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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평점 :
공부도 안하는 삼수생이라고 집에서 밥버러지 취급 받는 주인공 강무순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할머니댁을 찾았다가 방심한 사이 홀로 계신 할머니 홍간난 여사를 챙길 적임자로 간택(?)되어 산간 오지 마을에 낙오된다. 어렸을 적에 아픈 남동생 탓에 이미 이곳에서 오래 머무른 전적이 있는 무순은 문명의 혜택이 없는 이곳에서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아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여섯 살의 자신이 그린 보물지도를 얻고, 보물지도를 통해 찾아 간 곳에서 무순이 찾아낸 것은 자신의 유치와 매우 훌륭한 솜씨로 조각된 자전거 소년 목상이었다.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닌 이 보물은 누구의 것인가 고민하는 무순의 앞에 마을 유지 경산 유씨 종갓집의 외아들, 꽃돌이 창희가 나타난다. 무순은 창희를 통해 이 물건이 15년 전 이 마을에서 한날 동시에 사라진 네 명의 여자아이 중에서도 유씨 종갓집의 외딸이던 선희의 보물임을 알게 되고, 사라진 선희를 대신하여 선희가 애지중지하던 자전거 탄 소년이 누군지를 찾아 보물을 전달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자신의 이복누나 유선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창희가 무순의 보물'주인'찾기에 동행하는데, 이 두 사람과 보통을 뛰어넘는 여걸 홍간난 여사의 활약으로 15년 전 경찰과 용한 무당도 포기했던 4명의 소녀 실종 사건의 진상에 다다르게 된다. 도대체 한 마을에서 아무런 연고도 없던 네명의 소녀(종갓집 외동딸 유선희, 빨간 지붕집 불량 고등학생 유미숙, 선희와 같은 반이었던 가난한 집의 효녀 황부영, 그리고 목사집 딸 조예은)은 마을 사람들이 마을 최장수 노인의 백수 잔칫날, 증발한 듯 사라질 수 있었던 것일까?
만약 해수온천욕을 해수욕장으로 잘못 알아듣지 않았더라면 그날 마을에서 없어진 소녀 중에 무순도 있었을 것이라고 믿은 홍간난 여사는 사건 바로 다음날 무순을 집으로 돌려보냈고, 무순은 자신이 겪은 큰 일을 머릿속에서 새까맣게 지워버리고 무탈하게 잘 지내왔다. 그렇지만 그 사건은 어린 무순만을 빼고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와르르, 무너뜨려 버린거다. 존재감도 사라져버려 마치 닌자처럼 움직이는 부영의 어머니, 세번 유산 끝에 얻은 귀한 딸을 잃은 뒤 대문을 꽁꽁 잠그고 사는 미선의 부모, 예은이가 일기장에 쓴 대로 외계인을 따라 저 멀리 우주 별로 떠났다고 믿는 목사집 사모님, 그리고 사라진 선희를 대신해 양아들을 들이고 선희의 이름이 결코 마을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유씨 종갓집 사람들……. 책 속에서 무순이 풀을 뽑다가 개미집을 망가뜨리며 하던 문장이야말로 이 책을 관통하는 구절이 아닐까 싶다. "지팡이로 쓰기엔 턱도 없지만 풀이라기엔 제법 뻣뻣한 놈을 뽑았더니 개미가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하필 개미집 위에 풀이 자랐나 보다. 아니면 풀뿌리 밑에 개미집을 지었던가. 개미로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다. (중략) 저들은 죽을 때까지 나란 존재를 모르겠다. 자신들의 삶을 일시에 무너뜨린 이 거대한 존재를. 목적도 악의도 없이 나는 개미의 세상을 무너뜨렸다." 도대체 이 마을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린 악마는 누구일까? 사라진 소녀들은 어떤 괴한에 의해 납치되어 모두 죽임 당한 것일까? 무순의 수사 활동과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주마등" 페이지 속의 '누군가'를 찾기 위해 나는 책을 차마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책디자인에 끌려서 서평단을 신청한 책인데(띠지를 벗기면 반전 표지가 드러난다.), 무더운 이 여름에 책을 손에 붙들고 있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이라 별 네개를 매긴다. 요즘 기대 이하의 실망스러운 책들이 많은데 이 책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무순과 할머니의 재치 넘치는 입담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백미로 꼽는다. 그리고 결말이 모두들 아쉽다고 말한다. 명탐정 만화와 소설을 하도 읽어 왠만한 반전은 금새 눈치채는 나는 오랜만에 예상치 못했던 결말을 맞았고, 결국에 마을 사람 모두가 끝끝내 알지 못한 진실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모든 미스터리 소설에서 모든 진실은 밝혀질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몰라야 우리의 삶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