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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쟁 세트 - 전5권 7년전쟁
김성한 지음 / 산천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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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역사를 알고 있다. 우리는 1592년 임진년 일본이 조선을 침공한 전쟁을 그러고는 나라를 지킬 병력이 없어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한 전쟁을 우리는 임진왜란이라 부른다. 내가 알고 있는 이 '난'은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미쳐서, 임진년에 왜군이 난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고맙게도(?) 명나라에선 그들의 군대를 파견해서 조선군과 같이 왜군을 퇴치했다는 것이다. 우리 조정은 어리석어서 율곡 이이의 십만 양병설을 무시하고, 류성룡은 멍청하기 그지 없어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알지 못 했고, 신립은 용맹하지 못해 모든 병력을 잃었다. 원균은 멍청해서 이순신이 힘들게 조련한 수군과 배를 모두 바라에 가라 앉혀 버린 것이고, 그런 다 망가진 수군을 가지고 일본 수군을 쳐 부순 충무 이순신은 신인 것이다. 관군은 허수아비였고, 곳곳에 뜻 있는 의병들로 인해 7년 간의 전쟁 끝에 왜구를 완전히 몰아낼 수 있었다. 


 바로 여기가 내 사고가 멈춰진 지점이었지만, 표지에 있는 동북아 삼국의 관점이란 이야기를 보면서 사고가 조금씩 전진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입장에선 도대체 왜 이 전쟁을 일으킨 것인지, 또 명나라에선 뭐가 좋다고 우리나라에서 병사를 파견해서 우리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준 것이었을까? 거기에 도대체 우리나라의 조정과 관군은 뭘 하고 있었길래 그냥 짓밟고 지나가듯 한 속도로 서울을 내줄 수 밖에 없는 것이었을까에 대한 의문증과 일본과 명나라에선 어떤 관점으로 이 전쟁을 보고 있을까 등. 이 작품은 그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도 남는 소설이다.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일본의 사료까지 검토하여 이야기를 재구성한 작품인 것이다. 


 8월의 무더운 여름 휴가기간을 기회로 <7년 전쟁>과의 만남을 시작했고, 읽는 내내 때로는 답답하고 화가 나고, 통쾌함에 신이 나서 책을 넘기기도 하고, 안타까움과 전쟁의 처절함에 치를 떨기도 하는 복잡한 심정이 왔다갔다 하며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 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거대한 산을 넘어 온 기분, 그러고 나서 다시 더 높은 산을 만난 기분이다. 작품을 읽으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던 내 심정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무언가 거대한 벽이 날 가로 막은 느낌인 것이다. 장문의 글을 썼다 지우는 걸 반복하다 보니, 멋있는 말을 자꾸 만들어 내려 나도 모르게(?) 글에 힘이 들어갔던 게 아닐까 싶다. 다시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시작해 보려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시점, 조선을 쳐들어 간다는 소문이 만연하여 쓰시마(대마도)에서는 전쟁을 막아 보기 위한 사전 작업이 처절한 시점에서 책은 시작한다. 조선에 사신도 보내고, 조선과 히데요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수많은 계책에 갖은 노력을 다 한다. 그렇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전쟁의 암운이라니. 당연히 역사에 의해 전쟁이 진행될 걸 알면서도 어쩐지 일이 잘 되어 안 하고 넘어갈 것 같은 기분과 여지 없이 무너지는 기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직접 와서 쳐 들어 오겠다고 하는데도, 믿지 않는 관료들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나라에 필리핀과 같은 동남아에서 한 관료가 와서 우리나라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깡그리 무시했던 게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결국 전쟁을 막는 것에 모두 실패하고 안타깝게도 결국엔 1592년 임진년에 전쟁이 시작 됐다. '전쟁'이란 말에서 우리는 장수나 모사와 같은 영웅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펼치는 '전술'과 '무예'의 아름다움을 보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이 작품이 묘사하는 참혹한 '전쟁'을 보고 있으면 유비, 관우, 장비가 활약하는 삼국지(삼국연의)에서의 전투는 무협/판타지에 가깝다. 이 작품 속의 전쟁에선 신묘한 계책으로 적의 길목을 들이쳐 5천의 병사가 10만의 군사를 당해내는 일이나, 적장과 100여 합을 싸우고도 부족하여 힘이 넘치는 장수나 날아오는 화살을 장난처럼 가볍게 창으로 쳐내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냥 참혹함과 사실의 묘사 그게 전부다. 얇은 옷을 입고 타국에서 우리나라에 쳐들어온 병사가 6개월이 지나면 쌀쌀한 날씨에 고생하는 게 당연하고, 기후에 변화가 생겨 비가 내리면 비를 피해 쉴 곳을 찾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병사들도 당연히 밥을 먹어야 하고, 밥은 단지 쌀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밥을 지어야 한다. 밥을 짓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고, 당연히 솥도 필요하다. 시간이 없으면 당연히 생쌀을 씹어 먹을 수 밖에 없고, 무거운 솥과 조리기구는 누군가는 날라야 하는 것이다. 


