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홈즈 Miss 모리어티
헤더 W. 페티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알던 기존 로맨스 소설의 공식을 깨는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찾아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 - 추리, 호러, 스릴러, SF, 판타지, 역사, 좀비 등 -에  로맨스를 양념처럼 곁들인 책을 출간하는 블랙 로맨스 클럽에서 추리하면 떠오르는 셜록 홈즈와 그의 숙적, 모리아티가 현대 런던의 고등학생으로 등장해 추리 내기를 빙자하여 썸타는 신간 소설을 냈다. 일단 이 책을 내가 고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표지와 제목의 힘이었다. 그리고 이 책이 믿고 보는 황금가지의 블랙 로맨스 클럽이라는 이유도 한 몫했고. 이 책의 원제는  'Lock & Mori'로, 이는 곧 책 속에서 홈즈 군과 모리어티 양이 서로를 부르는 애칭이다.


일단 주인공들 이름에서 눈치챌 수 있겠지만 이 책은 로맨스물이기 이전에 추리물이다. 아니, 정통 추리물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소년소녀 탐정물 정도로 보는 편이 좋겠다. 릴리 파셀의 대역을 맡아 몸에 맞지 않는 빅토리아풍 옷을 입고 연기하고 있던 모리어티 양은 연극 도중 울린 화재경보음 때문에 그녀와 전혀 접점이 없던 괴짜 홈즈 군을 만나게 된다. 화재경보음을 듣지 못하고 혼자만의 실험에 푹 빠져있던 홈즈(이하 록)는 자신이 숙달하지 못한 주제의 '시대 의상'을 입고 나타난 모리어티(이하 모리)에게 관심을 보이고, 이 날의 접점을 시작으로 둘은 리젠트 공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함께 풀어나가는 콤비가 된다. 원래 무관심한 아버지였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돌변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난폭한 아버지 모리어티로부터 세 명의 동생을 안전하게 돌봐야만 하는 모리는 자신에게 있는 유일한 친구 문학소녀 미국인 세이디와 자신에게 강한 호감을 드러내는 록에게 자신이 가진 이 작은 비밀을 터놓고 싶지 않아 여러가지 갈등을 빚게 된다. 리젠트 파크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장검에 찔려 일격에 사망한 남자는 갑자기 연극에서 빠진 릴리 파셀의 아버지였고, 그의 추모식을 참석했던 모리는 추모식에 장식되어 있던 사진에서 자신의 엄마를 찾아낸다. 모리는 곧, 파셀 씨의 죽음은 우발적인 강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사진 속에 있던 일곱명이 차례로 죽어가는, 연쇄살인의 일부였음을 눈치채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영국드라마 <스킨스>를 떠올렸다. 아마 이 책의 주인공인 모리어티 양 때문일거다. 책 표지속 모리의 이미지는 왠지 스킨스의 카야 스코델라리오를 떠올리게 하고, 그녀의 말투와 행동에서 반항기와 그녀를 묘사하는 문장에서는 퇴폐미가 물씬 묻어난다. 책의 주인공은 록이 아니라 모리인데, 아마 작가가 여성이기 때문에 모리라는 캐릭터에 자신을 이입해서 이 소설을 그녀의 시점으로 이끌어간듯 하다. 작가는 책 맨 첫장에서 어머니를 위해 이 책을 바친다고 밝혔고, 책 속의 모리 역시 작중 돌아가신 엄마 에밀리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다. 모리는 엄마의 죽음 이후 아버지의 학대를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 끌어안고 있기 때문에 매우 위태로워보이지만, 누군가의 이해보다는 단순한 믿음으로 위안 받는 강한 여자다.


"난 여자잖아. 거기에 따르는 몇 가지 이점이 있지."

"이를테면?"

"이해심과 통찰력, 독특한 세계관, 그리고 끊임없이 과소평가당하는 것에 따르는 힘."

나는 위축되지 않고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마지막 두 단어에 확실하게 밑줄을 쳤다. (p.129)


"그럼 넌 페미니스트야?"

"아니. 페미니스트는 평등을 위해 싸우는데, 그건 불만족스러운 목표거든."

그는 씩 웃었다.

"넌 평등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구나?"

"내가 왜 그래야 해? 남자들은 안 그렇잖아. 전 세대에 걸쳐서 남자들은 통제와 권력을 위해 싸워 왔지. 어째서 여자들은 그저 동등해지는 걸로 만족해야해?"

셜록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권력의 필요를 이해 못하겠어, 정말로. 더 중요한 일들이 있잖아."

"무력함을 느껴 본 적이 없는 자들만이 너 같은 생각을 할 여유가 있지." (pp.129-130)


록과 모리, 둘 어느 쪽도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셜록 홈즈와 모리어티 느낌은 아니다. 물론 셜록은 코난 도일의 소설 속 모습대로 흡연가이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 그 사람의 직업이나 사소한 습관 등을 유추해내는 버릇이 있지만, 이 책에 그려진 그의 말투라던가 모리에게 쉽게 휩쓸리는 모습은 원작에 소시오패스에 가깝게 그려졌던 완벽한 셜록과는 거리감이 있다. 아마 그가 '아직'은 고등학생이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모리어티는 셜록 홈즈 최고의 숙적으로 묘사될만큼 사악하고 비상한 머리의 악인인데 내 생각에 이 책 속 모리양은 셜록 홈즈에서 등장하는 아이린 애들러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두 사람의 설정인 천재성이 글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지만, 모리어티의 성별 체인지, 현대 고등학교라는 배경 설정, 원작에 없던 로맨스 첨가 등으로 한없이 가벼운 글일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달리 이 책의 분위기는 구름 낀 런던처럼 어두우면서도 19세기 런던처럼 위험한 느낌이 도사리고 있고, 중요한 캐릭터 왓슨이 생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모리와 록, 두 캐릭터가 스토리를 무게감 있게 채우고 있다.


책의 결말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작가 소개글에 있는 홈페이지를 들어가봤더니, 록&모리 2권 격인 마인드게임이 2016년 12월에 출간될 예정인가보다. 1권 결말이 도대체 어떻게 끝난건지 도통 이해가 안가고 아쉽다 싶었는데, 이 모두가 이어질 속편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나보다. 리젠트 파크의 살인자가 모리어티가 아니라 모리가 범인이라는 익명의 글들이 그녀의 집으로 날아들고,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져서 경찰도 그 익명의 투고를 믿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리에게는 록이 있다. 이 두 사람이 진실과 정의를 찾아 움직인다. 작가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한국판과 다른 책 표지와 캐릭터 일러스트도 볼 수 있다. http://www.heatherwpetty.com/


이 책에서 별점을 낮게 준 이유는 번역 탓이다. 문장 하나 하나가 쉽게 읽히지가 않는다. 독자가 범인과 동기, 살인 방법을 추리할 수 있는 류의 책이 아니긴 하지만(그렇지만 이미 추리물을 많이 읽은 분들은 위의 짧은 내용 소개만 읽고도 범인이 누군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동기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무엇에 관련된 것인지는 쉽게 유추 가능하다.) 매끄럽지 않은 번역 탓에 책 속의 범죄사건과 록과 모리의 연애사가 머릿속에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