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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속 인문학 - 키케로부터 코코 샤넬까지 세상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인문 강의
김홍기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9월
평점 :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인다. 첫 직장을 의류 생산쪽에서 시작한 나지만 옷에는 쥐뿔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결국 좀 더 내가 관심있고 좋아하는 분야에서 직업을 얻어보겠다고 삼년 만에 일을 관뒀다. 원단과 옷의 생산적 흐름은 대충이나마 알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나한테 맞는 옷이 무엇인지, 어떤 소재가 좋고 어떤 색상이 어떤 느낌을 내는지 디자인적인 부분은 잘 모른다. 옷 고르러 쇼핑하러 가는 일이 세상 어떤 일보다도 귀찮고 힘든 난 이 쪽으론 감각이 영 꽝이구나,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쉽게 손에서 놓아버린 첫 직장의 업무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의식주는 결코 우리 삶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며 꼭 필요한 기본이다. 단순히 보호의 기능을 넘어 옷을 '잘' 입는다는 건 결국 T.P.O와 본인 스스로에 대해 잘 아는 것으로, 어쩌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다. 왜 그 때의 나는 이 책의 저자처럼 옷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배워보려는 생각은 하지 못 했을까?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 교유의 전통의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식 의복을 입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나마 명절에는 챙겨입던 한복은 이제 전주나 한옥마을에 가야 테마파크에서 미키 머리띠 쓰듯 남들이 모두 이곳에선 입으니까 이목 신경쓰지 않고 재미로 입을 수 있는 옷이 되었다. 우리나라사람 대부분 트렌치코트하면 영국 버버리가 원조고, 청바지하면 리바이스 진이 원조다 정도의 짤막 상식들은 있을지 몰라도 정확히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이나 옷의 자재, 부자재의 발달 과정이나 사용 목적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는 않다. 사실 몰라도 옷을 입고 사는데 큰 지장은 없기 때문에 굳이 알아야 하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중학교 기술가정 교과서야 뭐야 하면서. 하지만 나는 이런 류의 지식들을 좋아한다. 몰라도 사는데 큰 지장 없지만, 알게 되면 그전까지 무심코 지나갔던 것들에 한 번 더 눈길이 가기 만드는 이야기들.
이 책의 저자는 일단 글을 참 잘 쓴다. 의복과 관련된 명사의 말, 역사, 국내 이슈, 본인의 의견 등을 잘 버무려냈기에 글은 쉽게 읽히고 재미가 있다. 독자에게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바 역시 명확하게 전달된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내 몸에 옷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추려고 한단다. 하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패션은 단순히 옷을 잘 입는 기술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기술이다. 컬러는 어떻게 매칭하고, 악세사리는 어떻게 두르고, 어떤 체형에는 어떤 디자인이 어울리고 하는 기술적인 내용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고 스스로를 분석하여 본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편안한 스타일 만드는 것이 우선임을 강조한다. 스스로의 스타일을 찾아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옷을 보고 그 옷 주인의 생각, 삶의 방식,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개성을 잃어버린 보편적인 미의식부터 고령화시대 시니어계층의 패션의 중요성, 모피로 보는 동물 윤리 등 옷으로 저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결코 가볍지 않고 철학적이다. 나처럼 옷에 대해 무지하고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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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옷장에 비유해보자. 그 속에서 우리는 매일 삶이라는 전쟁터에 나가 우리를 보호해줄 영혼의 갑옷을 고른다. 그 갑옷은 그저 한기와 더위를 막아주는 일차원적 기능을 넘어, 우리의 존재감, 정체성, 세상과 대면할 용기, 시대를 읽는 눈, 미적 감각 등 취향을 반영하는 거울이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 인정을 추구하며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사회의 평가와 무관한 중립적 목표란 존재할 수 없다. 패션은 우리가 설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안팎으로 우리를 돕는다. (p.32)