 삼국지에선 아무리 강력한 적이 들어와도 유능한 장수와 성내 병사가 하나 돼서 굳게 지키면 쉽게 무너지지 않던 성들도 이 작품에선 그렇지 않다. 상대방에게 포위를 당하면 보급이 끊기기 때문에 자살행위이고 겹겹이 둘러 싸고 1, 2, 3진이 돌아가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격해 오는 적을 교대 같은 건 생각하지 못하고 무찔러야 하는 병사들은 당연히 피로할 수밖에 없고, 이런 병사들이라면 도망가는 길을 찾는 것이 당연하다. 아무리 병사들의 사기가 높고 뛰어난 지휘관이 붙어 있더라도 상대방의 수적 우세에는 도무지 당할 수가 없다. 거기에 무기도 계속 써서 닳고, 식량까지 줄어든다면 답이 없다. 정말로 목숨을 내 놓고 싸우다가 쓸쓸히 쓰러질 뿐. 


 의병이란 존재도 뜻이 좋아 의병이지 사실은 동네 청년, 아저씨, 노인들이 무기로는 써 보지도 않은 도구들을 가지고 모인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이 쓰는 무기에 통일성이 있을리 만무하고, 체력도 천차만별이다. 거기에 적을 맞아 싸우다 보면 당연히 무기가 고장나고 떨어질텐데, 뒤에서 누군가 보급을 해 준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러니 이게 도무지 전투가 되는가 싶다. 또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황폐함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전리품으로 모든 걸 쓸어 가고, 툭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죽이고 그들이 가진 작은 것조차 빼앗아 버리는 것이 전쟁이다. 거기에 남아 있는 건물들은 모조리 불을 태워 버리고, 있는 식량들은 쓸어가 버리지 간신히 살아 남은 백성들의 살길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도무지 숨을 쉴 수 없는 답답함이라니..


 거점도 가지지 못한 상대방이 다른 나라에 와서 전쟁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도 빨리 제압을 당할 수 있는 것인지 보면서 참 한심스럽기도 하고, 도무지 결단은 내리지 못하고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는 왕을 보면서는 어째 이런 사람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지 부끄럽고, 한숨만 나오는 눈쌀을 찌푸리게 되는 답답한 상황에서 나의 숨통을 트이게 만드는 사건이 등장하는데  이순신과 조선수군 그리고 각지에서 추앙받는 선비들이 의병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허술한 임금과 당파싸움에 눈이 먼 벼슬아치들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조국과 백성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자꾸만 뭉클함에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이순신 장군의 순도 100% 옥포해전에선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쾌함에, 함대와 수군을 거의 전부 잃고 적의 대함대와 마주하여 대승을 거두는 명량해전에서 가슴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리.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충성을 다하고 갑작스런 내부의 배신에 뒤통수를 맞거나, 용감히 싸우다 적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들, 중과부적의 적에게 돌진하여 한 명의 적이라도 더 죽이고 죽겠다는 일념의 멋진 영웅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홍의장군 곽재우를 필두로, 김천일, 정인홍, 김시민, 조헌, 고경명 등. 부디 멋지게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에 읽다가도 갑자기 허무하게 쓰러지는 그들의 모습에서 괜히 작가를 원망하게 되는 건 참….


