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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암브로시오 성당의 수녀들 - 1858년 하느님의 성전에서 벌어진 최초의 종교 스캔들
후베르트 볼프 지음, 김신종 옮김 / 시그마북스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독일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두 번의 결혼에서 쓰디쓴 아픔을 겪어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카타리나는 자신이 누구보다 의지하고 따르던 고해신부의 추천을 받아 알게 된 로마의 성 암브로시오 수도원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죽은 두 남편이 남긴 어마어마한 유산과 로마 교황과도 이어지는 든든한 연줄이 있었던 카타리나는 자신이 원하는 수도원에 손쉽게 자리를 얻어 들어갈 기회를 얻는다. 카타리나는 비록 자신이 가진 돈과 인맥으로 수도원에 손쉽게 들어갈 수는 있어도 신께 몸과 마음을 바치기로 한 번 결정한 순간 수도원을 살아서 나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보다 신중한 결정을 위해 예비수녀가 되기 전에 성 암브로시오 성당에서 일정 기간 머물러보기로 한다. 성 암브로시오 수녀원에 머무르는 동안 카타리나는 철저한 순종과 자기절제로 점철된 수도원 속 수녀들의 삶이 자신이 생각하던 이상적인 삶과 부합한다고 생각했고,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수녀가 되는 일을 더이상 망설이지 않기로 한다. 루이사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부여받은 카타리나는 자신의 새로운 삶에 만족해했다. 적어도 그녀가 예비수녀원장이자 수도원의 수녀원장대리를 겸직하고 있는, 천사같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라 생각했던 마리아 루이사의 기행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예비수녀복을 입게 된 순간, 드디어 수도원의 '진실된' 삶을 보도록 허락받은 카타리나는 수도원 생활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로 전혀 성스럽지 않다는 사실에 놀란다. 귀족 출신인 카타리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마리아 루이사는 미국인 페터 크로이츠부르크로부터 받은 편지의 번역을 카타리나에게 맡기고, 카타리나는 편지 내용을 본 뒤 예비수녀원장의 순결함과 신앙심에 의심을 품는다. 공개적으로 마리아 루이사에게 망신을 준 카타리나에게 앙심을 품은 마리아 루이사는 환시를 통해 카타리나의 죽음을 예언하고, 카타리나는 끊임없이 독에 노출되어 여러 차례 죽음의 위기에 휘말린다.
카타리나는 결국 사촌의 도움을 얻어 가까스로 수도원 탈출에 성공하는데, 자신이 15개월동안 수도원 생활을 하며 알게 된 그곳의 비밀, 그 중에서도 젊고 아름다운 예비수녀원장이 저지른 수많은 죄악들과 비리를 낱낱히 파헤쳐 고발한다. 처음에 재판이 열릴 때만 해도 사건을 담당하게 된 재판관은 나이가 많고 못생긴 카타리나가 젊고 아름다운 예비수녀원장을 질투해 모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으나, 여러 수도원 관계자의 심문 및 증거 자료 착수 수사를 통해 카타리나의 고발 그 이상의 예비수녀원장의 비리와 경악스러운 수도원 내 비밀들을 알게 된다. 이미 종교재판을 통해 가짜 판명을 받은 수도원의 창시자수녀 마리아 아녜세 피라오를 집단으로 성녀로 추앙하고 숭배하고 있었고, 젊고 아름다운 예비수녀원장이 환영과 환시를 이용해 자신에게 절대적 신뢰와 존경을 보이는 수녀들을 성추행하고 예수회 신부와 음란한 행위를 즐겨했으며, 위조한 편지와 장미향기, 천국의 반지 등으로 거짓된 신의 영광을 드러내어 수도원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것이다! 심지어 그것을 의심하는 수녀들을 상대로 환시로 죽음을 예고하고 독약을 이용해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했다(카타리나의 경우는 신의 은총으로 살인미수에 그쳤다.). 카타리나가 덧붙여 말하기로, 그녀가 수도원에 머무르는 기간 동안 마리아 루이사는 종교인들이 지켜야할 거룩한 안식일과 금육제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으며, 시간 맞추어 모두가 기도할 때 이에 참석하는 모습을 한 번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주 어린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와 권력과 애정에 굶주려있었던 마리아 루이사가 벌인 이 사기극은 누가 보아도 속아주기 엉성한 것이었으나, 제대로 성경을 배우지 못한 어린 수녀들은 예비원장수녀가 말하는 믿기지 않는 모든 환상과 환시 등을 그대로 믿었다. 수도원 대부분의 수녀들은 어리고, 무지하여 의심할 줄 모르는 자신들의 "순수한 신앙심"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집단범죄에 가담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이 왜 종교의 진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현대 과학과 이성의 발달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파헤치고, 의심하라고 가르치는데 말이다. 한 손뼉으로 결코 박수소리가 날 수는 없다고, 모든 범죄, 특히 이런 대형 사기극에는 바람잡이역을 해줄 공범자가 필요하다. 고해 신부와 대원장수녀가 그 바람잡이 역을 맡아 마리아 루이사의 사기극을 최선을 다해 도왔기에 사기극이 쉽사리 꺼지지 않고 계속 크게 번졌던 것이다. 마리아 루이사의 신성력을 의심하는 수녀들의 목소리는 모조리 묵살되었고, 위험인자로 낙인찍어 동료 수녀들로부터 고립시켰으며, 끝내는 수도원 내에서 제거해버렸다. 카타리나가 목숨을 걸고 그곳을 탈출해 종교재판소에 재판을 요청하기 전까지 여러 명의 수녀가 아무도 모르게 성적 학대를 당했으며, 입막음을 위해 독살 당해 죽어야만 했다.
이 책은 매우 두껍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쓸데없이 매 챕터마다 여러 번 반복되고, 마리아 루이사 앞에는 '젊고 아름다운'이라는 의미없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았으며, 번역도 매끄럽지 않았다. 만약 이 책이 지금의 반의 두께로만 쓰여졌다면 훨씬 더 내용이 흥미롭고 긴박하게 흘러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