1930년대 '패션의 건축가'로 알려진 프랑스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마들렌 비요네는 '"옷이란 그저 몸 위에 걸쳐지는 사물이 아니다. 옷은 인간 신체의 선을 따라가야 한다. 사람이 웃으면 옷도 함께 웃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직물이 인간의 몸을 자연스럽게 감싸면서 내면의 관능미를 발산시키게 하는 바이어스 재단법을 만든 디자이너였다. 서구 패션의 역사에서 인간의 몸은 옷에서 제대로 해방된 적이 없다. 중세 말 재단기술이 발명된 이후로 인간은 옷에다 몸을 맞추어야 하는 형벌을 받아야 했다. 그 형벌로부터 인간의 몸을 해방시키고 옷과 인간의 표정을 하나로 묶어낸 이가 바로 비요네다. (p.37)
"어떻게 하면 옷을 세련되게 잘 입을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관찰하세요!"라고. 다시 말해 타인의 옷차림을 제대로 관찰한 후에 나만의 스타일링을 시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관찰은 본질적으로 전체적인 양상을 파악하는 단계다. 따라서 그저 옷 자체의 형태나 색상, 질감만이 아닌, 옷을 입은 후의 모양이나 상태, 즉 얼굴의 표정에서 제스처에 이르는 미세한 행동 한하나까지도 살펴봐야 한다. 관찰에 들인 시간과 그 깊이에 따라서 우리의 옷 입기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디자이너들은 이러한 관찰을 공감이라 부른다. 삶의 순간순간 속에서 사람들의 욕망과 행동을 관찰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준비과정이 된다. 좋은 디자인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궤뚫어보는 관찰력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p.38)
궁정에서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경합하는 이들은, 서로를 향해 "Je ne sais quoi(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멋지다.)"라는 말을 자주 썼다. 이 말은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당신에겐 다른 사람에게 없는 섬세한 차이가 있다.'란 뜻이었다. 궁정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유행하는 의상을 입고 비슷한 메이크업을 한 이들 사이에는 외양상의 변별성이 없었다. 유행하는 패션과 헤어스타일, 메이크업은 궁중의 모든 여성들에게 열려있었다. 바로 이 시기에 언어의 정확성, 발걸음의 우아함, 교양의 수준 같이 작은 내적자질들이 인간을 구별하는 지표로서 등장하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이때부터 우아함은 '태도의 과학'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미세한 뉘앙스, 무심하게 차별화를 주는 패션 스타일링 전략은 오늘날의 프렌치 시크를 탄생시킨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pp.45-46)
<궁정인>(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 (…) 카스틸리오네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술을 소개한다. 바로 궁정인이 피해야 할 행동인 '아페타치오네'와 반드시 성취해야 할 행동인 '스프레차투라'이다. 아페타치오네는 자신의 자질과 능력을 타인들에게 보여주려는 과도한 열망, 바로 허세와 과시욕이다. 반면 스프레차투라는 그와는 정반대다. 자신이 타인들에게 보여주는 말과 행동이 노력에 의해서가 아닌 저절로 이뤄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즉 타인에게 자신에 관한 좋은 인상을 심되, 과도한 허세를 피하며 스스로를 드러내는 '중용의 미덕'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 스프레차투라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인이 높이 샀던 미덕이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탈리아 문화의 뿌리다. 원래 스프레차투라란 단어에는 '경멸하다', '거만하게 굴다'란 뜻이 담겨있었는데,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어렵고 힘든 일을 노련하고 쉽게 해내는 방식'을 지칭하게 되었다. 일례로 패션화보 속 모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도도하고 거만해 보이는 건 스프레차투라의 원래 뜻을 잘 살린 거라고 할 수 있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세심하게, 유유자적한 듯하지만 능숙하게'가 바로 스프레차투라가 함축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다. (p.58)