 명나라의 등장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는데 화평을 위해 엄청나게 뛰어 다니는 명의 심유경과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가 있다. 화평을 논의하기 위해 전권을 위임받고 사자로 파송되는 심유경은 모두가 가서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시점에 출세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며 나선 인물이었다. 엄청난 거짓말을 일삼고 이쪽 저쪽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그는 여기저기서 비판도 많이 받게 되는데, 결국 다시 결론이 '믿을 사람은 심유경'이라는 걸 나오는 걸 보면 어쩌면 대안 없는 우리사회의 모습과도 상당히 닮아 있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알았던 삼국지의 유명 모사들은 정도의 경중만 있을 뿐 대략 이 정도의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융중의 시골에서 글 읽던 제갈량 같은 사람이 어찌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리라는 예측을 귀신처럼 할 수 있었겠는가. 아무튼 출세를 노리는 이런 심유경의 노력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지켜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임진왜란이란 제목보다 '7년 전쟁'이라는 제목을 쓰며 당시 삼국의 실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려 했던 김성한 작가는 인물의 묘사에서도 그들의 업적이나 실수와 같은 단편적 모습을 통해, 위인으로서 혹은 역사의 죄인으로 결론 내지 않고, 이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역사를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는 류성룡, 김성일의 절대 전쟁은 없다라는 선언도 전쟁을 막으려 뛰어 다니는 대마도 사람들과 일본 조정의 대신들을 보며 내린 최선의 결론이었고, 전쟁을 위한 노역에 끌려 다니는 국민들을 측은히 생각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는 거의 목숨을 내 놓고 실책을 만회하려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원균이 몰살시킨 칠천량 해전의 경우는 무리한 조정의 요구에 될대로 되라는 식의 반응이 문제였던 것는데, 이전 이순신 장군과 해전에서 같이 공을 세우는 모습을 보면 무관으로서는 나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유와 배경이 있었다고 그들의 엄청난 오판과 실책이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류성룡-김성일 병신, 원균 XXX'는 없앨 수 있지 않을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했고, 얼마나 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어야 했으며, 얼마나 많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야 했는지… 작가는 다른 과거의 실수를 했던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역사적 당위성을 부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삼국의 왕들에 대해서는 가장 날카로운 평가의 칼날을 들이민다. 책의 머리에 있는 '무능한 통치자는 만참으로도 부족한 역사의 범죄자다'란 글귀를 보며 무능한 선조를 향한 말로만 생각했지만, 다 읽고 나서는 삼국의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의 피를 보게 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백성을 내팽겨치고 도망가기 바빴던 조선의 선조, 여색에만 관심이 있고 국정과 전쟁에 관심 없어 결국 명나라를 멸망에 이르게한 세 명의 지도자 모두를 향한 말이라는 느낌이었다. (어이가 없는 건 세 왕 모두 다른 말은 안 들어도 애첩의 말에는 쩔쩔맨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사과를 받겠다는 마음에 전쟁을 일으키는 히데요시와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사과를 못해 재침을 받게 만든 선조를 보면서는 국가를 책임지는 그들도 결국은 그 알량한 명분과 체면으로 살아간다는 생각에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그들에게 국사란 건 백성의 삶이란 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싶다.


  역사에는 수많은 복선과 신호, 단서들이 존재하고 임진왜란이 일어 날 당시에도 전쟁을 가리키는 전쟁을 향한 신호, 복선, 단서들이 쌓이고 있었다. 애써 무시하고 상대방를 깔 보며 안심하고 있던 것이 참혹한 결과라는 필연적인 결론으로 귀결이 되었던 것이다. 역사의 이런 모습이 어찌 보면 추리문학과 닮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대부분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역사의 결론을 위한 단서들은 쌓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참혹했던 기억하기 싫은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 또한 그래서 이런 책을 읽으며 그들을 보며 함께 울고 웃었던 것이겠지.


