로부터 받은 편지의 번역을 카타리나에게 맡기고, 카타리나는 편지 내용을 본 뒤 예비수녀원장의 순결함과 신앙심에 의심을 품는다. 공개적으로 마리아 루이사에게 망신을 준 카타리나에게 앙심을 품은 마리아 루이사는 환시를 통해 카타리나의 죽음을 예언하고, 카타리나는 끊임없이 독에 노출되어 여러 차례 죽음의 위기에 휘말린다.

카타리나는 결국 사촌의 도움을 얻어 가까스로 수도원 탈출에 성공하는데, 자신이 15개월동안 수도원 생활을 하며 알게 된 그곳의 비밀, 그 중에서도 젊고 아름다운 예비수녀원장이 저지른 수많은 죄악들과 비리를 낱낱히 파헤쳐 고발한다. 처음에 재판이 열릴 때만 해도 사건을 담당하게 된 재판관은 나이가 많고 못생긴 카타리나가 젊고 아름다운 예비수녀원장을 질투해 모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으나, 여러 수도원 관계자의 심문 및 증거 자료 착수 수사를 통해 카타리나의 고발 그 이상의 예비수녀원장의 비리와 경악스러운 수도원 내 비밀들을 알게 된다. 이미 종교재판을 통해 가짜 판명을 받은 수도원의 창시자수녀 마리아 아녜세 피라오를 집단으로 성녀로 추앙하고 숭배하고 있었고, 젊고 아름다운 예비수녀원장이 환영과 환시를 이용해 자신에게 절대적 신뢰와 존경을 보이는 수녀들을 성추행하고 예수회 신부와 음란한 행위를 즐겨했으며, 위조한 편지와 장미향기, 천국의 반지 등으로 거짓된 신의 영광을 드러내어 수도원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것이다! 심지어 그것을 의심하는 수녀들을 상대로 환시로 죽음을 예고하고 독약을 이용해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했다(카타리나의 경우는 신의 은총으로 살인미수에 그쳤다.). 카타리나가 덧붙여 말하기로, 그녀가 수도원에 머무르는 기간 동안 마리아 루이사는 종교인들이 지켜야할 거룩한 안식일과 금육제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으며, 시간 맞추어 모두가 기도할 때 이에 참석하는 모습을 한 번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주 어린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와 권력과 애정에 굶주려있었던 마리아 루이사가 벌인 이 사기극은 누가 보아도 속아주기 엉성한 것이었으나, 제대로 성경을 배우지 못한 어린 수녀들은 예비원장수녀가 말하는 믿기지 않는 모든 환상과 환시 등을 그대로 믿었다. 수도원 대부분의 수녀들은 어리고, 무지하여 의심할 줄 모르는 자신들의 "순수한 신앙심"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집단범죄에 가담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이 왜 종교의 진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현대 과학과 이성의 발달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파헤치고, 의심하라고 가르치는데 말이다. 한 손뼉으로 결코 박수소리가 날 수는 없다고, 모든 범죄, 특히 이런 대형 사기극에는 바람잡이역을 해줄 공범자가 필요하다. 고해 신부와 대원장수녀가 그 바람잡이 역을 맡아 마리아 루이사의 사기극을 최선을 다해 도왔기에 사기극이 쉽사리 꺼지지 않고 계속 크게 번졌던 것이다. 마리아 루이사의 신성력을 의심하는 수녀들의 목소리는 모조리 묵살되었고, 위험인자로 낙인찍어 동료 수녀들로부터 고립시켰으며, 끝내는 수도원 내에서 제거해버렸다. 카타리나가 목숨을 걸고 그곳을 탈출해 종교재판소에 재판을 요청하기 전까지 여러 명의 수녀가 아무도 모르게 성적 학대를 당했으며, 입막음을 위해 독살 당해 죽어야만 했다.


이 책은 매우 두껍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쓸데없이 매 챕터마다 여러 번 반복되고, 마리아 루이사 앞에는 '젊고 아름다운'이라는 의미없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았으며, 번역도 매끄럽지 않았다. 만약 이 책이 지금의 반의 두께로만 쓰여졌다면 훨씬 더 내용이 흥미롭고 긴박하게 흘러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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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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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 두 여배우의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온다는 극찬이 줄을 이었던 영화 캐롤. 그렇지만 2월에는 어느 영화관을 가도 검사외전(장르: 강동원) 외에는 영화 선택지가 별로 없었고, 나는 고작해야 70명?이 들어가는 작은 관에서 하루에 많아야 서너번 상영되던 캐롤을 보겠다고 CGV앱을 주구장창 들여다봐야만 했다. 내가 회사를 벗어나 있는 시간, 캐롤을 보고 싶다던 내 친구가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영화관에서 캐롤이 상영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그렇게 힘들게(?) 티켓팅해서 보게 된 영화 캐롤은 매우, 매--우 기대 이하였다. 레트로카메라처럼 바랜 느낌의 영상 속 색감은 아름다웠지만 SNS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극찬했던 두 여배우의 감정선이 왜 나만 따라잡기 어려운건지 싶었다. 생계를 위해 백화점 장난감 코너에서 무기력하게 일하던 테레즈가 자신의 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나온 캐롤에게 갑작스럽게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사랑의 감정을 느껴 그녀에게 열렬하게 빠져드는 장면까지는(두 주인공이 모두 여자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별 문제 없이 관람했다. 사랑에 빠지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랴. 그렇지만 테레즈가 캐롤의 집에 놀러갔다가 갑작스런 캐롤의 전 남편 하지의 등장에 그녀에게 내쫓김 당하듯이 지하철 역으로 이동하고, 울고, 또 그러다가도 캐롤의 제안에 모든 것을 놓고 그녀를 따라 자동차 여행을 떠나고……. 그리고 영화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캐롤이 테레즈에게 매우 애틋한 눈빛을 발사한다.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서 나는 생각했다. 테레즈의 시선으로 캐롤을 보아서는 절대, 이 영화의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는 그 여자, 캐롤을 이해할 수가 없겠구나. 영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영화 해석을 읽으려고 블로그를 검색하던 나는 이 책에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내 머릿속에서 영화 캐롤의 그림자가 지워지기 전에.