영국의 미학자 리처드 볼하임(…) '미니멀리즘'이란 개념을 대중화시킨 인물로, 오랫동안 미술계의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하며 스타일 분석에 생을 바친 철학자다. 그는 그림을 예로 들어 스타일 있는 작품을 남기고자 한다면, "자신의 관심사에 형식과 질서를 부여하라."고 말한다. 그 다음으로 캔버스에 '무엇을 표현할지', '무엇에 관한 내용을 다룰지'를 반드시 숙지하라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스타일이란 기존의 관례와 지시를 따르기보다 자신이 발견한 아름다움의 방식을 스스로 내면화할 때 만들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옷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일도 이와 마찬가지다. (…) 옷 입기란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할지, 그 만남의 상황과 맥락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일이다. 스타일은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지속적으로 삶에 적용하면서 그 속에서 나를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작업이다. 그렇다. 스타일은 '짓는' 것이다. 밥을 짓고 집을 짓듯, 스타일 역시 우리 삶을 짓는 기본요소다. (p.86)
"성품은 나무와 같고, 명성이란 그 나무의 그늘과 같은 것이다. 그늘은 그저 우리가 생각하는 바일 뿐, 나무가 진정 본질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p.95)
1923년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기원전 1350년경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투트 왕의 무덤을 발굴했을 때, 절대 권력 파라오 옆에는 실물 크기의 나무 인형이 놓여있었다. 왕의 옷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왕의 가슴 옆에 누워있는 이 인형이 바로 세계 최초의 마네킹이다. 또 로마 황제 네로의 아내는 자신의 모습을 본뜬 인형을 만들어 자신이 고른 옷을 입혀 평가하곤 했다고 전해진다. (p.127)
사람 대신 옷을 입혀놓은 현대적 의미의 마네킹은 14세기 후반부터 유럽의 재단사들이 패션의 최신 경향을 알리기 위해 작은 인형에 옷을 입힌 후 왕족이나 귀족에게 보냈던 게 시초였다. 프랑스 루이 13세 시절, 파리는 유럽 패션문화의 선도자였다. 오늘날 명품 가게가 즐비해있는 파리의 패션특구 생 토노레 거리는 이때도 최신 유행을 전파하는 출발점이었다. 그곳의 재단사들은 약 90센티미터 정도의 키를 가진 채색 목각인형에 당시 유행하는 헤어스타일, 최신의 복장, 네일 케어, 구두를 비롯한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최신 유행 품목들을 착장시켜 정기적으로 유럽의 각 궁정에 보냈다. 이 인형을 판도라라고 불렀다. (p.127)
패션이 글쓰기와 맞닿아있다는 것은 디자이너의 작업을 보면 또 알 수 있다. 디자이너들은 매 시즌마다 수십여 벌의 옷을 유기적인 주제로 묶어 발표한다. 이를 라인이라 칭하는데, 시의 한 행을 라인이라고 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패션쇼에 등장하는 수십여벌의 옷이 모이면 한 편의 시를 이룬다.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도 "시와 마찬가지로 패션은 어떤 것도 명시하지 않는다. 그저 제안할 뿐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p.169)
나는 내 강의를 듣는 이들에게 숙제를 내준다. 일주일 동안 자신이 입을 옷에 대한 일기를 쓰는 것이다. 브랜드나 색상, 실루엣에 대한 설명보다, 그 옷을 입고 어떤 경험을 할 것인지, 누구를 만날 것인지, 본인이 타인에게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고 싶은지를 기록하게끔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은 옷이라는 사물 자체보다, 옷을 통해 얻게 되는 경험과 느낌에 주목할 것이다. 글쓰기가 옷을 입는 행위를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사실 스타일링이 어려운 것은 우리가 '유행'이란 사회현상에 지속적으로 흔들리기 때문이다. (p.169)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유행의 심리학>에서 "유행이란 사회적인 평준화를 추구하는 경향과 개인적인 독특성을 추구하는 경향 사이에서 타협을 보장하는 삶의 형태이다."라고 주장한다. (…) 스타일은 한 인간이 온 생앵를 다해 지켜내야 할 원칙이자 세계관이라면, 트렌드는 한 인간의 온 생애가 지루해지지 않도록 '새로움'을 주입하는 장치다. (p.170)