 삼국지나 로마인 이야기 같은 책을 무시하고 싶은 맘 추호도 없고, 남의 역사에 관한 책만 읽고 대한민국의 역사에 관한 책은 읽지 않았던 사람들에 유감은 없지만, 만약 그러한 누군가가 왜 우리나라에는 삼국지나 로마인 이야기 같은 재미있는 책이 없느냐는 불평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이 책 '7년 전쟁'을 읽고 나서 하라고 전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접하고 이 작품의 진가를 알 수 있기를 바라고, 작품을 소개해 준 분께 큰 감사를 드리며, 다시 출판해 준 출판사에 건승이 있기를. 


p.s. 역시 해외에 나갈 때는 그 나라 언어의 기본 회화 정도는 익혀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얻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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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블랙 캣(Black Cat) 17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이기원 옮김 / 영림카디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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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올해 벌써 이런 사건이 두 번째입니다. 정말 바라고 바라던 책들이 떡하고 출판이 된 게 말이죠. 새해부터 이런 기쁜 소식을 자꾸 접하니 꿈인가 싶기도 합니다. 딕슨 카는(구부러진 경첩) 정말 모임이 있을 때면 항상 했던 작가였고, 클럽 모임에서 항상 이야기하던 작가였으니 반가움은 말할 수가 없었고, 블랙캣 시리즈를 이야기할 때 항상 빼 놓지 않고 이야기하던 작가가 바로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이었습니다.

 보통은 인터넷 서점을 이용해 책을 구입하지만, 이 두 책의 경우는 예외였습니다. 설에 지방에 있다 올라오면서 서점에서 바로 구매했던 작품이 <구부러진 경첩>이었고, 바로 이번주에는 울산에 있으면서 도저히 다음주를 기다리고 싶지 않아서 서점으로 달려가 집어 온 작품이 <목소리>였습니다.

 딕슨 카야 애초에 기획을 했던 작품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목소리>의 경우는(물론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앞의 두 작품의 판매부수를 보았을 때 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니까요. 계약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믿어지지가 않았으니까요. 그랬으니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려가 책을 집었을 때의 기분은 정말 뭐라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보물을 건진 기분이니까요. 그리고 단숨에 읽어 나가기 시작했고요.

 역시나 에를렌두르와 엘렌보르그의 모습을 보는 건 반가웠습니다. 지난 작품에서 철없는 마약쟁이 딸이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모습을 보이는 것도 마음에 들고, 에를렌두르가 이번엔 호텔에서 지내면서 더 이상 떡진 머리에 냉동식품을 데워 먹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호텔에서 지낸다는 게 좀 웃기기도 하죠. 사건 현장인 호텔에서 방을 하나 달라고 우겨서 지내는 것이니까요.

 제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작품을 왜 좋아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아이슬란드라는 독특한 나라가 배경이 된 소설이라는 게 한 가지 정도 이유가 되겠고, 주인공 에를렌두르에게서 느껴지는 중후함과 정말 좋아하는 장르인 경찰소설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의 추위가 느껴지는 묘사와 인생의 슬픔과 잔인함을 한없이 깊게 묘사하는 작가의 솜씨가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씩 변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물론 크겠죠.

 아이슬란드의 분위기를 가장 잘 느꼈던 작품과 에를렌두르를 만난 작품이 <저주받은 피>였고, 인생의 잔인함에 대해 심한 분노를 느꼈던 작품이 <무덤의 침묵>이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크리스마스 주에 벌어지는 사건이다 보니 아이슬란드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변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망나니, 마약쟁이였던 딸이(여전히 그렇긴 합니다만.) 나름 아버지 말을 듣기도 하고요, 사건에 있어 나름 역할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에를렌두르는 어떤 여인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모습까지 보여 주고요. 예전 작품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모습이죠.

 그렇지만 이상하게 가장 좋았던 건 그가 자신의 동생의 실종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정말 너무나 슬픈 일인데도 자꾸만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딸이 아버지에게 하는 '내가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라는 말을 하는 모습은 과연 제가 저희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던져주기도 했고요.

