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이름은 자비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대화
프란치스코 교황.안드레아 토르니엘리 지음, 국춘심 옮김 / 북라이프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의 해에 한국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책이 쏟아져 나왔다. 너무 많은 책이 서점에 널려 있게 되자 나는 그 중 하나의 책을 고르는 일이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그 많은 책 중에서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구매 직전까지 갔던 책이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였다. 내가 그 책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단 하나, 그 책이 이탈리아 유명한 언론인이자 무신론자인 에우제니오 스칼파리와 교황의 대화를 묶어 만든 책이라 다른 사람의 글로 표장된 교황이 아니라 교황이 직접 한 말들을 통해 종교지도자로서의 신념과 가치관을 왜곡되지 않게 배우게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가장 좋고, 차선으로는 그 사람의 인터뷰를 보고 듣고, 그가 쓴 글을 읽어보는 일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말과 글에는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2016년은 교황이 선포한 자비의 희년이다. 벌써 2016년이 1/4이나 지났는데 나는 자비의 희년이 무엇이고 내가 이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회사 생활에 너무 지쳐있었고, 근무하고 있는 부서의 특성 상 사람들의 짜증이나 무시, 억지를 받아줘야 하는 일이 많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 속에 실린 교황님의 말을 읽으며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하고 감사한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기 때문에 그저 들어주십시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이 '귀를 기울여 말을 들어주는 것'이라면, 그건 충분히 내가 매일 매일 해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되자 나는 매일 일로 인해 만나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받던 스트레스가 완화되는 '은총'을 얻었다.


이 책은 매우 얇다. 글씨는 크고, 줄간격은 넓다. 그래서 읽기 쉽다.

교황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세지는 하나다.

"하느님, 우리가 당신이 주신 모든 가르침을 단순한 사랑으로 지킬 수 있게 하여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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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의 이 시대는, 우리의 이 인류는 그렇게 자비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상처 입은 인류이기 때문이지요. 인류는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어요. 인류는 어떻게 그 상처를 치료해야 할지를 모르거나 그 상처들을 치료하는 것이 아예 가능하지 않다고 믿고 있어요. (…)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나약함은 또 대속의 가능성은 없다고 믿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를 일으켜 주는 손은 없다고, 나를 구원하고 나를 용서하고 나를 다시 들어 올려 주고 나를 무한하고 인내롭고 너그러운 사랑으로 넘쳐 흐르게 하고, 나를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는 팔은 없다고 믿는 거예요. 우리에겐 자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든 사회적 지위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젊은이들과 노인들이 오늘날 점술사들과 손금 보는 사람들에게 의탁하는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쟈코모 비피 추기경은 영국 작가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의 다음과 같은 말을 흔히 인용하곤 했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모든 것을 믿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 점쟁이들, 점술사들, 손금 보는 사람들은 항상 있어 왔지요. 하지만 건강과 영적 치유를 그들에게서 찾는 사람들이 이처럼 많지는 않았지요.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자기네 말을 들어 줄 누군가를 찾습니다. 자기네 드라마와 어려움들을 듣고자 시간을 내줄 준비가 되어 있는 누군가를 찾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제가 '귀의 사도직'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것은 중요하지요. 아주 중요해요. 고해사제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말하십시오, 인내를 가지고 들으십시오,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해주십시오. 고해사제가 죄를 사해 줄 수 없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성사적 사죄 없이라도 어쨌건 축복을 해 주십시오. 성사를 받을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도 하느님의 사랑은 있습니다.  (…) 그런 사람들에게 다정한 사랑을 지니십시오. 그들을 멀리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습니다. 고해사제라는 것은 커다란 책임입니다. 고해사제들은 하느님께서 아주 많이 사랑하시는 길 잃은 양들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알아차리도록 하지 않으면 멀어집니다.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들을 안아 주고, 죄를 사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자비로 대하십시오. (pp.47-51)


내가 내 잘못들에 대해 내 형제와 함께 말할 능력이 없다면 하느님과도 그에 대해 말할 능력이 없는 것이 확실하며, 그렇게 자기 자신 앞에서 거울에다 잘못을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지요. 우리는 사회적 존재들이며, 용서에는 사회적 차원도 있습니다. 인류는, 내 형제자매들은, 사회는 내 죄로 인해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사제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다는 것은 그 순간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편에서 행동하는 다른 사람의 손과 마음에 내 삶을 두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구체적이고 참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지요.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서 현실 앞에 서는 거예요. (p.56)


루이지 쥬싸니 신부는 부르스 마셜의 소설 <각 사람에게 돈 한 푼을>에서 이런 예를 이야기하지요. 책의 주인공인 가스통 수도원장은 프랑스인 빨치산들이 곧 사형시키려고 하는 젊은 독일 병사에게 고해성사를 주어야 했습니다. 병사는 여자들에 대한 자신의 정욕과 자기가 경험한 수많은 연애담을 고백했지요. 수도원장은 그에게 통회해야 함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통회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통회는 제가 좋아하는 것이었어요. 기회만 된다면 지금이라도 하고 싶어요. 통회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그러자 이미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그 젊은 참회자의 죄를 사해 주고 싶은 가스통 수도원장은 하나의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유감스러워 하지 않는 것이 유감인가요?" 젊은이는 즉각적으로 대답합니다. "그럼요, 전 제가 유감스러워하지 않는 것이 유감이라고요." (p.72)


이제 어떤 사제가 "제가 좋은 고해사제이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묻는다면 그에게 어떤 권고들을 주시고 싶으신지요?

자기 죄를 생각하라는 것, 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랑을 가지고 들으라는 것, 주님께 당신의 마음처럼 자비로운 마음을 자기에게 주시도록 기도하라는 것, 자기도 용서를 필요로 하는 죄인이니 결코 첫 번째 돌을 던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비에 있어서 주님을 닮도록 하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제가 말하고 싶은 것들입니다. (p.89)


이탈리아 주교회의 모임 중에 어떤 형제 주교님이 성 아우구스티노의 저술 <아브라함에 대하여>에서 가져온 이런 표현을 인용하시더군요. "은총이 베풀어지는 그곳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 엄격함이 행해져야 할 때는 오직 직무자들만이 현존하며 그리스도께서는 부재하신다." (p.112)


타락은 하나의 행위가 아니라 상태입니다.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상태로서 그 상태로 살아가는 데 습관이 드는 거지요. 타락한 사람은 대단히 폐쇄적이고 자만자족에 빠져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를 토론으로 끌어들이지 못합니다. 기만하는 태도에 기초하여 자존감을 구축한 거지요. 곧 자신의 존엄성과 다른 사람들의 존엄성을 대가로 치르면서 기회주의라는 지름길 가운데로 지나갑니다. 타락한 사람은 항상 "나는 그러지 않았어!"하고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요. (p.140)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마태 5, 41),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루카 6, 29),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마태 5, 42), 마지막으로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마태 5, 44). 복음서에는 하느님의 논리인 차고 넘치는 자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 많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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