영화로 먼저 캐롤을 접했기에, 책을 읽으면서 '어?' 했던 부분이 여럿 있다. 예를 들면 영화 속에서 사진작가 지망생이었던 테레즈가 책속에서는 무대디자이너 지망생이라는 것, 캐롤은 영화와 달리 장난감 기차를 사가지 않았고 장갑을 두고 가는 실수를 저지르지도 않았으며, 딸 린디는 캐롤에 의해 언급만 될 뿐, 테레즈가 캐롤이 린디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일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 책을 다 읽고 나니까 감독이 원작에 무리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각색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카메라라는 소품이 굉장히 쓰임새가 좋았고, 원작 속 인형보다는 장난감 기차를 두고 나눈 캐롤과 테레즈의 나눈 대사와 분위기가 더 좋았다.

우유부단하고, 소심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확신이 없던 어린 테레즈가, 처음으로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생겨서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이 책 거의 마지막 부분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책 뒷장에 붙은 여러 언론사의 호평을 읽고 색다른 로맨스, 완벽한 사랑을 기대하고 읽은 사람 중 대다수는 이 책 캐롤이 지루하다거나, 유치하다거나, 답답하다고 느낄 것이다. 왜 나는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이 느낀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한걸까 하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본인이 느낀 그 감정이 이 책을 읽은 다른 독자들이 느낀 그 감정이다. 이 책은 결국 보통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다. 처음 느낀 감정이기에 완벽하지 못하고, 질척이고, 유치하고, 심지어 이기적인. 테레즈는 캐롤을 열망하고 환상하는 힘이 너무 커서 자신도, 자신의 주변 사람도 돌아보지 못 하고 캐롤과 리처드의 말대로 계속 어린애처럼 군다. 그리고 이 모습은 두 사람이 떠난 여행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테레즈는 캐롤이 결국 린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떠나자, 슬퍼하고 캐롤을 원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눈에 덮여있던 사랑의 콩깍지를 인정하고 벗겨낸다. 그리고 테레즈는 다시 캐롤에게로 간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캐롤을 사랑하기 위해서.

작가가 백화점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만났던 여자를 토대로 그려낸 캐롤. 그녀는 자신에게 레즈비언 작가라는 오명이 붙은 것을 염려해 1952년, 가명으로 이 작품을 발표했는데, 당시 동성애 작품 속 주인공들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생각 이상의 주목과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원래 책에 붙였던 제목은 소금의 값The price of salt이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캐롤이 어감도 예쁘고, 독자들이 보기에 더 캐치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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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은 프랑스식으로 '테레즈'라고 발음했다. 테레즈는 자기 이름이 온갖 발음으로 불리는 상황에 인이 박혀 때론 자신도 여러 가지로 발음했다. 테레즈는 캐롤이 자기 이름을 그렇게 발음하는게 마음이 들었다. 여인이 입술을 움직여 그렇게 부르는 것이 좋았다. 전부터 막연히 느끼던 무한한 갈망이 이제 눈에 보이는 소망으로 이루어졌다. 너무나 어이없고 부끄러운 욕망이 테레즈의 마음속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p.75)

그 누구보다 행복했다. 행복은 날아가는 기분일거야. 마치 연처럼. 테레즈는 상상했다. 누가 연실을 얼마나 푸느냐에 달려 있었다. (p.144)

캐롤이 입을 열었다. "'난 경쟁조차 할 수 없어.' 이런 말 말이야. 사람들이 고전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대사가 바로 고전이지. 백 명이 똑같은 대사를 읊는 게 바로 고전이야. 엄마가 하는 대사와 딸이 하는 대사가 같고, 남편이 하는 대사와 정부가 하는 대사가 같지. 이를테면 '차라리 내 발 밑에서 네가 죽는 꼴을 보는 게 나아.'라는 대사라든가. 같은 작품이 다른 배우들에 의해 계속 무대에 오르는 게 바로 고전이지. 그럼 하나의 연극이 고전으로 등극하기 위해 사람들이 꼽는 조건이 뭘까, 테레즈?"
"고전이란……." 테레즈의 목소리는 긴장해서 숨이 막힐 듯 했다. "인간의 보편적 상황을 다루는 거죠." (p.251)

"당신에게도 가족이 있다고 상상하니 좀 어색해요."
"그게 왜?"
"나한테 당신은 그냥 당신이거든요. 누구와도 얽히지 않은 독자적인 존재."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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