 이 작품은 <목소리>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어떤 사람의 목소리에 관해 크게 이야기를 합니다.  목소리 때문에 스타가 됐던 아이돌 스타가 목소리 때문에 망가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요. (그가 불렀던 노래를 들으며 감상에 잠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델라 코르타의 <디바>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그 사람의 죽은 이유를 알기 위해 역시나 이 작품에서도 오랜 과거 속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 둘 진실이 밝혀지게 되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생생하게 그 모습들이 묘사해 내는지 괜히 작가의 얼굴이 궁금해져서 찾아 봤습니다. 구글에서 검색하니까 바로 나오네요. (블랙캣 시리즈에서 작가의 사진도 같이 실어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요.)

 그러고 보니 사건 이야기를 하나도 안 했네요. 리뷰를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건의 내용 자체 보다도 그가 그리는 주인공의 내면 세계나 인생의 처절하도록 슬픈 모습이랄까 하는 것에서 큰 매력을 느끼는 작품이라 줄거리 보다도 다른 게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줄거리야 또 다른 곳에서 보시면 다 알 수 있으실테니까요. 가장 좋았던 건 역시 마지막에 호텔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주는 감동이었습니다. 들을 수는 없어도 전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어딘지 <소오강호>를 읽으며 '소오강호지곡'을 연주하는 영호충과 누구였지(-_-;) 아무튼 그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더욱 좋았습니다.

 읽고 난 기분은 역시나 '아! 정말 좋다. 다음 작품은..'였습니다. 정말 만족스럽고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다시 예전에 읽었던 두 작품을 다시 읽고 싶은 기분을 느끼게 되네요. 이런 책들이 독자에게 외면받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저주받은 책'이 되어 버린 첫 작품과 '독자의 침묵'이 되어 버린 두 작품에 뒤를 이어서 출간해 준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네요. 얼른 다음 작품요 하고 외치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블랙캣 시리즈에서 같은 작가의 작품이 두 개 나온 적도 없는데, 이번이 세 번째니 놀랍기는 합니다. 그런데, 아직 판매량은 그저 그런 것 같아 다음 작품은 나오지 못할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이 앞섭니다. 어째 열 권 정도 사서 뿌리면 다음 책을 내줄려나 모르겠네요. ^^;

 아직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작품을 읽어 보시지 않은 분이 있다면 강력 추천하고요, <저주받은 피>, <무덤의 침묵>, <목소리> 순서로 읽으시면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에를렌두르와 아이슬란드 형사들의 세계에 빠져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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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의 죽음
C. J. 샌섬 지음, 나중길 옮김 / 영림카디널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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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개인적으로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정말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 역사 미스터리라는 이름이 붙은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고풍스러운 느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평범한 진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에, 역사 미스터리를 보며 그다지 감흥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수도원의 죽음>의 죽음을 읽기 시작할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던 듯 싶다.
 
 책을 받고 잘 만들어진 책이라는 생각을 하며, 600 페이지가 넘는 책의 두께에 살짝 질리기도 했지만, 읽어 나가면서 역사에 관한 이야기는 짧게 나오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꼽추라는 특색을 가진 주인공 샤들레이크가 등장함으로 한층 내 흥미를 자극했다. 종교에 크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성경 구절은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더 익숙하게 다가갈 수도 있었다. (제목에 수도원이 들어간 것과 역사 미스터리란 사실에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장미의 이름>에 관한 언급은 빠질 수가 없었다...)

 <Dissolution>이라는 원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제목 <수도원의 죽음>이라는 것은 수도원의 해체를 의미한다. 국왕화 교황의 싸움 이후에 부패한 수도원을 해체시키려는 헨리 8세 국왕과 토머스 크롬웰이 특사를 파견하여 전국에 수도원을 해체하려고 하는 것이고, 특사 중 한 명인 샤들레이크는 살인사건이 벌어진 스칸시 수도원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파견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곳에서는 계속해서 살인이 벌어지고, 음모가 밝혀지는 것이다. 