티셔츠는 원래 중세시대 군인들이 입던 속옷인 리넨셔츠에서 유래했다. 당시 군인들은 철사를 고리형태로 연결하여 그물처럼 짠 갑옷을 입었는데, 제작기술이 좋지 않아 맨몸에 걸칠 경우 긁히기 쉬웠다. 티셔츠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입던 것으로, 처음엔 언더웨어로 착용되었다. 귀족들 역시 자신의 값비싼 겉옷이 땀과 같은 신체의 분비물로 인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티셔츠를 속옷처럼 입었다. 이처럼 티셔츠는 결코 바깥에 드러나도록 입는 옷이 아니었다. 이런 흐름은 20세기까지 지속되었다. (p.175)
티셔츠가 일반 대중에게 겉옷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한 세계대전의 여파 때문이다. 종전 후 군인들은 일상에 돌아와서도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웅을 상징하는 옷이란 문화적 의미가 더해지면서 티셔츠는 일반 대중에게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p.176)
디자이너가 특정 패션 품목을 '고급스럽게' 재해석하는 과정은 하위문화와 상위문화가 충돌 없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p.178)
고대 그리스에서 신발은 노예와 자유민을 구별하기 위한 지표였다.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맨발은 노예의 비천함의 표시다."라고 말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노예는 신발을 신는 것이 결코 허락되지 않았다. 이 당시 노예들은 석고로 발을 싼 상태로 시장에서 매매되었다. 이들을 '백색 석고를 한 인간'이란 뜻의 크레타티라고 부른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신발을 신는다는 것은, 내 앞에 놓인 길을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더불어 걸어가는 방향 또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영어에서 '내가 당신의 입장이라면'이란 뜻으로 'If I were in your shoes'란 표현을 쓰는 것도 신발이 한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뜻하게 된 데서 연유한 것이다. (pp.204-205)
노자는 <도덕경>에서 사물을 바라봄의 관점으로 명을 이야기한다. 해만 보는 것도, 달만 보는 것도 아니라 양편을 모두 품을 때 나오는 인식이 바로 통찰이며, 노자는 이것을 '밝을 명'이라고 하였다. 해와 달같이 한 자리에서 함께할 수 없는 대립적인 세계, 즉 이분법적인 두 세계를 우리의 시각이 동시에 포용할 때 마침내 '밝음'의 상태가 된다는 뜻이 아닐까? 안경은 인간의 시각이 갖추어야 할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안경이 두 개의 창으로 구성된 이유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보라는 의미일 테다. (p.213)
이탈리아의 세계적 좌파 정치학자이자 '지성인들의 지성'으로 꼽히는 안토니오 네그리는 안경을 쓰고 보는 것보다 안경을 벗고 보는 것이 때론 더 잘 보인다고 했다. 세상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만들어서 씌워놓은 안경을 벗어던지는 일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썼다 벗었다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안경의 묘미 아니겠는가. (p.214)
유물론을 통해 실재를 파악하고 역사를 해석한 칼 마르크스에게도 코트는 중요한 사물이었다. 1849년 영국으로 망명한 그는 런던 빈민가에서 일곱 명의 자식과 함께 조그만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아픈 자식들이 죽어가도 손을 못 쓸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주요 수입원은 몇 개의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게 전부였고, 형편없는 원고료로 가계를 꾸려가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그때마다 그는 전당포에 자신의 프록코트를 저당 잡히고 식료품을 샀다. 하지만 전당포에 코트를 맡기는 날에는 그가 글을 쓰러 자주 갔던 대영도서관 입장이 불가능했다. 당시 대영도서관은 코트를 착용하지 않은 자들의 입장을 불허했다. 코트가 없는 사람은 그만한 품위와 격식이 없는 사람으로 봤기 때문이다. 결국 친구인 엥겔스가 돈을 보내주면 마르크스는 코트를 되찾아 입고 도서관으로 갔다. 그때 도서관에 틀어박혀 집필한 책이 바로 <자본론>이다. 위 일화를 비추어 보건대 복식 연구자들의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한 벌의 코트에서 시작되었다."는 농담은 꽤 그럴듯해 보인다. (pp.233-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