 수도원과 수도사를 생각하면 굉장히 성스러운 장소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미스터리 팬으로서는 폭풍의 산장과 같이 하나의 추리소설을 위한 좋은 배경의 느낌이다. 남자나 여자만 있는 지루한 곳도 아니고, 여러 인간 군상이 모일 수도 있고. 이 책에서의 느낌은 군대가 사람이 사는 곳이듯, 이곳 수도원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고, 그곳에 사는 수도사들 역시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유혹을 받는 사람들인 느낌이었다.(내가 느꼈던 군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일반 사람들과 다를바 없는 그들 역시 예쁜 여자 하인이 들어오면 꼬시려고 노력을 하는 수도사, 젊은 남자의 육체를 좋아하는 수도사들 등장하는데,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는 여러 종교라는 옷을 입은 사람들도 이들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종교와 관련된 미스터리를 쓰게 되면 과연 종교의 힘, 신의 힘에 관해서 작가는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가에 상당히 흥미를 느낀다. 교황이라는 존재와 그들이 믿는 존재가 그들의 뒤에 있긴 하지만, 그것들의 존재는 항상 멀리 있고, 자신의 옆에는 현실이 있을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과연 작가는 신의 힘을 조금이라도 넣을 것인가, 아니면 역시나 신은 멀리서 바라 보기만 하는 존재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신의 힘이 들어가면 판타지가 되어 버리려나..

 책 뒤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몰랐지만, 원래 특사라는 존재는 굉장히 큰 힘을 가진 존재였다. 그렇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 샤들레이크의 행동을 보면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도 않기에 몰랐지만, 자신의 권위를 이 정도면 굉장히 아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매력은 역시 꼽추 탐정인 샤들레이크였다. 처음에 이름을 외우는 것에 약간 고생을 했지만, 다행히 금방 익숙해졌고 그가 하는 행동과 고민이 간절하게 다가왔다. 장애인이 되어 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고민들도 마음에 와 닿았고, 건강한 청년과 아름다운 여인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질투, 옳다고만 생각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의 표현도 아주 좋았다. 꼽추라고 생각해서일지 모르지만,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어딘지 위험해 보였다.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모습도 그렇고..

 미궁속으로만 빠질 것 같은 사건도 역시 하나의 계기로 인해 자연스럽게 풀리기 시작하고, 주인공 샤들레이크는 탐정 답게 모든 걸 생각해낸다. 보통 역사 미스터리는 결말이 약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결말부가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사건의 결말도 결말이지만, 주인공의 변화하는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뭐, 어찌 보면 전형적인 미스터리 작품의 결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역사라는 걸 아주 잘 섞은 느낌이다. 책을 읽으며 역사에 파묻히는 느낌이 아니고, 150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느끼게 해 주는 느낌이랄까. 다른 역사 미스터리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미스터리적 재미, 역사적 재미와 감동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두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고나 할까.
 
역사 미스터리에 관한 선입견을 바꾼, 그리고 연말이면 항상 하는 개인적인 올해의 미스터리에 최고의 자리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는 여유있게 들어갈 만한 작품이었다.

p.s. 원제도 참 멋지지만, 번역판 제목도 잘 갖다 붙였다. 중의성도 느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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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을 입은 여인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박노출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보통 전 책을 봤을 때 500 페이지가 넘어가면 '아, 두껍다' 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대하게 됩니다.  그랬으니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제 반응은 '뭐..뭐야..' 였습니다.  읽지도 않고 두께에 질려버린 것이지요.  더군다나 요즘은 소설은 잘 읽지 못하고 속독으로 읽을 수 있는 책들만 골라서 대충 읽는 습관을 들이고 있었기에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몸 생각하며 일찍 자는 게 원인이기도 했겠죠.
 

  아무튼 그런 걱정을 안고 스밀라 보다도 두꺼운 책을 안고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있는 구성이 눈에 띄었습니다.  서로 다른 등장인물들의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봤던 오리엔트 특급 살인 등의 작품과 다른 점은 정해진 시간에 발생한 사건에 관해 여러 명이 다른 시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시간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진술을 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서술방식이 발전해서 독초콜릿 사건이나 오리엔트 특급 살인처럼 발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역시나 여러 사람이 진술을 보는 건 커다란 재미였습니다.  당시의 사회상도 느낄 수 있고, 같은 인물에 대해서 다르게 느끼는 사람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추리소설적 재미를 뒷부분에서 느낄 수 있긴 하지만) 이 작품의 재미가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거액의 돈을 상속받게 될 젊고 아름다운 여인과 서로 사랑하는 한 남자, 그 여인의 돈을 노리고 있는 귀족이 등장하는 초반부의 내용이야 상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 뒤에 벌어질 이야기에 대해서는 궁금증 때문인지 책을 계속 붙잡고 있게 되더군요.  그렇다고 내용이 상상을 계속 벗어나는 건 또 아니던데..뻔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제 취향일지도 모르겠네요.  다시 대충 뒤적여 보니 결말은 이미 프롤로그에서 암시하고 있군요.

 

  아주 좋았던 건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였습니다.  다른 추리소설의 모태가 된 작품일지도 모르겠을 흰 옷을 입은 여인 앤 캐서릭이나 계속해서 로라를 지켜주는 마리안과 정직한 청년 하트라이트, 또 똑똑한 악당의 전형인 포스코 백작이나.  여기 등장하는 하트라이트가 저보다 어리다는 사실이 좀 신기하기도 했습니다.(만 나이로하면 동갑이군요...-_-) 마리안이 결혼을 하지 않고 계속 동생 곁에 남아서 동생을 지켜주는 모습이 나오는데,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엔 로라가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오만과 편견>을 읽으면서도 들었던 의문인데 이 귀족들은 도대체 뭐하면서 먹고 살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만과 편견>에서는 열심히 놀러다니기만 하고, 이 작품에서는 매일 왔다갔다만 할 뿐이니까요.  뭐, 음모를 꾸며서 돈을 마련하는 게 돈을 벌기 가장 쉬운 방법이긴 하겠습니다만...

 

  소설의 압권은 역시 모든 걸 설명하는 백작의 편지였습니다.  작가는 퍼시벌이나 포스코 백작 측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대충 무슨 일이 있을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지만, 마지막 편지에선 '오호'를 연발하며 계속 읽게 만들더군요.  뭐, 결말부에서 주인공 친구가 등장하는 건 약간 뜬금없긴 했죠.

 

  고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미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시대를 뛰어 넘는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출간된지 150 년이 지난 작품이 지금 읽어도 새롭게 느껴지고 이런 뛰어난 재미를 갖고 있는 걸 보면서 '고전'의 힘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출판계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일본 소설을 보면 읽기는 쉽지만 내심 가볍다는 생각이 계속 들고, 한 작가의 작품이 인기가 있으면 한 부라도 더 팔아야겠다는 심정으로 그 작가의 작품을 계속 출간하는 게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 음반시장을 보면 김동률이나 브라운 아이즈의 음반이 잘 나가고 있다고 하네요.  그들의 뛰어난 장인정신이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있다고 하는데, <흰 옷을 입은 여인>과 같은 묵직한 고전 작품도 대중에게 인정을 받고 스테디 셀러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2,3의 <흰 옷을 입은 여인>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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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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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마블이라는 게임 덕분에 수도 코펜하겐은 익숙하지만, 사실 덴마크란 나라 자체는 크게 와 닿는 나라는 아니다.  위치도 그렇고 기후도 그렇고, 문화도 물론 그럴 것이다.  이 소설 한 권이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줄 수 있었을까?

  이 소설은 흔히 볼 수 없는 덴마크 소설이다.  덴마크어로 쓰여진 작품을 제대로 번역해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보기에 영역본을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중역이다.  그런데 덴마크를 잘 모르고, 중역인 작품을 읽는데도 참 좋다는 말밖에는.

  주인공 스밀라의 이름을 들었을 때 20 대 중반의 아름다운 금발 여성을 상상했지만, 소설 속에서 그녀는 그런 모습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30 대 후반의 나이, 소설에 살인사건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하드 보일드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모습이랄까.  그럼에도 매력적인 주인공이다.  그녀의 독백을 듣고 있으면 그녀의 생각과 인생에 빠져들게 되고, 그녀가 말하는 눈에 관한 얘기와 수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되었다.

  이 소설을 추리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인데, 그 살인이 약간은 독특하다.  살인에는 항상 동기가 필요한데, 이 피해자가 죽음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재산도 없는 어린 소년을 죽임으로써 얻는 게 과연 무엇일까?  덕분에 자살로 보이는 상황에서 주인공 스밀라는 '눈' 을 통해서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 사건이 살인이라는 걸 간파해 내고 단독으로 범인을 찾아 나서게 된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아이가 높은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으므로.  물론 보수는 없다.

  여기서 스밀라의 행동에 관해 이야기가 많을 수 있지만, 그녀의 인생에서의 우선순위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그녀에게 있어 돈이나 명예보다는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던 그 소년이 훨씬 중요했던 것이다.

  스밀라가 하는 행동들 여기저기 숨어 다니고, 넘어지고 피가 나면서도 자신의 집념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서 보면 책의 제목을 '스밀라의 모험' 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나 맞아서 피가 나는 모습을 보면 내 자신에게도 그 아픔이 전해지는 듯했는데, 딕 프랜시스의 소설에서 느꼈던 기분과도 비슷했다.  머리에서 피가 나도 전혀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그곳의 여자들 특히나 사냥꾼의 후예들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책은 도시, 바다, 얼음 이렇게 3 개의 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덴마크라는 나라의 특성상 이런 구성이 가능한 것이다.  육지에서의 수사와 섬으로 향하는 배의 잠입, 그리고 마지막 도착해서의 모습까지.  육지에서는 그네들의 눈의 모습이 그려지고, 바다에서는  찬 바다 바람과 공기, 얼음에서의 차가움이 자꾸만 눈에 잡힐 듯해서, 난로를 틀어주지 않는 주말 추운 기숙사의 방에서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신세가 처량한 느낌이 자꾸 들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묘사를 잘하는지.

  계속 흥미롭게 책을 잡고 읽어나가는 데 중간을 지나고 후반부를 향하고 있으니, 자꾸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책의 내용이 어려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책이 두꺼워서 그랬는지 졸려서 그랬는지, 번역이 이상했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자꾸만 묘사하는 그 추위와 스밀라가 느끼는 아픔 덕분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자꾸만 읽었던 부분을 반복해서 읽게 되고, 다 읽고 나서의 기쁨이 더 컸던 생각이었다.

  책을 덮고 나서 생각해 보니 참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어린 아이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내가 정확히 이해를 했는지 어쨌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나에게 있어선 작품의 플롯이나 살인사건과 해결에 관한 것보다는 '스밀라' 라는 인물 자체와 스밀라가 보는 세상에 관한 묘사가 더욱 기억에 남았다.

  또  개인적인 관심사와 작품을 연관시키자면 수학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스밀라가 가끔 언급하는 내용을 보는 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고, 특히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에 관한 내용을 언급할 때는 과연 이 작품을 발표할 때 정리의 증명이 끝났었는지 궁금증을 갖기도 했다.  또 항해를 하게 되면서 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데 가진 직업 덕분에 'AP 묄러' 라는 회사나 선급이나 선박에 관한 용어가 나오는 것을 보며 조금은 더 즐거울 수 있었다.  마일즈 데이비스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던가?  덕분에 작가를 하려면 아는 것도 많아야겠다는 걸 새삼 다시 느끼기도 했다.

  사건과 음모에 관한 내용도 상당히 뛰어났기에 이 작품을 추리소설로 보느냐 마느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겠고.  그런 거야 어쨌든 상당한 시간이 걸렸음에도 크게 만족할 수 있는 독서였다.  한두 번 정도는 더 읽어야 그녀의 세계를 이해하는 게 좋겠지만, 언제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  스밀라가 보여주는 매력적인 세계로 빠져서 보내는 주말을 보내는 것도 즐거운 주말을 보내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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